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일은 1915년 8월 6일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읍 서면리에서 믿는 가정에서 출생했다. 숭실전문에서 공부하고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공산 치하 김화식 목사가 주도하는 기독교자유당민주지구 창당에 관련하여 1947년 11월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고문으로 숨졌다.
숭실중학교 졸업.
숭실전문학교 중퇴. 1944년 평양신학교 졸업.
1946년 목사 안수.
1946년은 교회가 여러모로 공산정권에 시달리던 해였다. 3.8선으로 남북교회가 단절되자 이북교회는 이북 5도 연합회를 조직하자 공산당은 이에 능가할 조직을 결성할 필요를 느껴 김일성의 외숙 강양욱으로 하여금 기독교도연맹을 결성케 하고 전 교역자들을 상대로 회원에 가입시키려고 광분했다.
이같은 판국에 기독교 자유당이 기독교인들 사이에 발기되었다. 1947년 조만식장로가 당수로 하는 기독교자유당 안주노회 선전부장으로 집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기독교자유당이 1947년 11월 19일에 결당하기로 내정되자 1947년 11월 3일 주일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기독교자유당 발기인 전원을 곱지않은 눈초리로 보던중 1947년 창당하루 전 11월 18일 발기인 김화식 김철훈 김길수 지형순 이유택 우상필 목사 등 다수 장로들 일동을 체포구금하였다. 기독교자유당 창당 멤버들의 죄목은 남한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과 내통하여 조국을 팔아먹을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소위 이완용같은 매국노 취급을 한 것이다.
이원일 목사는 전기 고문에 몽둥이 찜질을 수없이 당했고 물먹이는 고문을 수없이 당해 끝내는 심장이 파열돼 숨졌으나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너무나 의연하고 마음을 변개할 줄 모르자 담당 내무서원들도 "참으로 사나이 중에 사나이였다." 라고 입을 벌렸다. 이목사의 시신은 가족에게로 돌려저 교인들의 손에 의해 교회 동산에 묻혔다. 그때의 이목사의 나이 3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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