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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0-07-06
 제목  구 소련 선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발제)
 주제어  [선교] [선교전략회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선교대회] [NCOWE V] [세계선교전략회의] [분야별2]
 자료출처  강형민  성경본문  
 내용

 

              구 소련 선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강형민[1]/ GMI

 

도입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 100주년을 맞이하며, 2010 NCOWE Ⅴ 선교전략회의가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번 전략회의를 통해 한국교회의 선교가 세계선교에 기여할 수 있는 한인선교사들만의 노하우가 잘 정리 되었으면 좋겠다.

 

  세계선교는 이미 2/3세계의 배경을 가진 선교사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비서구권 선교사들이 세계 선교의 주도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실제로 이들 비서구 국가들은 지난 수십 년간 전세계 선교사의 70% 이상을 파송했다.

선교의 주체가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중심 이동된 것이다.  한국 역시 비서구권에 속한 나라로서 세계선교에 괄목할 만한 비약(飛躍)이 있었다.  파송 선교사 20,000명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은 더 이상 선교 대상국이 아닌 세계 제2위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주체국 으로써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다른 비서구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선교운동을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본고는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함께 시작된 구 소련 사역의 과거와 현재를 종합하고 구 소련 선교를 통해 우리 한인 선교사들이 세계선교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살펴볼 것이다. 

 

 구 소련

 

구 소련이란 독립 국가 연합으로 (Содружество Независимых Государств (СНГ),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CIS)[2]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독립한 10개 공화국과 준 회원국 투르크메니스탄을 합쳐 11개국의 연합체들 말한다.  회원국은 러시아, 몰도바,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이다.[3]

    그루지야는 원래 회원국이었으나, 2008년에 러시아와 짧은 전쟁을 치른 후에 탈퇴를 선언했다. 몽골은 소비에트 연방의 지배를 받지 않았지만,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다.

 

 소련(USSR)[4] 의 면적은 22,402,200 평방Km로서, 동서로는 11,000Km, 남북으로는 5,000Km에 이르는 광활한 땅으로서, 한반도의 약 101배이자, 한국(남한)의 약 226배의 크기인 동시에, 미국의 2.4배에 이르는 지구 전체 육지면적의 약 1/6에 해당되는 대륙이 된다. 구 소련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나라만 해도 12개 나라가 되는데 노르웨이, 핀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 중국 그리고 북한이 된다.

 

이러한 거대한 소비에트 연방은 1991년 가을 해체되기 시작했다.

1991 12 8일 부터 2주간 러시아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지도자가 벨라루스의 브레스트 북쪽 50 km에 있는 휴양소에서 만나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 되었음을 선언하였고, 그 대신 발틱3개국을 제외한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모든 공화국을 포괄하는 좀더 느슨한 독립국가연합(CIS)을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소비에트 연방의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 모임을 "불법적이고 위험한" 헌법적 쿠데타라 선언했지만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91 12 21, 옛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하는 15개 공화국 중 11개 공화국의 지도자가 카자흐스탄의 알마타(Almaty)에서 만나 모든 회원국이 독립 주권국임을 공표(알마타 선언)하며[5] 사실상 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되었고, 모스크바 크렘린궁전에 나부끼던 소련깃발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는 기념비적인 지정학적 혼란을 야기했다.

 

 수세기 동안 짜르 제국에 점령되어 온 공간과 약 4분의 3세기 동안 러시아가 지배하던 소련에 점령되어 있었던 공간은 이제 11개의 국가로 채워지게 된 것이다. 

러시아인의 충격은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약2천만 인구가 외국에 속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는 유라시아의 한가운데 권력공백을 만들어 놓았고[6] 그 권력공백은 무질서를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무질서 속에서 초기 한인선교사들의 구 소련 사역은 시작되었다.

 

구 소련 선교의 시작 초기 정착시기

 

 대한민국의 구 소련 선교는 이미 1984년 김영국 장로에 의해 극동방송을 통한 사할린과 연해주 일대에 러시아어 방송이 시작되면서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7]

 

 GMI(Grace Ministries International)[8]의 구 소련 선교는 1990 2월부터이다. 2월에 LA은혜한인교회 부목사로 수고하던 홍성훈목사를 구 소련 선교사로 임명을 하였고, 곧이어 5월에 안동주 목사, 홍성훈 목사, 정준규 집사를 교회개척을 위한 현지 답사를 보냈으며, 7월에 소련선교합창단의 순회공연과 함께 알마티, 타쉬켄트, 하바롭스크, 사할린에서 첫 개척 예배가 있었다. 

 

 또한 1990 6월에는 미주 연합감리교 안의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당시 김대희 목사를 중심으로 러시아 선교회가 조직되었고, 모스크바 감리교회가 세워지며, 조영철 목사가 초대선교사로 모스크바에 파송 되었다.[9]

 

 기독교 한국침례회 해외선교회에서는 1991 4월부터 첫 중앙아시아 선교사 파송이 있었다.   (카작스탄: 김동성, 주바나바, 정여호수아, 키르기즈스탄: 오요셉)[10]

 

소련선교회 역시 1990년 사할린교회를 개척한 후 1991년 홍기영 선교사, 김봉석 선교사 남일우 선교사, 김수선교사를 초기 선교사로 파송 했으며.[11] 다른 교단도  구 소련 선교의 발판을 놓기 시작했다

 

구 소련 초기 사역은 주로 고려인[12] 들의 통역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고려인들은 구 소련 선교를 위해서 이미 주님께서 예비하신 귀한 일군 들이었다. 한국선교사들이 구 소련지역에서 마음껏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께서 고려인들을 구 소련지역의 한복판에 예비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초기 구 소련 선교에 고려인 들의 기여는 말로 다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이유로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이 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소련과 공식적인 국교 관계가 있었던 북한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고려인중에는 실제로 북한의 평양에 다녀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물으면 그들은 “일 없소”라고 대답한다. 일이 없다는 말은 괜찮다는 의미였지만 우리가 알아듣기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이 살아 가고 있는가로 알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설교자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설교하지만 통역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결국 설교자 따로 통역자 따로 각자가 열심히 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매번 성도들은 신학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설교를 들으면서도 어떻게 계속해서 교회에 나올 수 있었는지, 오직 주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느 성도에게 그렇게 설교를 듣고도 어떻게 교회를 떠나지 않았는지 물으니 이렇게 대답을 했다. “목사님께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설교 하시는지 그 열정에 미안해서라도 교회를 떠날 수 없더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잘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정말 열심히 나름대로 통역하는 통역이 있었기에 선교사들은 실망하지 않았고 사역할 수 있었다.

 

그 당시 통역자가 어떻게 통역하는지 알아들 수 있었다면 깊은 실망감에 선교를 포기 했는지도 모른다. 못 알아 듣는 것이 약이었다. 초기 선교는 이렇게 앞 뒤 생각 할 여력도 없이 계속되었다.  구 소련의 문이 열렸지만 언제 어떻게 다시 닫히게 될지 모른 다는 또 다른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가 현실이 되었지만. 우리 선교사들은 총을 쏘는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전쟁에 뛰어든 병사와 같았다. 선교의 대상이 누구인지 전혀 파악하지도 못 한 채 파송 된 것이다.

 

고려인이든 러시아인이든, 키르기즈인이든 카작인이든 상관없었다. 모두에게 “주여 삼창”을 가르치고, 한국식 찬송가를 러시아어로 번역해서 부르게 했다.  성탄절은 우리가 아는 대로 1225일을 지켰고, 우리 보다 일주 뒤에 오는 러시아의 성탄절은 별 관심이 없었다. 피선교지의 문화와 전통에 상관 없이 우리 식 절기를 지켜왔던 것이다.  

 

한국의 교회 문화를 그대로 이식 시키듯 모든 것은 한국식으로 진행되었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말이다.  전략을 가지고 들어온 선교단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기 선교에서는 모든 것이 안개 같았다. 한번도 격어 보지 못한 공산주의 치하에서 73년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래서는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양파에 비유한다. 아무리 벗겨도 속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굳게 닫쳐있는 그들의 마음, 열리지 않는 그들의 마음 때문에 선교사들은 더욱 힘들어 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공산주의 시절에는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간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상상하기도 싫은 고초를 당했기에 마음을 열고 말을 한다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대화하면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하지만 두 세 사람이 함께 모인 곳에서는 거의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이들의 속성상 은혜롭고 즐거워야 할 교회는 너무나 서먹서먹 했고 분위기는 어두웠다. 모두가 정색을 하고 앉아 찬양을 부르는 것도 아니고, 안 부르는 것도 아닌 아주 이상한 분위기기 연출될 수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통역을 하던 고려인 들은 텃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한국 선교사가 와서 세운 교회는 고려인 들만의 교회라 하며 러시아인들 비롯해 다른 민족들을 선교사 몰래 교회에서 내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어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선교사들은 영문도 모른 체 성도가 줄어들자 안타까운 마음으로 금식하며 기도 했다. 선교사가 거의 죽을 힘을 다해 금식기도를 마칠 때쯤 고려인 통역은 회개하며 자기가 사람들을 내어 보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초기 구 소련 선교는 이처럼 어느 것 하나 분명한 것이 없었다. 한국 초기 선교사 언더우드의 기도문(Prayer of Underwood)이 생각난다.

 

뵈지 않는 조선의 마음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언더우드 Horace Grant Underwood)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와 같이 우리 선교사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느 것 하나도 분명하게 잡히지 않았다. 100년 전 언더우드 선교사의 심정을 구 소련의 언더우드가 되어서야 비로서 알게 되는 순간이다.  순교자적 영성이 없었다면 구 소련 선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인선교사들의 영적 DNA는 순교자적 영성[13]이라 말할 수 있다. 내가 만약 구 소련 한인선교사들을 별명을 붙인다면 그것은 번지점퍼(Bungee Jumper)라고 하고 싶다. 그만큼 생명을 내어 걸고 사역했다. 그래서 어쩌면 원칙보다는 열정이 앞섰는지도 모른다.

 

 초기 구 소련의 선교는 일방적으로 한국교회의 모든 것을 이식시키듯 그들의 문화 와 전통을 전혀 고려 하지 않았기에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William Carey가 인도에 들어간 1792년경부터 서구 선교사들이 선교의 기본 개념으로 사용하던 “문화간 대면” (Cultural encounter)이라는 용어로 표현 한다면 너무나 극단적 일 수도 있지만 표현을 하자면 비 서구 문화나 종교를 악한 것 내지는 열등한 것으로 보고 이를 서양 기독교 문화로 대치하려는 초기 선교사들의 시도와 우리 선교사들의 사역방법이 비슷했던 것은 사실이다.

 

  한국적이어야 안심이 되었다. 한국적인 기준에서 새벽기도, 철야기도에 열심을 내지 않으면 성도들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했다. 통성으로 열성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아직도 믿음이 약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들의 지나온 과거를 전혀 무시한 체,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으며, 우리의 것이 모두 옳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적이기 때문에 복음이 현지에 뿌리 내릴 수 없다면 또한 복음적인 상황화에 못 미친다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 종교적 장애로 인해 선교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전방 개척지역에서는현지에서는 전략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혹은쉬운 일이 없으므로 그것이 복음전도이건, 사회사업이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들이 있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는 면에서는 수긍이 간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사역의 원칙과 신학적 원리 그리고 전략적 사고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14]

 

시간적으로, 상황적으로 볼 때 구 소련지역에 파송된 선교사의 입장은 이해 한다 하더라도 파송단체에서 전방선교에 대한 단계적 전략적 원칙이 미흡했던 것이다.  최전방에서 몸으로 뛰는 1군 사령부 뒤에는 전략전인 지원부대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반기

 

 사역이 중반기에 접어 들면서 사역의 원칙과 전략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갑작스런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원리와 원칙조차 없이 시작한 초기 사역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지만 사역이 안정되어 가면서 John Nevius 3자 원리 (자립, 자치, 자전)에 대해 신중한 적용이 필요했다. 3자 원리가 적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지인을 선교대상(Object)에서 선교주체(Subject)로 세워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상황화(contextualization)[15]을 위한 첫 발걸음은 신학교를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립적이고 (Sustainable) 재생산적인(Reproducible) 리더십과 전략적인 선교교회를 세우기 위해 러시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에서 교단 별 신학교와 초교 파 연합신학교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본인의 파송 단체인 GMI 의 구 소련 선교는 1990년부터 시작되었다. 파송 선교사와 모스크바 은혜신학교를 통해 1992 3월부터 2009 21기생까지 2,3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 하여 그들 졸업생 들에 의하여 1,800여 교회가 구 소련 전역에 개척했다. 이들 교회 중에는 이미 5000명 이상 모이는 대형 교회[16]도 있다.

신학교가 없는 지역에는 단기 성경학교가 짧게는 3개월에서 6개월 과정으로 지역 선교사들을 통해서 세워져 나가기 시작했다.

신학교가 세워지면서 선교사들이 직접강의에 참여하게 되었고 교수요원들이 각 나라에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신학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강의에 참가하는 선교사들은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 동안의 사역을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고 동시에 미래를 바라보며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사역을 꿈꾸기 시작했다.

좀더 조직적이고, 전략적이며, 전문적인 사역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선교 인프라

 

목사 선교사가 주로 사역하던 구 소련지역에 전문인 선교사들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구 소련 지역에 총체적인 선교가 본격화 되었다.

전문인 선교사와 목사 선교사들과 자연스러운 동역이 시작되었다.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직업의 전문인 선교사들은 목사 선교사가 할 수 없는 많은 부분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직, 간접적인 복음전파를 가능케 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전문인 사역자 들의 역할은 컸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구 소련 지역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이들은 정치와 사회, 경제 및 상업, 교육, 가정, 예술, 종교, 과학기술, 스포츠, 매스미디어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많은 전문인 선교사들의 동참으로 선교 인프라는 더욱 강력히 구축되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러시아 전역과 시베리아 구석구석까지 우리 선교사들이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인프라는 결국 사람이다.

진정한 의미의 선교인프라[17]가 헌신된 한 사람의 영적 DNA라고 한다면 우리의 이 DNA는 이미 구 소련 권 전역에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를 통틀어 구 소련지역에 이러한 인프라를 구축한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 어디 있겠는가?

 

  2001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9.11 사태 이후 세계교회의 글로벌 리더십이 태평양을 건너 한국교회로 이전 되었다. 이슬람이 주도하는 글로벌 테러리즘이 확산되면서 서구 백인들의 최전방 미전도 종족 선교가 크게 위축되었으며 이와는 상대적으로 비서구권과 인종적 및 문화적 친근성을 가진 한국교회의 세계선교 역할이 크게 증대 되었다. 특별히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서구선교사들의 입지는 더욱 약해진 반면 한인선교사들의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게 되었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를 들어 사용하시고 계신다.[18]

 

  한인선교사들의 교회개척에 있어서의 열정과 헌신은 구 소련 선교 중반기에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지역에 성전 건축되기 시작했고, 교단신학교 및 초 교파 연합신학교가 세워졌으며,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하는 기독교영재학교(김나지아)[19] 가 세워졌다. 또한 전문인 사역자들을 통해 선교기지병원, 문화센터, 컴퓨터 교육센터, 태권도 도장, 일반대학, 치과대학병원과   Dental Clinic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1998년 이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새로운 종교법의 출현하면서 구 소련 지역 한인선교사들의 사역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러시아 이민국에서는 선교사들의 비자를 제한적으로 발급하기 시작했다. 3개월씩 비자를 받고 출국하여 외국에서 다시 비자를 받아 들어와 사역하면서 선교사들의 정신적 재정적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우즈벡의 새로운 종교법은 교회사역을 억제 시키는 동시에 선교사를 추방하고, 전문인 선교사들의 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까지 문을 닫게 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정부들은 새로운 종교 법을 제정하여 의무적으로 모든 교회들이 등록을 해야 했고, 정부 관계자들에 의해 압박을 받거나 교회를 닫아야 한다는 위협을 초래하며, 결국은 추방까지 이루어졌다.  이 법안들은 러시아 정교회를 제외한 모든 기독교 종파들의 활동과 팽창을 억제 시켰다. 이른 바 정통과 비 정통으로 구분하여 러시아 정교회 이외 개신교는 비 정통에 분류하여 이단 (sects)으로 지명하면서 심한 압박을 가했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즈스탄은 91년 이후 종교의 자유가 있는 듯해 보였으나 근래에는 정부의 각종 법안과 규제를 통해 종교활동이 제한을 받고 있다. 실례로 2009 1 12일에는 키르기즈탄의 대통령인 쿠르만벡 바키예프가 새로운 종교법안에 서명했다. “양심의 자유와 종교기관에 관한 법률(On freedom of religion and religious organizations in the Republic of Kyrgyzstan)”로 명명된 이 법안은 키르기즈 현지인들이 교회를 등록하기 위해서는 키르기즈 시민권을 가진 200명 이상의 성인 교인이 있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이 나오기 전에는 교회 등록을 위해 성인 10명의 발기인이 있으면 가능했다.

이 외에도 이 법은 다른 종교로의 개종, 사설 종교 교육, 종교 서적의 수입이나 배포를 금지하는 조항을 내포하고 있다.[20]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상황은 이보다 훨씬 열악하여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의 브레즈네프 통치하의 종교적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21]

이러한 구 소련지역의 새로운 종교법은 심각한 부정적인 내용을 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교회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기회를 주었다. 현지 교회들이 연합의 장을 만들어져 어느 정도 열매를 맺고 있다. 특별히 우크라이나의 사역자들은 대정부 활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개신교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정부에 안겨주었다. 그 동안 선교사에 의해 주도 되었던 사역들 중 많은 부분이 현지인에게 이양되어 지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있던 선교사들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 현지인들을 향한 진정한 도움이(helper)로 서게 되었다. 한 예로 키르기즈스탄의 연합신학교는 2010 619일에 모든 것이 현지인에게 이양된다.

 

협력

 

Ralph Winter 박사는, 선교사와 선교지 교회와의 관계를 네 단계로 설명하였다. 즉 선교사에 의한 개척단계(Pioneer 단계), 부모와 같은 양육단계(Parent 단계), 동역자단계(Partner 단계), 그리고 협력자, 후원자, 격려자 단계(Participant 단계)로 보았는데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구 소련 선교는 이제 4번째 단계(Participant)로 접어 들게 된 것이다.

 

 우리는 동역을 통해서 더 많은 시너지(Synergy)[22]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Phillip Butler는 협력관계가 가진 힘 (The Power of Partnership)에서 협력이 귀중한 이유에 대하여 협력은 성경적이며, 공동체 증거가 지닌 힘의 본을 보여주며, 교회를 발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며, 변덕스러운 세계의 상황 때문에 필요하며, 그리고 협력은 가용 자원들을 극대화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23]

 

 또한 Ralph Winter는 협력을 그물로 비유해 설명했다. 교회와 선교단체, 선교사와 현지인사역자, 세계의 교회들이 협력을 이룰 때 그물을 통해 낚시를 가지고 고기를 잡는 어부보다 짧은 시간에 휠씬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특별히 현지인 사역자와의 협력을 위해서는 성 육신적 선교의 자세가 필요하다. 낮아짐과 비움을 통해서 문화적인 친숙함과 특권들을 버리고 타 문화권에서 불편한 삶을 살면서 우월감에서 나오거나 자기만족을 위한 활동들을 경계하고, 순수하게 인류 구원의 정신으로 선교에 임하여야 할 것과 선교의 외형과 규모를 자랑하지 않으며 순수하게 잃어버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 특권을 포기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태도를 가질 때 온전한 협력이 가능케 될 것이다. [24]    

 

 복음은 능력이다. 유대인이나 헬라 인이나 야만인 모두에게 복음은 능력이다.[25]

복음은 능력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구원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정확하게 주님을 만나 구원받으면 나라와 민족과 열방이 그를 통해 돌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구 소련지역은 열방 선교를 향한 전략적 교두보가 되어야 할 것이다.

 

 150여 민족이 전방개척선교를 위해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이들을 돕는 구체적이며 전략적인 사역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구 소련 선교의 노하우와 선교적 경험을 자료화 하고, 올바른 비판과 평가를 통해 전략을 재 수립하는 과정을 통해 2/3세계 선교모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구 소련지역에서는 이미 많은 것이 시험(Test)되었고, 실습(Practice)되었다. 서구의 것과 비서구의 것 그리고 한국적인 것이 150여 민족의 구 소련지역에서 약20년간 임상과정을 지나왔기에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맺음말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 한국민족에게 마지막 시대에 선교의 주도권을 맡기셨는지 살펴보길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한 시대에 한 민족을 들어 사용하셨다. 초대교회의 이스라엘이 그랬고 얼마 전까지 선교 활동이 왕성했던 미국이 그랬다. 우리나라가 세계선교를 책임져야 하는 이유와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성령 충만함과 뜨거운 기도운동이 있는 민족

2.      오직 예수만을 향한 열정이 있는 민족

3.      주의 종이 되고자 많은 희망자들이 신학교로 몰려가는 민족

4.      국가에서 기독교가 인정받는 민족

5.      경제 선진국으로 들어서려는 민족,

6.      마지막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민족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나라는 지금 우리나라 밖에 없다.[26]   

이제 한국교회는 선계선교의 중심 축에 서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 즉 열정적인 기도와 헌신,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자신감을 통해 한국형 선교모델을 만들어 내어야 할 것이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구 소련 선교는 한국선교들을 통해 열매를 맺고 있다. 서구식 선교선교학적으로 볼 때 무모하게 보였지만 또 하나의 선교 패러다임을 창조해 내었다.   

 

 구 소련 선교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꽃을 피웠고 1996년 이후로 여러 가지 이유로 선교가 어려워 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이렇게 구 소련 선교가 기초가 세워지고 열매를 얻게 된 것은 약 5-6년 동안의 초기 선교사들의 피나는 노력과 헌신의 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파송 교회 역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다.  

 적절한 타이밍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그 시기를 놓쳤다면 구 소련 선교는 지금과 같은 열매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구 소련 선교 20년간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나온 노하우를 2010 NCOWE Ⅴ 선교전략회의를 계기로 잘 정리되어 한국형 선교모델이 만들어지고 세계선교에 기여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 LA 은혜 한인교회(GMI) 파송으로 독일 거쳐 러시아(사할린)와 중앙아시아 키르기즈스탄에서 사역하고 있다. 현재 키르기즈스탄 컨설테이션 준비위원장과, CIS 한인 선교사 협의회 회장으로 있다. (1992년파송)

[4]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 СССР /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1922 12월 30부터 1991 12월 25까지 유라시아 대륙 북부에 존재하였던 세계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이다. 세계 최대의 다민족 국가를 이루었으며, 러시아 연방의 전신국이다.

[5]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mtt_id=19268 2010. 5.10일자 기사 

[6] Z. 브레진스키 (2000), “거대한 체스 판” 도서출판 삼인, p.123.

[8] 초 교파적 전문 선교단체로써 전세계 50개국 243명의 선교사를 파송 관리하고 있다 1982년 미국 LA은혜한인교회를 모체로 세워졌으며 교회는 예산의 50%을 선교예산으로 사용하고 있다.

[12] 1937 8 21일 소련 인민위원회 의장인 Molotov와 전소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인 스탈린은 “극동 변경에 일본 첩자의 침투를 근절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한인들의 강제이주를 결정하였다. Li U Khio, Kim En Un , ed. Belia Kniga (Moskva: Interpraks, 1992); 재인용 권희영, 발레리(Han Valery),반병률 공저, 우즈베키스탄 한인의 정체성 연구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1), 30,

[13] 백승환 편저(2009) “예수의 흔적” The Trace of Jesus 예찬출판기획, p279.

[14] 한수아 (2009),”전방개척 선교를 위한 선교훈련”, 한국선교KMQ Vol 8 No.4, 통권30, p46.

[15] Charles Taber는 상황화란 모든 인간 공동체와 각 사람을 그 사람 자신들의 언어,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모든 차원에서 구체적인 상황을 이해하며, 복음이 그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라 말하는지 분별하고자 하는 노력이라 했다. 필 파샬(Phil Parshall), 채슬기 옮김, 무슬림 전도의 새로운 방향(New Paths in Muslim Evangelism), 서울: 예루살렘. 중동선교회, 2003, pp46~48. 재인용

[16] 카자흐스탄 알마타 은혜교회(김삼성선교사), 가라간다 은혜교회(김이골목사)

[17]라틴어로 인프라(Infra)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원래 인프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선교 인프라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어쩌면 교회의 DNA, 헌신된 사람들의 DNA 속에 녹아 있는 잘 변하지 않는 믿음과 열정 같은 것이다 

[18] 최바울 (2009) “한국의 전방개척선교의 배치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전망” 한국선교 KMQ Vol 8 No.4, 통권30, p36.

 

[20] 키르기즈스탄 공화국 법률, The Law of the Republic of Kyrgyzstan, December 31, 2008, #282, On freedom of religion and religious organizations in the Republic of Kyrgyzstan, Chapter 1, Article 5 State and religion, -4.

[21] 오요셉 (2010) “중앙아시아 선교 전략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발제 문 p3

[22] Synergy란 두 개 이상이 합쳐서 발산하는 에너지의 합이 기하학적으로 불어나는 효과를 말한다. 예를 들어 말 한 마리가 4톤 정도의 무게를 끌 수 있지만 두 마리가 힘을 합

치면 약22톤의 무게를 끌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23] 서성민박사(2007)”한국장로교회의 선교협력” http://missionkim.cafe24.com

[24] 문상철(2007) “성육신적 선교”, http://www.krim.org/

[25] 로마서 1 16

[26] 김혜정 기자 [선교타임즈] 2006 04 
<
선교하는 교회>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서울은혜교회, 김광신 목사.


 

>> 목차고리 : [발제] 구 소련 선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 응답 
                    신학선교
                    신학교회사한국교회사 > 성회(기독교 집회) > 제5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V)
                    단체 > 선교단체 >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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