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에서의 리츨(Albrecht Ritschl))의 위치를 평해서 최종의 교부라고 한 하르낙의 말은 타당한 표현이다. 하르낙이 가장 존경했던 신학자가 리츨이었으며, 그리고 엄밀히 이야기해서 리츨학파라는 말을 쓴다면 하르낙도 그 학파의 한 사람이다. 쉴라이에르마허의 신학이 낭만주의와 합리주의에 대한 응답이었고 스트라우스로 대표되는 성서비평학이 그 시대의 새로운 학문과 새로운 학문 방법에 적응해 보려는 시도였다면, 리츨은 I.Kant의 철학과 씨름한 대표적인 신학자였다고 볼 수 있다. 리츨은 1822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뛰어난 설교가요 루터파 교회의 총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유능한 감독이었다.
리츨은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 아래 Steffin에서 그의 유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1839년에는 본격적인 신학수업을 위해서 본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하고 곧 할레대학으로 옮기게 되는데 거기서 다시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하이델베르크에서 다시 튀빙겐 대학으로 옮겨 거기서 정착한다. 특히 튀빙겐에서는 헤겔학파의 강의를 통하여 일시적으로나마 만족을 얻는다. 그는 헤겔학파 가운데 F.C.Baur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Baur의 급진적인 성서비평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1846년에 Baur의 지도로 쓴 박사학위 논문인 "마르키온의 복음과 정경 누가복음"이라는 글에서 그는 Baur의 입장을 적극 수용하여 마르키온의 외전적인 복음이 최초의 복음서인 누가복음의 기초 자료가 되었다는 것을 열렬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1851년 본 대학에서 사강사로 일하던 시절에 발표된 "공관복음서 비평"이라는 논문에서는 초기에 취했던 누가복음서에 대한 입장을 수정하여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Baur의 이론을 반대하고 나선다. 이어 1856년에 발표된 논문 "고대 카톨릭 교회"라는 저작 제 2판에서는 Baur와의 결별이 더욱 분명해진다. 즉 초대교회 안에 바울과 다른 사도들 간의 날카로운 신학적 대립과 분열이 있었다는 Baur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튀빙겐학파의 가설을 전반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던 것이다. 사도들과 바울 사이에는 각각 그리스도교 사상을 표현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개성적인 차이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구약과 대조하여 볼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체결된 계약이 새것이라는 것과 그 안에 포함된 종교적, 도덕적 생활이 새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합치를 보고 있다. 그는 본 대학에서 처음에는 신약성서를 강의했고, 후에는 교리사를 강의하였다. 그리고 1852년부터는 교외학을 강의했는데 사강사 생활 14년만인 1889년에 드디어 교수가 된다. 그러나 1884년에는 더 많은 학문의 자유를 위해서 본 대학을 떠나 괴팅겐으로 간다. 거기서 그는 슈트라우스부르크 대학과 베를린 대학에서도 그는 신약성서에 관심하면서 조직신학을 강의하였다. 리츨의 평생의 관심은 의인론과 화해론 이었다. 그는 거기에서 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보았고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가 그것의 전제이거나 결과라고 이해하였다. 그래서 1870년부터 그의 대표작이라고 알려진 "의인과 화해의 그리스도교 교리"라는 전 3권의 저작이 출판된다. 거기에서 그는 그의 주된 관심인 의인론과 화해론을 각각 역사적, 성서적, 조직신학적인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이 저작은 그의 생전에 제 3판까지 출판되었다. 1875년에는 "그리스도교 강의"라는 책을 출판하여 조직신학 교과서로 사용하려 했으나, 내용이 너무 어려워 결국 교과서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1881년에 출판된 "신학과 형이상학", 1880-86년에 걸쳐 전 3권으로 출판된 "경건주의 역사"라는 책이 있다. 경건주의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 신앙운동이었다. 리츨은 경건주의를 평하여 복음적인 프로테스탄트 안에서 카톨릭적인 생활이념을 가지고 일어난 거짓된 부흥운동이라고 못박았다. 이미 그의 주변에는 본 대학에서 일할 때부터 추종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리츨학파의 구성원들은 그의 강의를 직접 들은 사람들이기 보다는 대개 그의 저서를 통해서 그의사상을 접한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헤르만(W.Hermann)과 하르낙(A.von Harnack)이 될 것이다. 리츨은 정력적인 성격에 조예가 깊고 냉정하고 예리한 판단력에 토론하기를 좋아했으며, 또 정직하고 견실했는데 감정적인 것은 매우 싫어했다. 리츨은 그 재질에 있어서는 쉴라이에르마허에 미치지 못하나 그의 깊이 있는 저작들이 끼친 영향은 19세기 신학자 중 쉴라이에르마허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의 저작들은 문체가 딱딱하고 무거워서 인기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나 애써 읽어 가면 갈수록 그의 심오한 사상에 점점 매료되어 간다는 게 독자들의 일반적인 평이다.
리츨의 사상
리츨의 신학은 두 가지 점에서 칸트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 형이상학이나 이론적 사변이 하나님에 대한 타당한 지식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거부했다 는 점에서 그렇고, (2) 종교적 사상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고도 도덕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특히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칸트는 인간 사유의 본질을 다루면서 인간은 대상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결론을 지었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다만 현상일 뿐이다. 현상이란 대상이 인간의 감관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 나타내는 것, 즉 대상의 외관이다. 따라서 칸트는 하나님 자체에 대한 인식, 즉 하나님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 내지 철학적 인식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칸트의 이러한 인간 사유의 본질에 대한 이해사상은 서구의 관념론적 신학에 그대로 적용이 됐다. 심지어는 변증법적 신학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칸트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형이상학적 인식의 형태 외에도 또 다른 하나의 인식의 형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도덕적 의식의 영역이다. 즉 실천이성의 영역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를 구속하는 도덕적 외무들을 외식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 도덕적 의무들은 무엇 무엇은 해야한다와 무엇 무엇은 해서 안된다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칸트는 인간의 이러한 도덕적 의식을 분석해 볼 때, 인간에 대한 도덕적 정언 명령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성을 뜻한다는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인간의 도덕적인 의식을 설명해 주는 필연적인 의식을 설명할 길이 없다. 따라서 인간을 구속하는 도덕적 법칙들을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명령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바로 종교이다. 이로써 칸트에게 있어서의 종교는 인간의 실천이성에 자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리츨은 인간 사유의 본질에 관한 이와 같은 칸트에 분석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토대로 기독교의 의미를 해석했다. 리츨의 기본적인 대전제는 그리스도교는 이론적인 지식과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도덕적 의식을 통해서 이해되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코 합리적으로는 인식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도덕적이고도 윤리적인 성격을 띤다. 그리스도교의 일차적인 관심은 지성적이고도 철학적인 것에 있지 않고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것에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내용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리츨은 이와 같이 실천성을 근본 개념으로 하여 종교를 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도 실천성이라는 측면에서 본 인간의 가치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보았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주변의 다른 사물들과 같이 자연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자연에 비해 고등한 가치와 독립성을 갖는다고 이해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질적으로 구별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인간의 이러한 자의식에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능케 하고 또 인간으로 하여 그 가치를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한 인격에 대한 인식이 내재한다. 그러므로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에 전제가 된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가치 판단에서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칸트의 철학이나 리츨의 이해 속에서는 신이 요청된 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가치 판단에서 오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을 이렇게 분석하게 되면 종교인에게서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헌신하게 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 체계이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아니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가치를 실현하려는 장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을 자연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역사를 통해서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셨고 인간에게 자신이 가치 있음을 깨닫게 하셨고 또 참다운 가치들에 대한 인식 능력을 인간 안에 창조하셨고 나아가서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인간 안에 심어 놓으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생애는 하나님이 역사 안에서 활동하신 최상의 역사적 실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으로 계시하셨고 동시에 그 사랑이라는 가치를 인간의 최상의 이상으로 제시하셨다. 인간들은 예수의 삶에서 최상의 이상들과 그 이상들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전적으로 헌신한 한 모범을 얻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에게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내맡길 수 있는 최상의 이상적인 가치가 사랑이라는 사실을 계시하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도덕적 인격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 때문인 것이다. 예수가 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도 그가 하나님과 같이 인간에게 최상의 도덕적 가치들과 이상들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리츨의 말에 의하면 예수의 신성은 인간이 구원 얻기에 충분할 만큼 이룩해 놓은 그의 인격적 업적에 대한 인간의 가치 평가의 결과이다. 따라서 예수에 대한 인간의 신앙은 그 근거에 있어서 하나의 이간의 가치 판단이다. 이러한 가치 판단은 곧 자기가 헌신할 수 있는 이상이 예수에게서 가장 훌륭하게 실증되었다고 믿는 인간의 확신을 뜻한다. 그런데 인간에게 제공한 예수의 이위대한 이상은 마침내 인간에게서 화해와 의인을 이룩하였다. 본래 인간이란 개개인으로 있게 되면 자기애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제일의 가치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와 직면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인간의 최고의 가치로 제시된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그의 가치관에 헌신할 때,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이기심으로 부터 자유롭게 되는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또 자애심으로 인해 참다운 자아로부터 소외된 것에서도 자유할 수 있는능력이 주어진다. 인간은 예수를 믿음으로써 비로소 사랑을 인간의 최상의 가치로 삼을 수 있게 되고 그와 함께 사랑을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리츨의 구원관에는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강조점이 없고, 오히려 예수가 인간에게 최고의 아름다운 가치관을 회복시켜 주었다는 것이 그가 구주가 될 수 있었던 자격 요건으로 평가된다. 구원받은 자들이 함께 사랑을 추구해 나가는 곳인 교회는 예수에게 기원을 둔다. 예수는 가치를 창조하는 공동체를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인간의 열망과 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바로 교회에서 예수의 가치 체계가 보존되고 육성되도 선포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교회에서 비로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계시하는 그 가치, 혹은 그 사랑을 발견하고 따를 수 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그러나 개개인을 교회로 불러들여 구원하는 것만이 역사를 위한 하나님 나라의 수립에 있다. 그리고 구원과 교회는 그 목적에 봉사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종국적인 목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리츨의 말을 빌리면, 사랑으로 고무된 행동을 통해 이룩된 인류 공동체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 이룩하려는 하나님의 세부적 의도는 전인류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도덕적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들과 교회의 사명은 인류에게 봉사하는 일에 자신을 아낌없이 헌신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동기에서 비롯된 그러한 삶이 마침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삶의 방식을 점차적으로 받아들이게 할 것이고, 그리하여 결국은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의 나라를 동트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리츨이 이해한 그리스도교란 도덕적이고도 윤리적인 가치 판단과 사회 속에서의 그것의 완성을 향한 헌신임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 판단들이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가치 판단들이 개인의 가치관에 근거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역사적인 연구가 사실로 확립해 놓은 것에 근거해야 한다. 바로 이점 때문에 리츨도 쉴라이에르마허처럼 성서비평을 크게 환영한다. 성서비평을 곧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사실들에 대한 진위성 여부를 가리려는 시도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로지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누구였으며 무엇을 말했고 어떻게 행동하였느냐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그러한 비판적 연구는 예수의 생에 있었던 사실들을 더욱완전하게 밝혀 주는데 공헌할 것이고 교회는 그러한 사실들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최고의 가치를 산출할 것이며 또 그 가치를 보존하는 공동체로서 존속해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츨은 성서가 그리스도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 신뢰할 만한 증언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예수의 역사적 존재에 대한 사실들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신앙은 하나님이 예수를 믿는 자의 삶에 인격적으로 현존함에 따라 예수로부터 온다고 생각했다. 일찌기예수가 추구했던 가치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헌신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능력은 현존하는 예수로 부터 생겨난다.
또한 그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이기적 주장에 자유롭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추구하려는데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 우리는 리츨이 가치 판단을 내리기 전에 먼저 성서의 비평적 작업을 통해 객관적 사실들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종교와 과학, 또는 이 양자의 영역과 능력을 구분하고 있음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그는 종교와 과학은 인간의 삶에 요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은 실제에 대한 사실들을 탐구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사실들에 대한 인간적 의미에 관해서는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어떤 사실들에 대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은 종교에 있고 그것이 바로 종교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종교가 이러한 자기의 고유한 영역의 한계를 모르고 남의 영역을 함부로 넘나들게 될 때 거기에는 언제나 혼란과 갈등이 야기된다. 예컨데 과학은 진화론에 대해 주의 깊은 연구를 계속해서 인간이 하등동물로부터 진화한 것과 관련된 사실들을 최대한 밝혀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그러한 사실들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려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기의 분수를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종교도 사실에 관한 한 과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컨데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한 것은 상당히 오랜 세월 전이었다는 것이 과학이 밝혀 낸 객관적인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이에 반대해서 4천년 전 에덴동산에서 첫 출발했다고 우길 수는 없다. 그러나 일단 인간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이 확정된 후, 인간의 삶에 실존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가치들을 결정하는 것은 종교의 소관이다. 이처럼 과학과 종교는 상대방의 능력을 존중하고 각자 자기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의존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은 리츨의 사상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교의 실천적, 윤리적, 혹은 사회적 의미를 강조하는 신학적 경향들이 현대신학의 한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다. 예를 들면 리츨 이후에 사회적 질서를 재형성하는 데 초점을 두었던 소위 사회복음주의운동이 그러하고 또 그리스도교와 사회와의 관계, 특히 그것을 정치적 차원에서 분석하는데 평생을 바쳤던 라인홀드 니버의 신학이 그러하다. 오늘날에 와서도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 예컨데 인종문제, 빈곤문제, 인권문제, 또 평화문제 등을 그리스도교 신앙과 의미 있게 연계시켜 보려는 시도 따위가 그 신학적 내용으로 본다면 모두 리츨에게까지 소급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리츨은 쉴라이에르마허와 함께 19세기로 부터 오늘에 이르는 모든 인간 중심적인 그리스도교 사상의 흐름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종교에 대한 모든 사고의 출발점은 인간과 인간의 경험, 또 인간의 문제들이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에 반항하여 그리스도교를 신 중심적으로 전환시키려 했던 사람이 바로 칼 바르트였던 것이다. 초월적인 하나님의 현존에서 느끼는 신비감과 경외감을 그리스도교로부터 빼앗아 버린 책임이 전적으로 리츨에게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실제 리츨은 신비적인 체험이나 경건주의 그 외에도 사회에서 생활하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와 관련되지 않은 방법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해석하는 것을 일체 거부하였다. 리츨에게 있어서는 실천성이 참다운 종교의 핵심이었다.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올바로 해석하려면 반드시 성서의 메시지와 인간의 상황이라는 양극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할 때 우리가 리츨 신학에 대해 할 수 있는 공정한 평은 역시 리츨은 인간의 상황이라는 극쪽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이 리츨의 그리스도교 해석의 강점이면서도 약점이기도 하다. 현실에 깊이 천착했다고 하는 점에서는 누구의 신학보다도 리츨의 신학이 강점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텍스트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는 리츨의 신학의 약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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