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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3-06-23
 제목  2000년세계선교대회(목회지도자)-교회의 선교적 사명
 주제어키워드  WMS2000 교회 선교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11680  추천수  23
분과별세미나 (1-7)





"교회의 선교적 사명"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BA)

훼이스 신학교 및 동대학원 졸(MDIv. STM)

그레이스 신학대학원 신학박사(Th.D.)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원 문학박사(DLitt)

미국인교회 목회 9년 (발티모어 벧엘교회 등)

인디아나 신학대학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등 교수 역임

세계신학교 총학장회 의장(P.A.D)

아세아신학대학연맹 회장

사랑의장기 기증운동 이사장 등

현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대학교 총장

할렐루야 교회 목사

<목회자의 리더십>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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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정의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에 대한 정의와 선교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교회란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첫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나 건물이다. 성경에서는 교회를 이런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다. 둘째, 지역을 중심으로 모인 기독교인들의 공동체이다. 에베소교회, 빌립보교회가 그것이다. 셋째, 동일한 신앙고백을 공유하는 지역교회들의 연합체, 곧 교단이나 연합체이다. 장로교회, 감리교회, 한국교회라고 할 때 사용되는 의미이다. 넷째, 전세계의 예수를 믿는 사람들 전체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다섯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믿는 자를 다 포함한 공동체, 즉 우주적 교회이다. (김상복, 교회를 알면 신앙생활이 즐겁다, MB사, 25-26). 영국의 선교전략가이며 세계지도정보(Operation World)의 저자인 패트릭 죤스톤은 또 한 권의 통찰력 있는 선교전략에 대한 책을 내놓았다. 그 책제목 자체가 현대 선교의 문제 가운데 한 가지를 잘 지적하고 있다. 교회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크다 (Patrick Johnston, The Church is Bigger than You Think, WEC, 1998) 라는 제목이다. 너무도 적절한 책명이다. 지역교회와 선교단체들과 신학교 삼자 구도가 선교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해 주는 내용이다. 현재 유럽이 경험하고 있는 선교의 문제를 풀어보려는 시도이다. 지역교회는 종종 선교단체를 귀찮아 한다. 교회는 선교단체가 평소에는 교회에 대해 무관심하다가 선교사 후보나 돈이 필요하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신학교도 자기 멋대로 하다가 학생과 재정이 필요하면 찾아오는 곳이라고 느끼는 때가 많다. 선교단체가 보통 때에는 자기들 마음대로 하다가 도움이 필요하면 교회에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신학교도 일생 공부만 하는 학자들끼리 모여 알아듣지도 못할 어려운 책을 써서 학생들을 모아 놓고 다시 그것을 설명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가르침은 교회와는 별로 상관없는 내용들이다. 학교는 가르칠 학생이 필요하거나 교수들의 월급이 모자라면 찾아오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는 신학교도 귀찮은 존재이다. 이런 사고들이 교회에 팽배해 있다. 오래된 갈등이다. 그래서 교회는 선교기관이나 신학교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이 목회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경험하고 신학교보다는 교회 자체에서 목회자를 길어내는 것이 교회에 더 유익하다는 생각을 하는 목회자들이 세계적으로 점점 늘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곳곳에서 필요한 목회자를 스스로 훈련해내고 있다. 목사들은 신학교를 졸업했지만 성경도 신학도 잘 모른다. 목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성경이지만 성경 외의 것들은 별 것 다 배우지만 성경만은 신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목회자들의 고백이다. 교회와 선교기관과 신학교는 대치적인 관계인가?



새로운 교회론



이와 같은 유럽교회의 문제를 재정리하기 위해 스위스 베아텐베르그에서 1997년 남아프리카 선교대회의 연속으로 1998년 여름 유럽의 교회와 선교단체와 신학교 대표들이 "한 몸-한 사명"(One Body-One Commission)이란 주제 하에 세미나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 모인 세 그룹의 대표들은 모두 이상에서 제기한 문제를 인정했고 시정방법을 토론했다. 선교의 주체는 교회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교회의 정의를 넓게 내렸다. 여기서 "교회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라는 견해를 공유했다. 교회 안에 지역교회(Local church), 선교기관(Mission agencies), 신학교육기관(Theological institutions)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 가지 사역은 교회내의 유기적 관계이지 독립된 사역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교회를 더 크게 보았고 그 견해는 성경적으로 정확하다. 이 성경적 교회관의 회복이 선교와 교육에 영향을 줄 것이다.





실패한 선교사역



하나님은 선교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타락한 아담을 찾아 오셨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도 분명한 선교의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이 사명을 이해하지 못했고 감당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에도 "너로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창 12:3).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선교사명은 아브라함에게 반복되었다 (18:18; 22:18; 26:4; 28:14; 갈 3:8).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의 선민의식에만 사로잡혀 있었고 "땅의 모든 족속"을 "이방인"으로 규정하며 상종하지 않았고 유대인들을 통하여 세계복음화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망각했고 오늘까지도 이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유대인들이 거부하고 실패한 이 본래의 세계선교사명을 이번에는 제자들을 불러 그가 새 이스라엘로 세우신 교회에 다시 부여하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세례를 주고 ...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마태 28:18-20). 다시금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을 선교의 대상으로 주셨고 "회개와 죄사함이 그의 이름으로 모든 나라에 전파되어야 하리라"(눅 24:47)고 선언하셨고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는 성령이 임하시면 힘을 얻어 "땅 끝까지"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행 1:8). 유대인들이 거부한 세계복음화를 교회에게 다시 주셨다. 몇 명 안되는 제자들에게 전세계를 복음화 할 큰 사명을 주셨다. 그리고 세계복음화 완수의 가능성을 올리브 동산의 종말론 설교에서 예수께서 분명히 예언하셨다: "이 천국 복음이 먼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 24:14). 종말이 가까워 오면 세계복음화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교회는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선교에 참여할 것이라는 것이다. 사도행전과 신약의 서신들은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선교사역이 어떻게 성령의 역사를 통해 1세기 동안 전 세계에 펼쳐졌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선교의 주체



선교는 회개와 죄 사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모든 죄인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 사역의 주체는 누구인가? 예수의 제자들은 선교사명을 심각하게 받아드린 나머지 모두 선교사가 되었고 모두 선교사역을 하다가 순교하였다. 4세기의 최초 교회사학자 유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 3권 초두에 예루살렘 멸망 이후 당시 "인간이 사는 세계"(the inhabited world)를 사도들의 영향권에 따라 지역을 분류했다. 분류된 지역에서 사도들이 선교사역을 하고 있었다. 도마는 파티안 지역, 요한은 아시아, 베드로는 폰투스와 로마, 안드레는 스키디아 지역으로 나누었다. 신약의 외경에서도 베드로의 群, 도마의 郡, 빌립의 郡, 요한의 郡으로 나누기도 했다. 2세기 초의 기록에 의하면 메소포다미아의 기독교는 야고보와 도마, 아세아 기독교는 빌립과 요한, 피니샤, 폰투스, 아가이야, 로마의 기독교는 베드로에게 속해 있었다 (다니엘루, The Christian Centuries, p. 39). 가롯 유다 대신 선택된 마티아는 에디오피아와 알메니아 지역 선교사, 시몬은 애굽, 그레네, 아프리카, 말타니아, 리비아, 및 영국, 유다는 테디우스, 알미니아, 알페우스의 아들 야고보는 알메이나, 마태는 피르시아와 에디오피아, 도마는 시리아와 인도, 바돌로뮤는 에디오피아, 아라비아, 리비아, 파르티아, 미도, 빌립는 갈리디아, 골(불란서), 스페인, 요한은 터키의 에베소, 야고보는 스페인과 예루살렘, 안드레는 스키디아, 그리스, 아가이야의 파트레, 베드로는 로마 지역의 선교사가 되었다 (William S. McBirnie, Search for the Twelve Apostles, 1973). 예수의 제자들은 세계복음화의 명령을 심각하게 받아드려 모두가 다 세계선교에 투신했다가 모두 순교를 했다.

선교기관의 출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신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몸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최초에 선교단체를 만드신 것이 아니고 교회를 만드셨다. 선교기관과 신학교는 교회가 맡은 사명들을 감당하기 위해 이 몸에서 생성된 기구들이다. 선교사들은 이 몸에 속한 지체체들이다. 교회의 사역은 예배, 교육, 친교, 선교, 구제 등 다양하다. 다양한 교인들의 필요와 지역사회의 필요를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선교에만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선교는 교회의 다양한 사역 중에 한 가지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선교의 비전과 소명을 받은 사람들의 선교 열정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지 못한다. 교회가 선교의 소명을 뒷받침해주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선교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선교 관계자들을 때로는 귀찮아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지금도 비슷한 현상이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다. 교회에서 선교의 비전을 해결하지 못하는 강한 성격의 사람들에 의해 선교의 사명은 추진되었고 그 결과로 개 교회를 떠나 교회와 별개로 선교만을 집중적으로 추진하는 선교기관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국의 경우 공교회가 교회내의 선교요청을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국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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