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8-09-15
 제목  레바논, 기독민병대와 팔레스타인 충돌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최초의 본격적 내전이 1958년 발생되었다. 이는 기독교 세력의 샤문 대통령이 서방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이슬람 세력이 반발하면서 촉발되었다. 당시 중동지역에서는 1952년의 이집트 낫셀 혁명과 1956년의 수에즈 전쟁 등에 자극 받아 민족주의운동이 고조되었는데,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샤문 대통령이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자 서방에 접근하자 이슬람 민족주의 세력이 반발한 것이다. 샤문 대통령은 1957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추진한 지역방위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자세를 견지하였고, 이러한 친서방 정책은 불가피하게 아랍 민족주의 세력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더욱이 그는 1957년의 의회선거에서 기독교 진영의 확대를 노리면서 재선을 시도하였다. 이에 이슬람 세력은 국민통일전선을 결성하고 1958년 5월 전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 반란은 1개월 후 수도 베이루트까지 파급되어 정부 지지파와 반대파 간의 시가전으로 확대되었다.

내전 상황이 악화되자 샤문 대통령은 1958년 7월 15일 미국에게 개입을 요청하였고, 미국은 영국과 터키 주둔 병력 15,000 명을 베이루트에 상륙시켰다. 미국의 이러한 개입은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으나 아랍 여러 국가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당시 아랍연맹에 가입하고 있던 10개 국가는 유엔에 "중동평화결의안"을 제출하고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였다. 미국은 각 종파간의 화해와 새로운 연립정권의 출범으로 내전이 진정된 후 1958년 10월 중순부터 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하였다. 3개월간 계속된 내전의 사망자는 2,700명이고, 미군도 240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레바논의 정치, 사회적 불안정은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유입해 들어와 베이루트와 남부지역에 난민캠프를 설치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은 1970년 9월 자국의 정치,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던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추방하는 군사작전을 전개하였는데, 그 때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인접 레바논으로 피난하여 그 곳에서 대이스라엘 무장활동을 벌이게 된 것이다. 레바논의 집권 세력과 기독교 세력들에게는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존재가 눈에 가시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기독교 우파 팔랑헤 당 민병들이 1975년 4월 베이루트 교외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탄 버스를 습격하여 27명을 사망케 하였다. 이로 인하여 레바논은 1976년 11월까지 내전에 휘말리게 되었다.

 

 

>> 목차고리 : 세계 > 중동 > 레바논

 



   


A-Z




  인기검색어
kcm  346712
설교  175391
교회  128158
아시아  101925
선교  97768
세계  87911
예수  84622
선교회  74772
사랑  70766
바울  70053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