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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1-01-27
 제목  초대교회의 예배
 주제어  [구약] [예배학]
 자료출처  기준서 교수  성경본문  
 내용 들어가는 말

    한국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모이는 일에 열심을 가진 교회이다. 그 모임은 언제나 예배와 함께 시작되는데, 그러다 보니 자주 드리는 예배로 인하여 타성화되고 형식화되어지는 경향이 짙게되었고 결국은 예배의 본래 의도와 목적에서 이탈되게 되었다. 또한 성서에 예시된 예배의 본질과 원형의 훼손으로 인하여 교회 공동체는 예배 신학적으로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제기하게 되는 질문은 예배의 본질이 무엇이냐 묻게 되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초기 교회 예배는 과연 어떤 형태이었는가를 찾게 된다. 이는 결국 원류를 따라 성서로 돌아가서 말씀에 예시된 예배의 본질적 형태를 찾아야만 된다.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그 분에게 최고의 가치를 돌린다는 의미이다. 영어에서 예배는(worship) 고대 영어 weorthscipe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두 단어가 결합된 합성어로서 worth/weorth(존경할만한)+ship/scipe(신분), 즉 어떤 사람에 대한 가치 혹은 존경을 돌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예배에 대한 어원적 의미에 대해서 다음 책에서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Everett Ferguson「현대인을 위한 성서적인 교회」기준서 역(서울: 그리스도신학대학교,1997), pp. 29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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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오늘의 교회들이 예배에 대한 의미와 그 대상을 혼동하는 속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인간 편리의 법칙(Law of Expediency)으로 변질되어 갔다. 참된 예배 회복을 위하여 예배갱신운동(The Liturgical Movement)을 주창하는 이들은, 이를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성서로 돌아갈 것(Back to the Bible)”을 호소한다  성서회복 운동을 주창하는 개혁자들은 “우리는 성서가 말하는 곳에서 말하고 성서가 침묵하는 곳에서 침묵한다(Where the Scripture, we speak; where the Scripture is silent, we are silent)”는 원칙 하에서 모든 신앙과 교리의 출발점을 성서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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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에 기록된 최초의 교회 공동체는 사도행전에 등장한다(행 2:41-47). 최초의 교회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속에 그 본질을 훼손치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최초의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가감할 수 없는 다섯 가지 기본 요소가 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느니라...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하나님을 찬미하더라”. 이 말씀 안에는; 1) 말씀선포, 2) 기도, 3) 헌금, 4) 찬양, 5) 주의 만찬 등 다섯 가지의 기본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 어떤 것도 감(減)하거나 다른 것을 가(加)할 수도 없다(계 22:18,19).

     16세기 용기 있던 개혁자들은 순교의 위험을 각오하고 로마 가톨릭의 비성서적인 요소를 개혁하게 된다. 이 때에 이들이 주장한 것 중에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것이 말씀 안에서 성례전의 회복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교회가 예배 안에서 성례전을 경시하거나 그 행함을 포기하였다면 이에 대한 회복이 가장 시급한 예배 신학적 과제일 것이다. P. Tillich는 개신교 안에서의 성례전의 죽음을 말하면서 이 성례전의 문제는 바로 개신교회의 운명과 직결된다고 말함으로써 개신 교회 예배 안에서 이토록 중요한 주의 만찬이 결여되었음을 지적한다 P. Tillich 「예배갱신과 목회」 “예배와 성례전”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1991), p. 89.
. J. Beckman, W. Hahn 같은 신학자들도 예배의 본질에 대하여 정의하면서, “예배는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의 사건이며 말씀과 성례전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과 만나는 만남이며, 그 예배의 형태는 믿음과 복종의 열매이다”라고 하는 속에 주의 만찬에 중요성과 필요성, 포함성에 대하여 설명한다 김득룡 「현대교회 예배학신강」(서울: 총신대학교, 1996), p. 123 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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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자들은 참되 교회가 되기 위하여는 “교회는 개혁되어진 교회(Reformed Church)”가 아니라 “항상 개혁되어지는 교회(Reforming Church)”가 되어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개혁자들이 말하는 참된 교회로의 개혁은 성서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 안에 기록된 말씀대로 행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교회의 전통을 따르기보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 것이다. 성서에 기록된 초기교회 예배에는 다섯 가지 기본요소가 포함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주님께서 십자가에 고난 당하심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은 신약교회 예배의 중심이며 본질로서 절대로 감(減)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회들은 성서의 가르침대로 주의 만찬 회복을 통한 예배 갱신으로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1. 예배의 의미

    예배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예배란 말은 어느 한가지 뜻으로 한정하기 어려운 용어이며, 기독교적인 의미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서 희랍어의 ψροσκινειν은 “주 하나님께 경배하고(마 4:10)” 라는 의미이다. 경배라는 말은 “허리를 굽히다” 또는 “부복하다”는 뜻이며, 또 다른 의미로서는 “섬기다”(serve)로서  노예가 그의 주인을 섬긴다는 뜻이다.       Robert G. Rayburn,「예배학」김달생, 강귀봉 역 (서울: 성광문화사, 1994), 31.

    구약에서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는 무한한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고 그분의 뜻을 따라 봉사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 외적 표현은 예배자의 진실한 마음과 생활의 표현이다. 구약 예배에서는 하나님이 예배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으며, 인간들의 행위는 이차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방법을 신앙으로 받아 순종하는 것이었다.  
    신약에서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실상을 예배하는 것이다. 프로스퀴네오는 구체적인 실상을 기반으로 한 경배로써 예수 당시에 많은 믿는 자들이 그에게 존경과 사랑에 찬 경의를 표하였다. 여기에서 존경은 숭배의 의미를 뜻하며 이것은 신령과 진정의 마음이다(요 4:24). 또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단순히 머리를 숙여 경배하는 것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가 수반되는 것으로 예배의식을 위한 구체적인 섬김과 봉사, 신앙적인 삶의 태도가 동반되어야 한다.

2. 예배의 본질과 요소
  
   예배의 본질은 말씀과 성례전을 통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과 그의 따른 교제의 관계이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죄의 결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 의한 예배행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의 역사를 이룩하신다. 곧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드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그리스도의 구속의 보혈로 죄를 씻으시고, 그로 인하여 백성들이 자신의 복을 받을 수 있게 하신 은혜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와 사랑의 축복을 믿음으로 응답하고 생활로써 실천하며 봉사와 헌신의 행위가 수반되어야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의 예배의 본질이며 핵심이다. 여기에서 예배의 본질은 말씀과 성례전을 통한 하나님과 예배자의 만남의 관계에서 구속사적으로 강조되는 것이다.

   예배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예배는 하나님과 함께 할 때만 성립되며 예배는 위엄과 경외심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둘째로 예배는 사람에 의해서 창작되는 것이 아니며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하려는 열망도 결국 성령이 사람의 마음에 역사 하시는 결과이다. 셋째는 예배는 하나님을  대상과 목적으로 한다. 오늘날 많은 예배들이 어떤 효과와 축복 등 그릇된 목적을 갖고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보다 자기자신에 대한 것으로 집중된 경우이다. 예배의 목적이 자신 속에 내재할 때 예배의 참 목적에 빗나가게 된다. 예배의 존재의 목적은 인간의 축복을 위해서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에 있으며 인간이 예배를 통해 축복 받는 것은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3. 예배의 요소

    예배의 요소는 말씀선포, 기도, 헌금, 찬양, 성례전 등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로 예배의 중요 요소는 말씀 선포, 즉 설교이다. 이것은 성서를 읽는 것과 함께 하나의 예배 의식이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의 전승 속에 가두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하지 못하다가 개혁자들이 바로 가르치게 되었다. 칼빈을 가리켜서 “말씀의 종으로서의 칼빈”으로 묘사한 것은 종교개혁의 성격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약 10세기 동안 평신도들에게 가려졌던 성서가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열려진 것이다. 그래서 성서를 읽는 것과 설교하는 것이 예배의식이 되었다.
    둘째는 기도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며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그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다.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즉 감사, 자복, 간구, 대도 등을 포함한다. 칼빈은 기도를 말로 하는 기도와 노래로 하는 기도로 구분하여 찬송도 기도로 간주했다. 그는 예배에 있어서 음악은 열렬하고 불타는 열심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찬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작용할 수 있는 위대한 힘과 활력을 가졌다고 말했다.
    셋째는 헌금이다. 초대교회의 헌금은 조직적이며 규칙적이었다. 헌금은 예배자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순종적 응답의 구체적 표현으로서 감사와 헌신의 표이다.
    넷째는 찬양이다. 초대교회는 시편을 낭송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 당시에는 생명 있는 육성으로만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드렸다.  
    다섯째는 성례전이다. 칼빈은 성례전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힘썼다. 성례전에 있어서 루터가 너무 실재적이고, 쯔빙글리가 상징적인데 비하여 칼빈은 성만찬의 개혁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 중간 입장을 취했다.
    F. M. Segler는 신약 시대로부터 주의 만찬은 공중 예배의 많은 행위와 표현들 가운데서 중심적인 것이었다고 간주하고 있다.       Franklin M. Segler,「예배학원론」정진황 역 (서울: 요단출판사, 1987), 162-163.
그리스도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 성례전 의식에 대한 교리적, 의식적 견해는 다양하였다. 어떤 교회들은 “의식”(ordinance)이라고 부르는 반면에, 다른 교회들은 “성례전”(sacrament)이라고 부른다. 신약성서는 예배의 이 예식(rite)들에 대하여 그 두 용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다. 성서적 용어로서는 성례전에서 성만찬은 주의 만찬이다(고전 11:20).
    성서에 나타난 예배의 요소는 사도행전 2: 42에 나온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참조: 행 2: 46, 20: 7). ‘사도의 가르침’에는 ‘성서 읽기’와 ‘강해’와 ‘권면’이 포함되었고, 떡을 떼는 것은 ‘주의 만찬(마 26:26-28)’이다. 이것은 초기 교회 예배의 핵심적 요소이다. 그 후 ‘예언’과 ‘방언’의 순서가 있었으나 교회 내의 폐단으로 폐지되었다. 또한 ‘시편의 노래’와 ‘신앙고백’이 있었다. 여기의 ‘신앙고백’은 “사도신경”이 아니라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이었다(롬 10:9-10, 빌 2:11). 또한 매 주일 ‘헌금’ 순서가 있었으며(고전 16:2), ‘축도’와 ‘송영’이 있었다(고후 13: 13; 고전 16: 24; 갈 6: 18; 계 22: 21). 초대교회의 송영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한 ‘영광송’으로 축도 전에 사용하기도 했다.       김소영,「현대예배학」(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7), 63-65.
  

4. 신약성서의 예배
    
    예수 당시의 예배는 유대교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때의 예배는 회당과 성전에서 거행되었다.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는 그의 구속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로 전환되었다. 이 구속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에 의해서 지배되었다. 따라서 신약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에서 충분하고도 완전한 예배의 생활을 맛보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과거를 기념하고 그의 부활을 통하여 구속의 은총을 고백하는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후로 교회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곳에서 하나님이 찬양되고, 그의 위대한 행위들이 선포되고, 기도와 주의 만찬이 거행되었다.
  
    초기교회 예배는 기독론적 근거와 그리스도의 임재하심과 구속의 역사를 요약하는 세 가지 특성을 갖게 된다.
   ① 교회 예배는 기독론적 근거를 갖는다. 예수의 생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는 사실에서 완전한 예배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예배는 예수의 증인으로 예수의 생애와 죽으심과 부활이 중심이며, “그리스도께서 한 번 예물을 드리심으로 거룩해진 자들을 계속해서 완전케 하시는 것”(히 12:10)에서 정점을 이루신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것으로 그리스도의 하신 일 전체 사건에 근거를 둔다. 예배의 기독론적 근거는 성육하신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영화에 의해서 행해진 땅위의 예배와 영광 중에서 행해진 하늘의 예배(부활, 승천)의 이중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J.J. von Allmen,「예배학원론」, 17-22.

    ② 교회 예배에는 그리스도가 임재하신다. 예배시 그리스도의 임재는 예수 자신에 의해 약속된 것이다(마 28:20, 18:20). 그러므로 예배의 본래 모습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시고 임재하시고 행동하시는 것이다. 또한 그의 임재는 구원의 임재로서 주의 만찬에서 절정을 이룬다(요 6:51-58). 이때 예수를 청원 내지 간구한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인간이 예배를 드리는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의 행위에서 오는 것이다.     Ibid., 22-23.

    ③ 교회 예배는 구속의 역사를 요약한다. 구속의 행위가 신앙의 고백에서 현재에 약속되며, 동시에 미래를 지향한다. 이 예배는 구속의 과정을 요약하기 때문에 기쁨의 행위가 된다. 예배의식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예언자의 계시, 대제사장의 죽음, 왕의 명령)을 신학적으로 요약한다. 이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으며 또한 예배 안에서 계속된다. 이것이 예배가 필요한 이유이다. 예배는 성령께서 일을 수행해 가시는 하나의 도구로서 그리스도의 과거 성업을 오늘날 와서 효과 있게 하는 것이며, 동시에 이 과거의 성업을 오늘의 인간과 사건에 접촉하게 하고 구원을 가져다주므로써 은혜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Ibid., 28-30.

    초기 교회때 사도들은 성전에서 설교를 중심으로 한 예배를 드렸다(행 3:11). 그와 동시에 ‘집’에서 매일 예배를 갖고 기도와 떡을 떼는 일과 사도의 가르침이 있었다(행 2: 46-47). 예루살렘 이외의 장소에서는 개인의 집이나 그 외의 장소를 사용하여 예배가 거행되었다(행 19: 9). 그 당시의 예배는 ① 비교적 개방적이고 비형식적인 전도 형식의 예배였다. 이 예배에서는 불신자가 참석했다가 개종하고 결신하는 일이 있었다(고전 14: 23-24). ② 통상적으로 밤에 행하는 예배가 있었다. 예배는 매일 밤 가정집에서 거행되었다. 이때 제자나 성도들이 한 장소에 모이면서 각자가 음식을 가지고 와서 주의 만찬을 겸한 ‘아가페’(agape)라고 하는 식사를 함께 했다.     김소영,「현대예배학」, 23-25.
  

5. 주의 만찬에 대한 성서적 이해
    
    주의 만찬은 초기 교회에서 예배의 중심적 행위였다. 초기 교회 공동체들은 주의 명령에 따라 매 주일 함께 모여 주의 만찬을 기념했다(행 20:7). 주의 만찬은 유대교 예배에 없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그리스도의 사건으로서 예배의 핵심이 되는 예배행위로서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 그럼에도 현대 교회들이 주의 만찬의 예배학적 의미와 그 가치에 대한 몰이해로 매주일 준수를 하지 않고 가끔씩 연중행사처럼 거행하고 있음은 불행한 일이다.
(1) 예수의 최후만찬(유월절 만찬)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최후 만찬으로 유월절     참고, 출 12:25-27. 유월절은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을 탈출하여 여러 가지 고생 끝에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해 지켜진 축제로서 단순한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회상할 뿐아니라 그들을 해방시켜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는 예배 행위이기도 하였다.
만찬을 행하신다. 유월절 만찬시 주께서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돌리면서, 앞으로도 이 의식을 행함으로써 자신의 구속사역을 기념할 것을 명령하신다(눅 22:19).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축제 속에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Ralph Martin,「초대교회 예배」오창윤 역 (서울: 은성, 1990), 177.
, 바울도 만찬의 기원을 이 최후의 유월절 만찬에서 찾고 있다(고전 11:23-25). 그리고 당시 초대교회는 예수의 말씀을 좇아 주의 만찬을 실시했다. 그 의식의 구속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유월절 의식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정치적 해방과 구원을 기념하는 의식이라면, 주의 만찬 의식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교회)에게 있어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의 해방, 곧 십자가 구속의 사건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②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죽음을 면하고 해방되었듯이(출 12:21-30), 십자가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고 구속받았음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이런 구속적 의미를 지닌 만찬을 거행함으로써 성도는 과거의 죄로부터의 구속에 대한 감사와 현재의 교제와 장차의 천국 잔치를 소망하게 된다. 고린도전서 11:23의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의 말씀은 주의 만찬의 신적 기원을 설명해 준다. 주의 만찬은 주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③ 주께서 유월절 먹기를 원하셨고(눅 22:15), 친히 이를 제정하신 것은 하나님이 출애굽시 행하신 일을 다시 행하시는 미래의 구속행위를 기대하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I. Howard Marshall,「마지막 만찬과 주의 만찬」배용덕 역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1993), 123.
  
(2) 초기 교회의 주의 만찬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매주 첫날에 드리는 주일 예배 속에 주의 만찬을 포함하였다.
    ① 드로아 교회에 관한 누가의 증언(행 20: 6-7)을 통해서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축복하기 위해 모였다.
    ② 갈라디아와 고린도 교회들은(고전 16:1-2) “매주일 첫날”이 공(公)예배로서 모이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날에 연보를 함께 드렸다. 이 날이 주일로 이는 당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함께 모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이다.
    ③ 고린도전서 11:20에 보면 고린도의 제자들이 주의 만찬을 떼기 위해 함께 모였다.
  
6. 주의 만찬의 신학적 이해
    
1) 주의 만찬의 의미
  (1) 언약적 의미
    주의 만찬이 언약적 의미를 가진 신약의 증거는 주님이 잡히시던 밤에 떡을 축사하신 후 잔을 가지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하신 말씀에 근거한다(고전 11:25). 예수의 희생은 죄를 사해 주는 새 언약을 가져왔다(히 8:6-9:26)     E. Ferguson,「현대인을 위한 성서적 교회」, 342.

    ① 주의 만찬은 언약적 기념의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주의 만찬에서 그리스도를 기념할 때 우리는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기억한다. 이 언약의 영적 실재성은 우리의 기념을 통해 우리들에게 현실로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실재성의 현재적 경험에로 지난 기억으로부터 옮겨준다. 떡과 잔은 예배의 경험 안에서 우리를 위해 구원의 실재성을 현실화시켜준다. 그것은 믿음에 의해 우리가 먹고 마실 때 구원의 경험을 새롭게 한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기념하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언약적 교제의 실재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영적 실재성은 언약식사에서 우리의 기억을 통해 현존한다. 주의 만찬은 우리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역에 우리의 기억을 통해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드릴 때 은혜의 순간을 갖게 된다.
    ② 주의 만찬은 그 의미에 있어 언약의 갱신을 함축한다. 우리가 먹고 마실 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언약을 갱신한다. 우리는 언약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서약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순종하기 위한 그것의 의향을 목소리로 나타낸 것과 같이 그렇게 우리는 먹고 마실 때 우리의 삶 안에서 언약을 확인한다. 그것은 재헌신이고, 재위탁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것은 주께 헌신하는 언약을 갱신하는 것이며, 다른 종교적 열심을 배제하는 것이다(고전 10:26).      Ibid.
예배의 경험의 상황에서 우리는 복음의 가치(빌 1:27)를 살리기 위해 우리의 위탁을 외친다.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들고 절하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로서 요구하며 순종한 종처럼 세상 속으로 그를 따른다. 만찬은 세례로 만들어진 언약적 맹세를 갱신하는 의식의 순간이다.
   ③ 주의 만찬은 언약의 현재성을 가진다. 하나님은 항상 그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창 17:7-8; 레 26:11-12; 렘 11:4, 24:7)이 되실 것을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언약식사     주의 만찬은 하나님이 새 언약을 확증하시는 식사이다. 이 새 언약의 식사는 옛 언약의 식사인 시내산 언약의 식사와 유월절 식사에서 미리 나타난 식사이다. 박은규,「예배의 재발견」, 212.
안에서 그의 백성들 사이에 실재하신다. 그것은 언약의 주님의 실재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다(출 18:12; 신 12:7, 18, 14:23-26, 15:20; 대상 29:22). 식사와 장막과 성전에서 하나님의 현재는 언약적 실재이다. 이 현재는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 6:19; 고후 6:16)이 되게 하는 그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살아 계신 주님은 믿음을 통해 실재하신다(엡 3:16,17). 교회는 성령(엡 2:22)을 통한 하나님의 거주지이다. 언약식사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그리스도 위에 먹이를 먹이도록 끌어올리며, 그리스도에 뿌리한 성령의 실재성을 나누는 성령을 통해 실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예배드린다(빌 3:3). 그리스도는 언약식사를 통해 실재한다. 이 언약식사는 언약의 피를 나누는 것과 같다. 마태복음 26:28의 말씀은 그 언약이 용서와 관련이 있다.       Ibid..

    ④ 주의 만찬은 언약적 친교의 식탁 교제이다. 언약식사는 상징적이고 하나님과 그의 언약백성사이에 친교를 중재한다. 그것은 화평케 하시고 하나님 사이에 현존하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화해를 입증한다. 그것은 기쁨과 교제와 감사의 순간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사역에 의한 그들의 화해를 축하한다. 그들은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역에서 기뻐하신다. 언약식사는 예배자에게 사랑과 구속의 사역을 확신케 하는 감사의 주의 만찬식이다. 믿음을 통해 먹고 마시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구원과 공동체에 참여한다. 주의 만찬은 의심과 불확실성을 가지고 그 시간을 피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식사에 대한 증거를 통해 의심과 불확실성이 근절되는 것을 믿음에 의해 받아드려지는 은혜로운 선물이다. 그것은 그의 사랑의 계명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공동체사이의 교제적 친교의 순간이다. 그것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식탁에서 주를 부활시킴으로 교제하는 순간이다. 언약식사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은 친교이며(고전 10:17-34), 그리스도의 몸과 교제(참여)이다(고전 11:17-34).
    ⑤ 주의 만찬은 언약적 약속의 희망을 가진다. 새 언약식사는 희망과 기대의 하나이다. 우리는 역사의 종말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의 빛안에 있다. 그는 우리들에게 역사의 종말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주의 만찬은 그 때에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 너머에 하나님의 승리로 축하된다. 그것은 장례와 같지 않은 비참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희망의 긍정을 축하하는 것이다. 언약식사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약속들 안에 우리의 신앙을 선언한다. 그리고 우리는 주의 만찬이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종말론적 잔치       Donald G. Bloesch,「목회와 신학」오성춘, 최건호 역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62.
임을 예표한다고 볼 때 이 거룩한 음식에 참여함으로 그의 왕국의 충만함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먹고 마신다.

(2) 기념적 의미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지나간 과업을 기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고 말씀하셨다. 이 기념 또는 추념은 추억을 되새기는 것과는 판이하다. 이것은 과거를 회복하여 현재가 되고 약속을 가져오는 것이다.       J.J. von Allmen,「예배학 원론」, 30.
주의 만찬을 행하는 기본적인 목적이 누가복음과 고린도전서에 기술되어 있다. 누가는 “이것은 내 몸이라 이를 행하여 기념하라”(눅 22:19)고 하였으며, 바울은 “이것을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고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라”(고전 11:23-26)고 하였다. 이것을 기념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서대로 우리의 죄들을 대신하여 돌아가셨다”(고전 15:3)는 복음의 첫 번째의 위대한 사실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계속 새롭게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음을 가르친다. 그러나 이 의식의 목적은 단순히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사실을 단순히 회상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만찬은 굶주리고 갈급한 영혼에게 영적인 영양을 공급하는 매개체가 된다. 만찬에서 기념하는 떡과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상징하며 그의 죽으심과 희생으로 말미암은 은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은 죄와 사망에서 건져 새 생명을 주신 주님의 은혜를 깊이 새기며 예수의 구속 사역을 기념하는 것이다(눅 22:19).

(3) 감사적 의미
     ‘성찬’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카리스티아’(εύχαριστα)는 감사란 뜻이다. 이 말은 최후의 만찬시 주 예수께서 떡과 잔을 주시기 전 하나님께 사례(謝禮)하신 사실에서 기원된 말이다(마 26:26-28; 막 14:22-24; 눅 22:14-19). 고린도전서 11:24에는 ‘축사’로, 마태복음 26:26; 마가복음 14:22에는 ‘축복하시고’란 말을 사용했다. 주의 만찬은 ‘축복과 감사의 제사’라는 의미가 있다. 특히 이 말 속에서 주의 만찬의 주인이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준다. 주께서 십자가 위에 고난 당하심은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구속하시는 은총이 되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다.
  
(4) 친교적 의미
    바울은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고전 10:16)고 말함으로써 주의 만찬에 친교적 의미가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을 떼고 잔을 받음은 그와의 영적인 연합으로 주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누리는 영적인 연합이며 사랑에 찬 영적 교제이다. 바울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전 10:21)고 말했다. 이것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여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자가 귀신이 베푸는 잔치에 참석하여 그와 교제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주의 만찬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한 후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대교회들의 주의 만찬식의 친교 사상은 주의 만찬식의 본질로서 예수의 공생애의 식탁 친교와 최후의 만찬의 친교와 부활 후의 식탁 친교를 회상케 해줄 뿐 아니라 종말론적 메시아 만찬의 성격을 예견케 해 준다.      서중석, “초대교회들의 예배,”「초대교회의 예배와 설교」(서울: 연세대학교 유니온학술자료원, 1989), 173.


2) 주의 만찬의 목적
    성서는 주의 만찬의 목적을 명백하게 알려준다.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주의 만찬에 대해 주께 받은 세부적인 사실들이 나타나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주의 만찬은 주님이 주신 새언약이며, 주님에 대한 기념이다(24, 25절).
(2) 주의 만찬은 주님의 죽으심에 대한 선포이다(26절).    
(3)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한다(28, 31절).
(4) 떡에 참여할 때 주의 몸에 대한 영적인 분별을 해야한다(29절).
(5) 조심성 없이 참여할 때 주의 징계가 따른다(30절).
    여기에서 주의 만찬은 주님에 대한 기념, 주님의 몸에 대한 분별, 주님의 죽으심에 대한 선포, 주님의 오심에 대한 기대의 사중적인 목적      Alfred P. Gibbs,「주님의 만찬」장세학 역 (서울: 전도출판사, 1994), 79-82.
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이 ‘주의 만찬’에 대해 잘못 인식하여 무질서하게 행하는 것을 엄격하게 책망하고 경고했다. 바울은 주님이 주의 만찬을 제정하신 목적을 분명히 알려줌으로 그들이 앞으로 주의 만찬을 준수함에 있어서 바른 영적인 지식을 갖게 되도록 하였다. 오늘의 한국 개신교회의 예배가 갱신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주의 만찬의 목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이 필요하다.

3) 주의 만찬의 중요성
    예수께서 주의 만찬을 제정하실 때 교회의 예배를 시작하셨다. 떡을 떼시며 그는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몸이다”라고 하셨고, 잔을 가지고 “이것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고 하셨다. 더 나아가서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마 28:20), 또한 두 세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 18:20).
    그리스도교의 예배의식은 다만 예수께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26)는 말씀에 근거한다. 예수께서 희생제물이 되신 것이 하늘의 예배를 반영하신 것이며 그리스도교의 예배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영원한 하늘의 제사를 드리신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J.J. von Allmen,「예배학 원론」, 21.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매주 중단 없이 항상(히 7:3), 마실 때마다(고전 11:25) 드려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히 10:12)고 선언한다.  
    그리스도교의 예배의식은 매시간 주의 죽으심과 다시 오심에 대한 기대를 배경으로 해서 선포된다(고전 11:26). 예배의식이 과거에 대한 기념인데, 그 기념은 그리스도교 고고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관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주의 만찬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 모임에서 중심적 행위였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을 곁들인 주일낮 예배가 공식적인 “공동 예배”이며 그 밖의 주의 만찬이 없는 모임(주일 저녁, 수요일, 금요일 등)은 엄밀히 말해서 예배라기 보다는 영성 훈련을 위한 신앙 집회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 오늘의 개신 교회는 신학적인 의미에서 주의 만찬을 중심한 주일 예배와 다른 신앙 집회를 구별해야한다. 주의 만찬이 예배의식의 중심적 부분으로 항상 지켜져야 하고, 단순한 추가 부분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Franklin M. Segler,「예배학원론」, 174.
    
    훠거슨은 예배에서 모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주의 만찬이 예배 모임에서 중심적 행위임을 전제하고, 모임은 섬김의 일부분이라 한다. 그러므로 바울도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히 10:25)”고 하였다. 신약성서의 모임에 관한 많은 구절들 중 “함께 오다”라는 말은 유월절에 군중이 모이는 것(행 2:6), 교회의 모임을 위해 사용되었다(고전 11:17). 교회에서의 모임은 주의 만찬을 위해(행 20:7), 기도하기 위해서 였다(행 4:31). 교회는 함께 있는 몸이고, 가족이다. 모임이 있을 때 구별되는 실체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공동체가 되며, 모임은 교회의 본성인 구속 공동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모임이 초대 교회는 주의 첫날에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행 20:7). 주의 첫날은 예수의 부활의 날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이 날에 함께 모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날을 각별히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요(눅 24:13-35), 이 날이 주의 첫날인 오순절 날이었고 이 날은 교회의 시작과 교회에 성령의 임함을 찬양했다. 이 날은 부활을 넘어 예수의 종말적 재림이 가깝게 연결된 날이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행 1:11; 고전 11;26).
    주의 만찬(고전 11:20)과 주의 날(계1:10)이라는 단어는 둘 다 부활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 부활의 날인 주일은 만찬에 참여하는 날이고 주의 만찬은 구원의 사건을 기념한다. 모임의 구체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고전 10:31), 떡을 떼며 교제한다(행 2:42). 또한 믿지 않는 자에게 올바른 감동을 준다(고전 14:23-25). 그리고 주의 죽으심을 선포한다(고전 10:14-17, 11:17-34).       E. Ferguson,「현대인을 위한 성서적인 교회」, 318-344.
  

4) 예배에서 주의 만찬과 말씀
    예배에서 주의 만찬과 말씀은 불가분리의 상관성을 가진다. 주의 만찬이나 말씀, 이 두 가지는 예배의 본질적 요소로서 어느 한가지라도 배제된 예배란 진정한 예배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둘은 상호 깊은 상관성을 가지고 조화될 때 온전한 예배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주의 만찬과 말씀이 잘 조화된 예배의 모형은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는 초대교회에서 발견된다(행 2:42; 20:7). 초대교회는 매주일 주의 만찬을 기념하기 위해 모여 예배를 드렸고, 기도와 찬미와 의(義)에 관한 교훈이 주의 만찬이라는 비의(秘儀)적 교제와 연합되어 있었다.       R. Abba,「기독교예배의 원리와 실제」, 25.

    주의 만찬은 교회가 드리는 예배 행위의 절정으로서 말씀의 성례전이며, 성서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복음의 표적이며 보증이다. 행위를 예전되게 하는 것은 그 행위 안에 있는 복음이다. 말씀과 성례전의 불가분리의 원리는 교회 예배의 가장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는 말씀이 없이는 참된 성례의 집행은 있을 수 없었다. 말씀이 진실되게 선포되고 마음으로부터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공동체가 아니라면 거기에 참된 그리스도교의 성례전은 있을 수 없다.
    주의 만찬은 결코 예배와 분리된 행위로 간주되거나 설교예배(preaching service)의 부속물 정도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말씀과 주의 만찬이 함께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를 구성한다. 주의 만찬은 예배의 전체적 행위라는 배경에서 행해야만 될 핵심이며, 중심이다.
      
나오는 말

    뒤늦게나마 한국 교회가 예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주의 만찬 회복을 위한 예배갱신 운동에 진력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교회는 예배에 있어서 오래된 전통의 규례와 관습의 영향으로 주의 만찬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갱신을 단행하지 못하고 있다. 예배갱신 운동은 교회갱신 운동으로, 이는 세계교회의 차원에서 줄기차게 주장되어온 교회의 자기 개혁의 한 몸부림이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갖고 있는 그릇된 예배의 내용과 구조를 갱신해야만 그 영적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고 참된 교회 모습으로 환원될 수 있다.
    ① 예배신학이 빈곤하다. 예배의 본질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드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받아 가지고 가려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② 설교위주의 예배형태이다. 따라서 회중은 참여의 기회가 부족하여 고독하며 소외와 불만을 느낀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개혁전의 미사 형태이다.
    ③ 주의 만찬이 결여되어 있다. 예배는 신앙공동체의 전체 사건인데 목사의 설교위주의 독무대로 성도들은 말씀을 듣는 예배뿐이며, 감사와 교제를 나누며 헌신하는 축제적 예배공동체의 전체 사건이 결여되어 있다. 주의 만찬이 결여됨은 비성서적인 예배 행위로서 이는 반드시 시정되고 시급히 개선해야 될 과제이다.

  이 과제를 해결하는 길은 성서로 돌아가서 초기교회가 행하였던 예배의 원형과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다. 그 길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에 회복에 있다. 마땅히 교회는 초기교회 공동체처럼 주의 만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기념하며, 이를 통한 축제적 예배 행위를 갖는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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