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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8-09-13
 제목  팔레스타인 자치협정 서명
 주제어  [이스라엘]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워싱턴에서 조인한 협정. 1993년 9월 13일 아라파트와 이스라엘 총리 라빈이 팔레스타인 자치 협정에 서명했다. 1994년 협정 당사자인 아라파트와 라빈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 외무장관인 페레스는 노벨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체결된 팔레스타인 자치 협정에 의해 팔레스타인 자치는 3단계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되어 있다.

제1단계는 가자와 여리고에서부터 제한적으로 실시되며,

제2단계는 요르단강 서안의 7개 도시에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하고 자치의회 총선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1, 2단계는 몇 차례 연기되긴 했으나 그 집행에 성공했다.

제3단계에서는 자치정부의 최종적 성격 확정과 동예루살렘 지위 문제, 해외에 망명한 팔레스타인인의 귀환, 국경 확정 및 이스라엘군의 최종적인 배치, 점령지역 내 이스라엘 정착촌 처리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 마지막 단계에서 예루살렘 문제로 두 민족간 평화협상이 깨어지면서 전쟁 직전까지 가는 파국을 맞은 것이다.

예루살렘은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3대 유일신 종교의 성지이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민족 모두 특별한 종교적, 민족적 정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양측 모두 이 사안의 민감성과 폭발성을 인식하고 이 문제로 인해 두 민족간 평화과정이 무산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 해결을 마지막 단계로 미루어 왔다.

사실 예루살렘 문제는 이스라엘의 건국 당시부터 국제적으로 거론된 사항이다. 유엔은 1947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 분할 계획안을 승인하면서 ‘예루살렘은 특별한 국제적 정부(International Regime)하의 분할체(Corpus Separatum)를 창립하여 국제연합이 관리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유엔은 ‘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 땅에 창립될 유태인 국가와 아랍국가 양국에 함께 소속’되도록 하였다. 이스라엘측은 유엔의 이 안을 받아들였으나 팔레스타인 측은 거부하고 결국 1948년 5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간의 제1차 중동전이 발발한다. 이 전쟁에서 요르단은 예루살렘의 구시가지(Old City)를 포함하는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1950년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함께 동예루살렘을 요르단 영토에 병합시켰다.

그러나 1967년 이른바 6일전쟁 때 이스라엘이 요르단 치하에 있던 동예루살렘을 점령하여 합병하고, 1980년엔 ‘기본법-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을 제정하여 ‘하나로 온전히 통일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천명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러한 동예루살렘의 병합과 입법조치에 만족하지 않고 이 점령지역에 주택을 건설하고 유태인을 이주시켜 인적, 물리적인 이스라엘화를 시도해왔다. 반면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민족 지도자들은 동예루살렘이 앞으로 창립될 팔레스타인국의 수도이며, 동예루살렘을 차지할 때까지 성전을 계속할 것이라는 구호를 기회 있을 때마다 외치면서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었다.

그러나 두 민족간 평화협상이 본격화된 1993년 이후 완고했던 양측의 입장이 조금씩 완화되어 왔다. 과거 평화협상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의제 상정조차 거부되었던 예루살렘 문제가 1993년의 팔레스타인 자치협정에 포함되었으며, 양측 모두 어느 정도 양보할 자세를 보여왔다. 지난 9월 28일엔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가 예루살렘의 주권을 팔레스타인과 공유할 의사가 있음을 표명했고, 팔레스타인측 역시 그동안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에 건설한 유태인 정착촌의 존속을 인정하는 입장을 보였다.

문제는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몰려있는 예루살렘 구시가지, 그 중에서도 공동 성지인 성전산(현재 이슬람교의 바위 돔 및 알아크사 사원이 위치)이 핵심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이곳의 주권만큼은 아직 양보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의 유혈사태도 발단은 이 문제 때문이었다.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민족 지도자들은 동 예루살렘이 앞으로 창립될 팔레스타인 국의 수도이며, 동 예루살렘을 차지할 때까지 성전(Jihad)을 계속할 것이라는 구호를 기회 있을 때마다 외치면서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추가 철군 등 양측간의 협정 집행이 진전되면서 동 예루살렘 문제가 수시로 협상과정의 뇌관역할을 하면서 폭발했었다. 양측 강경파들이 민감한 예루살렘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 과격파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폭탄 테러활동을 강화했고 이에 대응해서 이스라엘의 강경파들이 동 예루살렘에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자 양측간의 평화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었다. 1999년 노동당의 에후드 바락 총리의 집권으로 두 민족간 평화과정이 재개되었으나 2000년 9월말 동예루살렘, 특히 성전산의 관할권 문제로 양측간 유혈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2001년 3월 강경파인 아리엘 샤론 총리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1982년이래 중동전의 재발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 목차고리 : 세계 > 중동 > 이스라엘 | 가자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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