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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9-11-08
 제목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Wilhelm Konrad Roentgen, 1845. 3.27~1923. 2.10)
 주제어  [독일] [과학자] [물리학] [노벨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Wilhelm Konrad Roentgen)은 프로이센의 레네프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 네덜란드의 아페르도룬으로 이주하였다. 사소한 일로 김나지움에서 퇴학당하고 취리히 공과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클라우지우스의 영향을 받았다. 그 후 클라우지우스의 후임 쿤트의 조수가 되어 취리히, 뷔르츠부르크, 스트라스부르 등지로 옮겨다니다가 마침내 호엔하임 농대, 기센대학을 거쳐, 1888년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콜라우시의 후임으로 물리학 연구소장의 지위에 올랐다.

 

1895년 11월 8일 저녁,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Wilhelm Konrad Roentgen, 1845-1923) 교수가 전기 스파크 전도체(spark conductor)를 이용해 전류 흐름을 연구하던 도중 우연히 '엑스레이(X-rays)'를 발견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Wuerzburg University) 물리학 교수인 뢴트겐은 이날 진공 유리관에 부분적으로 고압 전류를 흘려 전기의 흐름을 관찰하는 시험을 하다가, 실험 테이블에 흩어져 있던 시안화 백금 바륨(barium platino cyanide) 결정체(crystal)들이 빛을 발산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진공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전자기선(electro-magnetic ray)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뢴트겐은 종이, 목재, 알루미늄 등 여러 물체에 이 전자기선 방출 실험을 한 결과, 2m 떨어진 거리의 목재 문을 관통할 정도로 뛰어난 투과력을 지녔다는 결과를 얻게된다. 그는 이러한 전자기선의 투과 현상의 원인을 규명할 수 없던 연유로 해서, 이를 "엑스 레이"라고 명명한 뒤 추가 실험에 들어갔다. 1895년 12월 뢴트겐은 '엑스 레이'에 관련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며, 자신의 아내 손을 실험 대상으로 한 최초의 엑스 레이 사진 시연을 진행했다. 이 날의 논문 발표와 현장 실험은 곧 전 세계 과학 및 의학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뢴트겐 교수는 1900년 뮌헨(Munich)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다음 해인 1901년 '엑스 레이' 발견 공로를 인정 받아 물리학 분야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 뢴트겐은 '엑스 레이' 발견으로 인류 복지와 산업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지만, 학문적으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말년을 보냈다. 부모 사망으로 큰 재산을 상속받아 신성로마제국의 상류층으로 부상한 그는 부인 베르타(Bertha) 여사와 함께 장기간에 걸친 해외 여행이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스위스에서의 한가로운 전원 생활로 소일했기 때문이다. '엑스 레이' 발견 이후 자신의 연구를 전혀 진척시키지 못했던 뢴트겐은 1923년 2월 10일 뮌헨에서 눈을 감았다.

 

 

>> 목차고리 : 세계 > 유럽 > 독일

>> 연결고리 : 유럽, 과학자,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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