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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16
 제목  한덕교(1889. 6.12~1950. 1.17)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장로교] [목사] [순교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한덕교는 1889년 6월 12일 강원도 홍성에서 문중 한학당을 지키는 선비 함병리의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춘천농업학교를 거쳐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안주 동교회를 시무하면서 8·15해방을 맞았으며, 기독교도연맹 가입을 거부하여 공산당에 의해 1950년 1월 17일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살해되었다.

 

춘천농업학교 졸업
평양신학교 졸업
안주동교회 시무

 

한덕교는 춘천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측량기사로 평양 평남도청에서 근무하였으며, 부인이 신앙생활을 반대하진 않았으나 교회출석은 하지않았다. 일본인의 약탈적인 식민정책등에서 오는 겨례의 양심으로 번민하던차에 서문밖교회 김선두 목사의 인도로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것은 서른이 넘어서였다.

 

늦게 1932년(25회)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안주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아 안주동교회에서 시무하였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기는 했으나 끝까지 못하고 의산 제3교회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다시 안주동교회의 청빙을 받은 50대의 그는 그곳에서 남은 생을 마치려했다. 공산세력의 손길이 점점 가까워오자 젊은이들을 월남시키면서 자신은 교회를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인생경험이 누구보다 많았던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수록 감사하여 때로는 시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기도하였고 설교시간에도 작사한 시를 찬송가 곡에 맞추어 부르기도 하는 문필가였다. 맏아들이 다리를 저는 것을 안타까이 여긴 그는 "영문밖의 길"에서 "..저는다리 고쳐주시고...."로써 아버지의 애뜻한 마음을 실어 사랑을 나타냈다. 목회자로서 기독교도연맹에 가입할 수 없어 남으로 떠날때 그도 피난 권유를 받았으나 자신의 생애를 마치려는 곳임을 알고 처자식을 떠나보내고 교회를 지키려고 남았다.

 

안주노회장을 거쳐 마지막 이북5도 연합노회장으로 기맹과 대항하여 싸웠다. 공개적으로 연합노회가 모이는 것도 어려워지더니 노회중 1950년 1월 7일 공산당원에게 체포되었다.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어 모진고문으로 기진할 때면 기도와 스스로 작사하여 노래함으로 새힘을 얻곤하였다. 꺽이지 않는 처절한 그의 투쟁에 공산당은 그를 총살시켜 그토록 원하던 순교의 길로 가게하였다.

 

 

>> 목차고리 : 세계 > 아시아 > 동아시아 > 대한민국 > 순교자

>> 연결고리 : 대한민국, 한국전쟁, 장로교, 목사,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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