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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8-21
 제목  에밀 부르너의 종교인식론
 주제어  
 자료출처  백동인  성경본문  
 내용  

종교의 통로는 인식인가, 체험인가?  

종교적 인식을 위한 직관 이외의 종교적 인식   종교 인식의 개념: '영적인 세계'와 '초인적 인간성 종교적 인식을 통한 상징적 신 이해 서론 이 소고는 칼 바르트와 더불어 한 때, 소위 변증법 신학자로 알려지기도 했던 스위스 신학자 에밀 브룬너(Emil Brunner)의 종교인식론의 유형과 방법, 의미를 분석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에밀 브룬너는, 독일교회는 독일국민의 교회이므로 오직 순종 독일인들이, 순종 국민교회(Volkskirche)를 세워 나치정권의 이데올로기에 일조 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완성이고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소위 '아리안 조항'에 대한 신학적 찬반논쟁으로 유럽 신학계가 일대 혼란을 경험하던 나치정권 출범 초기에, 바르트(K. Barth)와 저 유명한 자연신학에 관한 논쟁을 벌였다. 당시 히틀러를 일종의 메시야 처럼 추앙하려던 중재신학의 분위기를 간파하고 있던 바르트는 그의 신학에서 신과 인간의 질적 단절을 선언하고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이외의 그 어떤 접촉, 계시 가능성도 부정했다.그러나 브룬너는 중세 이래로 큰 물줄기를 이루어 온 "자연도 은총이다"는 자연신학의 명제를, 당시의 상황에 관계없이, 총체적이고 근원적인 입장에서 강변하고자 했다. 그는 급기야 당시의 독일 고백교회 지도자들로부터 본의 아닌 오해를 사게 되고, 그의 자연 신학은 '브룬너에 대한 반대'(Nein! Antwort an Emil Brunner)라는 칼 바르트(Karl Barth)의 예언자적 직격탄을 맞는다.


그러나 그는 피조세계에서 계시의 객관성을 찾으려는 자신의 인식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생애 중, 줄곧 창조 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의 객관성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주체성을 연결시키는 접촉점(Ankn?fungspunkt)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삼 단계의 생성과 변화의 단계를 거쳐 이루어 갔다. 즉 '직관'과 '상징'을 통해서 종교적 인식에 도달하려던 초기(1914년 - 1920년)의 "종교철학적 관점"의 시기와, 투르나이젠(E. Thurneysen), 불트만(R. Bultmann), 고가르텐(F. Gogarten), 그리고 바르트(K. Barth)와 더불어 '시간의 사이'(Zwischen den Zeiten) 라는 동인지와 여타의 강연을 통해서 변증법 신학(Dialektische Theologie)이라는 공통의 관심에 노력을 집중하던 시기(1921년 - 1927년), 그리고 마틴 부버(Martin Buber)의 "나-너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소크타테스가 사용한 대화술(Sokratik)과 그 의미상 유사한 대화 신학(Eristische Theologie)을 주목한 시기(1928년 이후)가 그것이다. 그는 대화신학을 통해서, 정신사의 큰 물줄기를 이루어 온 주관과 객관을 혼합한 만남의 신학을 이룩하고자 했다. 본 소고는 브룬너의 자연신학의 골격이 되는 그의 초기 인식론에 주목해서, 주관과 객관, 이성과 감성의 미로를 더듬어 신과 진리를 찾고자 지적 모험을 시도했던 그의 생애 초기의 종교철학적 인식의 범주와 대상, 방법론을 소개하고 해석하고자 한다.


애석한 것은 1933년과 1934년 사이에 이루어진 바르트와의 논쟁에서 바르트가 브룬너 신학에 대한 극단적인 반대를 선언한 이후, 그의 신학에 대한 연구논문이나 학위 논문이 바르트에 관한 것 보다 상대적으로 감소해 들어가기 시작, 1960년 이후의 그에 대한 논문이 흔치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별히 본 소고를 씀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의존한 종교철학에 관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종교적 인식에 있어서의 상징적인 것"은 이 논문에 관한 참고자료나 이차자료가 희귀해서 연구의 깊이를 만들어내기가 수월치 않았다. 본 인식론의 연구 방법은 교의적이거나 계시의존적이 아니다. 오히려 초기의 브룬너가 그러했던 것처럼, 필자도 주관주의적 인식론의 접근 방법을 긍정하고, 그의 논리로 그 당시의 그를 이해하고자 한다. 좀 더 후기의 그의 변증법적 신학이해에 상반되는 그의 초기 주장은 인식방법에 있어서 진리 인식의 전 단계로서의 부정의 과정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브룬너의 주관주의적 종교인식론은 그의 후기 사상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데 충분한 발판이 되리라 생각한다. 1. 종교의 통로는 인식인가, 체험인가? 브룬너에 있어서 그의 가장 중요한 첫 작품은 '종교적 인식에 있어서의 상징적인 것'(Das Symbolische in der Religi?en Erkenntnis)이라는 인식론적 주제에 대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스승인 라가츠(L. Ragatz) 에게 바친 이 논문을 그는 '종교적 인식론에 기여하며'(Beitr?e zu einer Theorie der religi?en Erkenntnis)라고 명명하였다.1) 여기서 그는 종교적 인식을 기독교적이 아닌, "종교적인 믿음"의 실상의 문제로서 제기한다. 브룬너는 종교적 의식 속에서 종교적 진술의 실상에 대한 하나의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즉 상징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종교적 인식에 대한 하나의 독자적인 이론을 정립해 보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기본적으로 쉴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적인 변형적 인식론을 따르면서도 칸트(I. Kant)와 쉴라이어마허의 독특한 통합을 이루고자 한다. 잘라 말해서, 쉴라이어마허가 이룩한 "영적 현현"에 대한 종교의식의 '독특성'과 '독자성'의 통합은 브룬너에게 있어서 진리 인식의 확실한 기반이다. 그는 순수의식의 분석이 모든 규정의 토대가 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브룬너는 종교적 인식은 "도덕적 규범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내세에 대한 인식으로 본다.2) "절대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체험, 독자적인 영성(Geistigkeit)의 체험으로부터 신앙 세계로의 문이 열린다고 본 것이다. 브룬너는 칸트가 종교의 실상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종교의식의 외부에서 진리를 찾고있는 것은 실수라고 비난한다. 브룬너에 따르면 칸트의 종교 해석은 도덕에 기생하는 생기없는 일종의 부가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 종교적 인식의 대상물들인 신, 영원한 생명, 그리고 자유는 실천적인 도덕적 이성의 단순한 요구로서 등장한다.3) 그러나 브룬너는 진리는 사실성의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종교 의식이라는 체험 속에서 의식의 특성을 분석함으로서 확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브룬너는 비판적으로 근원을 따지지 않으려는 낭만적인 인식 성향을 보였다.


그는 이러한 근거를 지그바르트(H. Sigwart), 빈델반트(W. Windelband), 그리고 리커르트(H. Rickert)의 논문 속에서 찾고 있다. 특별히 베르그송(H. Bergson)의 인식 방법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베르그송은 지식의 대상으로서 생기 없는 정적인 세계(Statische Welt)와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통일적이고 동적인 세계(Belebte Welt) 사이를, 공간과 시간, 소재와 의식 사이를 나누는 것처럼 날카롭게 분리시킨 바 있다.4) 브룬너도 단지 이러한 사고 체계의 틀 속에서만이 종교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동의했다. 브룬너는 그로부터 인식론적 주지주의 비판을 인용한다. 여기서 필자는 브룬너의 초기 종교적 인식론을 베르그송의 철학적 기초에 꼭 관계 지우려는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단지 그가 자신의 종교관에 베르그송의 직관적 인식 방법을 접붙임 했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브룬너는 여러 종류의 정신 활동이 오직 직관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보고 직관의 불가피성을 간파한 듯 하다. 브룬너는 직관적으로 얻어진 지식은 어느 경우든 "공간적 사물"이나, '지식'과 같은 일반적 표현의 틀 속에서 표현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직관은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것, 독특한 것, 반복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지식이거나 ... 공간적 사물과 관계들의 인식과 같은 류의 척도가 아닌 직접적인 지식이다."5) 브룬너는 더욱 깊이 내재하는 인식의 원천을 밝혀냄으로써 새로운 진리 개념에 다가서고자 했다. 이러한 지식은 이성이 아닌, 체험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의식의 구체적인 부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내적 정관(Innere Anschauung) 즉, 직관의 특별한 인식 형태로 규정한다.6) 필자는 이 개념을 이 연구의 실제적인 열쇠 개념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본 소고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모든 철학적 전제들은 모두 직관으로 용해되어, 그 토대 위에 그의 종교적 인식론의 틀이 세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인식을 위한 직관 각각의 인식론은 먼저 근본 문제를 제기한다.


즉 인간이 어떻게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 스콜라철학은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감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어지는 질료(Material)는 인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가공되어진다."7) 여기서 인식의 실질적인 도구는 이해(Verstand)이고 감각들(Sinne)은 인식을 위한 매개물이 된다. 감각들은 인식되어 질 수 있는 질료를 제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성은 두 가지 면을 지니고 있다. 수동적인 면과 능동적인 면이 그것이다. 즉 사물에 대한 인식은 수동적 이해가 지각 개념들을 받아들이고 능동적 이해가 감각적인 질료로부터 비감각적인 개념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생겨난다. 이 개념들은 사물의 실제적인 존재를 내포한다. 능동적 이해는 논리적인 개념들을 서로 관련 지움으로써 판단을 형성시키는데, 이렇게 관련된 것들은 지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판단들은 하나의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 혹은, 더 많은 대상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나타낸다.8) 브룬너는, 검증되지 않은 관찰들을 명확하고 공리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그 위에 세계관을 세우는 스콜라 철학을 비판한다.9) 헤겔(Hegel)은 스콜라철학적인 성향을 계속 나타냈다.


그는 이성의 산물들 즉, 개념들을 인식획득의 기본 토대로 삼았다.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이해의 반복과 그로 인한 개념들의 논리를 통해서 생성되는 것이므로, 헤겔에 있어서 이성은 실질적인 인식요인이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주지주의는 신을 사색과 논리, 인과 법칙의 적용을 통해서 인식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적인 법칙들과 비슷한 신을 하나의 불변적인 실재로서 서술했다. 반대로 헤겔은 의식, 자기의식, 이성의 단계를 거쳐서 정신, 종교, 절대지식에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생성의 신을 선언했다. 헤겔은 의식되는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관련지어, 신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전개한다.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는 그 자체로부터 대립물 즉 유한적이고 상대적인 존재인 세계를 상정한다. 이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는 동시에 세계를 대립물로 부정하고 또는 정신화시키며, 지양된 대립물 속에서 스스로를 정신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자기관찰은 절대 존재의 자의식으로 창출되어진다.10) 신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전개시키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는 철학은 절대적 표상, 즉 신의 표상의 인식에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것으로 규정되어져 있다. 이러한 절대적 인식은 신에 대해 인식하게 되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 속에서 스스로 신을 인식하는 것이 된다.11)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의 신 개념이 형성되어지는데, 이 개념은 그 자체로부터 전개되고 발전되어 영원히 즉자적럽育愍岵막?존재하는 이념이 된다. 이러한 이념은 절대적 정신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결국 종교적 인식을 위한 출발점을 형성한다.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즉자적럽育愍岵막?존재하는 이념의 근원이나 특별히 종교적 인간의 직관적인 기본 행위를 통한 제한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확대하지 않았다.


그는 신인식의 존재론적 차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브룬너는 헤겔의 이러한 종교 이해를 비판한다. 칸트에게 있어 도덕적 규범들은 그것들의 무제약성의 요구와 함께 본질적인 요소를 이룬다. 도덕적 규범들의 합법칙성은 경험을 통로로 종교적인 인식을 가능케 한다. "칸트에게 있어서 이성적인 것, 즉 규범적 타당성에 대한 결정적인 관심이 종교에 모아지는데 그것이 곧 실천이성이다. 과학적인 원칙들에 맞는 타당성의 대체물을 그는 도덕적인 규범 속에서 발견한다."12) 칸트가 종교와 과학을 분리시키는 반면에 쉴라이어마허는 종교와 윤리성을 구분한다. 쉴라이어마허에 의하면, 종교적 인식의 원천은 신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절대 의존성이다. 이러한 의식을 그는 본래적으로 '경건한 감정'이라고 명명했다. 종교의 대상은 신적 존재에 대한 절대 의존감정에 이끌리는 그 어떤 것이다.13) 쉴라이어마허에 있어 신에 대한 절대의존의 의식은 칸트에게 있어서 규범에 대한 무제약성의 요구의 경험을 수용하는 것이다. 쉴라이어마허는 칸트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칸트처럼 신을 감각적이고 합리적으로 인지 가능한 외부 세계의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고 신을 인간의 내면에서 찾고자 했다. 쉴라이어마허는 칸트의 인식론에 대한 비판적 결론을 그의 최초의 신학인 "종교 철학"에 적절히 적용했다.14) "칸트가 철학의 나머지 영역에서 이루려던 것을 쉴라이어마허는 그의 종교철학에 관철시켰다.


칸트는 비판철학의 아버지이긴 하지만, 종교철학에서는 선 비판적 관념에 속박되어 있다. 쉴라이어마허는 비판적인 종교철학자이다."15) 이상의 근거로 보아, 브룬너가 칸트적 세계형질 이념이라는 이율배반 위에 자신의 종교관을 세운 것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양자의 사고 구조 속에 형식적인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브룬너와 칸트의 관계는 여전히 불명확한 관계로 남는 것 같다.16) 다만 다음과 같이 언급할 수는 있겠다. 즉 칸트가 그의 윤리학을 하나의 도덕법칙을 따르는 예지적 자아(Intelligibles Ich)의 자유 위에 두고 있는 반면, 브룬너는 전술한 이율배반 위에 그의 종교철학의 출발점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와 조화되지 않은 권위에, 주관이 종속되는 문제가 여전히 브룬너의 인식론의 과제로 남는다. 브룬너는, 쉴라이어마허가 종교를 본질적으로 경건한 감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환상주의적 경향 아래 파악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브룬너는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에 대한 내적 관찰의 가능성을 받아들임으로서 이러한 종교적 인식의 유약함을 극복해 보려고 한다. 이러한 내적 관찰을 브룬너는 베르그송과 칸트에 의존해서 '직관'(Intuition) 혹은 '내적 정관'(Innere Anschauung)으로 이해한다. 그는 그것이 인간의 감정과 사고, 그리고 의식에 전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초월성(Transzendenz), 즉 신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것이라고 보고 있다.17) 특별히 자의식에 대한 직관은 베르그송에게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바 있다.


베르그송에 있어서 직관은, 인식의 영역들이 통일되는 신비적인 차원의 특성들을 포함한다. 직관은 모든 지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그리고 개념적인 것들로부터 총괄된 형이상학적인 것에 도달하고자 한다. 원래 직관은 철학사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인식의 한계점을 경험하기 마련인데 베르그송의 철학은 이러한 한계론을 뛰어 넘고 있다. 그것은 그가 과거, 철학의 적으로 규정된 바 있는 지성(Intellekt)으로 철학적 사고를 전개했기 때문이다.18) 브룬너는, 인간이 그의 정신적 인성을 자발적으로 나타내고자 할 때 스스로 종교적 세계와 그 진리에 이르는 통로를 열 수 있다고 힘주어 설명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인간을 규정하는 도덕규범 의식을 함께 고려할 때 가능하다.19) 이러한 개개의 직관적 관찰을 요구하는 종교적 세계는 개방적으로 나타난다. 직관은 바로 주관과 객관을 서로에게 향하게 한다. 직관의 도움을 통해 자유로운 정신적 인성은 주관으로서 의식되어지고, 보편적인 정신적 존재와의 연관관계가 형성된다. 그리하여 종교적 세계와 도덕적 규범에 의해 규정된 인간성의 차이는 극복되어진다. 브룬너는 '내면으로부터의 초주관적인 통일'이라는 관념을 통해서 종교적 직관의 주관성과 객관성의 간격을 극복하고자 한다. 종교적 직관과 그것을 통한 인간의 신적 표상이 가능하다는 브룬너의 주장은 다른 많은 신들의 표상들도 관찰이 가능하다는 개연성을 열어두고 있다. 직관 이외의 종교적 인식 종교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브룬너에 따르면, 종교는 종교 의식의 생성에 대한 동기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며, 개개의 종교는 역사 이전부터 계속 전해져 온 불가피한 종교적 기본인식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종교는 인간의 자아판단 인간의 자기의식 속에서 그 동기를 갖는다"20) 따라서 인간이 그의 정신 속에서 경험하는 직관적 자기의식은 종교적인 원초적 행위로서 설명된다.


브룬너에 따르면 이러한 전제는 단지 자기의식의 도움으로만 도달될 수 있는 직접적인 신과의 관계가 원래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지시한다. 그렇지 않은가! 신을 경험하지 않고는 종교란 기본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기본체험들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 중의 하나가 위대한 종교적 인물들의 삶을 종교적 인식의 확고한 현상으로 연구하는 방법이다. 확실히 종교 영웅들의 초자연적인 영적 활동과 그들의 종교적 자의식이 우리들 평범한 사람들의 체험보다 훨씬 더 강하고, 순수할 뿐 아니라, 명확하게 종교적 현상을 그려낸다.21) 이러한 영적 인간은 그들의 내면에 신과의 초주관적인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들의 초주관적이고 선험적인 현실은 절대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의 경험과 연관되어 있음이 확실하다. 주관은 이러한 종교적 영웅들의 가치에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종교적 인식이 직관적으로 영감 받은 개별 인물들의 교훈이나 빛을 통해 비상하게 표현되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브룬너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위대한 종교인들이 각 개인들에게 특별한 영향과 교훈을 준 사실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한다. 이것은 종교 인식의 유망한 통로인 직관이 개별적 종교이해로 그친다는 오해를 불식시켜 준다. 그리하여 브룬너는 자신의 반대자들로부터, 자신의 견해가 주관적이고 신비적이라는 종교 비판을 태연히 받아 들였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입장에서 칸트의 결정론적 반신비주의를 비판했다.22) 그는 직관과 그것의 신비성을 '종교의 심장'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각 개인의 신비적 체험에 영향을 끼치는 객관적인 계시 요소쯤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브룬너에 있어서 정신적 증거, 즉 '영원한 성령의 증거'(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도 직관적 인식과 상호 관련이 있다. 그는 직관을 신에 의해 야기되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객관적 계시의 차용은 '신비로운 주님과 하나로서'(unio mystica cum christo), 그리스도와의 동형화 되어지는 것이다.23) 종교적 체험은 절대를 경험함으로써 성립되는데, 이러한 절대는 객관적이고 주관의 욕구들로부터 독립적이며 그 자체로써 타당한 그 어떤 것이다. 따라서 종교적 인식은 다음의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작용되어진다. 그것은 직관 혹은 정신적 증거와 객관적 계시이다. 그러나 종교적 직관의 내용이 어떻게 나타나고, 주관과 객관이 종교적 체험 속에서 동일시되고 있는지 하는 문제를 먼저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논점의 근본적인 동기는 직관에 대한 고찰이다. 종교적 영웅들의 신적 표상들도 실제로 그들의 직관의 작용을 통해서 표현된 객관적인 소여로서 설명될 수 있는 것들이다. 브룬너는 '초월적 세계'라는 상징으로 이러한 보편적인 정신적 존재의 초월성을 나타내고자 한다.


주관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인 정신적 존재를 통해 종교적 체험 속에서 규정되는 것이다.24) 중재(Vermittlung)와 객관적인 계시의 수렴(Aneignung)은 두 가지 모두 브룬너에게 있어서 직관과 관련이 있는데, 객관적인 계시는 소멸되거나 효과가 상실되지 않는다. 선재 하는 종교적 인식들은 이러한 직관을 토대로 의미를 상실하고 전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종교적 전통들은 단지 제한적인 타당성을 지닐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종교적 인식의 최종적인 규범으로서 소여적인 것, 예컨데 교리가 아니라 정신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것은 사상이나 관념을 교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직관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내적 정관을 교시하기 때문이다.25) 그래서 브룬너는 종교적 근본 내용을 서술함에 있어 종교 인식으로의 첫 번째 길은 '직관'이라고 확정한다. 종교적 인식을 위한 직관 각각의 인식론은 먼저 근본 문제를 제기한다. 즉 인간이 어떻게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 스콜라철학은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감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어지는 질료(Material)는 인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가공되어진다."7) 여기서 인식의 실질적인 도구는 이해(Verstand)이고 감각들(Sinne)은 인식을 위한 매개물이 된다. 감각들은 인식되어 질 수 있는 질료를 제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성은 두 가지 면을 지니고 있다. 수동적인 면과 능동적인 면이 그것이다.


즉 사물에 대한 인식은 수동적 이해가 지각 개념들을 받아들이고 능동적 이해가 감각적인 질료로부터 비감각적인 개념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생겨난다. 이 개념들은 사물의 실제적인 존재를 내포한다. 능동적 이해는 논리적인 개념들을 서로 관련 지움으로써 판단을 형성시키는데, 이렇게 관련된 것들은 지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판단들은 하나의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 혹은, 더 많은 대상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나타낸다.8) 브룬너는, 검증되지 않은 관찰들을 명확하고 공리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그 위에 세계관을 세우는 스콜라 철학을 비판한다.9) 헤겔(Hegel)은 스콜라철학적인 성향을 계속 나타냈다. 그는 이성의 산물들 즉, 개념들을 인식획득의 기본 토대로 삼았다.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이해의 반복과 그로 인한 개념들의 논리를 통해서 생성되는 것이므로, 헤겔에 있어서 이성은 실질적인 인식요인이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주지주의는 신을 사색과 논리, 인과 법칙의 적용을 통해서 인식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적인 법칙들과 비슷한 신을 하나의 불변적인 실재로서 서술했다. 반대로 헤겔은 의식, 자기의식, 이성의 단계를 거쳐서 정신, 종교, 절대지식에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생성의 신을 선언했다.


헤겔은 의식되는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관련지어, 신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전개한다.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는 그 자체로부터 대립물 즉 유한적이고 상대적인 존재인 세계를 상정한다. 이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는 동시에 세계를 대립물로 부정하고 또는 정신화시키며, 지양된 대립물 속에서 스스로를 정신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자기관찰은 절대 존재의 자의식으로 창출되어진다.10) 신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전개시키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는 철학은 절대적 표상, 즉 신의 표상의 인식에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것으로 규정되어져 있다. 이러한 절대적 인식은 신에 대해 인식하게 되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 속에서 스스로 신을 인식하는 것이 된다.11)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의 신 개념이 형성되어지는데, 이 개념은 그 자체로부터 전개되고 발전되어 영원히 즉자적럽育愍岵막?존재하는 이념이 된다. 이러한 이념은 절대적 정신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결국 종교적 인식을 위한 출발점을 형성한다.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즉자적럽育愍岵막?존재하는 이념의 근원이나 특별히 종교적 인간의 직관적인 기본 행위를 통한 제한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확대하지 않았다. 그는 신인식의 존재론적 차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브룬너는 헤겔의 이러한 종교 이해를 비판한다. 칸트에게 있어 도덕적 규범들은 그것들의 무제약성의 요구와 함께 본질적인 요소를 이룬다. 도덕적 규범들의 합법칙성은 경험을 통로로 종교적인 인식을 가능케 한다. "칸트에게 있어서 이성적인 것, 즉 규범적 타당성에 대한 결정적인 관심이 종교에 모아지는데 그것이 곧 실천이성이다. 과학적인 원칙들에 맞는 타당성의 대체물을 그는 도덕적인 규범 속에서 발견한다."12)


칸트가 종교와 과학을 분리시키는 반면에 쉴라이어마허는 종교와 윤리성을 구분한다. 쉴라이어마허에 의하면, 종교적 인식의 원천은 신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절대 의존성이다. 이러한 의식을 그는 본래적으로 '경건한 감정'이라고 명명했다. 종교의 대상은 신적 존재에 대한 절대 의존감정에 이끌리는 그 어떤 것이다.13) 쉴라이어마허에 있어 신에 대한 절대의존의 의식은 칸트에게 있어서 규범에 대한 무제약성의 요구의 경험을 수용하는 것이다. 쉴라이어마허는 칸트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칸트처럼 신을 감각적이고 합리적으로 인지 가능한 외부 세계의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고 신을 인간의 내면에서 찾고자 했다. 쉴라이어마허는 칸트의 인식론에 대한 비판적 결론을 그의 최초의 신학인 "종교 철학"에 적절히 적용했다.14) "칸트가 철학의 나머지 영역에서 이루려던 것을 쉴라이어마허는 그의 종교철학에 관철시켰다. 칸트는 비판철학의 아버지이긴 하지만, 종교철학에서는 선 비판적 관념에 속박되어 있다. 쉴라이어마허는 비판적인 종교철학자이다."15) 이상의 근거로 보아, 브룬너가 칸트적 세계형질 이념이라는 이율배반 위에 자신의 종교관을 세운 것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양자의 사고 구조 속에 형식적인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브룬너와 칸트의 관계는 여전히 불명확한 관계로 남는 것 같다.16) 다만 다음과 같이 언급할 수는 있겠다. 즉 칸트가 그의 윤리학을 하나의 도덕법칙을 따르는 예지적 자아(Intelligibles Ich)의 자유 위에 두고 있는 반면, 브룬너는 전술한 이율배반 위에 그의 종교철학의 출발점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와 조화되지 않은 권위에, 주관이 종속되는 문제가 여전히 브룬너의 인식론의 과제로 남는다. 브룬너는, 쉴라이어마허가 종교를 본질적으로 경건한 감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환상주의적 경향 아래 파악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브룬너는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에 대한 내적 관찰의 가능성을 받아들임으로서 이러한 종교적 인식의 유약함을 극복해 보려고 한다.


이러한 내적 관찰을 브룬너는 베르그송과 칸트에 의존해서 '직관'(Intuition) 혹은 '내적 정관'(Innere Anschauung)으로 이해한다. 그는 그것이 인간의 감정과 사고, 그리고 의식에 전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초월성(Transzendenz), 즉 신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것이라고 보고 있다.17) 특별히 자의식에 대한 직관은 베르그송에게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바 있다. 베르그송에 있어서 직관은, 인식의 영역들이 통일되는 신비적인 차원의 특성들을 포함한다. 직관은 모든 지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그리고 개념적인 것들로부터 총괄된 형이상학적인 것에 도달하고자 한다. 원래 직관은 철학사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인식의 한계점을 경험하기 마련인데 베르그송의 철학은 이러한 한계론을 뛰어 넘고 있다. 그것은 그가 과거, 철학의 적으로 규정된 바 있는 지성(Intellekt)으로 철학적 사고를 전개했기 때문이다.18) 브룬너는, 인간이 그의 정신적 인성을 자발적으로 나타내고자 할 때 스스로 종교적 세계와 그 진리에 이르는 통로를 열 수 있다고 힘주어 설명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인간을 규정하는 도덕규범 의식을 함께 고려할 때 가능하다.19) 이러한 개개의 직관적 관찰을 요구하는 종교적 세계는 개방적으로 나타난다. 직관은 바로 주관과 객관을 서로에게 향하게 한다.


직관의 도움을 통해 자유로운 정신적 인성은 주관으로서 의식되어지고, 보편적인 정신적 존재와의 연관관계가 형성된다. 그리하여 종교적 세계와 도덕적 규범에 의해 규정된 인간성의 차이는 극복되어진다. 브룬너는 '내면으로부터의 초주관적인 통일'이라는 관념을 통해서 종교적 직관의 주관성과 객관성의 간격을 극복하고자 한다. 종교적 직관과 그것을 통한 인간의 신적 표상이 가능하다는 브룬너의 주장은 다른 많은 신들의 표상들도 관찰이 가능하다는 개연성을 열어두고 있다. 종교 인식의 개념: '영적인 세계'와 '초인적 인간성 직관은 인간의 정신적 영역을 향해 열려 있어서 초월성에로의 통로를 만들어 내면서 신의 표상을 각인 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방식이 자연물과는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또 그것보다 우월하다는 정신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의식 내부의 규범의식, 혹은 정언적 명령으로 개념화되고, 모든 자연적인 것에 대해서 절대적인 타당성과 자주성의 특성을 띠고 있다. 의식은 자연을 능가하는 그 어떤 것과 절대성에 의해 직관적으로 의식의 대상과 성질, 그리고 개별 정신을 인식하면서 보편적 영적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26) 이러한 인간 자신에 대한 의식은 단일성과 다양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스스로 자유롭게 존재하는 정신적 인간성의 의식은 단일성의 요점에 속하고, 반대로 보편적인 영적 존재에 의존하는 체험은 다양성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단일성과 다양성, 즉 내적이고 직관적인 정관 속에서 체험되는 초자연적인 정신적 존재는 '종교에 대한 인식', 즉 '신에 대한 인식의 내용'을 만들어 낸다.27) 영적인 인간의 자유에 대한 체험은 단지 종속적인 이러한 인간의 의식화를 통해서만 완전히 파악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그 자체의 성질상, 본질적으로 인과법칙의 속박과는 구별된다. 이러한 규범에 대해 인간은 자유의 체험 없이 구속되어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다. 개개의 규범 뒤에는 '단순한' 어떤 것이 은닉되어 있는데 그것은 모든 인간을 향한 절대성의 요구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덕적 규범의식으로서, '포괄적인 영적 존재'에 대한 사고를 담고 있다. 브룬너는 이러한 의식을 '초월적 세계'로 파악했고, 그것을 신과 동일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신은 정신적인 것 안에서 '도덕적인 정신'으로 파악된다. 바로 그러한 존재로서 신은 영원하다.28) 신에 대한 인식은 종교의식에 기초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첫 번째는 정신적 초월세계에 대한 의식으로서, 이 초월 세계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뛰어 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신적인 인간성으로서 절대적이면서 또한 인간의 개인성을 초월해 있다. 이 두 가지 요인, 즉 초인간적인 인성과 영원한 규범적인 정신은 종교적 의식의 성분을 구성하며 마치 논리와 윤리의 원칙들처럼 분명하며 직접적이고 타당하다.29)


이 두 가지는 종교의 본질을 규정한다. 브룬너는 여기에서 종교의 본질과 경험적 현상을 구별한다.30) 종교적 체험은 절대적 가치의 내용을 통해 규정된다. 절대적 가치들은 주관의 "욕구들"로 부터 객관적이고 종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 속에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가치들은 직관적 체험에 의해 이해된 주관을 통해 보편적인 정신을 보여 준다. 브룬너는 외부에 존재하고 있는 신성한 것에 대해서 종교적인 체험을 한 주관이 스스로 경외심을 갖게되며 이러한 느낌은 스스로 지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31) 물론 브룬너에 있어서, 종교의 본질과 종교의 경험적 현상은 날카롭게 구분된다. 정신적 삶은 순수한 자연적 삶을 지배한다. 그것은 얼마만큼 영적 개념이 명료한가에 달려있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종교의 본질은 경험적 현상 속에서 관찰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모든 현존하는 타종교에서도 관찰되는데, 타종교에서도 신의식의 초월성은 의식의 내재성을 지배한다. '직접적인 체험 속에서의 객관적 요인들에 대한 특별한 비중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근본태도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까 초자아, 즉 종교 의식의 비자아는 스스로의 의미를 돕는 우위를 유지한다.32) 이러한 집약적인 경험은 궁극적으로 신과 동일시된 인간들의 의식에 대비된다. 신과 인간 사이에 구분이 있는 것은 주지적 사실이고, 직관적 인식에 혼선이 초래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가능성이 양자 사이에 존재한다.


신에 대한 의식-내재성은 인식론적으로 정당화된다. 실제로 신-관련성과 신-인식은 일종의 존재의 연관성을 통해 상호 관련되어 있다. 즉, 신-관련성과 신-인식은 단지 인간의 정신적 존재 속에 신이 내재하고 있음으로써 경험될 수 있다. 즉 인간은 이러한 정신적 현실을 관찰함으로서 신의 실재를 경험하고, 체험하고,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관찰함으로서 신성을 인식한다."33) 브룬너에게 있어서 종교적 인식의 기본내용은 종교적 의식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종교적 의식을 지닌 인간에게 일종의 환상이나 투영으로 간주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 안에 있는 신적인 것의 초월성이 포기되어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34) 그는 종교적 인식의 상징화 작업을 진리 인식의 근본으로 서술함으로써 종교적 인식 안에서의 신적인 것의 초월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러한 상징들이 바로 '초월적 세계'와 '인성'이다. '초월적 세계'라는 상징은 주관의 의식을 종교적 체험을 통해 규정한다. 종교적 체험 안에서 주관은 보편적인 정신적 존재의 초월성을 경험한다. '인성'은 주관의 형식적인 유사함을 객체로 나타내는 상징을 일컫는다. 이러한 유사함은 종교적 체험의 경험, 즉 자아와 신과의 연관성에서 유래한다. '인성'(Pers?lichkeit)이 신의 내재성(Immanenz)에 대한 상징임은 분명하다.35) 종교적 인식을 통한 상징적 신 이해 1 상징의 표시(Zeichen)와 표현(Ausdruck) 기능 브룬너는 상징개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직관적으로 얻어진 지식은 무언의 신비스러운 베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한 진리인식의 동기를 부여한다. 상징이론은 그것에 대해서 분명한 언급을 하고 있다. "상징적 표상 방식에 있어 하나의 중복된 대상적 의식과 두 가지 표상은 함께 하나의 독특한 대리 관계 속에 놓여 있다."36) '브룬너는 이러한 대리의식을 통해 상징의식'을 보다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는 상징을 표시기능과 표현기능으로 구분한다.37) 표시기능의 특징은 상징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지적하게 한다는 것이다. 상징이 하나의 표현기능을 나타내고자 할 때, 상징하려는 것과 상징되어지는 것 사이에는 하나의 확실한 유사성이 나타난다. 여기서 브룬너의 상징이해로부터 토마스(Thomas von Aquin)의 유비 개념(Analogiebegriff)에의 연결이 가능해졌다. 토마스는 단어의 일치와 의미의 일치 사이의 중간을 유비(Analogie)라고 정의했다.38) 토마스에 따르면 신은 인간과는 다른 의미의 현자로 불린다. 왜냐하면 신은 모든 인간적인 가능성들을 뛰어 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예로 들면, 그것은 단지 '+'로 표현될 수도 있고 인간의 고뇌를 의미할 수도 있다. 이것은 신지식과 인간지식 사이에 내적인 유사성이 있음을 의미한다.39) 여기에 토마스의 신학적 사고 과정이 드러난다. 그의 사고 과정은 브룬너의 입장과는 평행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토마스의 사고 과정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와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 철학에 나타나는 플라톤적 사고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토마스는 신의 이름들 하나하나 마다 유비적인 의미를 부가시킨다.40) 이미 플라톤(Platon)은 비례 유비(Proportionsanalogie)를 통해 위에 상응하는 논리를 전개시킨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비례일치(Verh?tnisgleichheit)의 논리를 전개시켰다. 그에 의하면, 6:3=4:2이다. 그는 이것을 기하학에서 차용해 왔다. 그러나 토마스는 이에 반해서 플라톤에 있어서의 유형적 관계사고로 회귀한다.41) 모든 종교적 인식은 상징적이라는 브룬너의 입장에서 보면, 신의 이름을 인식하는 것과 신 자체를 이해하는 것은 방법론상 유사하다. 상징되어진 본질에 대한 대상의 내적 연관을 통해서 상징은 표현 능력을 얻는다. 상징화된 것이 상징과 하나의 부분적 일치를 이루는 일은 유사성으로 표현될 수 없다. 이러한 관계는 의식영역이 일치함으로서 서술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총체적 직관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을 뿐이고 선험적인 분석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


의식 영역과 체험영역의 일치는 모든 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상징주의 현상을 받아들이게 해서 정신적 삶에 중요성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서 영적 삶의 심층 저변에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삶의 근원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브룬너에 있어서의 초월에의 관여라 함은 공간적 질서에 속하는 않으나, 어떻게든 영적 질서에 순응하는, 순간존재에 근접하는 관계를 의미한다.42) 브룬너는 영적 삶의 심층에 모든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삶의 원형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상징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깊이 속에서 우리는 영혼의 중심적인 활동과 도덕적인 것, 그리고 종교적인 것을 발견해내며, 거기에 주지하는 바와 같이 상징의 본래적 고향이 있다."43) 2. 종교적 인식의 상징화 우리들은 종교적 인식의 상징화에서 상징의 표현과 표시기능으로의 통로를 설명하는 내적 경험을 이해할 수 있다. 종교적 인식의 내용은 신에 대한, 즉 '초인간적인 인성'(?ermenschliche Pers?lichkeit)"과 '정신적 초월세계'(Geistige Ueberwelt)에 대한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개념들이 브룬너에게 이미 상징의 표현형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초인간적인 인성'이라는 상징을 통해 모든 인간적 척도를 넘어서는 신의 인성을 설명하고자 한다.44) '정신적 초월세계'는 신의 객관성을 보증한다. 초주관, 즉 신을 브룬너는 '세계'로 표현하는데, 세계경험의 객관적 특성과 종교적 경험 사이에 하나의 내적 관계가 존재한다고 본다.45) 하나의 대상의 관계는 구성적으로 윤리적 경험에 속한다. 종교적 의식이 정신적-윤리적 영역 속에 용해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윤리적인 것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생활을 직관적으로 의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러한 의식화를 통해서 초주관, 즉 정신적 존재가 인지되어지는 것이다. 윤리적인 태도의 '출처'는 신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윤리적인 태도는 신과 관련이 있다. 브룬너는 이러한 윤리성의 영역으로부터 도덕 규범의 무제한적 요구를 받아들인다.46)


인간에게는 정신적 초월세계가 외부로부터, 즉 객관적으로 다가 온다. 그것은 내부로부터의 신에 대한 인간성의 상징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둘 다, 동일한 대상을 전체로서 파악한다.47) 이러한 상징의 초월적인 특성은 자신의 불명료성 가운데서 하나의 해결적 기능을 모색한다. 그것은 유한적인 것에서 무한적인 것으로, 제한적인 것으로 부터 무제한적인 것에로의 전이를 가능하게 해서,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기도 한다. 초인간적인 인성을 경험하는 것은 정신적 초월세계의 경우에서 보다, 더 내적이다. 그리하여 신, 즉 종교적 인식의 대상은 상징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고, 서술될 수 있다는 잠정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브룬너에게 있어서 '영적인 초월세계'와 '초인간적 인성'은 신 인식의 선착점이다. 그러나 브룬너는 아직 인간과 세계 범주에 속하는 대상과 관련된 종교적 접속점을 완전히 결론 짖지 않고 있다. 이러한 대상들과 함께 종교적 의식은 종교적 대상인 윤리적으로 현재하는 신에게로 용해되어 들어간다. 대상으로서의 신의 이러한 현재함은 정재(Dasein)와 현존(Sosein)만이 아니라, 신의 활동까지 포괄한다. 그리하여 신은 이러한 현재함을 통해 인간의 개인적 존재와 연관되어 지고, 그 안에서 내재적인, 즉 인간 속에서 모사적으로 그려지는 신적 인성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룬너는 개별적인 인간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별적 인간은 형이상학적, 정신적 존재로서 중요한 인식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신적 인성으로서의 신을 그의 원천이자 목적으로 이해한다.48) 인간이 개인으로서 자신을 의식하자 말자, 그는 또한 정신의 통일, 즉 영육의 일치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한 신의 인성에 대한 서술 없이, 종교를 인식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49) 신적인 것의 초월성이 실제적으로 더욱 표현된 초월 세계는, '하늘' 상징을 통해서 그 구체적인 형상을 그려낸다. 브룬너는 이러한 하늘상징과 신권국가에 대한 원그리스도적 표상 사이에 하나의 직접적인 유비 관계가 존재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국가에 대한 특성이 초월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50) 이 둘은 인간이 만들어 낸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관여하는 현실을 의미한다. '신권국가'라는 개념을 해석하는 브룬너의 관점은 이 개념을 일방적으로 개인주의에 관련시킨 리츨(A. Ritschl)의 신학 범주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리츨은 신의 주권을 하나의 도덕적 공동체에 관련시킨바 있다.51)그는 인류가 신권 국가에서, 인성의 발전에 커다란 방해물로 보이는 본능의 속박들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윤리적 가능성과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브룬너에게 있어서의 초개인적 정신의 국가라는 개념은 이에 반해서 개인성, 즉 인간성의 약화를 의미한다. 브룬너에 있어서 '하늘'과 관련된 개념은 '아버지'로서, 신의 표상을 나타낸다. 그것은 특정한 아버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대상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신의 초월성뿐만 아니라 객관성과 주관성, 요구와 응답 등을 포함한 신의 총체적인 현실을 상징화한다. 이의 부차적인 상징인 '인간'과 '신권 국가'와의 관계는, '신이 하늘에 계심'에 대한 표상이거나, '신이 그의 국가를 다스리고 계심'이다. 그러나 초월성의 경험이 신과 인간의 존재 결합을 인식론적으로 정초 하는데 과연 관련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신적인 것의 내재성에 대한 관심을 통해서 단순하게 무시되어져도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요약 브룬너에 의하면 윤리의 영역으로부터 차용해 온 규범들을 통해서는, 종교적 지식의 진리가 입증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종교를 윤리로 규정했다. 그래서 브룬너는 쉴라이어마허가 이해한 종교인식을 바탕으로 종교적 의식 속에서 진리의 타당성을 지닌 사실들을 발견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종교적 체험 속에서의 보편적 정신적 현실의 근원성과 주관의 지성으로 채색된 종속감을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쉴라이어마허에게서 볼 수 있는 주관적인 감성이라는 종교 개념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한다. 브룬너는 신의 현실 안에서의 '인성'과 '정신적 세계'가 직관으로부터 인식되어진다고 보았다. 브룬너에게 있어서의 인성 개념의 핵은 감정의 경험이나 미적 체험의 향유가 아니라, 초개인적인 자아이다. 이러한 자아의 신 인식을 '상징'이라고 명명한다. 이러한 상징은 주관의 정신적 자아를 신의 형상으로 투영시킨다. 여기 상징적 인식(혹은 상징을 통한 신 인식)이라 함은 대상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인식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더 많은 대상을 통해 진리가 전달되는 인식이다. 따라서 사물 자체가 아닌, 동시에 다른 대상들의 관련성들이 관찰되어지고 또한 구체화되는 곳에서 이러한 개념적 사고가 정당화된다.


그리하여 사고의 대상, 개인적 정신의 성질을 통해서 내적 정관, 즉 대상에 대한 의식은 주관을 넘어 하나의 보편적인 정신적 존재를 인지하게 되는데, 이 보편적인 정신적 존재에 자유로운 자아가 독특한 방식으로 종속되어 있다. 신은 인간에 의해 직관적으로 초인간적인 인성과 정신적인 초월적 세계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 '하늘', '국가'와 같이 물질적이고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대상들에서처럼, 신 인식의 전 단계로서 신을 인식 가능한 물질적인 대상으로 상징화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의식의 서술이 필요하다. 만약 여기에서 개인적-개별적 개념들이 상황에 적절치 않을 경우, 예컨대 '신권 국가'라는 표현 대신 '하늘국가'와 같은 사회적 표현 방법이 채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관 관계 속에서 갖가지 신에 대한 표현 양식들은 신에 대한 상징으로 귀결된다. 여러 가지 상징에 따라서 내용이 충만해지는 신에 대한 인식은, 브룬너적인 의미에서, 신과 인간 사이의 완전한 차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 둘 사이의 유사성과 비유의 관계로 귀결 되어 진다. 그밖에, 기본적 신 인식의 또 다른 객관적 타당성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깊은 직관적 성취를 통해 종교적 인식에 쉽게 도달하는 종교적 영웅의 신 인식이다. '종교적인 영웅'은 특별한 직관적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들을 지칭하며, 그들의 인식은 철학의 입장에서는 방법론상 생소한, '믿음'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에 대한 인식은 모두 직관에 관계되며, 단지 상징들 속에서 파악되고 전달될 수 있을 뿐이다.


이상의 브룬너의 신인식론은 칸트의 실천이성과, 종교본질에 대한 쉴라이어마허의 견해를 차용해서 종합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주관적인 감정이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는 쉴라이어마허의 종교관에서 더 강한 도덕적, 능동적인 특징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더욱이 베르그송과 마찬가지로, 감각적 삶과 자의식의 영역 속에서의 직관적 지식의 가능성과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내적 정관의 부적합함으로 인한 상징주의의 대체 불가능성을 지적함으로써, 감각적 삶의 심층에 종교적 삶을 우선적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를 보충함으로서 브룬너는 자신의 독립적인 종교적 인식론을 펴 낼 수 있었다. 만일 도덕의식에 대한 브룬너의 진술들과 그것에 연관되어 있는 초월적 현실에 대한 종속의식이 모순을 포함한다면, 종교적 인식이란 도덕적 규범의식 속에 잠재된 초월적 세계에 대한 인식이라는, 종교 의식에 대한 그의 논거는 일시에 기본토대를 잃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의 정신적 속성에서 연유된 가치인 '내면으로부터'를 상징을 통해서 이끌어 낸 것은 직관적 종교인식에 대한 그의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울러 이것은 그의 초기 사상 안에서 지울 수 없는 주관주의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주석 

1. Emil Brunner, A Spiritual Autobiography, in: The Japan Christian Quarterly, Juli 1955, 4.

2. Emi Brunner, Das Symbolische in der religi?en Erkenntnis. Beitraege zu einer Theorie der religi?en Erkenntnis, T?ingen 1914,

3. 5. 13. 49 ff. 3. A.a.O., 5.

4. Henri Bergson, Einf?rung in die Metaphysik, Jena 1909, 5.

5. Brunner, Symbolische, 8.

6. A.a.O. 129ff; 50 Anm. 1: 브룬너는 여기서 쉴라이어마허가 언급한 감정과 정관의 통일을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룬너의 종교 이해는 쉴라이어마허의 종교적으로 경험되는 절대의존 감정과 개념상 상당히 유사하다; vgl. Friedrich Schleiermacher, Zweite Rede in: ?er die Religion. Reden an die Gebildeten unter ihren Ver?htern, hg. v. C. Schwarz, Leipzig 1868, 22ff.; Glaubenslehre, 3.

7. A.a.O. 1.

8. Johannes Hirschberg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Teil 1, Freiburg 1969(8판), 180-181.

9. Ebd.

10. Franz Anton Staudenmeier, Darstellung und Kritik des Hegelschen Systems aus dem Standpunkte der christlichen Philosophie, Mainz 1844, 845.

11. Walter Kern, Das Verh?tnis von Erkenntnis und Liebe als philosophisches Grundproblem bei Hegel und Thomas von Aquin, in: Scholastik 34, 394-427(1959), hier 399, 413.

12. Brunner, Symbolische, 5.

13. Schleiermacher, Religion (hg. v. C. Schwarz), 33.

14. A.a.O., 43.

15. Anders Nigren, Dogmatikens vetenskarliga grundl?gning, Lund 1922, 69.

16. Immanuel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hg. v. E. Adickes, Berlin 1889, 389, 448; - vgl.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hg. v. K. Vorl?der, Hamburg 1952, 79f.

17. Schleiermacher, Reden, 78, 130.

18. Yrjo Salakka, Person und Offenbarung in der Theologie Emil Brunners w?rend der Jahre 1914 - 1937, Helsinki 1960, 38.

19. Brunner, Symbolische, 131.

20. A.a.O., 13.

21. A.a.O. 15; -vgl. Josef Hasenfuss, `Heros', in: Lexikon f? Theologie und Kirche, 10 Bde., hg. v. Josef H?er und Karl Rahner, Freiburg 1957 - 1965 (2판), Bd. 5, 267.

22. A.a.O., 6, 15, 51; 그리고 역시 E. Brunner, Die Mystik und das Wort. Der Gegensatz zwischen moderner Religionsauffassung und christrichem Glauben dargestellt an der Theologie Schleiermachers, T?ingen 1924 (2판), VI.

23. Ebd.: vgl.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in: Ioannis Calvini Opera Selecta, hg. v. P. Barth und W. Niesel, Muenchen 1952 - 1962 (2판), Bd. 3, 68/70, 446, u. Bd. 4, 191; 4f. 7. 여기서 브룬너가 인용한 "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과 "unio mystica cum Christo"는 그의 칼빈적 경향을 드러낸다.

24. A.a.O. 60.

25. A.a.O. 47.

26 A.a.O. 13.

27. Ebd.

28. A.a.O., 65, 132.

29. Ebd.

30. A.a.O. 11.

31. A.a.O., 17, 49; 역시 W. Windelband, Das Heilige in Pr?udien, T?ingen 1915. 빈델반트는 종교적 체험 가운데의 영의 지각을 종교인식의 본질로 설명했다.

32. A.a.O., 48f.

33. A.a.O., 130.

34. A.a.O., 19.

35. A.a.O. 58, 60.

36. A.a.O. 20-21.

37. A.a.O. 20, 26.

38. Thomas von Aquin, Summa theologia. Die deutsche Thomas-Ausgabe, hg. v. katholischen Akademikervervand, Salzburg-Leipzig 1934 (3판), 1 q. 13, a. 5; Bd. 1. 274.

39. Ebd.

40. Ebd.

41. Hirschberger, Geschichte, 1. Teil, 485.

42. Brunner, Symbolische, 57.

43. A.a.O. 38.

44. A.a.O. 61.

45. A.a.O. 59.

46. A.a.O. 67.

47. A.a.O. 59.

48. Salakka, Person und Offenbarung, 57; Salakka는 k. Jalkanen이 1947년에 Helsinki에서 발간한 책, karl barth in k?itys teologian teht??t?I. 의 30, 33 쪽에서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49. Brunner, Symbolische, 113.

50. A.a.O. 121.

51. A. Ritschl, Die christliche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und Vers?nung, 3 Bde. (1870-1874), Bd. 3: Die positive Entwicklung der Lehre, Bonn 1895 (4판),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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