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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4-09-25
 제목  <기획> 기고2-한국의 이슬람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2682  추천수  1
한국의 이슬람



유럽과 세계의 19세기 역사와 20세기 역사에 대해 수많은 연구를 해 왔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9세기와 20세기를 󰡐혁명의 시대(1789~1848)󰡑, 󰡐자본의 시대(1848~1875)󰡑, 󰡐제국의 시대(1875~1914)󰡑, 󰡐극단의 시대 : 20세기의 역사(1914~1991)󰡑로 구분하였다. 그가 구분한 20세기의 마지막 세대를 극단의 시대라고 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는 극단적 민족주의의 발현과 두 번의 세계대전,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공산주의의 극단적 이데올로기 대립 등 20세기의 역사는 세계의 다양성을 삼켜 버릴 만큼 철저하게 극단을 달렸던 시대라는 것을 말해 준다.



21세기의 화두로 떠오른 이슬람

그러나 20세기 말을 지나면서 소련과 동구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중국이 개방화의 물결을 타면서 이제는 사라지리라 생각했던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새로운 극단의 시대로 접어든 듯하다. 그리고 그 극단의 핵심에는 이슬람이 있다. 9·11 테러를 기점으로 하는 이슬람과 서방 세계와의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9·11 사태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그 후 계속되는 테러 사건들과 반미 감정 확산, 이슬람권의 범세계적 동포의식 고취 현상들은 새로운 극단의 시대의 현상들일 것이다.

9·11 이라는 전무후무한 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공격 그리고 이를 보복하기 위한 테러집단의 무차별한 테러가 많은 국가와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9·11 이후 수그러들리라고 생각했던 이슬람극단주의가 반미라는 말(馬)을 타고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리며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동안 우리는 또 다른 극단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아시아도 마찬가지다. 9·11 이후 반이슬람 정서가 잠시 바람이 일듯하더니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반미감정이 확산되면서 급속히 친이슬람 정서로 바뀌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이슬람의 활동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4월 25일 인도네시아 암몬 지역에서 기독교에 대한 이슬람의 침공으로 25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또한 4월 28일 태국 남부에서는 젊은 이슬람 무장 세력이 군, 경찰서 등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강경 이슬람이 태국을 통하여 동북아시아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가운데 「동아일보」는 4월 29일 자에서 일본의 월간지 「선택」 3월호를 인용하여 󰡒최근 아시아에서 이슬람 세력이 점점 확대되면서 이슬람 부흥주의가 나타나고 있다󰡓며 󰡒현재 중동 국가가 중심이 된 테러 세력이 앞으로는 아시아의 이슬람 세력으로 바뀔 것󰡓이라는 분석을 내 놓았다고 전했다. 또한 아시아에서의 이슬람 부흥주의의 원인 하나로 미국에 대항해 불고 있는 전 세계적 이슬람 부흥주의를 꼽았다.

동남아시아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이북으로 캄보디아, 베트남의 공산주의 전선으로 더 이상 북상하기 어려웠고 동북아시아는 중국과 구소련의 공산사회주의와 남북한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대치, 남한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숨구멍(breathing space)󰡑 정책으로 이슬람이 정착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동안 뿌려 놓은 오일 달러를 반미라는 울타리 안에서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에는 현재 서울, 전주, 부산, 안양, 광주 등 5군데에 성원(사원)과 대구, 안산, 창원 3곳의 센터 그리고 제주 지회 등 총 9곳의 이슬람 관련 처소가 있으며 총 35,000명의 이슬람교도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중동개발 붐으로 중동지역으로 많은 한국인이 떠나면서 이슬람을 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이슬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은 1970년대부터 이슬람 접해

첫째, 우리나라의 경우 이슬람과의 접촉에 국가적 차원의 접근이 병행되고 있다는 것이 매우 특이하다. 국내 경제 부흥을 위해 더 많은 외국과 경제교류를 맺어야 했던 우리나라 정부는 중동의 사막지대를 개척하면서 많은 한국인 근로자 및 업체가 이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외부적으로는 친이슬람 정책을 폈다. 대표적으로 서울 이태원의 이슬람중앙서원을 지어준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중동지역 국가들 또한 한국정부와의 관계를 위해 우리나라 방문 시 막대한 자선기금을 기부함으로써 상호 돈독한 유대관계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결실 중의 하나로 작년 고등학교 제2외국어로 아랍어가 선정되어 현재 일선 고등학교에서 정식과목으로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아랍어가 제2외국어로 정식과목이 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아랍어 교사로서 이슬람 신자가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들이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역으로 접하기 어려운 아랍어를 고등학교 때부터 배움으로써 중동 및 이슬람권 선교의 관심자들이 언어습득의 장벽이 다소 낮아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사실, 언어문화적 이질성으로 인해 한국인 선교사가 중동지역에 그리 많이 파송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 611명, 전체선교사의 약 3.5%가 중동지역에 있지만 이는 중동지역 선교의 시급함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부족한 숫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등학교에서의 아랍어 수업이 이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기회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서 중동권 선교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둘째,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지역의 무슬림 이주근로자들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이슬람 성원의 숫자가 증가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슬람 문화권이 형성되고 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인 근로자들의 유입대상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나 일반 시민들이 이주 근로자들에 대한 감정과 정책을 정리해 가면서 이슬람의 활동도 점차 그 규모를 더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 무슬림 이주 근로자들의 규모, 활동형태, 한국인 여성들과의 결혼 추세 등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져 있지 않아 그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셋째, 우리나라의 이슬람에 대한 시각은 반미감정과 단일민족으로서의 폐쇄성 사이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반미관련 단체들과 일부 언론에서는 반미에 대한 동력으로 이슬람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9·11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세력은 매우 극소수이며 이슬람이 오히려 미국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반미감정 확산의 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는 곧 이슬람의 확산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물론 정치적 감정과 종교적 감정이 서로 등가 교체될 수는 없지만 - 실제로 이슬람의 역사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 한국인에게서 이슬람은 정서적으로 너무나 먼 거리에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지형적으로는 중국과 구소련의 이데올로기 장벽,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우산 아래 있었다는 것과 함께 이슬람의 정착을 저지해온 역할을 했다.

넷째, 그러나 이슬람 진영의 노력도 만만치는 않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9·11 테러 이후 국내 이슬람 진영의 활동이다. 모든 이슬람이 그렇게 과격하고 폭력적이지 않다는 주장과 함께 이슬람이라는 종교보다는 이슬람이라는 문화를 강조해 왔다. 그래서 오히려 이슬람 바로알기가 확산되면서 방송에 집중적으로 문화로서의 이슬람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이러한 방법이 어느 정도는 한국인의 정서에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이슬람과 대면한 경험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 과격분자의 테러󰡑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가 아직은 경험해보지 않은 단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용공, 반공 하는 이데올로기적 단어들이 더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등장했는데 그것은 바로 󰡐김선일 형제 납치 피살 사건󰡑이다. 남의 이야기로만 느껴졌던 이슬람 과격분자의 테러가 직접적인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우리나라에는 이슬람에 대한 강경한 분위기가 흐르면서 이라크 파병 찬성의 증가, 이슬람 성원에 대한 공격 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물론 이슬람 진영에서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쉽게 진정되지는 않고 있다. 이슬람중앙회의 홈페이지가 김선일 형제 사건 이후 다운되었다가 잠시 작동이 되는가 싶더니 여전히 다운되어져 있는 것도 이를 잘 말해준다(물론 이슬람중앙회에서는 홈페이지 개편으로 그렇다고는 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다섯째, 문화로서의 이슬람이 더욱 두드러지게 활동하고 있는 곳은 단연 인터넷이다. 이는 기존의 경제 중심의 접근에서 문화 중심으로의 접근이 상당히 진척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이슬람 관련 활동은 언어를 비롯한 학문적 분야, 경제적 분야, 직접적인 이슬람 포교 분야 그리고 개인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문화 분야로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어문학, 지역연구와 관련하여 명지대, 외국어대, 조선대를 비롯한 약 10개의 사이트가 있으며 경제 관련으로는 한국아랍친선협회, 중동경제연구소를 비롯하여 약 7개 그리고 이슬람 문화 관련 홈페이지는 파악 가능한 것만 30여 개를 헤아린다. 그리고 이슬람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는 󰡒꾸란󰡓을 비롯하여 약 6개 정도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는 대부분 폐쇄되었거나 운영이 중지된 또는 아주 초보적 단계의 홈페이지로서 남아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에서의 현황을 보더라도 개인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로서 이슬람이 많이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종교로서의 이슬람이 되기 위한 하나의 정지작업으로도 충분히 간주할 수 있다. 문화로서의 접근을 통해 정서적 장벽을 어느 정도 먼저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에 대한 기독교의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슬람 역시 구원받아야 하는 영혼

짧은 지면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지지도 않고 또한 우리가 모를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을 서술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일들을 살펴보았다. 기독교는 이슬람처럼 정치와 분리된 종교이며 국가 기관이 나서서 종교 활동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또한 타종교와의 관계 면에서도 이슬람은 기독교와는 달리 매우 강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불리해 보인다. 또한 최근 10년간 이슬람과 기독교 증가 추세를 보더라도 이슬람의 증가 추세가 훨씬 앞선다.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을 마냥 적대적인 세력으로 보아서도 안 된다. 어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아야 하는 영혼들로 보아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에서의 이슬람 활동 추세는 유심히 살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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