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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9-12-11
 제목  경복궁(景福宮)
 주제어  [서울시] [문화재] [경복궁] 근정전 경회루 강녕전 자경전 향원정 동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로 사적 제117호이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으로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다. 1592년 임진 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중건 경복궁은 33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 이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 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고,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 중심 건물만 남았고, 조선 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 자체를 가려버렸다.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례문 일원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일원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경복궁은 광화문 - 흥례문 - 근정문 - 근정전 -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을 잇는 중심 부분은 궁궐의 핵심 공간이며,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대칭적으로 건축 되었다. 그러나 중심부를 제외한 건축물들은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어 변화와 통일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추었다.

흥례문

근정전 (勤政殿) (국보 제223호)
경복궁의 수조정전(受朝正殿)이며 문무백관의 조하(朝賀)를 비롯한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사신을 접견하던 법전(法殿)으로 태조 4년 (1395)에 창건 하였다. 그후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고종4년 (1867)에 재건하였다. 근정전은 상 하월대위에 2층으로 지은 거대한 건물이다. 건물 내부는 상하층의 구분을 없이하여 넓고 높다. 중앙에 임금님이 좌정하시던 어좌가 있다. 실내에 가득 의장기물이 장치되어 있었던 것이나 지금은 없다.

 

경회루 (慶會樓) (국보 제224호)
경회루는 중요한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경복궁 창건시 태조가 지은 후 태종, 세종, 성종을 거치면서 확대 개수가 이루어졌다. 네모 반 듯한 섬을 장대석으로 호안하여 경회루를 세우고 돌다리 셋을 가설하여 뭍과 연격시켰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고종 4년 (1867)에 중건하였다. 다락집 건물로는 경회루가 국내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

 

강녕전 (康寧殿)
경복궁은 왕이 정무를 보는 치조, 왕과 왕비의 침전인 연조, 그리고 신하들이 집무하는 관청인 외조로 구성되는데 강년전은 연조의 으뜸 전각으로서 왕의 침전이다. 강녕전 뒤에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이 있는데 이 건물도 강녕전과같이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었던 것을 1994년에 복원하였다.     

 

자경전 (慈慶殿)(보물 제809호)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조대비를 위하여지은 건물이다. 준공후 불이 나서 다시 지어 고종25년(1888)에 완성한 것이 지금 남아있는 일곽이다. 후원에는 보물제810호인 십장생무늬가 새겨진 벽과 위에 연가를 설치한 굴뚝이 있고 서편에는 여러 가지 무늬를 새긴 꽃담이 남아있다.

 

향원정 (香遠亭)
1867년에 고종이 건청궁을 축조할 때 그 남쪽에 못을 파 중앙에 섬을 만들고 육각형의 2층건물인 향원정을 지었다.향원정은 보통2층이라 하지만 누마루 밑의구조까지 치면 3층이 되는셈이다. 구름다리인 취향교는 1953년에 개조되기 전까지는 향원정의 북쪽에 가설되어있었는데 6.25때 부서진 것을 복구하면서 지금의 위치에 새로 가설하였다.

 

동궁 (東宮)
북궐도(北闕圖)에 의하면 동궁은 세자가 백관으로부터 조회를 받던 정당인 계조당, 세자와 세자빈의 거처로 쓰인 내당인 자선당 비현각 세자가 스승을 모시고 강학을 받던 춘방, 세자를 호위하는 군사가 머물던 계방 등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일제에 의해 모두 파괴된 후 1999년에 자서당과 비현각이 복원되었다.


경복궁 안에 있던 최초의 서양식 2층 건물인 관문각(觀文閣)과 시계탑이 묘사된 삽화가 발견됐다. 청일전쟁 직전인 1894년 7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을 때의 그림이다. 당시 일본군 종군기자로 한국에 온 지즈카 레이스이(遲塚麗水)가 펴낸 '진중일기(陣中日記)'에 수록된 이 그림을 서울대 이태진 교수가 일본 후쿠시마 현립도서관에서 발견해 2005년 1월 13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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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고리 : 광화문

>> 연결고리 : 대한민국,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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