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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0-07-06
 제목  이슬람권 선교 전략(발제)
 주제어  [선교] [선교전략회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선교대회] [NCOWE V] [세계선교전략회의] [분야별4]
 자료출처  정형남  성경본문  
 내용

이슬람권 선교 전략

- 중동의  한인교회들과 정형남 선교사를  중심으로 -


정형남 선교사[1]


I. 서론


   아랍권 국민들의 편에서 볼 때 미국은 기독교의 대변자로 여겨지고 있다. 반미 정서는 곧 반 기독교적인 정서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아랍 교회의 현지인 지도자들 중에서 특별히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앞잡이들로 여겨지고 있는데, 그들 자신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유 함이 없다. 반미 감정과 반이스라엘 감정과 반기독교 감정이 뒤섞여 있는 중동에 보냄을 받는 우리 한인선교사들은 어떤 선교전략을 갖고 사역해야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며, 또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실까? 필자인 중동의 아랍권 선교사 정형남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중동에 보냄 받은 우리 한인들에 의하여 세워진 중동지역의 한인교회들과 그 교회들과 선교사들에 의하여 세워진 중한협/중선협 대회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II.  중동의 아랍권 선교사 정형남


  나(정형남)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에 진학하였을 때에는 아랍권 선교의 비전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1학년을 마치고 군복무 중,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다. 특별히 2학년 복학을 앞두고 아랍어라는 나의 전공을 주님께서 복음사역을 위하여 귀히 사용하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진지하게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나를 아랍권 선교사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여 주셨다.


  1. 최초의 한국인 중동 선교사가 되는 줄로 착각


   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  2학년에 재학 중일 때(1981), 당시 100년의 선교역사를 갖고 있던  NAM(North Africa Mission)이라는 국제선교단체를 알게 되었다. NAM의 지금의 이름은 AWM(ARAB WORLD MINISTRY)이다. 당시 NAM의 미국 대표와 그의 참모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아랍권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구체적인 준비를 하였다. 그들은 83년에 새로운 선교단체인 FRONTIER를 창립하였다.[2] 나는 대학 졸업 후, NAM이나 FRONTIER 소속 선교사가 되어 중동으로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중동 선교사가 될 최초의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2. 중동의 한인선교사들과의 만남


  나는 두 선배 선교사를 만나 그 착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대학 4학년 2학기, 1983년 가을). 한분은 쿠웨이트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로서 사역하다가 일시 귀국한 최형섭 선교사였다. 그 교회 중동선교 후보생으로 발탁되어 교회의 후원을 약속 받았다. 중동에 세워진 한인교회들이 중동선교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 한 분은 이집트의 개종자를 총신대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하여 일시 귀국하였던 김신숙 선교사였다. 그의 남편은 사우디아라비아로 파송을 받아 사역하다가 추방을 당했다. 그리고 그는 이집트에서 사역하다가 교통사고로 순직하였다. 쿠웨이트한인연합교회의 후원을 받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다니며 중동선교를 준비하게 되었다(1984년-1987년). 졸업 천안장로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2년 8개월 동안 하였다.


  3. 중동 선교사로 파송을 받음


  중동선교회와 GMS의 소속 선교사로 걸프국가 중의 하나인 바레인으로 파송을 받았다(1989.9.) 바레인에서는 한인교회의 담임목회자로서 사역을 하면서 중동 선교사의 감각을 키우게 되었다(1989.9-1993.2). 그리고 사역지를 요르단으로 옮겨 언어훈련 등을 한 다음에 요르단 주재 이라크인 교회를 개척하여 사역하였다(1994.10-2000.6). 국내에서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에서 교수와 중동선교회 본부장으로서 국내 사역을 하기도 하였다(2000.8-2003.12).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이라크에 들어가 이라크복음주의신학교를 세우기도 하였다(2004.3).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어 요르단에 다시 와서 요르단 주재 이라크인 교회를 목회하다가 지금은 요르단 교회를 목회하며, 신학생들과 목회자들 위한개혁/언약 신학 강의를 하고 있다.


    

III. 중동지역의 한인교회들의 역할


  중동 건설 붐이 한국경제 발전에 공헌했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중동의 한인교회들이 한국교회의 중동 선교를 위한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그렇겠는가?


  1.  눈물의 기도가 척박한 중동 영혼들의 밭을 옥토로!   


  “중동 영혼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 눈물의 기도가 척박한 중동 영혼들의 밭을 옥토가 되게 하는 밑거름이 된 줄 믿습니다.” 내가 지금으로부터 약 21년 전 바레인한인교회 제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을 때(89년), 제 1대 담임목사 최수영 선교사로부터 들었던 메시지이다. 그는 나에 대하여 그와 달리 준비된 선교사라는 기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의 기대만큼 준비된 선교사가 아니었다. 때가 되매, 나는 그 교회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아랍 현지인들 위한 사역에 전념하기 위하여 아랍어 훈련 등의 목적으로 요르단으로 옮겼다(93년 6월). 척박한 중동 영혼들의 밭의 옥토가 될 때까지 그 밭을 일구는 중동 지역 한인교회들의 기도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2. 중동선교를 위한 재정후원

    

  쿠웨이트한인연합교회 또는 그 교회 출신들로 구성된 한국의 쿠웨이트교우회/선교회로부터 기도와 선교후원을 받았거나 지금도 여전히 받는 가운데 귀히 사역하고 있는 중동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의 수는 아주 많다. 지금도 쿠웨이트한인연합교회(담임 김진선)는 나의 협력교회이며, 요르단복음주의신학교의 여러 신학생들이 나를 통하여 그 교회의 장학금을 받고 있다. 그 학교의 학생들이 나를 통하여 바레인, 사우디, 아랍 에미레이트의 두바이, 아부다비/알아인 등의 한인교회들의 장학금을 받기도 하였다(96-97년). 지금도 카타르의 도하한인교회(담임 심양섭)의 경우도 나를 통하여 여러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고 있다. 두바이 한인교회(담임 신철범)의 경우에는 이슬람연맹(OIC)에 속한 57개국에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중동지역의 선교사들을 위한 다양한 세미나 등을 통하여 귀히 공헌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여러 한인 교회들이 중동선교를 위하여 받친 선교비만 하여도 엄청난 규모가 될 것이다. 


  3. 중동선교의 직간접적인 참여

 

  중동의 한인교회/교우들이 중동선교를 위한 공헌은 기도와 물질적인 후원뿐만 아니라, 직간접적인 영역이 무수히 많은 줄 안다. 지상 교회가 허락되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와 같은 곳에서도 우리 한인교회들의 역사와 전통이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다고 본다. 그들이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중동 현지인들과 여러 외국인들에게 그리스도인들로서 복음적 영향력을 끼친 사례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이집트의 어느 한인교회는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위한 무료 유치원 등을 운영하며, 교인들로 하여금 그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하도록 하기도 한다. 요르단의 한인교회는 새벽기도회를 계속 진행하는 가운데 현지 교회 목회자들과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 새벽기도회와 통성기도를 맛보게 한 다음, 그 지역 교회에서 새벽기도회와 통성기도를 하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4. 중동의 중한협/중선협


  중동지역의 한인교회들이 중동선교를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하여 중동지역한인교회협의회(중한협)를 구성하였다(1985년 5월). 첫 대회는 쿠웨이트에서 개최되었으며, 바레인, 아랍에미레이트, 요르단의 한인교회가 참여하였다(초대 회장 쿠웨이한인연합교회 담임 최형섭 목사). 중한협은 중동지역의 한인교회들뿐만 아니라, 한인선교사들을 함께 참여시켜 그들을 축복한다는 의미에서 중동지역선교사협의회(중선협)으로 개명되었다(1989년 11월 두바이 대회 때). 지금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여러 아랍 나라들은 물론이고 이란과 터키와 이스라엘 등의 한인교회들과 한인선교사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그 대회는 매 년 1회씩 개최되어 오다가 93년 대회 때 매 2년에 한 번씩 대회가 우리 주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 귀히 개최되고 있다. 금년에는 18차 중선협 대회가 레바논에서 개최될 예정이다(9월 20-23일).



IV.  중동지역의 교회 사역


  중동지역선교사협의회(중선협)에 속한 나라들을 보면, 아랍권과 페르시아권과 히브리어권과 터이커권이 있다. 그 중에서 아랍권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자국의 토착인 교회가 없고 현지인 신자가 공식적으로 거의 없는 리비아, 사우디, 예멘, 오만, 카타르가 있다. 그리고 자국인 교회는 없지만  현지인 신자가 약간 있고 공식적인 교회가 있는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 에미레이트 등이다. 둘째는 소규모 지하 교회가 있는 모리타니아,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소말리아등이 있다. 셋째는 교회가 정부로부터 인정되는 수단, 이집트, 요르단,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등이다.[3]


  아랍권의 인구가 약 2억 7천만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 약 1천 700만의 기독교인들이 있다. 이집트가 600 만 명으로 가장 많고, 레바논이 그 다음으로 200 만 명, 그리고 시리아와 이라크가 각각 약 50만 명 정도이며, 요르단, 팔레스타인 아랍과 이스라엘에 약 50 만 명이 된다.[4] 중동 아랍국가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있고, 교회가 있다는 대단히 중요하다. 물론, 1억 7천만 명의 기독교인들 중에 생명력이 없는 기독교인들의 절대 다수이지만, 그들이 아직까지 이슬람화 되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시대의 소중한 “남은 자들”일 수도 있다. 이집트인들과 요르단인들과 팔레스타인들과 시리아인들 중의 기독교인들의 경우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비롯한 여러 걸프국가들이 북아프리카의 리비아 등에 진출한 자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최근에는 기독교 위성텔리비젼을 통한 아랍권 선교의 위력은 대단하다. 기독교인들은 물론이고 일부 무슬림들의 참여 열기가 대단하다. 여기서 나는 요르단에서의 교회 사역을 논하고자 한다.


  1) 양떼 없는 목사 선교사들의 고뇌와 공헌


  “선교사에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질문자는 주로 선교지의 음식, 언어, 문화, 환경, 재정, 자녀교육 등을 염두에 두고 질문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양떼 없는 목사라는 것이었다. “주님, 저에게도 양떼를 주시고, 교회를 주십시오.” 이른바 양떼 없는 목회자 선교사의 고뇌와 서러움에 북받치는 기도였다. 중동에 나와 같이 양떼 없는 목자로서 살아가며 서러움에 북받쳐 기도하는 후배 한인 선교사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있기에 소망이 있는 줄 안다.


  94년 10월 첫 주에 이라크에서 요르단으로 나온 R라는 이라크인 형제를 만남으로 그 서러움에 북받치는 나의 기도가 응답되기 시작했다. R 형제와 함께 살면서 성경공부 팀을 만들어 인도하다 보니 지남철에 모래알이 붙듯이 수많은 이라크인들이 붙게 되었다. 마침내, 그 팀이 중심이 되어 요르단 주재 이라크인 교회 하나가 탄생되었다. 그리고 그 뒤 따라 6개의 요르단  주재 이라크인 교회가 탄생되었다.  그런데, 그 교회들은 모두 다 같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요르단인들이 주인인 교회의 건물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교회로 자리매김 되지 않기도 하였다. 그래서 요르단 교회 산하 이라크인 모임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이라크는 1991년 걸프전쟁에 패배한 후 유엔으로부터 경제봉쇄를 당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수많은 이라크인들이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담의 독재 정권에서 벗어나고자 그들의 고국을 떠나 요르단으로 나왔다. 공항과 모든 국경도 폐쇄되었지만 요르단으로 통하는 국경은 폐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걸프 전쟁이후 1999년 말까지 이라크에서 요르단으로 빠져 나온 자들의 수가 400만이 넘었다고 Jordan Times가 보도했다. 요르단 인구가 400만 명이 조금 넘는 것을 고려하여 볼 때 엄청난 숫자였다. 물론 그들 모두가 다 요르단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상당수가 요르단에서 살고 있었다.


  요르단에 나와 있던 이라크인들은 집세를 줄이기 위해서 한 가정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집에서 두 가정, 세 가정, 네 가정이 함께 살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서로 스트레스를 주고받기도 하는 가운데 힘들게 살고 있었다. 차량을 동원하여 성경에도 언급되는 길르앗이라는 곳에 세워진 캠프장까지 그들을 데리고 가서 모처럼 야외에서 마음껏 뛰어 놀게도 하면서 전도 집회도 가졌다. 예배가 끝난 다음에는 풍성한 식사를 대접하여 즐겁게 교제의 시간도 가졌다. 특별히 교회가 암만의 교통 중심지에 위치하여, 6.25후에 영락교회가 이북에서 오신 분들의 만남의 장이 되었던 것처럼, 이라크인들의 만남의 장으로도 사용되었다.


  때가 되매, R 형제를 비롯하여 신실한 이라크인 형제들이 나와 함께 지낼 수 있는 터전(형제관)을 마련하였다. 형제관에서의 새벽기도회도 등으로 사역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위와 같은 사역들은 한국국제기아대책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었다. 95년 가을 학기부터 요르단 복음주의 신학교(교장 이마드 샤하다)가 개교하게 됨에 따라 우리 이라크인 교회에서는 R 형제를 비롯하여 6명이 입학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학기에는 나도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이라크인 교회와 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요르단에 이라크인 교회가 하나씩 더 생겨나다가 때가 되매 6개까지 되었던 것이다. 


  이라크인들과 요르단인들은 같은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고, 같은 주님을 섬기고 있고, 주님 안에 한 형제이기 때문에 이라크인 교회나 모임을 구별하여 가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요르단 교회의 목회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른바 Ethnic Group의 다이내맥스를 모르는 소치이다. 믿음이 잘 구비된 이라크인들의 경우에는 요르단인들의 교회에 잘 적응하는 사례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그 교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예배 참여자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믿음이 없거나 연약한 이라크인들이라고 하더라도 이라크인 교회/모임에는 부담 없이 참여할 수가 있다. 교회 리더십이 이라크인들에 의하여 발휘되고 있기 때문에 적응하기가 쉽다. 또한 교회가 그들의 다양한 필요를 채워주기 때문에 모두들 기뻐한다. 특별히 내가 처음 개척한 교회당의 위치가 아주 좋았기 때문에 요르단 주재 이라크인 공동체의 중심적 역할을 감당해주었다.   


  평소에 나를 잘 알고 있던 미국인 P 선교사가 내가 이라크인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고 있으며, 특별히 그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왜 그가 충격을 받았겠는가? 그는 나의 아랍어 실력이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고, 특별히 아랍어로 설교를 할 만큼의 실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민들을 위한 교회사역이 어떻게 설교 하나만으로 되겠는가? 사실, 나와 내 아내는 그들과 달리 요르단 주재 이라크인 교회를 위한  전임 선교사/목회자는 우리 부부 밖에 없다는 절대 절명의 사명감을 갖고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사실, 내가 요르단 주재 이라크인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였을 때, 이라크인들에게 개인 전도를 하고, 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몇 몇이 이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개척의 비전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모임은 크게 활성화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 미국인 P 선교사는 내가 평소 실력으로 아랍어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철저히 설교준비를 한 다음에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를 크게 격려하여 주었다. 


  요르단 주재 이라크인들의 대부분이 캐나다, 호주, 미국, 유럽 국가들로 이민을 갔다. 그들이 처한 곳에서 아랍 교회들을 열심히 섬기고 있다. 재미, 재유럽 한인교회들의 저력이 작지 않듯이 재미, 재유럽 아랍교회들의 저력도 작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아랍권 내에서의 교회 사역들이 강력한 이슬람으로 인하여 많이 위축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본다면, 재미, 재유럽 아랍교회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할 수가 있겠다. 나와 함께 요르단 주재 이라크인 교회를 섬겼던 R 형제의 경우는 요르단 신학교의 학부와 신대원 과정을 마치고 이라크로 돌아가서 주님을 잘 섬기고 있다.


  우리 한인 선교사들 중에는 목회자들이 많은데, 아직 양떼가 없는 목회자들도 적지 않다. 중동 영혼들을 양떼로 붙여주시는 우리 주님께서  양떼 없는 서러움과 고뇌를 갖고 살아가는 목회자 선교사들의 기도를 응답하실 줄 믿는다.


  2) 현지인 목회자 세우는 일


  요르단 주재 이라크인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기 시작한지 2년 가까이 되었을 때였다. 그 때는 처음으로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세계한인선교대회 참여 등의 목적으로 교회 강단 사역을 현지인 전도사에게 맡기고 요르단을 잠시 떠나게 되었다. 요르단으로 다시 돌아온 후에도 그 전도사로 하여금 그 강단 사역을 계속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는 신학생들과 함께 이라크인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그 다음 해에는 안식년까지 갖게 되었다. 그때 이라크인 전도사들로부터 나는 안식년을 가도 되지만, 사모인 김은숙 선교사와 나의 아들은 두고 가라고 하였다. 그것은 나의 주 사역이었던 설교, 성경공부와 심방 등의 목회 사역은 그들에게 전수가 되었지만, 사모의 성가대 지휘와 아들의 피아노 반주는 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도행전의 바울사도가 교회를 개척하고, 그 교회를 현지인 지도자들에게 맡기고 미련 없이 새로운 땅을 향하는 나아가는 바울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작년 8월부터는 요르단인들을 상대로 아슈라피아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고 있다. 기존 교회가 신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그 이사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현재 목회하고 있는 아슈라피아의 요르단인 교회도 요르단인 J 전도사가 나의 목회사역을 돕고 있는데, 그가 그 교회를 담임하게 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V. 중동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을 위한 신학강좌


  나는 요르단복음주의신학교의 교수로 부름을 받아 잠시 교수사역을 한 적이 있다(1995-1996). 그리고 한국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의 부름을 받아 교수 사역을 하였다(2000년 2학기-2003년 2학기).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이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자, 서둘러 이라크에 들어가서 이라크복음주의신학교를 세우기도 하였다(2004.3). 그러나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어 요르단으로 나와 요르단 주재 이라크인 교회 목회 사역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요르단인 교회 목회 사역과 더불어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을 위한 신학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1. 두 팀의 신학강좌


  현재, 두 팀의 강좌를 인도하고 있는데, 한 팀은 11명이 참여하고 있다. 또 한 팀은 7 명이 참여하고 있다. 그들의 국적은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 수단 등이다. 모두 다 이 신학강좌를 인하여 기뻐하며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곳 아랍 교회 지도자들의 신앙이 대부분 세대주의에 기초하고 있는데, 저는 그들과 달리 개혁/언약신학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히 가슴 아프게도, 적지 않은 팔레스타인/아랍 기독교인들이 세대주의 신학에 기초하여 친이파(친이스라엘파)의 삶을 살아가며, 그 길이 곧 십자가의 길이라고 믿고 살아가고 있다. 나의 강좌를 통하여 아랍 신학생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개혁신학으로 구비되어 나라와 민족과 세계 앞에 당당히 세움 받을 수 있는 지도자들이 될 것을 기대하고 확신하며 최선을 다하고 싶다. 학생들이 기쁜 마음으로 진리의 세계로 인도되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설레는지 모르다.


  2. 신학강좌 내용[5]


  유대인들의 인류 사회를 위한 공헌분야가 적지 않다. 그 중에 하나가 메시아 이슈이다. 유대교에 따르면, 메시아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가 곧 메시아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에서도 메시아가 있는가? 이슬람은 메시아에 대하여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실, 코란에는 메시아(아랍어로 알-마시흐)라는 단어가 무수히 많이 등장하지만 성경적 메시아 개념은 전혀 없다. 좀 더 실감나게 말하자면, 코란은 성경의 메시아 개념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있다. 코란의 알라에 대한 정체가 궁금해진다.


  유대인들의 역사 속에서 선지자와 제자장과 왕이 각각 그 직책을 수행하기에 앞서서 감람유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말이 곧 메시야이다.[6] 유대교에 따르면, 종말에 세 개의 직책 모두를 감당할 한 메시아가 도래한다. 그 종말의 메시아를 편의상 메시아(The Messiah)라고 한다. 메시아는 헬라어로 크리스투스(한국어 발음으로 그리스도), 영어로 Christ, 한자로 기독(基督)이다.


  메시아의 과업은 예루살렘에 있었던 두 개의 집을 재건하는 것이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집, 즉 성전(시 122:1)이다. 또 하나는 다윗의 집, 즉 유다 왕국이다(시122:5). 그 두 집 모두 다 바벨론 제국의 느브갓네살 왕에 의하여 훼파되었다(주전 586년). 로마제국의 디도 장군에 의하여 다시 훼파되었다(주후 70년). 그리하여 그 집터는 무려 567 년 동안 공터로 남겨져 있었다(주후 637년까지).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알아끄사”라는 이슬람의 사원이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유다 왕국의 후손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팔레스타인 땅에 다시 돌아와 이스라엘 나라(공화정)를 건국하였다(1948.5.14). 유대교에 따르면, 메시아가 아직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메시아 성전과 메시아 왕국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가 곧 메시아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메시아는 그가 세례를 받게 될 때, 그 위에 성령이 내리게 될 것이며, 또한 그 메시아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자가 된다(요1:33). 그리고 공관복음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을 때 성령이 그 위에 비둘기처럼 임하였다. 예수는 구약의 메시아들처럼 감람유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런데, 예수가 메시아인 것은 분명하지만, 메시아로서의 과업 수행은 아직 시작하지도 못하였다고 주장하는 기독교가 있다. 그 과업수행은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예루살렘에서 메시아/천년 왕국과 메시아 성전을 세움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편의상, 나는 그와 같은 기독교를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라고 일컫고자 한다.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는 미국의 이른바 JPT(Jerusalem Prayer Team: 대표 Mike Evans) 또는 JPT와 뜻을 같이 하는 그룹들로 대표된다. JPT의 모토는 두 개의 집, 즉 하나님의 집인 성전과 유다왕국의 왕좌가 있는 다윗의 집이 있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기도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은 형통하리로다"라는 말씀이다(시122:6). JPT를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예사모’(예루살렘 사랑하는 자들의 모임)가 된다. 유대교에 따르면, 언젠가 메시아의 강림으로 예루살렘에 이슬람의 알아끄사 사원이 무너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집인 메시아 성전과 다윗의 집인 메시아 왕국이 각각 세워지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에 따르면, 그 “언젠가”의 주인공은 재림하실 예수님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다윗 집의 보좌에서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로 구성된 천년 왕국의 왕이 되신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에 속한 자들은 1948년에 세워진 이스라엘을 예수의 재림으로 세워질 메시아/천년 왕국과 메시아 성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친이스라엘적이다.[7]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이라고도 일컬어진다.[8] 유대교와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의 주장은 이슬람을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다. 그들은 이슬람권을 자극하여 이슬람권의 테러를 유발시키는 가운데 기독교의 이미지를 혈과 육의 싸움의 이미지로 덧칠하고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와 구별된 또 하나의 기독교가 있다. 그 기독교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두 집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기에 그 두 집은 한 집이 되었다. 그 한 집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신앙 공동체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곧 새 예루살렘으로 밝혀진다. 나는 또 하나의 기독교를 편의상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라고 일컫고자 한다.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에 따르면, 메시아의 과업수행, 즉 메시아 성전과 왕국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신앙공동체 설립은 예수의 초림부터 시작되어 재림 때까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아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는 온 세계의 모든 족속들 가운데에서 이루어진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문제와 관련하여 볼 때,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는 JPT의 마이크 이반스로 대표되고,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는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로 대표된다. 우리는 그 이유를 이반스와 카터가 작년(2009년) 1월 20일이라는 같은 날에 각각 출판한 책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카터의 책은 “우리는 성지에서 평화를 가질 수 있다: 성취될 계획"("We Can Have Peace in the Holy Land: A Plan That Will Work")이다. 그리고 이반스의 책은 “좌파와 세계 혼돈: 카터/오바마 계획은 성취되지 못할 것”(Jimmy Carter: The Liberal Left and World Chaos: A Carter/Obama Plan That Will Not Work)이다. 카터/오바마 계획은 오바마 대통령이 작년(2009) 6월 4일 카이로 대학에서 행한 연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국가 건설”이라는 표현을 통해 잘 소개되어 있다. 팔레스타인이 이슬람의 알아끄사 사원이 있는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아 나라를 세우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반스로 대표되는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에 따르면, 메시아 성전 터가 되고 메시아 왕국의 수도가 될 예루살렘을 분할하고자 하는 것은 마귀의 음모이다.


  이슬람권에서 기독교 선교를 하는데 있어서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로 야기되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한 민감한 주제들은 굳이 다룰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주제들은 이슬람권에서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물론이고 이슬람교도들에게 아주 절실한 이슈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 이슈들에 대한 바른 성경신학적 접근 자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 점의 중요성에 대하여 중동지역 선교사 윤바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9]


     오랜 세월동안 암흑에 갇혀 있는 중동 이슬람권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전략 이상의 새로운 신학적 발견들이 필요한 것 같다. 이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마틴 루터의 새로운 해석이 중세의 어둠을 깨울 수 있었던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하여 제기된 중요한 신학적 이슈의 하나가 정형남 선교사의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 이슈’(CLC)이다. 교회론에서 시작된 그의 신학적 탐구는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의 대상이 되는 ‘이스라엘’의 실체를 기존 세대주의 신학의 혈통적 유대인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 성도들에게 돌리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중동 이슬람권에서 기독교가 시오니즘(유대국가 재건운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오해에서 초래되는 복음 전파의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그동안 한국 교계의 혈통적 이스라엘 중심의 선교활동이 부각됨으로 인해, 한국 선교사들이 지역 언론에 ‘시오니스트’로 소개되기도 했던 논란들을 잠재우고, 불필요한 오해와 비방에서 벗어나 기독교 복음의 본질을 전파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중동 이슬람권에서는 예루살렘 성전 터를 중심으로 하는 바로 천년왕국 이슈는 한국과 일본과의 독도 이슈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뜨겁다. 첫째, 이슬람과 메시아 이슈, 둘째, 예루살렘 중심적 메시아/천년 왕국 이슈, 셋째 새 예루살렘 중심적 메시아/천년 왕국 이슈에 대하여 각각 살펴보고자 한다. 메시아 성전 이슈는 지면 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루고 끝으로 결론을 맺고자 한다.


  1) 이슬람과 메시아 이슈


  왜 코란에는 메시아(아랍어로 알-마시흐)라는 단어가 무수히 많이 등장하지만 성경적 메시아 개념은 전혀 없을까? 왜 코란은 성경적 메시아 개념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있을까? 그 점에 대하여, 코란의 아담과 코란의 아브라함 제사와 예루살렘과의 메시아 이슈라는 제목으로 각각 살펴보자.


  2)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와 메시아/천년 왕국 이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에 따르면,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예루살렘에서 메시아 성전과 왕국, 특별히 천년왕국을 세움으로 메시아 과업수행이 시작된다.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의 대표적인 슬로건들은 다음과 같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1967 예루살렘 탈환!” - “성경예언의 성취적 사건!”, “유대인 귀환운동!” “고토회복!”, “무너져라 이슬람의 알아끄사 사원!” “천년왕국 시대의 도래!”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된 것과 1967년에 이스라엘이 동 예루살렘을 요르단으로부터 탈환한 사건은 각각 성경 예언이 성취된 사건이라 할 수 있는가?” 나의 첫 선교지 바레인에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1989. 9), 나를 환영하여 주는 아랍 교회의 모임에서 받았던 질문이다. 그때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있었을 때, 아랍교회 담임목사가 “그렇다”고 답하였다. 그러자 그 질문자는 그와 같은 친 이스라엘적이며 예루살렘 중심적인 목회자와 함께 교회생활을 못하겠다고 고함을 쳤다.


  일제 시절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 중에서 부득불 친일파의 길을 걷게 된 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 길을 가는 것이 자기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빼앗긴 팔레스타인들을 비롯한 여러 아랍인들과 아랍권에서 사역하고 있는 여러 외국인들 선교사들 중에서 친이스라엘적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다. 이른바 세대주의 신학에 바탕을 둔 자 들이다. 그들은 친이파(친이스라엘파)의 길을 가는 것이 그들이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이라고 믿고 있다. 요르단의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는 로이 위트만이다. 그가 이곳에서 사역하던 중,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 그때 그 건국 사건을 성경예언의 성취적 사건이라고 해석하였다. 그의 제자들이 요르단의 개신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교파를 초월하여 아주 많다.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 나는 두 교수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2001.9). 미국이 테러를 당하게 된 것은 성경의 이스라엘과 1948년에 건국된 이스라엘을 하나로 보는 가운데 친 이스라엘 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이라는 점과 그것은 미국교회 안의 세대주의 때문이라는 대화로 발전되었다. 그때, 한 교수가 “당신도 세대주의자인가?”라는  양자택일의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교수는 양자택일의 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교수가 미국의 세대주의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그의 동료들과 함께 세대주의 신학을 가르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라는 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때 그는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다.”라고 예상 밖의 답을 하였다. 그의 답 속에는 팔레스타인 기독교 학자에게 세대주의자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느냐는 항변이 담겨져 있었다. 그의 항변은 나에게 큰 충격이 되었다. 사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대주의자였고, 지금도 세대주의자이다. 나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 올리며, 세대주의는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한 아랍 신학교의 교수에 따르면, 9.11 테러 사태 직후 아랍교회 몇몇 목회자들이 세대주의 신학을 앞장서서 가르쳤던 어느 미국인 교수를 불러 그의 신학의 문제점에 대하여 지적하는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2001. 11). 그 교수는 자신의 강의안을 수정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임이 끝나고 난 직후, “미국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미국을 복 주고 계시지 않는가? 미국의 번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주시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음에 대한 징표가 아니겠는가?”라는 여운 있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말에 대하여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한 아랍목회자들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ACTS에서 유학하고 있던 수단 출신의 어느 목사는 아랍권 복음주의 교회의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는 이스라엘의 앞잡이들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였다(2002.3).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메케인이 극단주의적 세대주의자인 존 해기 목사의 지지를 받아 오다가 갑자기 그와의 결별을 선언을 하였다(2008. 5. 22). 그것은 해기 목사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건국을 위하여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를 사용하였다고 주장하였던 것이 화근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동역하는 요르단인 존 전도사는 존 해기 목사를 비롯한 미국과 유럽의 여러 목사들의 친이스라엘적 설교들이 지금도 위성 TV를 통해서 전 아랍 세계와 이슬람 세계에 방영되고 있는 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한국교회에서도 세대주의 신학에 기초한 친이스라엘적 기독교 선교운동은 어느 때 보다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름이 바로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BTJ)과 “복음의 서진 운동”, "이스라엘 회복운동" 등이다. 작년 요르단의 Fact International이라는 주간 신문이 “한국의 시온주의자들”의 요르단에서 선교활동에 대하여 지적하였다 (2009. 6. 9). 그 기사에 대한 댓글의 수가 119개나 되었다. 


  3)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와 메시아/천년왕국 이슈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두 집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기에 그 두 집은 한 집이 되었다. 그 한 집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예수 신앙 공동체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새 예루살렘이다. 메시아의 과업수행, 즉 메시아 성전과 왕국으로서의 교회 설립은 예수의 초림부터 시작되어 재림 때까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아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는 온 세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요한복음, 공관복음과 사도행전, 바울서신의 순서로 살펴보자.[10]


  4) 결론/ 옛 처갓집 말뚝에 절을 해서야!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라는 우리 말 속담이 있다. 그런데 그 처갓집이 다른 곳에 새 집을 지어 이사를 갔다. 옛 처갓집 터에는 다른 주인이 와서 자기 집을 지어 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 이사 온 주인은 이슬람교이다. 그 옛 처갓집 터인 예루살렘의 성전 터에는 이슬람의 알아끄사 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처갓집 말뚝을 보고 계속하여 절을 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유대교와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이다.


  중세 십자군은 이슬람의 영역이었던 예루살렘을 기독교의 성지라고 정복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의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는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성지가 아니라 유대교의 성지라고 하며, 유대인들에게 비켜 주어야 한다며 유대교를 거든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라는 말 있다. 이슬람 편에서 볼 때에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는 말리는 시누이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오지랖이 넓다.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는 예수와 교회의 이름으로 이슬람권을 자극하는 가운데 세계평화에 먹구름을 끼치고 있다. 그 점에 대해서 이슬람과 메시아 이슈와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와 메시아왕국 이슈를 통해서 자세히 다루었다.


  이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절을 할 것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절을 해야 한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의 모임으로서 “예사모” 운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신앙공동체인 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의 모임으로서 “새예사모”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는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로 거듭나야 한다.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와 메시아 왕국 이슈”가 그 거듭남의 역사를 위한 귀한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하여 본다. 우리는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과 공관복음과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통하여 진정한 기독교는 예루살렘 중심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즉 새 예루살렘 중심적임을 살펴보았다.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와 그 선교운동은 중동과 세계의 평화의 꽃을 피울 수 있게 할 것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 아랍권을 대상으로 24시간 한류 콘텐츠를 방송하는 위성채널 코리아 TV[11]를 통하여 가수 김장훈에 의하여 제작된 독도 광고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매일같이 하루에도 수차례 방송되고 있다.[12] 이제 “독도 이슈”도  차츰 전 세계인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 같다. 바라기는 예루살렘의 성전터/이슬람의 알아끄사 사원 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메시아/천년 왕국”이슈에 대한 한국교회의 주목을 기대하여 본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만의 것이 아니도 아니고, 이슬람과 유대교와 기독교만의 것도 아니고, 전 세계인과 관련된 이슈이기 때문이다. 그 이슈 논쟁을 통하여 구원받는 자들이 더욱 많아지고,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가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로 거듭나기를 소망하여 본다. 이를 위하여 나의 논문/책 “이슬람과 메시아/천년 왕국 이슈”가 귀히 쓰임 받기를 기대한다.



VI. 결론


  이 시대에 우리 하나님께서 세대주의 신학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미국 정부의 친 이스라엘 정책 등으로 인하여 반미 감정과 반기독교적 정서들이 팽배한 중동의 아랍권에 우리 한국인들을 중동의 여러 아랍 국가들에 내보내어 한인교회들을 세우게 하시고 척박한 중동의 영혼들의 밭을 옥토로 일구는 기도를 하게 하셨다. 감사하게도, 그들은 한국선교사들과 아랍권의 신학생들과 목회자들과 교회들을 위한 아낌없는 후원을 하고 있다.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교회를 개척하고 섬기고자 하는 열정도 크고, 성경 신학적 실력이 잘 구비되어 있다.


  세대주의 신학에 깊이 뿌리 박혀 이스라엘의 앞잡이들로까지 낙인찍혀 있는 아랍권의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생들을 위한 신학강좌를 개설하여, 그들에게 개혁/언약 신학적 실력을 구비시켜주는 가운데, 그들이 주님의 진리에 기초한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다. 나와 같이 보람된 사역에 동참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하여 본다. 나의 책,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 이슈”(CLC: 2009)가 영어판과 아랍어판으로 속히 출판되고 널리 보급되어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과 아랍현지인들에게도 귀히 활용되기를 기대하여 본다. 개혁/언약 신학에 기초한 귀한 책들이 아랍어로 번역되고 출판되고 보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한국교회의 참여를 기대하여 본다.


  이제  나의 기도편지를 읽고 보내 준 답 중선협(중동지역선교사협의회) 고문 김만우 목사[13]의 메일(2010.2.13) 중의 일부를 소개하며 나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개혁신앙의 기치를 높이 들고 세대주의의 광야를 내닫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아슈라피아교회에 말씀 은혜 기쁨 감사 충만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신학생을 키우시는 일은 요르단의 미래를 조형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정선교사님이 은퇴할 즈음에는 확실한 신앙지도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날 줄 믿습니다.”





[1] 정형남(actsmet@yahoo.co.kr)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9년 9월에 파송을 받아 지금까지 아랍권(지금은 요르단)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 안식년과 국내 사역 (ACTS 교수, 중동선교회 본부장) 기간 등을 활용하여 ACTS(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와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각각 신학석사와 목회학박사를 취득하였다. 그의 책으로는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 이슈”(CLC, 2009)와 논문으로 “성경의 아담과 코란의 아담에 대한 비교연구...”(ACTS,2005)가 있다.

[2] 그들은 그랙 리빙스톤과 밥 쇼그린이다. 그들은 훗날 선교한국의 강사가 되기도 하였다.

[3] 공일주, 아랍교회에 부흥이 있으라. (서울: 예루살렘, 2000). 13.

[4] Hal-Hasan bn Talal, Christianity in the Arab World, (London: Arabesque Int. 1995). 1995. 94-96. 이라크의 경우에는 전쟁으로 기독교인들이 이민을 떠나게 되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민을 이라크를 떠나갔지만, 어디에서든지 이라크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점에 있어는 아랍권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이다.

[5] 전방개척선교(KJFM) 7/8월호에 “이슬람과 메시아/천년 왕국 이슈”라는 제목 하에 전문이 실려 있다(http://kjfm.withch.net), 그 내용을 이곳에서는 요약 발췌하여 소개하였다.

[6] Gerard  Van Groningen, 구약의 메시아 사상(Messianic Revelation in the Old Testament),  류호준, 유재원 역, (서울: CLC, 1997) 36-38.

[7] Craig A. Blaising & Darrell L. Bock, 하나님 나라와 언약(Progressive Dispensationalism), 곽철호 역. (서울: CLC,2005) 33.

[8] 미국인구 1/4인 약 7천 5백만이 복음주의자들인데, 그들 중의 약 2천만이 기독교 시온주의자들로 분류가 된다. http://urj.org/Articles/index.cfm?id=19553

[9] 윤바울, “요르단의 선교현황과 과제” 선교타임즈 2010년 4월호(http://missiontimes.co.kr)

[10]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정형남의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 이슈” (CLC.2009)를 참고하길 바란다.

[11] 코리아TV(대표 이규정)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 아랍권을 대상으로 24시간 한류 콘텐츠를 방송하는 위성채널이다. 이 대표에 따르면, "코리아TV가 개국한 이후 아랍권 시청자들로부터 하루 300∼400개의 이메일이 오고 있고 문의전화도 하루 평균 300통씩 걸려오고 있으며, 아랍권 시청자들의 관심이 예상보다 훨씬 뜨겁고, 아랍인들이 한국의 드라마뿐만 아니라 연예ㆍ오락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다.” 내가 목회하고 있는 요르단의 아슈라피아 교회 교우 가족들의 경우에는 강호동의 스타킹을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12] 독도 광고: “하와이 - 미국의 일부, 시실리아 - 이탈리의 일부, 발리 -인도네시아, 독도- 코리아의 일부. 코리아의 아름다운 섬.” 이라는 메시지가 배경음악과 더불어 낱말(영어) 맞추기 퀴즈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지루하지 않고 아주 흥미롭다. 그리고 애국가가 재창되는 가운데 “아십니까? 지난 2000년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는 '동해'(East Sea)로 불렸습니다. 동해에 있는 두개의 섬 독도는 한국 영토의 일부입니다. 일본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이 동해와 독도의 역사적 배경과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www.ForTheNextGeneration.com을 방문해 주십시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은 정확한 역사의 사실을 후대에 물려주어야 하며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지금부터 상호 협력해야 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영어와 아랍어로 각각 방영되고 있다.

[13] 김만우 목사는 현재 필라델피아제일장로교회 원로목사(작년 12월부터), 중선협(중동지역선교사협의회)의 고문으로 중선협 초창기 대회부터 지금까지 줄 곧 참여하여 중선협의 회원 선교사들을 축복하고 있으며, 그를 위하여 창립된 필라델피아에 중동선교후원회(MEMA: 회장 김풍운 목사: 벅스카운티장로교회)의 고문이기도 하다.


 

>> 목차고리 : [발제] 이슬람권 선교 전략
                    신학선교
                    신학교회사한국교회사 > 성회(기독교 집회) > 제5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V)
                    단체 > 선교단체 >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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