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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7-25
 제목  프란시스 자비에르(Francis Xavier, 1506~1552)
 주제어  [일본] [인도] [중국] [선교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A. 배경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후 유럽의 대다수 지역이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이탈해 선교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로마 카톨릭은 유럽에서 입은 손실을 아시아, 아프리카 신대륙쪽에서 보상해보려고 선교활동에 전념했다. 즉, 로마 카톨릭종교개혁 이후 선교확장의 전기를 마련하고 신대륙, 인도, 극동에까지 헌신적인 수도사 선교사들의 열정에 힘입어 교회를 크게 확장한다. 1535(1540?)년 설립된 예수회(Jesuit)는 이 선교사역에 동참할 뿐 아니라 로마 카톨릭의 개혁운동을 주도해갔다. 스티븐 니일(Stephen Neill)은 이 예수회의 설립에 대해 “로마 카톨릭의 선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페인의 귀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of Loyolla)와 몇몇 헌신된 자들에 의해 설립된 예수회는 고도의 조직화를 통해 발전하였고, 교황과 로마 카톨릭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다. 로욜라와 함께 예수회 창립을 주도했던 6명 중 한 사람이 프란시스 자비에르(Francis Xavier)이다.


B. 출생과 가족

  자비에르는 스페인의 하류귀족(Basque 가문)인 아버지와 어머니 마리아 데 아스필구에타 사이에서 팜펠루나로부터 48km 떨어진 자비에르라는 성곽도시에서 1506년 4월 7일에 태어났다. 그의 형들은 군대에서 일했으나 자비에르는 글 공부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 주었다.

 


C. 학교

  철학과 신학에 관심이 많아 1525년 파리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530년 스트바르대학에서 교수 자격 학위를 획득하고 파리대학교의 도르망 보베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그러던 중 그는 카톨릭 선교에 열심인 15세쯤 위인 로욜라를 만나게 되고 영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D. 선교사로 결심한 동기

  로욜라는 세상적 야망과 은총의 소명 사이에 갈등하는 자비에르를 만났고 그를 강권했다. 이에 자비에르는 1534년 8월 15일에 몽마르트에서 빈곤과 순결을 서약하고 예수회를 창설한 7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카톨릭 신앙을 전 세계로 전파하는 일에 헌신하게 된다.


E. 인도에서의 선교 활동

  자비에르는 인도제국의 사도적 사절로 임명한다는 교황 바울 3세의 편지를 가지고 1541년 4월 7일 인도로 파송된다. 1년 이상의 항해후인 1542년 5월 6일에 인도의 항구도시 고아(Goa)에 도착한다. 그는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되어 있는 문화와 환경에서 막막함을 느끼다가 어린아이들에게 집중하는 선교방법을 구축한다. 아이들에 대한 사역은 부패한 어른들에 비해 용이하였다. 그러나 그는 고아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은 오래전에 카톨릭이 전파된 곳이었지만 개종자가 전혀 없는 지역이었다. 기독교에 대한 반응은 카스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지만, 자비에르는 기독교 신앙을 배우기 원하고 세례를 받기 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로욜라에게 더 많은 사역자를 보내주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쓰기도 했다. 그는 세례와 아이들에 대한 사역을 계속 강조하였고, 후계자들에게도 간곡하게 이 사역의 중요성을 강변하였다. 그가 이렇게 이 사역을 강조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사역은 혼자 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며, 자신들이 어린아이들을 양육하여 그들에게 복음전파를 맡기면 더 효과적으로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F. 섬 선교

  1542년 10월에 리세리 해안의 본토인들에게 전도하므로 엄격한 의미의 타문화권 선교사업을 시작했다. 이곳은 파르바스(Parvas)족이라는 인도의 하위계급 족속들이 살았는데 그들의 종교는 일종의 힌두교였다. 여기에서 자비에르는 극도로 타락된 우상숭배의 증거들을 목격했다. 자비에르는 이들을 가르치면서 세례를 베풀었다. 서부 인도에서의 선교기간 중 그는 적어도 3만명 이상에게 세례를 주었다. 마을들을 전전하며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한 손에 우산을 들고 팔에 극한 통증이 올 때까지 세례를 베풀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식량을 헌신했다. 많은 무리들이 그를 따랐고 그때마다 많은 말씀과 기적의 능력이 나타났다. 그는 파르비스 족들을 위해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 아베마리아, 간단한 기도문, 교리문답 등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했다.

  그 이후로 자비에르는 인도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섬들로 관심을 돌렸다. 스리랑카(Sri Lanka)에서는 온갖 위험과 역경 그리고 실망 속에서 전도했다. 그의 선교의 큰 성공은 말라카(Malacca)에서 이루어 졌다. 공중설교를 통해서 병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전도했고, 부단한 위험과 언어의 장벽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사역을 감당했다. 물론 그 곳 주민들의 일부만을 개종시켰지만 이 곳 사역은 후일의 선교활동을 위한 징검다리를 놓게 되었다.


G. 일본 선교

  1548년 그가 개종시킨 사람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인도로 돌아가는 길에 선교사의 도움으로 기독교인이 되고자하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안지로(Anjiro)라는 일본인이었다. 이 섬세하고 날카로운 청년은 자비에르에게 색다른 관심과 충동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본과 일본의 기독교 상황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드디어 1549년 8월 15일 일본 가고시마로 선교를 떠나게 되었다. 인도에서 선교할 때와는 사뭇 다른 선교 여건(집단 세례 등이 불가능하여 주로 문서선교에 치중)과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복음사역의 한계를 느낀다. 그렇지만 그는 일본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듣기 원한다는 것을 발견하여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가 2년 후 떠날 때쯤에는 100명 정도의 개종자가 생겼다. 민요가수이자 익살꾼인 로렌스(Lawrence)라는 일본인을 개종시켰는데 그는 후일에 일본에서 가장 이름있는 설교가가 되었다. 그는 일본인으로서 최초로 예수회 회원이 되었다. 자비에르가 떠난 후에도 일본의 정치상황은 불안정했고, 불교는 쇠퇴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비에르의 후배 선교사들도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었다. 1570년대 많은 일본인이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하였고, 16세기 말에는 신자들이 약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적 혼란에 의해, 1638년에는 카톨릭 교인들이 몰살당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시마바라 폭동, Shimabara Rebellion).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카톨릭은 일본에서 200년 이상 꾸준히 성장하였다.

 

H. 중국 선교와 죽음

  1552년 부활절 주일날 자비에르는 중국을 향하여 배로 떠났다. 그는 아시아에서 중국의 강대한 영향력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이 강대한 나라를 통하여 동양의 모든 나라로 통하는 통로를 마련하게 되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당시 중국은 쇄국정책을 폈고 외국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상륙을 금하고 있었다. 그는 홍콩의 동쪽에 있는 마카오 근처의 작은 섬(산시안)에서 중국대륙을 숨어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그런 중에 그는 갑자기 열병으로 병석에 눕게 되었다. 병세가 악화되었고 임종 직전 혼수상태에서 그의 친구들은 그가 여러나라 말과 방언으로 설교하는 것을 들었다. 1552년 12월 3일 이른 새벽 한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시신은 인도의 고아로 옮겨져 장사되었으며 오늘까지 그의 묘지에는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1622년 성자 반열에 오름).


I. 선교 업적의 평가

  일부 학자들은 자비에르를 사도바울 이래로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생각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연속적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채 동양을 돌아다닌 충동적인 유람자로 평가한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종교개혁기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대표 선교사 였다. 그는 개척선교의 길을 닦은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와 잃어버린 많은 영혼들을 위한 그의 사랑은 누구에게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선교의 필요성에 대한 그의 통찰력과 지구의 한 귀퉁이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려 했던 그의 결단은 견줄 데가 없는 것이었다.


  
참고문헌

최정만. 『선교이해』. 광주: 광신대학교 출판부, 2004. pp. 385-398.

선교한국 Mission Korea 홈페이지 선교사 열전 중에서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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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고리 : 선교사, 일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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