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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1-09
 제목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Fukuzawa Yukichi, 1835. 1.10~1901. 2. 3)
 주제어  [일본] [교육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후쿠자와는 일본 메이지 시대[明治時代]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이다.  일본 최초 사립종합대학교 게이오대학[慶應大學]의 전신인 게이오 의숙[慶應義塾]을 창립했다. 나가사키에 유학해 소위 '란가쿠[蘭學]'라는 신학문과 네덜란드어를 배웠고 에도[江戶]에서 영어를 공부했다. 1860년 미국을 여행했고 1862년에는 바쿠후[幕府] 사절단의 수행원으로 유럽을 견문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 문화를 소개한 <서양사정 西洋事情>을 써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매우 검소하고 거짓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정평이 나있다. 흔히 후쿠자와 유키치의 7훈이라 불리는 이것은 그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지 말 것(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갖지 말 것. 부모에게 말하지 않은 채 물건을 받지 말 것. 고집부리지 말 것. 형제간 싸움은 쓸데없는 짓. 타인에 대한 소문은 쓸데없는 짓. 타인의 물건을 부러워 하지 말 것. 이런 강직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였기에 돈 때문에 변절을 도모하지 않고 교육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어머님에 대한 애정이 매우 컸는데 이것은 나중에 충으로 이어졌다.

 

그는 인간의 평등과 민권주의을 주장했지만 다른 아시아 민족의 민권을 멸시하고 국가권력 확장에 앞장섰다. 1885년 자신이 발행하고 있던 <지지신포 時事新報>에 서양세력과 '일본은 아시아 제국과 손을 끊고 서양제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탈아론(脫亞論)을 발표해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를 멸시하는 사상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일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는 아시아라는 좁은 틀에 얽매여 있는 일본을 벗어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국외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는 결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탈아론의 영향을 받은 일본 사람들이 팽창정책의 일환으로 계획한 전쟁-청일전쟁 등으로 인해 다른 국가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던 것이다.

 

한말 개화파 유길준은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후쿠자와의 게이오 의숙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임오군란 사죄 사절을 겸해 제3차 수신사로 파견되었던 박영효는 후쿠자와의 지원을 받아 <한성순보 漢城旬報>를 창간했다. 후쿠자와의 얼굴이 일본 지폐 1만 엔(円)권에 새겨져 있다.

 

>> 목차고리 : 세계 > 아시아 > 동아시아 > 일본

>> 연결고리 : 일본,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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