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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7-07-01
 제목  <기획> 탐방1 :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주제어키워드  [선타200707]  국가  
 자료출처  선교타임즈 2007년 7월호  성경본문  
 조회수  10034  추천수  11
탐방1 :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정희전 기자

선교 유적지로는 드물게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곳이 있다. 바로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다. 양화진(楊花津)은 ‘버들꽃 나루’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으로 중국의 사신을 비롯하여 많은 풍류객들이 자주 머물던 곳이다. 양화진은 큰 선박이 드나들 정도로 수심이 깊어 조선왕조의 통상, 교통, 국방 등의 요충지였으며, 많은 선교역사와 한국역사의 배경이 되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현재 그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나 한강 선유도 공원과도 거리가 가까워 선교 유적지와 서울 나들이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의 역사적 배경
영어권의 개신교 선교사들은 조선이 서구 열강들과 국교를 수립할 무렵,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제물포에 발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알렌(H. N, Allen) 선교사가 갑신정변(1884)이 일어났을 때에 민영익을 살려낸 것이 계기가 되어 의술을 통한 선교사들과 왕실과의 관계가 이어지게 된다. 이는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의 설립으로 이어졌고, 선교사들은 금교령으로 인해 복음전파가 허락되지 않은 당시의 조선사회에서 주로 서구의 의료와 교육, 자선사업을 통해 선교활동을 펼친다. 선교사들은 이와 같이 반기독교적인 조선사회에 직접적인 선교 방법 대신, 사회 전반에 걸친 간접적인 선교활동을 통하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1890년 7월 26일 광혜원의 최초 원장이었던 알렌에 이어 병원을 맡게 된 헤론(John W. Heron)은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던 중, 이질에 걸려 34세의 나이로 삶을 마치게 된다. 삼복더위 중이었던 때에 헤론의 시신을 어디에 매장할지가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었고, 동료 선교사들과 유족들은 미국 공사 허드(A. Heard)를 통해 한성에서 가까운 곳으로 매장지를 요구하였다. 당시 외국인 묘지는 제물포에 있던 것이 유일한 것으로 더운 날씨에 헤론의 시신을 옳기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유족들의 요구에 미국 공사 허드는 1890년 7월 24일 독판교섭통상사무 민종목에게 1884년 조인된 조·영 통상조약을 인용하여 남대문 밖 남산 기슭의 땅에 외국인 묘지의 설정을 요청하였고 이에 따라 양화진이 외국인 매장지로 정해져 1890년 7월 28일에 개설이 허가되었다.

양화진에 잠든 복음의 씨앗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는 한국의 초대 선교사들과 한국의 근대화에 힘썼던 세계 각국의 저명인사들로의 무덤, 약 555기가 있다. 이 중에는 선교사들을 함께 순직한 가족들과 채 꽃 피우지도 못하고 부모와 함께 한국에 묻힌 아이들이 많다. 상당수의 어린이들은 위생과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던 당시의 환경 때문에 숨을 거둔 아이들이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여 자신의 삶을 한국에 마치고 그들의 자녀를 잃으면서까지 이 땅에 헌신했던 외국 선교사들의 고귀한 삶이 이 곳 양화진에 남아 있다. 이곳에는 그럴듯하게 꾸며진 무덤이나 묘비는 없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이들이 복음 안에 살다가 평안하게 잠들어 있다. 이들의 삶과 죽음으로 한국에 복음이 알려졌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삶은 한국을 복음으로 변화시켰고 선명한 한국 선교 역사의 한 모습으로 기록되었다.



양화진의 의미와 그 중요성
양화진은 육지와 물길을 잇는 나루터였고, 우리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어 준 순교의 현장이다. 이와 같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을 알리기 위해 ‘양화진 선교회’는 ‘10만명 알림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중심부에서 가까운 곳이지만 아직 한국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양화진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며 외국 선교사들의 뜨거운 사랑과 헌신의 삶이 배어 있는 이곳,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양화진 선교회의 변광일 간사는 “한국을 사랑하여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한 역사 속 이국인들의 열정을 기억하며 앞으로의 한국 기독교를 향한 큰 도전을 이끌어줄 장소로 이곳이 기억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잊혀지고 퇴색된 선교 역사에 대해 많은 성도들의 관심이 필요함을 알렸다.




아름다운 비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는 아름다운 비문들이 많이 남겨져 있다. 우리에게 외국인 선교사들의 순결한 신앙과 한국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A. R. 아펜젤러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J.D. 언더우드
“주님! 길고 긴 여행을 끝내고 이제 나는 안식을 얻었습니다.” G.A. 테일러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H.B. 헐버트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A.K. 젠슨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 R. R. 켄드릭
“내가 조선에서 헌신하였으니 죽어도 조선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 J. E. P 켐벨
“일하고, 사랑하고, 고난 받으며, 승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H. S. 허스트

이국의 선교사들, 그들을 기억하며
영적으로 척박한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양화진의 선교사들. 그들의 수고와 순교는 결코 헛되지 않았고, 지금까지 이어져 한국 복음의 놀라운 역사를 써 나가고 있다. 이제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그들의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였던 길에서 돌이켜 지속적인 관심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낯 설은 이국땅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오직 복음만을 위해 살았던 이국의 선교사들. 그들이 걸었던 선한 믿음의 발자취를 이제 한국의 교회와 성도들이 따라 걷게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 2, 6호선 합정역 하차 후 7번 출구로 나와 좌측에 보이는 마포재활용센터와 정자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와 2호선 철교를 따라 약 150m진행
·공용 버스 : 홀트 아동복지회 앞 하차: 200, 602, 603, 604, 760, 921번 등
합정역 출구 하차 : 271,1000, 1100, 1200, 1400, 1500, 1601번 등
·개관시간 : 하절기 (5월~9월) 09:30~18:00 동절기 (10월~4월) 09:3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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