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8-09-15
 제목  페니실린 발견
 주제어  [의학] [의약품]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928년 9월 15일 영국 런던대학 세인트 매리 실험실. 유행성 독감을 연구하던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는 세균 배양 접시에서 특이한 곰팡이를 발견했다. 다른 박테리아를 다 죽인 채 혼자 남은 이 푸른 곰팡이균은 이후 페니실리움 노타툼으로 명명됐다. "수천가지 곰팡이와 세균 중 푸른 곰팡이를 찾아낸 것은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플레밍 박사는 회고했다.

탁월한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1940년 치료용 주사제로 만들어져 제2차 세계대전중 수십만 군인들의 목숨을 건졌다. 플레밍 박사는 페니실린 농축과 정제에 성공한 옥스퍼드 대학의 피오리,체인 두사람과 함께 인류의 질병치료에 공헌한 업적으로 1945년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페니실린 등 현대 의약학의 발전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상당 지역에서 잊혀진 질병이 되어가고 있다. 20세기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독감,기관지염,급성폐렴 등일단 걸리면 사형선고나 다름없던 호흡기 감염증은 대폭 줄어들었다. 금세기 초 50세에 불과했던 인류의 평균 수명이 최근 80세 안팎까지 높아진 것도 페니실린을 필두로 한 항생제와 각종 예방백신 개발의 기여가 컸다.

1914년 영국의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Fleming, Sir Alexander)은 세균학자로서 영국 육군 의무단에 지원해서 근무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박테리아에 감염된 상처 때문에 끔찍한 고통을 겪는 것을 보았다. 플레밍은 부상자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세균을 박멸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을 절감하고 일련의 연구를 추진할 것을 결심하였다.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이전에 사용되던 항균제와 항생제는 박테리아를 죽이는 동시에 인체 조직에도 손상을 입혔으므로 이것들은 피부 조직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차대전이 일어나자 수많은 부상자들이 심각한 내상으로 죽어갔다. 정작 중상을 입은 환자들에게는 항균제와 항생제를 쓰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을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했던 플레밍은 전쟁이 끝난 후 연구실로 돌아와 효율적인 항생제 개발에 몸바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인체 조직을 손상시키는 부식성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병원균과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약품을 개발해야 했다. 그는 인체에서 나온 물질 또는 분비물에 열쇠가 있다고 믿었다.

1921년까지의 연구로 플레밍은 인간의 눈물에서 리조짐 (Lysozyme)이라는 분비물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물질은 몇 가지 박테리아에 대한 효능이 입증되었지만 스테펄로코커스, 스트렙터코커스, 고너코커스 등과 같은 위험한 박테리아에는 효능이 없었다.

플레밍은 여러 가지 화합 물질을 작은 배양접시로 실험했다. 가끔 이 접시들은 곰팡이 포자와 공기 중에 들어 있는 박테리아에 감염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플레밍은 이 접시들을 세척하여 실험은 다시 시작하곤 했다.

1928년의 어느 날 플레밍은 스테펄로코커스가 들어있는 접시가 어떤 종류의 박테리아에 공격당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이 바로 페니실리움 노타툼으로 환상적인 항생제 페니실린을 탄생하게 한 곰팡이였다.

플레밍은 인류를 위한 이처럼 위대한 연구에 대해서 "페니실린은 내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발명했다. 나는 단지 우연히 그것을 발견했을 뿐이다." 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 연결고리 : 의학, 의약품

 



   


A-Z




  인기검색어
kcm  337172
설교  171612
교회  124893
아시아  99278
선교  95351
세계  85641
예수  82731
선교회  73602
사랑  69893
바울  69009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