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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8-21
 제목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우주 중심으로서의 그리스도 신학 - 우주의 심장으로서의 하느님 중심
 주제어  [샤르뎅]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 서 론
        2. 떼이야르 신앙의 핵심
        3. 떼이야르의 그리스도의 본질에 관한 발견
        4. 우주적 그리스도의 충만
        5. 그리스도론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회복
        6. 결 론 

 

 

     1. 서 론 
 
 
떼이야르가 쓴 에세이 가운데 여러 개는 그 이상의 건설적이고 신학적 작업을 위한 구체적 제안을 내포하고 있으며 특히 그리스도론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우주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주를 보는 것은 떼이야르의 비전의 핵심이다. 그것은 기타 모든 것을 풀어주며 그의 생각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면을 나타내는 시각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사상에서 그렇듯이 여기서의 그의 작품은 현대의 종교 사상가들에 의해 심하게 경시되고 있 다. 떼이야르가 살아 있는 동안 견디어 낸 유랑이 어떻게 그의 사후에 영속화되었는지 그것 은 거의 비극적이다. 그의 사고는 가장 앞서가는 크리스찬 신학자들에 의해 오늘날에도 계 속해서 무시당하고 있으며 적어도 앵글로 쎅슨 계의 저자들에 관한 한 이것은 사실이다.

떼이야르의 사상은 현대 영성에 대해서 현대의 저자들에 의해 토론된 적도 없고 신학자들에 의해 언급된 바도 없다. 학생용 최신 신학 교과서들은 그리스도론에 관한 장에서 그의 저술 에 대해 언급조차도 없다. 그렇지만 떼이야르는 현대 그리스도론적 사상에 아주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어떤 논평가가 옳게 논평했듯이 "비록 떼이야르가 신학적 체계 에 어떤 완성은 보지는 못했지만 40년이 넘게 그가 저술한 신학론은 누적적 효과로 인해 현 대에 있어 우주적 그리스도 사상에 가장 인상적 기여를 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그리스론 사 상에 관한 참고문헌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떼이야르의 저술은 신랄하게 논의되 기보다는 그저 묵살 됐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크리스찬 신앙을 재조명하기 위한 그리고 크리스찬 영성의 역동적 힘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대부분을 공급하면서 신학을 연 구하는 위대하고도 명예스러운 전통 안에 우뚝 서있는 그의 과감하고도 용기 있는 사상을 억압하기 위해 어떤 침묵적 음모가 있었던 것처럼 보일 정도다.
 
     2. 떼이야르 신앙의 핵심 
  
지난 장에서 본인은 떼이야르의 신앙의 힘에 관해 그리고 오늘날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필 요한 위대한 신앙에 관해 언급한바있다. 왜냐하면 떼이야르의 신앙은 여러 국면을 갖고 있 었으며 여러 단계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은 맹목적 믿음이 아닐 뿐 아니라 그것 은 지혜와 지력과 결부되어 있다. 그는 "신앙"을 "우리의 지혜를 우주에 대한 일반적 견해 에 결부시키는 것신앙에 대한 심리학적 행동의 근본적 표현(note).많은 시공을 포 괄하므로 인해 모든 분석적 전제(premise)를 훨씬 초월하는 결론을 가능한 것으로 보고 또 더욱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의 지성적 통합을 달성 하는 것이다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 모든 생명은 또 다른 생명으로부터 태어나거 나 아니면 어떤 "전생"으로부터 태어난다유사하게 나는 나의 믿음의 범위 안에서 모 든 신앙은 하나의 신앙으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형태의 태어남은.합 리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믿는다는 것은 하나의 통합을 발전시키는 것이며 그 최초의 기원은 불가사이한 것이다.

 

떼이야르 자신의 신앙은 그의 과학적 연구와 지식 그리고 오늘날 경험되고 있는 현대세계 의 특징들과 하나로 연결된 지적 합성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모든 것과 모든 경험에 내재 하는 신인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깊은 신앙적 믿음이었다. 떼이야르는 우리의 평상적 경 험이건 아니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광대함이건 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갈라놓는 이중적 태도를 용납 할 수 없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느낄 수 있도록"하기 위한 무소부재적 하느님의 현존이 떼이야르의 주 목표였다. 전통적 크리스찬 신심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되었지만 그는 진정한 현대인 이 였다. 까다롭게 질문하는 그의 마음가짐은 개인적 주관성의 깊이를 탐구하고 의식의 건설적 능력을 시험하였다. 그것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과 의혹의 무서운 힘과 우리 자신의 정체 성을 찾기 위한 불확실한 탐사를 경험하였다. 그 보다 먼저 있었던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 실험과 다르지 않게, 떼이야르는 사고의 미개척 분야를 탐구하고 그의 아래로부터 열리는 무서운 심연을 감지하기 위해 그 자신의 깊숙한 속으로 내려갔다.

 

나는 나의 몸의 한계 전까지 다시 들어갈 수 있도록 또한 내게 나 자신의 외적으로 연장할 수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나의 의식을 변화했다. 나는 손에 등을 들고 귀를 기울이며 내 존재의 숨겨진 깊이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이는 내 안에 있는 어두움의 깊은 부분 내에서 계속 흘러가는 흐름의 물의 광체를 볼 수 없을지를 그리고 심연으로부터 떠올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튀어나올 신비한 물의 중얼거림을 들을 수 없는지를 발견하기 위함입니다. 두려움과 취하게 만드는 흥분과 함께 하찮은 내 존재가 생성과정 속의 모든 것 그리고 현 상태의 모든 것의 무한함을 가진 존재였음을 깨달았다. 셀 수 없는 발산이 모든 방향에서 나를 통해 지나갔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 나는 그들이 서로를 만나고 충돌했던 장소에 지나지 안는다. 분명히 나는 자유롭다. 그러나 나의 자유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관계와 규범의 불확실한 질량에 파묻힌, 미세한 점이라는 것이 외에 무엇으로 표현되겠는가? 만일 우리가 우리로부터 물러선다면 표면적인 관계와 반영의 인간아래에 있는, 무의식으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아직은 혼미한 상태의 인간을 발견하고는 무서워하게 될 것이 다.

떼이야르는 사람들이 그들 안에서 "세상의 표정"("the countenance of the world")을 경험 하고 대 우주의 모양 안에서 히느님의 모습을 인정 할 수 있도록 그들을 보다 큰 인식 안으 로 흔들어 깨워 넣고 싶었다. 신앙에 대한 불확실성의 현대적 위기는 그에게 있어서는 사람 들의 마음과 가슴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향한 광대한 진행으로서 그가 예언자적으로 예언 했다. 그는 생각하기를 사람이 자기가 갖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려면 그는(인간) 그가 더 이상 수행할 수 있다는 무한한 능력을 의식 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하며 여기에 따르는 그의 의무를 알아 야 하며 또 이렇게 도취케 하는 경외로움을 느껴야 한다. 그는 모든 좁은 개인적 환상을 버 리고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자기 자신은 우주의 차원으로 연장하여야 한다. 그리고 this even though, his mind reeling at the prospect of his new greatness, 그는 그가 이미 신의 소유물이거나 아니면 그가 하느님 자신이거나 혹은 그 자신이 하느님의 장인(匠人)이라고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들은 비범한 말들로서 특히 우주의 차원에 관해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지식과 연결할 때 더욱 그러하며 그들 자신의 저술의 맥락 안에 놓여 있을 때도 그러하다. 이러한 견해는 1916년 부활주간의 던커크 참호전이 한창이던 때에 표현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그 가 그랬듯이 "세상의 풍요와 가치 안에서의 신앙의 열렬한 고백(profession)으로서"그러 나 세상은 영의 존재와 거대하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힘에 의해 힘을 얻고 활성화되 며, 창조되고 유지되며 앞으로 그리고 위로 이끌려 질 것이다.

이후 그가 생을 마치기 몇 년전, 그는 무엇이든 관통할 수 있고 점차 사방으로 퍼져가는, 불의 형태로 우주의 중심에 계시는 하느님의 diaphany 와 "그리스도, 당신의 마음, 그리고 불" 이라는 그의 신앙을 재확인했다. 그의 유명한 동향인인 Blaise Pascal과 같이, 떼이야르는 신에 대한 우리의 지식 내에서의 사랑과 감정 그리고 지성을 뛰어넘는 마음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경험적이 고 신비로운 신과의 교감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으며, 그를 끌어들였던 불의 개념을 이끌어내 지도 못했을 추상적인 신학적 추론은 아니었다. 1662년 Pascal이 죽었을 때, 그의 옷 속에 서 그의 강력한 영적 경험을 감동적으로 기록한 글이 발견되었다.

 

보라 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그러나 철학자들과 학자들에게
. 그러하지 않은 신 분.
. 확신, 확신, 느낌,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그 들의 하느님이 나의 하느님
이것이 영원한 생명이며, 유일한 진실로
그들이 당신을 알 듯
하느님 그리고 당신이 보내셨던 그 분
예수 그리스도
떼이야르도 유사한 글귀를 그의 사후 옷 속이 아닌 그의 책상에 남겨두었다. 그것은 빛나 는 예수 성심의 그림이었으며 그림의 앞 뒤 면에 나의 Litany(성인호칭 기도)라 쓰여 있었 다. 이것은 하느님에 관해, 그리스도에 관해, 그리스도교의 정신에 대해, 예수와 그의 마음 에 대한 생생한 표현이었다. 나는 이 문구의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진화의 하느님


그리스도, 그리스도화(the christic, the trans-christic)
성심잔화의 원동력
. 진화의 핵심
. 물질의 핵심
. 하느님의 심장세계의 열정
. 그리스도교의 activant모든 에너지의 핵심
. 세계 심장의 심장
. 최후의 그리고 우주의 에너지의 초점
. 우주발생의 광활한 공간의 중심
. 그리스도의 성심, 진화의 핵심,
. 나를 당신과 하나되게 하소서

 

이 글은 떼이야르 일생의 신앙, '세계는 심장, 즉 중심을 가진다'는 그의 열렬한 믿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생성이라는 무한한 우주의 작용은 초점, 지주, 그리고 하느님 심장의 신성 한 불을 가지며 사랑은 세계가 필요로 하는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제공한다. 이러한 에너 지의 핵심은 사랑의 잠재력이 눈부시게 변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힘과 불을 통 해, 그리스도교를 통해 활성화되고 개발되어야 한다. 떼이야르는 그리스도교를 진화의 종교 로, 하느님을 진화의 신으로 이해했다. 1953년, 떼이야르가 죽기 2년 전, 그리스도왕 대축일 에 이 "진화의 하느님"이라는 개념에 대해 간단한 글을 적었다. 그 안에서 그는 처음으로 불행히도 그리스도교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덜 개발되었거나 과거 지향적인 집단의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신앙이 굳은 자들에게 그리고 심지어는 수도자들에게도 그리스도교는 현대 영혼들에게 어느 정도 피난처를 제공해왔으나, 더 이상 이끌어가거나 만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으며, 그것들은 믿음과 신앙이라는 관점에서 지체없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떼이야르는 진화의 하느님을 추구하고 있었고, 그 하느님은 우주의 복잡한 차원과 일치하 는 이미지를 소유하며, 아웃사이더가 아닌 원동력으로서의 하느님, 우리가 구성하는 전체 우 주의 과정에 깊숙히 관여한 하느님,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물질과 생성의 형태로 육화된 살아계신 하느님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육화(강생)을 통한 하느님과 세계의 일체화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것은 떼이야르가 그리스도교를 우리가 알 듯 서구의 그리스도교가 아닌 좀 더 포괄적이고 참여적인 그리스도교, 미래의 종교, 진화의 종교, 행동 의 종교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진화는 진행중인 사건이며 "그리스도의 오심" 또한 진핸 중인 과정이며 사건이었다. 그 리스도의 오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충족되지 않은 것이었다. 1953년 그는 그의 저술에서 사고(thought=인간은)는 배타적으로 지구상에서의 현상이다라는 생각을 더 이상 우리가 심 각히 인정할 수 없는 우주라는 공간 내에서 그리스도의 행적을 단순히 지구라는 행성을 위 한 구속으로 한정시킬 수 는 없다. 우리를 만드는 복잡함과 인식의 우주적 움직임의 실체 를 지각하는 모든 이들의 눈에는 고전적 신학에서 표현되는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우주로 집중되기에는 천문학적으로 제한적이고 비본질적이다.

그렇다면 떼이야르에게 그리스도란 누구인가? 그리스도 사건은 무엇인가? 오늘날 그리 스도교에서 그리스도의 중요성에 관한 그의 강조와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이해에 관해 이야 기해 보기로 한다. 
 

  3. 떼이야르의 그리스도의 본질에 관한 발견 

떼이야르의 이해 중 독특한 것은 우주적 그리스도의 개념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중 심적인 것으로 그는 우주를 신격과 인격에 이은 그리스도의 3번째 성격으로 주장했다. 우 리는 "하느님의 강생(또는 육화)"의 은유나 신비로 표현되는 육화하신 그리스도론에 관한 수 많은 현대의 논쟁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그러한 논쟁으로부터 너무나 글자그대로 이해 되어지는 육화의 교리가 어떻게 공격받고 있는지 의문해야한다. 또한 현대 신학논쟁이 아직 도 고전적인 신학의 영역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갖는가를 의문해야한다. 고전적인 신학 은 고정적이고 억압되어 있는데 그것은 고전신학이 존재신학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존재신 학은 오늘날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이 육화신학에 대한 호의적인 재해석이 급하게 필요하다면 떼이야르의 사상이 어느 정도의 영감을 제공할 수 있다. 오늘날 과거에 그리스도교에서 인지해왔던 그리스도의 여 러 모습보다도 서로 다른 나이와 문화 속에서 표현되는 수많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접하게 됐다. 고전적인 칼세도니아의 그리스도론은 너무나 배타적이고 획일적이어서 신앙에 의해 경험되는 서로 다른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있는 다원적인 그리스도론에 대해서 단호했다. 서로 다른 그리스도의 모습은 단지 교의에 의한 그리스도만이 아닌 신심과 헌신의 그리스 도, 금욕과 신비의 그리스도,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진보주의의 그리스도, 평화와 정의의 그 리스도, 사랑과 용서의 그리스도이며 화해와 치유의 그리스도이며 변화와 부활의 그리스도 이다.

 

떼이야르는 서로 다른 문화 내에서의 그리스도의 중요성에 관해 특별히 의문을 갖지 않았 으나 육화를 우주적이고 지속적인 과정, 그리고 경험과 배경이 결합해야하는 과정으로 이해 했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말씀은 책이나 성스러운 문학 내에서 말씀되어진 것이 아니라 성취되고 충족되고 보상되어야하는 모든 것들, 모든 창조된 것들, 모든 사물 내에 구성원으 로 존재하시는 육화된 말씀이었다. 하느님은 물질과 우주, 피조물과 생명체 내의 육화이시 다. 그리스도의 강생(육화)은 우주의 차원으로 확장되었으며 이것이 우주확장의 비밀이다. 그가 "The Mass on the World"(세상의 미사)에서 기록한 바와 같이 "나의 하느님, 당신의 강생을 통하여 만물이 강생합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육화이다." 우리는 모두 함께 "하나 의 세계를 잉태한다. 우리는 각각 나름대로 소우주이며 그 안에서 여러 강도의 빛과 그림 자를 가진 독립적인 육화이다." 떼이야르는 그의 주변 만물이 "말씀의 몸이며 피(blood)"라 믿었다.

 

그러므로 떼이야르의 영성은 발전과 생성의 과정 내에서 우주를 통해 신으로 나아감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진화의 과정은 창조의 관점에서 우주적이며 그리스도적이다. 이것은 그 시작이 떼이야르가 "그리스도-오메가"라 부르는 완벽한 충만을 향한 발전의 과정이었다. 이 개념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성경과 전통에 기본한 믿음에 대한 그의 비전과 현대과학의 진화적인 시각의 종합으로부터 오는 산물이었다. 떼이야르의 성서적 참고문헌은 사도 바오로의 우주적 찬송과 사도 요한의 복음서이다. 그의 학교 교육은 그리스어에 대한 착실한 교육을 제공했으며 이후 1908년부터 1912년까지 Hastings에서 신학생으로 희랍어를 배웠다. 그의 신학적인 교육에는 그리스어로 쓰여진 신 약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것이 모든 창조물의 일치에 대한 그의 경험이 바탕이 된 문구, 그리스도와 창조를 논하는 문장의 요약을 작성케 했다. 특히 골로사이서에서 사도 바오로 의 찬가는 그를 뒤흔들었다. 그는 육화라는 사건은 과거의 화석상태에서 현재의 삶과 자연 을 통해 성숙의 미래로 향하는 생명의 밀도와 연관을 가진다고 느꼈다. 살아있는 물질, 에 너지와 영혼의 지속적인 흐름과 다른 모든 창조물은 성스러운 삶에 의해 생명을 얻은 우주 적 연결이었던가? 이것은 세상의 영혼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는 육화된 존 재를 위한 기회였다.

 

떼이야르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비적 신심은 예수의 인성에 대한 생생한 응답이었다. 그 것은 인간적인 친밀감과 감상적인 아름다움의 헌신이었다. 이것은 초기의 저술에서 잘 표 현되며 그 안에 그 자신의 기도를 삽입했고 가끔 예수의 이름을 되뇌었다. 2장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얼굴과 눈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물질의 세계속의 그리스도"라는 세 개의 이야 기로부터 한 문구를 인용했다. 주요 에세이인 "The Mystical Milieu"(1917)에서 떼이야르는 모임의 연속적인 집단을 감동시키는 신화의 발전을 묘사했다. 이 묘사는 그의 내,외적 여정 을 반영한다. 그는 이 에세이를 가장 절정인 상태에 대한 표현이 아닌 "신비주의의 시작 "이라 불렀다. 이것은 불의 우주를 통해, 하느님의 편재하심으로 절정에 이르러 예수라는 분으로 집중되고 모여지는 영의 현존과 함께 하는 여정이었다.

 

그의 힘은 모든 에너지를 활성화시킨다. 그의 생명은 다른 모든 생명을 취하여 그 자신 과 유사하게 만든다. 주여, 처음부터 당신이 말씀하신 "이는 내 몸이다"('Hoc est corpus meum'), 제단의 빵뿐만 아니라 은총과 생명의 영을 주신 우주 내의 만물이 당신의 것이며 신성해집니다. -신성했으며, 신성하며, 신성할 수 있습니다. 모든 현존이 당신이 내 곁에 계심을 느끼게 합니다. 모든 접촉이 당신의 손에 의한 것이며, 모든 필연이 나에게는 당신 의지의 진동으로 전달됩니다. 이것은 진실이고 내 주변의 모든 것 이 나를 위해 존재하며 당신 핵심의 실존입니다. 예수여,

모든 진실과 선으로부터 나오는 광체를 마주할 수 없어, 주님. 당신 얼굴을 볼 수 없습 니다. 당신의 신비로운 몸 -당신의 우주적 육체- 의 비밀 속에서 당신은 인류를 이루는 수 많은 세포 하나 하나를 움직이는 기쁨과 두려움의 반향을 찾고 계십니다.

 

내가 당신을 생각할 때, 주님, 어디에서 당신을 좀 더 찾을 수 있을지, 그곳에서 내가 당 신을 기대할 수 있을지, 내가 사랑하는 이가 당신인지 아니면 다른 모든 이들인지, 내가 정 말 고통스러운지 조차 판단할 수조차 없습니다. 모든 애착, 모든 욕망, 모든 소유, 모든 빛, 모든 조화, 모든 열정이 나와 당신, 예수님 사이의 표현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빛나고 있습 니다. 예수여.

이것은 떼이야르가 예수의 손에 의한 접촉, 그의 얼굴의 광체, 그의 육신의 신비함을 청함 으로 예수의 형상을 얻으려 했음을 생생히 나타내는 문구이다. 예수는 떼이야르가 "우리를 자극하고 감동시키는 생명체, 그 생명체의 바다"라고 표현한 신성함이 가득 찬, 일치의 인물 이며, 그의 신비한 육체가 "우주적 육체"인 인물이었다. 떼이야르는 희랍교부들을 존경했으며 그들의 업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강생과 성화, 특히 인간의 신격화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에 관심 있어 했다. 떼이야르는 창조, 육화 그리 고 구속을 한순간에 완성되는 하나의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것들을 모든 것이 한번 에 충족되는 충만 내에서, "우주의 완성"("pleromization')의 극대화 속에서 진행중인 과정으 로 파악했다.

 

창조, 강생, 그리고 구속. 오늘날까지 이 세 가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적인 신비는 역 사 속에서 불변의 연관성을 가지며 서로 독립적으로 남아 있었다. 만일 이 세 가지 비밀이 과거의 우주(정적이고 제한적이고, 재구성을 위해 언제나 열려있는)로부터 현대의 우주(시공 에 의해 하나의 진화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진)로 전이되어진다면, 그들은 하나의 신비로 축소될 것이다. 그것은 창조는 하느님에게 있어서 그의 창조물과 자신의 일치이며 다시 말 해 강생으로 세상과 연관되어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강생 되어짐"은 힘들게 모아지는 다 원성에 내재한 고통과 악과의 공유되어질 운명은 아니지 않을까? 창조, 강생, 구속;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세 가지 신비는 하나이며 같은 기초적인 과정으로 실체화된다. 4번째 신 비가 그것이며 하느님 내에서의 결합의 신비(혹은 Pleromization)이다.

그는 이 우주의 완성(pleromization)을 삼위일체로 연관지었으나 실제 진정한 삼위일체론 자들은 좀 더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 우주적 발전과정을 성령의 아들을 통해 아버지로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것은 The Mass on the World라는 작품에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는 우주의 신, 우주적 성변화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강렬하고 개인적인 표현의 일부를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미사의 기회가 없었던 1923년 당시의 중국 황하 주변에서 기록되었으 며, 떼이야르는 위대한 시적 능력으로 전세계의 하느님에 대한 봉헌을 표현했다. 이 글들은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성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물과 생명, 우주의 모든 것을 의미했음을 보여 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에 의해 고갈되지 않으며 그 이상을 의미했다. 그는 창조물의 거대한 위대함을 포함하는 완전함이었다.

 

떼이야르가 The Mass on the World에서 수긍했듯이 "내가 볼 수 있는 한, 주 예수여, 당 신은 2천년 전에 사셨던 그 분이시며 위대한 도덕의 교육자, 친구이며 형제. 나의 사랑은 왜소하며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 이런 많은 것들, 위대한 영혼, 선택된 영혼을 갖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 그것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지구상의 모든 힘으로부터 앞을 비 추게 하는, 그리고 떼이야르가 복종했던 우주의 주인으로 만드는 부활의 힘보다도 위대한 것이다. 이러한 우주 내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위치는 그가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불 타오르는 세상의 모습일 때까지, 모든 측정이상으로 거대하고 몸의 형체가 녹아 없어지는 불의 용광로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떼이야르는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또 다른 인격화된 표현을 담은 위대한 힘과 아름다움 의 기도를 썼다.

영광의 주 그리스도: 그 신성함이 물질의 구렁텅이와 다양한 사람의 수많은 성격이 만나 는 눈부신 중심에서 은밀히 퍼지고 살아 있습니다.; 그 힘은 세상만큼 무자비하고 생명체만 큼 따뜻합니다.; 당신의 이마는 눈만큼 희고, 당신의 눈은 불과 같고, 당신의 발은 녹은 금보 다 빛나고, 당신의 손은 별을 감싸 안았습니다. 당신은 처음이자 마지막, 살아 계시며 죽었 다 다시 사신 분, 모든 존재의 형태, 모든 에너지, 모든 온화함, 모든 아름다움의 넘치는 결 합, 내가 우주만큼이나 큰 욕망으로 외치게 하고픈 분, "당신은 나의 주인 , 나의 하느님".

이것은 신앙과 복종의 엄청난 선언이며 인도의 경전(Indian Vedas)을 purusha 라 칭했던 우주적 인간에 대한 비전이었다. Anne Hunt Overzee는 그녀의 저서 The Body Divine에 서 어떻게 떼이야르의 신성에 관한 비전의 형성이 11세기 힌두의 종교가인 Ramanuja가 'The Bharavad Gita'에서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놀라움이라 표현했던 Vishnu의 우주 적 시각과 유사한가를 설명했다. 두 종교가는 -즉 11세기 힌두인 Ramanuja와 20세기 그리 스도교인 떼이야르- 모두 신의 유일하고 적절한 형태로서, 그의 육신인 세상에 널리 퍼지고 세상을 끌어안으며 빛나게 하는 것으로 보았다. 신의 육체인 세상은 현재 생태학과 성사적 신학의 은유로, 지금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보다 많은 통찰력과 물질이 두 신학자에 의 해 표현되었다.

 

그리스도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을 뒷받침하도록 하느님의 우주적 영향력 과 편재하심을 표현하는 것이 떼이야르에게는 큰 관심사였다. "주 예수여, 그 어떤 것도 당 신 외로부터 살 수 없으며, 우리 모두 만물이 살고 그들의 모습을 가진 우주적 중심 (universal milieu)이신 당신 안에 존재합니다." 만일 다른 이들이 맑은 영혼으로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선언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면, 떼이야르는 스스로의 과업으로 우리 주변을 비추 시는 영혼, 당신 육체의 신비, 물질 세상에 육화되신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선언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을 위한 "미사"의 성찬식은 다음과 같은 글로 끝나고 있다.

 

그것은 최장의 연장 내에서 당신의 육신입니다. 즉, 당신의 힘과 내 믿음을 통하여 영광 스러운 삶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 모든 것이 용해되는 시련으로 변하는 세상입니다. 깊은 곳에서 우러러 나오는 신념과 자의 종교적 맹세, 나의 종교적 입지, 그리고 나의 얄팍한 과 학적 지식과 함께 내가 나 자신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여, 이 봉헌과 함께 나는 살 기를 원합니다. 나는 그 안에서 죽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비전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편재하심을 끝없이 깨닫도록 이끌어 주 며, 세상을 경험하고 발전하고 발견함으로서 점점 더 그리스도를 향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다가가려는 축복된 욕망으로 이끈다. 그리스도안에서 만물을 추구하고 만물 안에 서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것이 떼이야르가 일컫듯 'pan-christism'이며 'panchristic 신비주의 '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것은 만물에서 신을 구하고 신으로부터 만물을 구하 는 Ignatian theme의 놀라운 전환이다.

 

그의 연례 피정에서 떼이야르는 성 이냐시오(Ignatius)의 "영신수련"('The Spiritual Exercises)을 했다. 16세기 초 예수회의 창시자들에 의해 쓰여진 이 핵심문헌과 영적 고전 은 활동적인 사도시대의 노력과 개인의 영적 성장을 추구하도록 하는 이냐시오(Ignatius)의 역동적 영성을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떼이야르는 이러한 메시지를 고정적인 세계로부터 생명의 우주적 흐름을 잡을 수 있는 진화의 세계로 전환시켰다. 하느님의 양면성은 그리스 도 생성론('Christogenesis')이라 불리는 과정, 충만으로의 진화적 발전이 연관된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경배와 선언과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떼이야르가 이야기한 우주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오메가라는 새로운 영역이 추가됨으로 고전적인 그리스도론이 확장된 높은 단계 의 그리스도론이다. 
 

      4. 우주적 그리스도의 충만 
  
우리는 떼이야르의 작품에서 그리스도의 육체에 대한 신학을 발견했으며 이는 더 연구할 가치가 있다. 나는 간단히 몇 가지만 언급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육체는 떼이야르의 글 속에서 서로 다른 여러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나자렛의 예수라는 인간을 의미하고 동시에 인류와 물질세상의 중심이 되는 육체이다. 그것은 만물 속의 그리스도적 요소이며 유기적 그리고 실체적 중심이다. 그러므로 만물은 공간이며 그리스도가 채울 수 있는 기회이다. Christopher Mooney는 1966년 그의 저서 "떼이야르와 그리스도의 신비"에서 떼이야르의 그 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자세히 분석했다. Mooney는 떼이야르의 사상은 그리스도론에서의 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촉매로 평가했으나 아직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16년 후 1982년 James A Lyons은 '떼이야르와 Origen의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비교 연구 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교부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추적함으로 서 이후의 그리스도론적 성찰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Origen이나 떼이야르 모두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시각이 신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Origen은 그 주제를 플라톤 철학의 관점으로 다루었으나 떼이야르는 신학자들이 아직 인지하지 못했던 그리스도론의 새로운 발 전이 가능케 하는 진화론적 방향에서 접근했다. 그런데 그러한 발전은 현대과학의 관점, 특 히 진화생물학과 천문학에서의 현대적 이해를 필요로 했다. Lyons는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개념은 그리스도론에서의 논쟁, (특히 그가 진정으로 필요하고 진행중인 논쟁)을 불러 일으 켰다. "이것은 과거의 신학적 전통을 세웠던 사건의 지속이며, 성서적 자료를 기본으로 했 을 뿐만 아니라 우주에 대한 현대적인 시각이 그리스도교 믿음에 영향을 주었다는 관점에서 합리적인 일이다. 이것은 우주가 얼마나 크고 예상하기 힘들다해도 만물의 중심에 그리스 도께서 계신다는 그리스도교의 믿음이 지속되는 한 필수적인 논쟁이다. 우주적 그리스도의 개념이 이제 막 교회의 가르침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이것은 이제 지속적으로 진행될 논쟁이 다."

 

떼이야르는 1916년 그의 첫 글에서 모든 발전과 성장의 중심으로서 그리스도의 시각을 표 현했다.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죽기까지, 모든 것은 그리스도가 완전히 이루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 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아직 그의 추종자들이 믿는 사랑과 인간미에 대한 그의 장막 중 마지막을 미완으로 남겨 두었다. 신비의 그리스도는 아직 그의 완전한 성장을 이 루지 않았다. 그리고 우주적 그리스도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 모두 동시에 존재하며 생성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창조행위가 발생하는 생성의 과정의 연장으로부터 기인한다. 그리스도는 만물의 자연적 진화의 종점이며 따라서 진화는 거룩한 것이다.

이 구절은 인간 예수가 어떻게 우주적 그리스도, 신비의 그리스도로 성장하는가와 만물과 진화하는 모든 탄생이 그와 어떻게 연관되어지는가를 분명히 보여진다. 저자가 밝혔듯, 떼 이야르는 2천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인간 예수에 관해서는 관심 밖이었다. 1926년 그의 친구에게 쓴 글에서,

나는 스스로를 참인간과 예수의 정신적인 면의 영광에 국한시키는 복음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만일 예수가 아버지이며 어머니, 형제, 자매 이상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일이 나에게는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기 대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고, 현존하며 일반적이고 물질보다 실제적인 그리고 내가 존경할 수 있는 힘이다. 다시 말해 내가 그에게 원하는 것은 우주이다. 완전하고 집중적이며 존경받 을 수 있는. 그것은 그리스도의 역사적 탄생을 표현하는 첫 세 복음서의 비할 수 없는 가 치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세상의 시간들만큼 거대한, 부활한 그리스도를 잘 표현 한 성 요한과 성 바오로를 좋아하는 까닭이다. 당신은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의 첫 부분(1장 12절 - 23절)을 그 의미를 이해하며 읽어보았습니까? 그곳에 그리스도는 세상의 참 영혼이심이 드러나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1926년 10월 30일 그가 중국에서 Ida Treat에게 보낸 글 속의 내용이다. 1918년 그는 이 미 그의 에세이중의 하나에 'The Soul of the World'라는 제목을 정했는데 여기서 그는 이 영혼을 분명한 실체로 표현했고 세상 에너지의 중심으로 이해했다. 떼이야르는 영혼이 그 리스도에 의해 신성화된 우주의 일부분과 연관되어진 것으로 이해했으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 영혼은 살아 있고 강인한 것으로 인식되리라 믿었다. 1920년 이후 그 는 우주적 그리스도를 언급했는데 그는 이를 단지 도덕적 그리고 신앙적 중심으로 뿐만 아 니라 모든 실체적 그리고 정신적 성장의 중심으로 그리고 온 우주의 유기적 중심으로 이해 했다. 그 신학자들이 "신비스러운 육체"를 실체적 의미가 아닌 수사적 의미로 해석하고 '재 판관으로서의 자리를 초월하는, 유기체의 주교'로 인식하지 못함을 비난했다. 그는 신약의 사도 바오로와 요한의 글을 인용했는데 그 글들은 그리스도의 우주를 초월한 위대함이 잘 표현했으며, 겁쟁이들은 여러 차례 반복되는 이 뚜렷한 진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라고 표현 했다. 바오로의 '신,인 양성의 그리스도'를 떼이야르는 우주적 그리스도, 세상 속에 우주적 육화로 현존하는, 전 우주내의 정신적인 존재의 중심으로 이해했다. "강생이라는 단어의 존 재는 우주적 구성원으로 만물을 감동시킨다. 이는 끝없이 친밀하고 동시에 끝없이 거리를 가진 중심으로, 사물의 마음을 비춘다. 몇 년 후 그는 이것을 Super-Christ 라 했으며 이는 또 다른 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상과 인류의 차원을 초월한, 우리 마음을 일깨웠던 위대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창조를 초월하는 우주적 힘을 외적으로 그리고 재판관의 의미로 해석한 것이 아닌 실제적으로 그리고 문헌적으로 만물을 채우시는 그리스도, "Christ the Evolver"이다. 그리 스도야말로 세계를 완성시키고 완전함에 영향을 미치시는 분이시다. 그는 물질과 영혼은 전 체 구조물에 일관성을 주시는 분이시다. 떼이야르에게 있어서 진화, 과학적 연구와 미래라 는 개념의 지혜가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삭아들지 않는 그리스도의 빛은 그들의 열정을 지속 하도록 운명지어진 중심적인 핵으로 뚜렷해지고 있다.

떼이야르에게 있어서 우주적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와 우주의 결합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인격의 탄생은 아니었으나 현대과학의 관점에서 재해석되는 강생의 신비에 대한 필연적인 발전이었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이 그리스도가 그의 힘과 우리의 신앙이 기본이 되었던 상태로 유지되기를 원한다면 진화의 가장 최근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과학과 철 학의 결합된 압력아래서 우리는 자유와 의식으로 점차 발전하는 행동의 시스템으로 세계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받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을 거역할 수 없고 수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설명되고 느껴 지고 결정되어지는 '일반적인 우주적 중심'이라는 단어가 정의되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의 풍요로움을 인식하고 자리 매김 해야하는 우주적 진화의 중심 내에 있다. 다른 어떤 형 태의 우주도 없으며 다른 우주의 장소도 없으며 그의 신격이 어떤 모습이든, 그리스도교 교 리가 그리스도에게서 기인한 굳건함과 활동성을 실행해야 한다. 세상의 정점을 드러냄으로 서 진화는 그리스도, 바로 그분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며 세상에로의 방향과 의미를 제시함 으로서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우주적 그리스도를 인식하고 받아들임은 새로운 신학적 방향을 요구하고 그리스도교 신앙 또는 떼이야르가 신-그리스도교 신앙이라 했던 것들의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 현대 세계와 접함으로서 새로워진 그리스도는 복음 속의 그리스도와 동일한 인물이다. 사실 더 위대한 그리스도이다. 떼이야르 역시 그의 위치에 관해 기술했다. "나는 개혁자로서 다시 접근해 왔다. 사실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 바오로가 아낌없이 표현된 우주적 속성 (attribute)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그리스도교가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될 때만 그 본 래의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점점 선명하게 인식해 왔다.
 

     5. 그리스도론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회복 
  
떼이야르는 스스로를 우주적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생각했으며 우주적 그리스도가 좀 더 인정받게 되면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영역, 내적 자유와 팽창의 영역으로 이끌 것이라 확신 했다. 그는 그자신의 교회에 대해 진정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은 없다라고 할만큼 그러 나 교파를 수호하는 견지에서의 혹독한 비판자였다. Henri de Lubac에 따르면 1929년 이 래로 그의 혹독한 비난중의 하나,(사실은 제일 혹독했던,)가 시작되었다. .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반복되는 음성, opportu et importune, 즉, 교회는 말뿐인 신학, 양을 중시하는 성찬중시주의, 교회와 연관된 지나친 헌신의 인위적인 세계로부터 인류 의 진정한 영감으로 스스로를 재 갱생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이다. 물론 나도 이 문제의 역설을 충분히 알고 있다. 만일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를 필요로 한다면 예식과 운영 그리고 신학까지 교회에 의해 가르쳐지는 그리스도를 인정해야한다. 그러나 나는 이 제 그리스도인의 추진력으로 성직자들의 손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지켜 세계를 구해야 할 시 점이 왔다는 증거를 회피할 수 없다.

그는 과거로 회피하는 사람들, 신앙적 활력으로 생명을 이끌 수 없는 죽은 문장의 신학저 술가, 진실은 백번 이해되었으며 살아있는 핵심이 없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다. 떼이야르에게 아직 그리스도교의 믿음과 영성은 그리스도에 대한 확대된 이해로부터 새로운 힘을 얻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다:

 

우주적 그리스도의 경이를 분명히 함으로서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가치를 얻는다. 그것이 거대하고 확고하며 확신에 찬 목표를 가진 인류의 열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미 래의 위험 중 가장 심각한 불확실성, 무질서, 그리고 혐오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그 것은 사람들의 노력을 일깨우도록 불을 준다. 다시 말해 현대의 필요성에 가장 맞는 믿음 의 형태를 보여준다.; 즉, 내가 진화의 믿음이라 불렀던 만큼의 발전을 위한 믿음.

떼이야르는 그리스도신학의 회복, 그리스도인의 삶과 거룩함의 회복, 그리스도교의 영성과 신비주의의 회복을 위한 제안을 반복했다. 사실 이것은 그가 회복이라는 주제에 관해 가장 관심을 기울여왔던 생의 끝머리에서였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중국에서 유럽으로 돌아가며 그는 현대세계와 전통적 그리스도교사이의 차이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우리 는 우리 안에 내재한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다해 우리종교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한다 그리스도론은 결국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새로운 차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 그는 그리스도교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심각한 전환점의 시기에 있으며 그 리스도교 존재의 자연스러운 주기의 끝에 다다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의 우주적 성질을 반영함으로서 첫 5세기동안의 그리스도론 발전의 끝나지 않은 과업을 끝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는 새로운 "Nicea"(니체아 공 의회?)를 요청했으며, 이것은 그리스도와 삼위일체를 다루려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와 우주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한 것이었다. 세 가지 그리스도의 모습은 인식되어야하고 강화되어야 한다.; 역사적, 우주적, 물질계를 초월한 그리스도. "21세기의 그리스도"의 저자 Ewert Cousins는 떼이야르의 우주적 그리스도의 시각은 그리스도의 신비 를 채우는 중요한 요소이다라고 했다. 이것에 관해 떼이야르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그 리스도교는 고정된 시스템 이상의 것, 보호되고 받아들여져야 하는 진실의 시스템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계시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존재로서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정신적인 자 세를 표현한다. 이것은 만족되어야 하는 인류의 성장하는 인식과 함께 그리스도적 인식의 발전이다. 떼이야르에게 있어서 이렇게 성장하는 인식은 영성의 충만한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현재 그러한 발전의 징표를 볼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러한 영적 발전의 모습을 느끼기 어려운 만큼 투쟁, 불화, 가난, 폭력, 불의, 의심을 경험하고 있다. 지금까지 피정과 영 적 운동 내의 영적인 고전의 출판에서 그러한 성장과 영성적으로 회복된 관심의 징표를 느 낄 수 있다. 우리의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문화는 많은 사람들을 불만족으로 이끌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 되는 길과 충분한 비전을 갈망하고 있다. 많은 20세기의 신인본주의가 우리 를 반인간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많은 유신론들이 구조적으로 넓은 지 평선과 cosmogenesis에 닫혀 있으며 더 이상 세상과 함께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성을 충분히 발달시키지 못하고 있다.

떼이야르의 방대하고 복잡한 작품들 속에는 체계적인 형태를 갖춘 사고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제안, 탐구, 환기된 성찰이라는 것들로 표현되는 신학에 대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주요 관심사와 투신은 큰 의미에서 변증론적이고 전교자적이며 깊은 사목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생각들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될 것인가? 또는 그들이 다른 신앙인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의 우주적 그리스도가 너무 나 독선적이고 지배적인 개념이어서 다른 종교인들이 꺼려하지 않을 것인가? 이러한 것들 이 다음절에서 생각해 봐야할 질문들이다.

 

사람은 많은 다른 수준에서 떼이야르에게 접근할 수 있다. 그는 카톨릭 교회와 예수회의 신앙이 깊은 일원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교 복음의 증거자이며, 현대문화에서의 신의문제를 다루었으며 과학과 신앙과 신비 사이의 접합점에 대한 시급한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강생에 대한 믿음 - 세상과 인류 내에서의 강생, 우주와 물질 내에서의 강 생 -,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핵심에 중심을 둔 비전, 그리스도교 신앙의 영성적으로 변화하 는 힘과 역동성에 관해서는 다른 이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났다.

떼이야르는 위대한 성스러움과 고통과 함께 이 신앙을 고수했다. 그것은 쉽게 획득된 믿 음이 아닌 노력과 투쟁과 희생의 결과였다. 그의 영성은 단지 일치와 성스러운 경배에 그 치지 않고 고통으로부터 성장한 힘과 저항의 영성이었다. 그의 영성은 신선하고 본질적인 신비의 영성, 그리스도적인 인식이었다.
 

      6. 결 론 
  
이상 우수라 킹 저서의 『모든 것으로서의 그리스도 - Christ in All Things』에서 소개된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신학사상의 한 부분을 소개하면서 결론으로 떼이야르의 "Prayer to the Ever-Greater Christ"의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주여, 내 일생의 모든 위험을 통하고 내재한 충동으로 물질의 우주 중심에 당신을 세우려 했던 그리고 당신을 찾았던, 중단 없는 나의 여정으로 인해 불과 함께 타오른 우주적 투명 함의 찬란함 속에서 나의 눈을 감는 죽음이 찾아 올 때 나는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일치와 일관성의 주여, 당신의 뛰어남과 그 중심은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과 당신이 채울 수 있는 신비한 물질의 심장의 수준까지 지속성의 잃어버림이나 왜곡 없이 성 장할 수 있는 힘입니다. 내 어린 시절과 내 마지막 날의 주여, 당신과 지속적으로 태어나는 우리들과의 관계를 완성하소서.

한때 불과 Diaphany였던 광채 속에서 당신의 우주적 현존을 드러나게 하소서.

오 위대하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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