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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단체  작성일  2010-01-20
 제목  신간회(新幹會)
 주제어  [대한민국] [일제강점기] [한국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신간회는 1927년 2월 15일에 창립되어 1931년 해소될 때까지 일제강점기 민족 운동 전선의 양대 세력이었던 민족주의 계열(우파)과 사회주의 계열(좌파)이 민족 해방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 방법과 해방 후 건설할 신 국가 수립 구상의 차이로 인한 대립과 반목을 지양하고, 민족의 해방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통일전선을 형성했던 획기적 민족운동 조직이었다.


192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반일 민족운동 전선에는 두 가지 큰 걸림돌이 있었다. 하나는 일부 민족주의 세력이 일제의 회유에 넘어가 완전 독립의 길을 포기하고 일본의 지배를 인정하면서 자치를 하자는 이른바 '자치론'의 대두이고, 다른 하나는 1920년대 이후 사회주의 운동이 크게 고조되면서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 사이에 적대감이 나날이 팽배해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같은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일제에 대항하여 민족 해방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치론의 차단과 아울러 완전 독립을 위해서는 좌·우를 넘어 조선의 모든 역량을 모을 수 있는 통일된 반일 민족운동 전선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게 되었다. 결국 그러한 노력이 신간회의 창립으로 나타났다.
신간회는 완전 독립 노선의 옹호, 자치론과 일제에 대한 타협주의의 배격, 민족의 대동 단결, 한국인 착취 기관의 철폐, 한국인 본위의 민족 교육과 한국어 교육의 실시, 소작쟁의와 노동쟁의 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신간회는 이러한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전국에 걸쳐 지회를 설립하였는데, 1931년 해소될 때까지 149개소의 지회가 설치되었고 회원은 거의 40,000명에 달했다. 이들 지회는 민족의식의 고취와 생존권 수호를 위한 운동에 힘을 집중시켰다. 각 지회에서는 웅변대회와 연설회의 개최를 통해 지역민들의 민족운동의식을 고취시키고, 지역 상황에 적합한 운동 논리를 개발했다.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신간회는 이를 지원하는 한편, 대규모의 민중대회를 준비하다가 조병옥 이관용 등 간부 44명이 체포돼 위기를 맞았다(1929년 12월 3일). 그러나 창립 이래 해산된 1931년 5월까지 4년여 동안 한국독립운동의 중심체 역할을 해온 신간회가 해산한 것은 일제의 직접적 탄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좌우갈등을 극복하지 못해서였다. 당시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되었는데, 새로운 지도부는 일제와 타협하려는 소위 '타협주의'를 내세워 사회주의계과 민족주의계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좌익이 중심이었던 지방 지회들이 반발하였고, 그 결과 1931년 민족의 완전독립을 위해 창립된 좌·우 합작의 신간회는 해소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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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 > 사회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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