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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1-07-22
 제목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BC 399. 5. 7)
 주제어  [그리스] [철학자]
 자료출처  KCM  성경본문  
 내용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서 아테네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소프로니스코스는 조각가, 어머니 파이나레테는 산파였다고 전해진다. 소크라테스는 일반적으로 세계 4대성인(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데스)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서양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공적 활동은 펠로폰네소스전쟁 때에 중장보병(重裝步兵)으로 북그리스로 2회, 보이오티아로 1회 종군했으며, 이때 훌륭한 인내심과 침착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어떤 정치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나 BC 406~405년에는 500인회(불레) 회원으로 있었으며, 아르기누사이의 승전자들을 재판할 때 처음에는 동료 회원들과 함께, 나중에는 혼자서 온갖 협박에도 불구하고 참주들의 위헌적인 유죄판결을 끝까지 거부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말년에는 후대에 악처로 이름난 크산티페와 결혼하였다. 확실하지 않지만 이론 이야기도 전해내려 온다.
어느 날 부인이 잔소리를 하다가 화가 나서 소크라테스의 머리 위에 바가지로 물을 퍼부었다. 그러자 소크라데스는 태연하게 말했다. "천둥이 친 다음에는 큰비가 내리는 법이지"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외모는 기이한 편이었다. 뚱뚱하고 키가 작고 눈은 튀어나왔으며 들창코이고 입은 컸다. 마치 주신(酒神) 실레노스 같았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가 내면적으로 매우 훌륭하고 당대에 가장 곧은 사람이라고 친구들로부터 평가를 받았다.
그는 아테네 거리에서 젊은이들과 대화를 통하여 그의 철학을 퍼트렸다. 평생동안 글 한 줄을 쓰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정말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그의 대한 모든 기록도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에게 낯익은 것은, 늙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거리나 체육장에서 아름다운 청소년들을 상대로, 또는 마을의 유력한 사람들을 상대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착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묻고 있는 모습이다(이것을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라 함). 이와 같은 문답의 주제는 대부분 실천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문답은 항상 '아직도 그것은 모른다'라고 하는 무지(無知)의 고백을 문답자가 상호간에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의 주제는 '덕이란 무엇인가',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불경죄'로 기소되었다.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아니토스로서 당시 권력자이다. BC 403년 반혁명을 통해 복위한 민주주의자의 두 우두머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명목상의 기소자에 불과했다. 기소 이유는 2가지였다.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도시가 숭배하는 신들을 무시하고 새로운 종교를 끌어들였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명목상의 이유였다. 진짜 이유는 당시 30인 참주의 공포정치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적인 민주정을 시행하고 있던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반민주주의적인 알키비아데스와 30인 참주의 우두머리였던 크리티아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혐의였다.


그는 배심원 투표에서 약 280 대 220의 비율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기소자는 사형을 요구했다. 항소가 받아들여져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변론했다. 그는 당당하게 자신이 도리어 국가 공헌자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법정의 배심원들을 흥분시켜 오히려 501명 가운데 361명의 요구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아테네 규칙에 따르면 유죄판결을 받은 자는 24시간 이내에 독배를 마셔야 했는데, 델로스로 신성한 배를 보내는 기간에는 형을 집행하지 않기 때문에 형집행이 1개월 간 미루어졌다. 그는 친구들을 매일 만나면서 일상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 크리톤이 탈출계획을 꾸몄으나 소크라테스는 거절했다. 판결이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지만 그 판결은 법정의 판결이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독배를 마셨다('악법도 법이다'는 말을 그가 직접 했는지는 모른다).


그의 대한 모든 기록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욱 신비스러운 인물이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제자로 알려진 플라톤(파이돈)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인격이나 이론은 주로 플라톤의 대화편과 크세노폰의 '회고록 Memorabilia'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모든 시간을 길거리와 시장, 특히 김나시온(고대 그리스의 단련장)에서 보낸 듯하다.

그 때까지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의 원리를 묻곤 하였는데, 소크라테스에서 비로소 자신과 자기 근거에 대한 물음이 철학의 주제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내면(영혼의 차원) 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철학적 물음에 정의가 어려워 이 문제를 '소크라테스 문제'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평가하기를 귀납적답론과 일번적정의자라고 말했다. 그가 죽을 때 친구들에게 한 말은 아스클로피오스(의학의 신)에게 닭을 빚졌다며 자신 대신 갚아달라고 유언했다고 전해진다.

 

 

>> 목차고리 : 신학 > 종교철학 > 철학자 

>> 연결고리 : 그리스,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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