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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6-19
 제목  마틴 로이드 존스의 생애와 사상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Ⅰ.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의 많은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마틴 로이드 존스(이하 로이드 존스로 부른다.) 목사의 이름이 많이 오르내린다. 그 이유는 그가 설교에 있어서 20세기 최고의 설교자로 칭송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로이드 존스의 설교방법에 대해서 발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청교도적 사상에 대해서 발제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틴 로이드 존스라는 한 사람이 이 시대에 청교도로서 어떻게 살았고 그의 사상이 이 시대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는 먼저 로이드 존스의 생애를 다룰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상을 다룰 것이다. 그의 사상을 다룸에 있어서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청교도들이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리차드 박스터이고 다른 한 명은 조나단 에드워드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 두 명의 청교도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그 두 명은 우리가 전 시간에 만나봤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다른 사상적 배경을 다루게 될 것이다. 사상적 배경 후에는 그의 청교도적 신앙과 신학관을 다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저작목록을 첨부하려고 한다. 이제 그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Ⅱ. 로이드 존스의 생애 박영호. 『로이드 존스의 생애』기독교문서선교회. 서울. 2002.


마틴 로이드 존스(Martin Lloyd-Jones)는 1899년 12월 20일 부친 헨리 로이드 존스와 모친 막달렌 사이에 둘째 아들로 웨일즈 지방 카르디프(Cardiff)주의 도날드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1906년 봄에 부모님과 형 해롤드(Harold), 동생 빈센트(Vincent)와 함께 랑게이토(Liangeitho) 마을로 이사해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938년에 웨일즈를 떠나 런던으로 왔다.

그의 아버지 헨리 로이드 존스는 성격이 낙천적이면서도 반면에  도덕적으로는 아주 곧고 영예심이 강직하였고 공상적인 낙천주의자라고 불려지기도 하였다. 마틴은 아버지를 곁에서 칼빈파 감리교회(Calvinistic Methodist)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당시 웨일즈 칼빈파 감리교회는 알미니안파 감리교회와는 전혀 다른 신앙적 형태 칼빈파 감리교회의 특징은 찬송이었다. 옛 곡조와 발라드에 맞춰 찬송시를 노래로 불렀다. 설교를 들으면서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기도 했다.

로이드 존스는 랑게이토에서 4마일 떨어진 트레가론에 있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학생 수는 120명이었으며, 그중 로이드 존스가 가장 어렸으나 차석으로 입학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영어와 역사를 가르치시는 포웰(Powell)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포웰은 로이드 존스에게 역사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하였으며, 학생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도록 유도하였다. 특히 그가 주말에 내주는 숙제는 자기 발견을 하도록 유도하는 질문이 많았다. “여러분이 참석하는 교회의 예배가 시작된 것이 언제인가?”, 또는 “회당은 언제 세워졌는가?”, 또는 “윌리암 윌리암스의 찬송시에서 그가 어떤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지 알아올 것”등의 내용이었다. 윌리암스는 본래 의학도였는데 1730의 부흥 운동 때에 그의 삶에 변화를 일으켜 목사가 된 사람이었다.

1913년 그에게 의미를 주었던 사건은 그의 교회가 칼빈파 감리교 소속 봉사단 단체를 랑게이토에 초대한 사실이었다. 그곳에서 로이드 존스는 전에는 들어볼 수 없었던 폭넓은 설교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한번은 토마스 윌리암스(T. C. Williams)박사와 존 윌리암스 박사가 설교했는데, 그는 그들의 장엄한 설교뿐 아니라, 그들의 훌륭한 인품에 매료당하였다.

로이드 존스는 정치에 대하여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역사와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 그은 일찍부터 의사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1916년에 치룬 시험 결과는 그의 생애에 있어 전환점이 되었다. 즉, 웨일즈 신문에 머리기사로, ‘랑게이토 소년 데이비드 마틴 로이드 존스, 런던대학교 고등부 시험에 6개 과목 통과, 그중 5개 과목은 최고득점’이라고 실렸던 것이다. 그런 결과로 비록 16세의 어린 나이지만 기초 시험과 학장과의 면접에서 당당히 통과하여 1916년 10월 6일에 82명의 학생과 함께 의학 학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에 가정과 병원생활 다음으로 로이드 존스에게 중요한 일은 채링크로스 교회였으며, 또한 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사람으로 후일 장인이 된 톰 필립스 박사가 있었다. 그는 로이드 존스를 1917년 교회 주일학교에 가입시켰고 곧이어 그를 필립스 박사 자신이 인도하는 신앙토론 대화의 광장에 참여시켰는다. 그곳에서의 논쟁은 날카로워 매 주일 오후마다 격렬하였다. 물론 필립스 박사와 로이드 존스는 가장 중요한 발언자였다.

로이드 존스는 1921년 의학공부의 첫 관문인 M.R.C.S.와 L.R.C.P 학위를 6월에 받았고 10월 M.B.B.S(의학박사)를 받았다. 당시 로이드 존스는 1923-1924년, 2년간 하더 병원의 제1의 임상의학조교로서 봉직하였다. 하더 경의 사상과 가르침 속에서 로이드 존스는 큰 영향을 받았다. 하더는 소크라테스적인 교육 전통으로 주도면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학생들을 교육시켰다. 학생들이 정확하게 사고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도록 가르쳤다.

로이드 존스는 1927년 1월에 베단 필립스(Bethan Phillips)와 결혼했다. 그의 결혼 생활은 54년이나 지속되었으며, 금술이 좋았고 행복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로이드 존스가 결혼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인이었으나 그의 아내 베단은 신앙이 없는 명목적 그리스도인이었다. 허나 그녀의 할어버지 에반 필립스는 웨일즈 출신 중 가장 탁월한 목사님들 가운데 한 분이셨다.  그는 이미 목회자가 되라는 소명과 오랫동안 씨름했으며, 믿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도 오랫동안 씨름하고 있는 터였다.

로이드 존스가 다니고 있었던 채링 크로스 교회(Charing Cross Chapel)의 목사인 피터 휴거 그립피츠(P.H. Griffiths)는 랑게이토의 목사보다도 더욱 복음적인 기독교 신앙을 강조하고 있었다. 로이드 존스는 1923년 초에 복음적인 설교가 아니라 할지라도 자기의 궁금증에 도움을 주는 설교들을 듣기 시작하였다. 로이드 존스의 철저한 변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죄의 문제였다. 그는 자기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원리를 발견하였는데 그 원리는 무척이나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이익주의라는 것이었다.

그 후 로이드 존스는 1924년과 1925년에 문학토론협회의 금요집회에서 “영적 각성”에 대한 연설을 두 번하였다.  첫 연설은“현대 교육”이란 제목이었고 1924년 3월 집회에서 한 연설은 “현시대의 징조”로서, 그 시대의 도덕적 무질서에 관한 지적이었다. 그는 도덕적 무질서로 8가지를 들었는데, 즉 남자와 여자들의 구분 없는 의상, 목욕탕에서의 빈둥거림, 학위를 따기 위한 경쟁, 신문과 광고, 무선 전신과 방송의 유행, 여권주의자들, 민족주의, 그리고 끝으로 교회의 위치에 관한 무질서 등을 꼬집어 놓았다.

강단이 부패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채용의 문제로서 현 교회의 절반이 비어 있음에도 놀라지 않는 것은 설교자를 믿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추악한 면은 설교 정치가의 출현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심리학적인 설교를 끝내고 참 기독교를 설교해야 하며, 구원과 예정에 대해 두려운 마음으로 설교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스펄전(Spurgeon)의 글에 매료되었다. “만일 당신이 다른 일을 할 수 있거든 그것을 하십시오. 목회를 안 하고도 견뎌낼 수 있으며 그렇게 하십시오.” 라는 말에 로이드 존스는 소명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청교도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포윅(F. J. Powicke)이 쓴 『리차드 박스터의 생애』(The Autobiography of Richard Baxter)였다. 그 책은 로이드 존스에게 청교도에 관해 첫 지식을 주는 것이었지만, 박스터의 진지한 신앙심은 로이드 존스를 더욱 흔들어 놓았다.

청교도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확신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절대적인 의무가 무엇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청교도들은 은총만이 자유와 용기와 평화와 능력, 행복과 구원을 준다고 믿고 있었다. 로이드 존스는 1926년 3월에 채링 크로스 교회의 문학토론협회 모임에서 “청교도 정신”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그는 그 강연에서 존 번연의 『천로역정』, 『리차드 박스터의 생애』그리고 『조오지 폭스의 생애』를 통하여 발견한 청교도 정신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청교도는 결코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청교도는 지극히 약한 사람이지만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깨닫는 가운데 강함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약합니다....

또한 로이드 존스는 청교도를 영혼의 구원에 대한 열정을 품은 사람들로 이해하였다.

  로이드 존스는 1926년 10월 이스트 엔드에 있는 포플라 선교회에서 처음으로 강단에 섰고, 채링 크로스 교회에서의 설교는 10월 10일에 웨일즈에서는 11월 11일에 첫 설교를 하였지만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1927년 2월 4일 아베라본에서 로이드 존스는 목회생활을 시작했다. 부임예배에 참석한 여러 목사들은 20세기 청교도 목사가 탄생하였다고 말했고, 그는 불타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시 한편을 썼다.


오 그리스도여!
주는 내가 바라는 모든 것입니다
주님 안에는 그보다 더 풍성함이 넘치나이다.
타락한 자를 일으키시고
힘이 없는 자를 붙잡으시며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눈먼 자를 인도하소서.
주님의 이름은 거룩하고 의로우시나
저는 불의뿐입니다.
저는 거짓되고 죄로 가득 찼으나
주님은 진리와 은혜로 가득하십니다.
  

  로이든 존스는 1927년 2월 6일 주일에 아베라본의 샌드필드의 베들레헴 교회에서 목사로서 첫 설교를 하였다. 그의 첫 목회시절(1927-1938)의 설교는 전도설교(Evangelistic Sermons)였다. 그의 10년간의 목회기간동안 한 설교를 일주일 내내 몸소 손으로 쓰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고, 그 원고가 1981년에 그의 부인에 의해 발견되어 출판되었다. 그의 전도설교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과 양심을 향하여 선포되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사역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를 초대하기 원하는 단체들은 모두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1904-1905년 당시 영적 부흥 축복으로 가득 찼었던 웨일즈로 다시 돌아가기를 열망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부흥기간 동안의 결과는 여러 교파가 혼합되었고 많은 곳에서 기성교회 내에 단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칼빈파 감리교회는 그런 흐름에서 탈출하려고 진통을 겪었으며 침례교와 플리머드 형제교회 Plymouth Breathren, 1820년대에 영국사람 존 다비가 창시한 칼빈파의 종파는 수적으로 증가하였고, 오순절파는 새로운 부흥의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튀어나갔던 것이다. 그들은 냉냉한 교회의 힘없는 예배로부터 많은 성도들을 끌고 나갔다. 그래서 복음주의 교회는 1904년 이후에 웨일즈에서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당시의 설교들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믿었다. 성령의 첫 번째 사역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인간들을 겸손하게 만들고 죄를 회개케 하는 것인데, 강단에서는 그런 면들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해주고, 위로해 주며, 즐겁게 해주는 설교는 참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설교가 아니라는 것을 로이드 존스 목사는 알고 있었다. 복음 앞에서 인간의 죄를 지적하는 설교, 그것은 1892년 스펄전이 죽은 후 로이드 존스를 통해 다시 재현되고 있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6월 11일 쉘부른 교회에서 ‘목사와의 대화’라는 시간에 참석했었는데, 약 30명정도 회중이 참석하였고 같은 날 저녁에는 복음주의 신앙을 비판하는 침례교 신학 교수와 열띤 논쟁을 하였다. 지치고 쓸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면서 아아직 왓츠의 간증을 받아들였다.


나의 하나님
내가 단 한 번만 하나님을 본다면
이 세상의 나라들과 사람들은 금방 사라질 것이니이다.
나는 그것들의 사라지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반짝이는 촛불이 정오에 무색해 지듯이
하나님은 단 한 번만 보면 나라들과 사람들이 금방 사라질 것이니이다.


  1932 당시 웨일즈에는 두 종류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로이드 존스 목사는 두 운동 모두에 적대적이었다. 하나는, ‘옥스포드 그룹운동’(Oxford Group Movement) 이 운동은 후에 ‘도덕 재무장 운동’으로 더 잘 알려졌으며, 미국에서 건너온 루터교 목사인 프랭크 부크맨(Frank Buchman)의 영향으로 더욱 활발해졌다.  ‘옥스포드 그룹 운동’은 진리 속에서 기독교의 신앙을 회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통해서 신앙을 찾자는 것이다. 이 단체는 ‘성령’을 강조하며, 꿈이나 황홀경 같은 신비한 체험들을 중시하였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이 운동을 외롭게 저지하였다.  로이드 존스가 확신하는 것은 진리가 먼저이지, 경험이 먼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로이드 존스 목사에게 닥쳐온 두 번째의 논쟁거리는,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가르침에 관한 것이었다. 바르트는 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초자연주의와 개혁신앙을 요구하였다. 대서양의 양쪽에서 바르트를 칭찬하기 시작하였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목회자 모임 때마다 ‘왜 바르트주의는 정통 기독교가 아닌가’라는 사실을 논증하기 시작했다. 이어1937년 로이드 존스 목사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피츠버그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당시 장로교회 교단은 자유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크게 패배하였고 그 흐름은 계속해서 성경주의자들을 공격했으며, 1936년 총회에서는 자유주의의 타도의 선봉이었던 그레샴 메이첸(J. Gresham Machen)박사의 목회생활을 정지시키고 제명했던 사건이 있었다. 피츠버그의 근처에 있는 제일장로교회에서 총회 순서중 4번의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6월 3일 “장로교”(The Presbyterian)신문에서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마틴 로이드 존스 박사는 총회 진행중에 초석(key note)의 역할을 하였다. 그의 역할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자유주의자들의 도전을 꺾고, 기독교의 진리를 바로 선포하였다. 특별한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한 나머지 불편한 심기를 보인 사람도 있었다.”

  로이드 존스 목사에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초교파운동이었다. 그 운동들은 어느 교회의 통제도 받지 않는 초교파적인 운동이었다. 그것은 각 기구마다 조직이 되어 있고 도시마다 각각 책임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다수가 로이드 존스 목사를 강사로 초청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IVF 정기집회에서 주강사의 역할을 했다.

런던의 복음주의 도서관(Evangelical Library) 관장직은 로이드 존스 목사에게 1938년부터 그가 사망한 1981년까지 가장 중요한 사업이었다. 그는 많은 책을 읽었는데 그 분야도 다양했다. 그는 요약된 글을 싫어했고, 소설과 같은 종류의 글도 좋아하지 않았다. 19세기의 추기경 뉴만(Newman)의 전기를 애독하였고, 렉스함의 하이웰 존스(Hywel Jones)목사와 한스 큉(Hans Kung)의 책과 같은 변증학 책도 읽었으며, 특히 교회사와 전기를 사랑하였다. 로이드 존스는 경건주의자이지만, 감상적인 경건주의는 아주 싫어했다. 특별히 성경을 탐독하였는데 그는 로버트 머레이 맥케인(Robert Murray Mcheyne)의 매일 성경읽기표에 따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었는데 로이드 존스 목사와 그의 부인 베단은 53년동안 읽어왔고 신양성경은 적어도 110번 정도 읽었다. 놀라운 사실은 1981년 3월 1일에 눈을 감았는데 2월 28일까지 고린도전서의 ‘부활’장을 마지막으로 끝까지 읽어왔다는 것이다.

1968년에 마틴 로이든 존스는 암으로 건강이 아주 나빠졌다. 그러자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또 다른 계획하심이라는 믿음으로 교회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목회에서 은퇴한 것은 아니었다. 로이든 존스가 이전에 했던 일들이 계속 되었다. 그는 은퇴한 교회의 웨스트 민스터 친교회에 참여하고, 교회의 상태와 부흥의 필요성에 계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1969년에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였는데 그의 설교 사역에 대한 명강의는 「목사와 설교」라는 제목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책으로 출판되었다. 로이드 존스의 은퇴 후 또다른 사역은 1966년 자신들의 교단들을 떠났거나 미흡하지만 ‘대의’를 위해 싸우고 있으며 그의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들에서 설교하는 것이었다.
1980년에 그는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설교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마지막 예배를 드린 곳은 바르콤(Barcombe)에 있는 작은 침례교회였다. 그는 죽기 전에 자녀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그러니 나를 낫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지 말아라.” 크리스토퍼 캐서우드, 『마틴 로이드 존스베스트 설교:20세기 복음주의의 거장』, 서울 , 엠마오 ,1997.p140
    
그는 아베라본 베들레헴 교회에서 11년동안 그리고 30년동안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목회를 하였으며 그중 5년은 켐벨 몰간과 협동사역을 했고 25년동안은 단독목회를 했다. 웨일즈에 있는 그의 무덤의 비석에는 성경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2:2
이 메시지는 로이드 존스 목사의 일생동안 그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Ⅲ. 로이드 존스의 사상


로이드 존스는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정식으로 신학 교육을 받지는 않았다. 그는 의사로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목회를 지탱해주는 사상이 정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는 그의 사상적 배경과 그의 사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ⅰ. 사상적 배경

(1) 청교도의 영향

로이든 존스가 청교도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존 휴톤이 편집인으로 있었던 「The British Weekley」라는 신문을 정기구독하면서 부터였다. 그는 이 신문에 산발적으로 게재되는 영국의 청교도에 관한 기사는 모조리 읽었다. 그리고 19세기 웨일즈 칼빈주의 감리교 역사를 읽을 때 그는 이 운동의 지도자들이 예외 없이 청교도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글을 부지런히 읽은 사실을 관찰했다. 그가 청교도들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그런 것이었고, 그가 청교도들과 친해야겠다는 것은 아주 절박한 것이었다. 특히 1925년 리차드 박스터의 전기를 읽고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박스터의 열심은 그의 마음을 휘저어 놓았다.

로이드 존스는 특히 에드워즈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는 1931년에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 두 권을 5실링에 사고 나서 “지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한 사람의 비유 속에 나오는 자와 같았습니다. 그 두 권이 제게 끼친 영향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나단 에드워즈에게서 청교도주의의 절정과 극치를 보게 되었다. 1976년에 로이드 존스는 웨스트민스터 청교도 연구회에서 행한 “조나단 에드워즈와 부흥의 중요성”이라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히 에드워즈가 제게 미친 영향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사람을 다니엘 로랜드나 조지 휘필드보다 앞에 놓아야 한다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고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청교도들을 알프스에 비유하고 루터나 칼빈을 히말라야에 비유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하고 싶은 시험을 받곤 합니다. 제게 있어서 그는 언제나 사도 바울을 가장 닮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물론 휫필드는 다니엘 로랜드처럼 위대하고 능력 있는 설교자입니다. 그러나 에드워즈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휫필드와 다니엘 로랜드 두 사람은 다 에드워즈가 가졌던 이지나 지성이나 신학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지 못했으며, 에드워즈처럼 철학적이지 못했습니다.

제가 볼 때 조나단 에드워즈야말로 사람들 중에서 아주 빼어납니다. 그러므로 에베레스트산에 유추해 본 이 사람을 추적해 볼 수 있다면, 제가 감당해야할 임무는 남쪽계곡을 통해서 에베레스트산과 같은 이사람에게 접근할 것인지, 아니면 북쪽 계곡을 통해서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이 사람에게 접근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입니다. 이 위대한 정상에 도달하는 길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분위기는 대단히 희박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거룩이 더욱 찬란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에 대한 그의 강조도 두드러졌습니다....그리하여  두 권으로 된 그의 전집을 누구나 사서 읽도록 설득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과 목표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청교도 신앙 그 기원과 계승자들』생명의 말씀사, 1992. 서울. p365-367


이렇게 그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한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청교도에 대한 로이드 존스의 관심은 그가 웨스트민스터의 청교도 연구회에서 19회의 강연을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청교도의 어떠한 모습들이 그의 관심을 끌었는지가 궁금해진다. 그는 참된 청교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프로테스탄트가 된 사람들 가운데서 종교 개혁이 불완전 하며, 의식들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느꼈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게 느꼈던 사람들 사이의 분쟁이 이때부터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전자의 사람들이 참된 청교도들입니다. 저는 그들을 청교도의 선구자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단지 청교도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전형적인 청교도 사고방식이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로이드 존스.『청교도 신앙- 그 기원과 계승자들』p.254


그가 청교도로부터 받은 영향은 그의 사상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 그것은 사상을 다루는 장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2) 칼빈주의 감리교의 영향


18세기 초 웨일즈의 상황은 영적인 면에서 매우 낮은 상태였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에서 죽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부도덕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위대한 각성과 부흥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부흥에 있어서 주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1714년 1월에 태어난 하웰 해리스 (Howell Harris)이다.
로이드 존스는 13세 대에 하웰 해리스의 목회에 관한 소책자를 읽었는데, 이것이 그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특히 그가 자라난 웨일즈 칼빈주의 감리교의 역사에 대한 이 첫 책은 역사에 관해서 평생 지속적인 관심을 일깨웠고, 특히 위대한 부흥 시기의 교회사와 위대한 성도들과 설교자들의 전기에 대한 관심을 평생토록 갖게 했다. 만년에 그는 그가 결정을 내리는 원리로서 성경에 관한 그의 이해와 18세기 칼빈주의 감리교도의 부흥에 관한 독서를 통해서 라고 말했다. 정근두. 『로이드 존스의 설교론』. 여수룬. 서울. 1993. p29-30
로이드 존스는 웨일즈 칼빈주의 감리교의 특징을 말하면서 첫 번째가 바로 설교라고 말한다. 그것도 보통 설교가 아닌 위대한 설교이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이 감리교의 앞에 칼빈주의가 붙는다는 것이다. 그는 웨일즈 칼빈주의 감리교의 특징을 말하면서도 감리교라는 것보다는 칼빈주의에 더욱 많은 비중을 둔다. 그는 칼빈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칼빈주의는 언제나 위대한 설교를 유발한다고 믿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위대한 설교가 없을 때 저는 진정한 칼빈주의가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던집니다.” 로이드 존스.『청교도 신앙- 그 기원과 계승자들』p213


(3) 지속적인 연구와 독서

앞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로이드 존스는 정규신학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는 헬라어까지 공부했지만 결코 교단 신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 신학교의 성경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얀 머레이. 『마틴 로이드 존스 초기 40년사』서문강 역. 청교도신앙사. 서울. 1990. p237
그러나 그가 정규 신학 훈련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깊은 의식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성하기 위한 불타는 열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
비록 그가 사역 초기부터 기독교 교리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으나 그는 에버라본 사역 초기부터 신학 연구에 자신을 쏟아 부었다. 로이드 존스는 자신이 계속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전 시간을 연구에 바쳤다. 한때 그는 휫필드가 그랬던 것처럼 중생을 주요 주제로 설교했으나 칭의에 대해서는 설교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역을 시작한 2년내에 그는 이것이 불완전한 설교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 대해서 비판을 받았을 때 그는 그 약점을 인정하고 즉각 구속사역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반응을 보였다.
사역 초기에 로이드 존스는 여름휴가 때에도 오전에는 주요한 신학 저작들을 읽곤 했다. 그는 성경에 파묻혀서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로이드 존스는 문고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요약된 글이나 백과사전도 좋아하지 않았다. 또한 시간낭비라는 이유로 소설도 즐기지 않았다. 박영호. 『로이드 존스의 생애』. p95-97
그는 어떤 책들을 읽었는가? 로이드 존스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읽었다. 박영호. 『로이드 존스의 생애』. p103
그리고 경건한 독서활동을 했다. 특히 존 오웬(John Owen), 리챠드 십스(Ricahrd Sibbes) 로이드 존스. 『목사와 설교』. 기독교문서선교회. 서울. p.192-193
,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등의 청교도들의 작품을 읽었다. 그리고 신학, 정기 간행물, 잡지류 등의 지적인 독서를 했다. 또한 교회사와 전기를 읽었다. 로이드 존스. 『목사와 설교』. p196-196
  비록 그는 책읽는 속도가 느렸지만 방대한 양의 책을 읽어냈으며,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여 정리하였다. 로이드 존스가 지속적인 연구와 독서에 보낸 오랜 시간들이 후일 설교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ⅱ. 로이드 존스의 사상


(1) 성경관

로이드 존스는 성경을 Bible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scripture라고 말한다. 그에게 성서는 경전이다.
     로이드 존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교리강해시리즈. 기독교문서선교회. 서울. p41.
    그래서 여기서도 로이드 존스의 생각을 존중해서 그의 표현대로 성경이라고 표현한다.

성경관을 언급하는 것은 로이드 존스의 모든 사상이 바로 성경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성경관은 어떠한 것인가? 이제 그의 성경관을 살펴보자. 먼저 로이드 존스는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경(Scripture)이라는 용어는 ‘거룩한 기록’을 나타냅니다. 즉 평범한 기록이 아니라 특별한 기록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로이드 존스『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p41


로이든 존스는 성경의 권위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성경의 교리를 논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집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고등비평을 고찰하는 것도, 신학과 변증학을 고찰하는 것도 거부한다. 로이드 존스는 축자영감(verbal inspiration)을 주장한다. 그는 이 말이 단지 생각들만 영감 받는 것이 아니고, 또한 사상들만 영감받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기록, 특별한 단어들에까지 영감이 주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로이드 존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p39-30
이러한 성경에 관한 생각은 그가 청교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로이드 존스.『청교도 신앙- 그 기원과 계승자들』p268
로이든 존스는 딤후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장 16절. 개역.
의 말씀을 인용해서 특히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이 구절이 바로 성경이 축자 영감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성경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성경의 무오를 믿는다. 그는 누군가가 강단에 올라가서 성경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대하여 큰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단호하게 주장하였다.

“비밀을 맡은 자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계시를 위탁받았으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공격하고 훼손하며 그것을 믿는 사람의 신앙을 흔드는 사람의 위치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그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D.M. Lloyd-Jones, 『The Righteous Judgement of God』p.172


물론 번역상의 오류에 대해서는 로이드 존스도 인정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흠정역과 영국 개역 성경에 관해서 하는 인정이다. 성경의 번역상의 오류는 있을 지라도 성경의 내용에는 오류가 없다. 그는 영어개역 성경의 번역상의 오류를 주장하기도 한다. 로이드 존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p44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영어 개역 성경의 번역자들이 모순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는 바로 성경의 내용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무오하다는 라는 것이 그의 생각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성경이 틀릴 수는 없다. 그는 특히 모든 성경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어떤 특정한 책만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 아니라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믿고 강단에 설 것을 말하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예언들을 사사로이 풀지 말기를 부탁한다. 그는 벧후1:20-21의 말씀 벧후1:20-21.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개역

을 들어서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주장을 하면서 로이드 존스는 고등비평에 대해서 비판을 가한다. 그에게 고등비평은 성경을 잘 못 알게 하는 학문적 방법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하나님의 예언자들)의 예언은 사람의 생각으로 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성령의 강풍에 의해, 하나님의 바람에 의해, 하나님의 신령한 힘에 의해 지배를 받았으며, 이 신령한 영감이 예언자에게 임하여 그를 감동 시켰고 그는 성령에 의해 인도하심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서 예언과 성경이 생겨난 것이라고 로이드 존스는 말한다. 로이드 존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p46

  그는 그러나 성경의 축자영감과 무오함을 즉,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유일무이한 책이라는 사실을 성령을 받지 않고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로이드 존스는 성경에 대한 그의 생각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말한다. “우리는 교회의 논증에 의하여 성경을 고상하고 존엄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 논증들은 진리의 천적인 성격, 교혼의 능력성, 문체의 장엄성, 각 부분이 서로 호응하는 일체성,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한 전체의 통일성, 인간 구원의 유일한 길에 대한 완전한 발견, 기타 많은 진리의 탁월성과 그 전체적 완전성이다. 성경의 이런 속성들로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의 무오성과 그 신적 권위를 확신하게 되는 것은 성경의 내적 증거로 말미암는다. 성경의 내적 증거란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면적 역사를 말한다.” (Ⅰ:Ⅴ)  

그러나 그가 축자 영감과 성경의 무오함을 주장하면서도 성경의 문자적 해석만큼은 주의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로이드 존스는 성경을 링ㄱ고 해석함에 있어서 몇 가지 원칙처럼 지키는 것들이 있었다. 그 첫째가 바로 앞에서 얘기했던 축자영감과 성경의 무오였다. 두 번째로 로이드 존스는 성경을 문맥 속에서 해석하려고 하였다. 세 번째로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전체적인 데서 구체적인 데로 움직여 나가면서 해석해 나갔다. 의사인 로이드 존스는 사람을 전체로 다루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질병은 전체적인 상태와 연결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조망에서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로이드 존스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때마다 일관되게 이 원칙을 적용하였다. 네 번째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려고 하였다. 로이드 존스는 이미 구약과 신약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고 함게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갖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모든 성경은 바로 성경 안에서 해석되어질 수 있고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로이드 존스『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p47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이드 존스는 오직 성령이 성경의 해석자임을 말한다. 이는 성령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조력자라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우리가 성경의 권위에 복종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딸 엘리자베스 캐서우드가 말한 부친에 대한 생각을 여기서 인용하고자 한다. 이는 로이드 존스의 성경관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부친이 애독한 성경은 성경입니다. “성경을 읽어라. 성경은 생명의 떡이니 너희 영혼의 건안과 양식을 위해 마련한 만나이다.” 부친은 로버트 머리 맥체인의 매일 성경 읽기표를 따라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는 성경을 좋아하는 부분만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을 다 읽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필요한 본문들을 별도로 공부했지만 정규적으로 성경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적어도 53.4년을 로버트 머리 맥체인의 성경읽기표를 따라 꾸준히 성경을 통독하였습니다.…(중략)…

부친은 성경을 정규적으로 읽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알았고 성경을 사랑하였습니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 그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구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는 앤에게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자족하라는 말씀을 짚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우리들의 지상의 장막이 걷히어지면 훨씬 더 나은 상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는 성경말씀을 손으로 짚어 보이거나 혹은 종이에 써서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가 임종 무렵에 읽었던 것은 웨일즈 찬송가와 성경뿐이었습니다. 아베라본에서의 그의 초기 설교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죽음의 침상에 누웠을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여러분과 여러분의 모든 죄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내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을 굳게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친은 이 사실을 그대로 증명하였습니다. 그는 훌륭하고 적극적이며 광범위한 독서가였지만, 이 세상에서 그에에 유일한 중요한 것은 그가 애독하던 하나님의 말씀이 지적하는 진리였습니다. 이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랑에 대한 옛 이야기였습니다. 프레데릭 캐서우드, 엘리자베스 캐서우드 『마틴 로이드 존스와 그의 독서 생활』, 이중수 역, 양무리 서원, 서울, 1993. p54-55


(2) 성령론

성령에 관한 로이드 존스의 생각은 그의 세 권의 교리강해서 가운데서도 두 번째 책으로 쓰여질 정도로 방대하면서도 확고한 것이다. 그의 신론과 그리스도론은 전통 교회사의 정통주의와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언급을 안 하고 그의 성령론으로 바로 들어가고자 한다.

로이드 존스는 성령에 대하여 삼위일체교리가 확실하다고 믿는다면 성부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위치에서 동일하게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성경이 성령님을 구원을 적용하시는 분으로 가르치시기에 그 분에 관한 진리를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것이 실제 적이라고 말한다. 로이드 존스『성령 하나님』. 교리강해시리즈. 기독교문서선교회. 서울. 2000. p19

전통적으로 조직신학 안에서는 성령에 관하여 크게 언급하지를 않았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특히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인 지금까지 많은 조직신학자들이 성령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행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성령에 대한 생각들은 성령을 하나의 인격으로 보지를 않고 그리스도의 영 또는 하나님의 영으로 간주해 버렸었다. 로이드 존스는 바로 그러한 전통적인 성령에 대한 무심함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는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했던 단순한 조력자가 아님을 말한다. 로이드 존스는 성령을 복된 인격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복된 인격에 주어진 여러 이름들을 성경에서 찾는 수고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에 관련해서- 창 1:2, 눅 4:18, 고전 6:11, 사 61:1, 고후 3:3, 창 6:3, 시139:7, 민 11:29, 롬 8:11
성자에 관련해서- 롬 8:9, 빌 1:19, 갈 4:6, 행 5:9
직접적인 혹은 인격적인 칭호- 롬 1:9, 요일 2:20, 히 9:14, 롬 8:2, 요 14:17

그는 성령의 인격을 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성령은 고귀한 인격으로 여겨지기를 로이드 존스는 바란다. 그는 이러한 성령의 인격을 뒷받침하는 예로 세례를 들고 있다. 우리가 세례를 행할 때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하는 것을 그는 이것이 성령의 인격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름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하지 않고 이름이라는 단수를 사용함으로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의 연합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령은 한 인격이자 신성이다.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일반적 사역에 대해서 말한다. 첫째로 성령께서는 구속사역의 한 부분으로 이 세상과 교회에 오셔서 계신다는 것이다. 그는 요한복음 16:8-11의 말씀을 통해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바로 예수께서 성령께서 오시면 개인적인 신자들이 아니라 세상을 판결할 것이라는 말씀에 주목하자고 한다. 바로 판결하는 사역이 성령의 일반적 첫 번째 사역이라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세상의 죄에 대하여 판결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주님을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죄가 아니다. 바로 주님을 믿지 않는 죄에 대해서 판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판결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 교회에 임하셨을 때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간은 소리가 있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제자들 위에 임하여 있었고 다른 방언으로 말했는데, 이런 것이 바로 세상의 죄, 불신의 죄를 판결하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 『성령 하나님』.p70-71

바로 이러한 것을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일반적 사역의 첫 번째에 둔 것이다. 다음으로 로이드 존스는 의의 선포를 말한다. 그는 “의에 대하여라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라는 말씀에서 의를 해석함에 있어서 실수 하지 않기를 바란다. 로이드 존스는 여기서 나타나는 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로 하나님께써 인정하셨다는 최고의 증거로 성령을 보내신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오심 그 자체는 의로움의 오직 유일한 길이 있다는 것과 그 의로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두 번째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다. 세 번째로  성령의 오심은 바로 세상에 대한 심판이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오심으로 구원 사역은 선포되었다. 이는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다.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라 함은 바로 사단의 권세에 대한 심판을 얘기하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 『성령 하나님』. p74-75

바로 이 세 가지가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다.

로이드 존스는 성령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신다고 말한다. 그는 청교도들 안에서 성령께서 직접적으로 역사하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경계한다. 바로 이것 때문에 퀘이커 교도들이 청교도들의 주된 부분에서 멀어졌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퀘이커교도들은 말씀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며 성령께서는 어떤 신비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어떤 ‘내적 빛’으로 직접 각 사람에게 말씀하신다고 한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로이드 존스는 벧전1:25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외에도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여러 많은 사역들에 대해서 가르친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면의 한계로 그 것을 다 밝힐 수 없음을 밝힌다. 부디 그의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3)교회론

앞에서 이미 살펴봤지만 로이드 존스의 사상은 모두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성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역사만을 철저하게 받아들인다. 다른 여타의 사상들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교회론도 마찬가지이다. 자 이제 그의 성경에 기초한 교회론을 살펴보자.

먼저 로이드 존스가 교회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가졌던 몇 개의 질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물음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교회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로이드 존스는 성경의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 대한 가르침을 사람들이 혼동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두 번째 물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가? 이다. 로이드 존스는 이는 하나님의 통치라는 표현에 의해 정의 될 수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현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나라는 모든 인간과 만물이 그 분의 주되심을 고백할 때 완전하게 임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현존은 하지만 완전하게 임하지는 않았다. 세 번째 질문. 그렇다면 그 나라에 대하여 교회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로이드 존스는 교회는 하나의 표현이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보다 더 광범위하다. 교회는 그 일부일 뿐이다. 진정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고백하고 인정하므로 주님은 그 곳에 거하신다. 그 때 하나님의 나라가 거기에 임한다. 하나님은 교회 밖 세상도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공간과 범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로이드 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기독교문서선교회. 서울. 2000. p17-18

로이드 존스는 교회의 일반적 의미를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그 분의 임재를 인정하는 성도들의 지역적인 모임이라고 말한다. 또한 지역교회들에 속한 진정으로 거듭나고 영적인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진정한 몸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영적 지체들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내용이 교회에 대한 논의의 핵심이다. 로이드 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p19

로이드 존스는 교회의 일치 즉 에큐메니칼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렇다면 그의 에큐메니칼은 어떠한 것인가? 로이드 존스는 성경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회의 일치는 영적 일치라고 말한다. 그는 요한복음 17장의 “다 하나가 되어”라는 말씀의 인용에 있어서 교회로부터의 분리는 죄 중에 가장 큰 죄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그 말이 어떤 형태나 형식으로든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면에서 절대적인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교회의 일치는 영적인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로 교회의 일치는 교리적으로 일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4)청교도에 관하여

우리는 이미 앞에서 로이드 존스가 청교도의 영향을 받았음을 살펴보았다. 이제 여기서는 그가 바라보는 청교도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바로 로이든 존스의 시각에서 본 청교도이다.

로이드 존스는 청교도주의의 시작을 1524년 윌리암 틴데일(William Tyndale)로부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로이드 존스에게 있어서 청교도주의는 일종의 사고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그는 청교도주의가 태도요 정신이라고 말한다. 그는 청교도주의의 큰 특징 두 가지를 틴데일에게서 찾으려고 하였다. 그 하나가 바로 일반인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왕의 승낙 없이 영국을 떠난 것이라고 로이드 존스는 말한다. 로이드 존스. 『청교도 신앙-그 기원과 계승자들』. p252

로이드 존스가 청교도 정신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개혁정신이
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전통이나 권위의 문제보다 진리를 앞세우는 것을 의미했으며 자기가 진리라고 믿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길 자유를 고집하는 것이었습니다.” 로이드 존스. 『청교도 신앙-그 기원과 계승자들』. p252

로이드 존스에게 청교도주의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말씀에 대한 순수한 사랑, 그리고 전통에 기인한 종교적 의식주의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는 청교도주의의 핵심을 종교개혁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참된 청교도 주의자들은 종교개혁의 불완전을 느끼고 의식들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로이드 존스는 청교도와 국교도의 차이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완전하고 철저한 개혁의 열망이라고 한다. 이 점은 루터의 종교개혁도 뛰어 넘는 것이다. 청교도들의 개혁은 먼저 의식들과 예복들에게서 시작이 되어서 끝내는 영국 국교회의 전체적인 상태에 대한 의문으로 나아갔고, 철저하게 개혁을 시행하려는 열망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청교도는 부분적으로 개혁된 교회에 만족하지 않고 완전하게 개혁된 교회를 원한 것이다. 두 번째로 청교도와 국교도의 차이를 로이드 존스는 국제적인 안목으로 두고 있다. 청교도들이 국제적인 시각으로 보는 반면에 국교회는 국가적인 시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선교에 대한 열망을 말한다. 이는 사고방식의 차이로도 드러나는데 바로 청교도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한 것에 비해서 영국 국교회는 이성을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 한다면 청교도들이 복음적인 관점만을 유일한 관점으로 삼은 반면에 국교회는 복음주의는 하나의 관점이요 하나의 강조점이요 하나의 태도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차이를 설명하려 한다. 청교도가 예배의 신령성을 강조한다면 국교회는 예배의 형식을 강조한다. 청교도가 교제에 관심이 있는 반면에 국교회는 개인주의적이다. 청교도는 죄를 색출해 내어 버리는 것이나 엄격한 교회 훈육을 믿었지만 국교회는 외면적 일치에 만족한다는 것이 그 차이라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에게 있어서 청교도주의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정신이며 하나의 정신구조이다.


Ⅲ. 나가는 말


우리는 이제껏 20세기의 위대한 설교가이자 청교도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에 대해서 알아봤다. 그가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참으로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우리가 배워야할 점은 목회자로서의 확신이다. 그는 설교를 함에 있어서 자신의 믿는 바를 확신을 가지고 설교하였다. 먼저 그는 성경에 대해서 변치 않는 믿음을 가졌다. 그 믿음은 그의 전생애를 지탱해주는 근간이었다. 우리는 과연 우리가 전해야 하는 성경의 말씀에 대하여 로이드 존스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그는 목회적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가 하는 목회에 대해서 하나님의 분명한 소명을 받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순종했다. 그것은 청교도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가 장로교 목회자인 것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한계였다는 것이다. 그가 너무나도 개혁적인 성향이 강하다보니 요한 웨슬레 목사에 대해서도 한계를 지어버리는 우를 범했다고 생각한다. 요한 웨슬레 역시도 청교도적 신앙을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로이드 존스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장로교의 우월성만을 강조한다.  이것이 로이드 존스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한계만 극복 되었어도 그는 더욱 위대한 20세기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부록-

로이드 존스의 저작 목록

1982년에 로이드 존스 박사의 저서들과 팜플렛의 목록이 “진리의 기수”(Banner of Truth)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그것들은 영국에서 출판된 시대순으로 되어 있고, 책의 주제와 발행자, 그리고 페이지수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로이든 존스 박사의 글이 그의 저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저술활동은 다양하여서 “진리의 기수”(Banner of Truth),  “웨일즈의 복음주의지”(the Evangelical Magazine of Wales), 그리고 “크리스천 그레쥬잇”(Christian Graduate) 등과 같은 정기 간행물을 통해서, 그리고 여러 가지 연구회나 대회 보고서, 신문 등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 외에도 찾아 볼 수 있는 저술 활동은 1929년 웨일즈 말로 된 정기 간행물인 “복음주의”(Yr Efengylydd)지에 쇼필드의 작품인 「건전한 그리스도인」(Christian Sanity)에 대한 서평, 혹은 찰스 페리의 저서인「심장 내막염 세균」(Bacterial Endocarditis, 1936)의 부록에서도 볼 수 있다.

로이드 존스 박사 생존시에는 그런 글들을 모두 모아둔 저술 몰록은 만들지 못했고, 단지 저서와 소책자들만의 목록만 만들었었다. 하지만 그의 글이 실려 있는 자료들은 모두 중히 여겨 “진리의 기수”에서 출판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는 매년 12월에 ‘교회사 연구회’가 정기적으로 열렸는데, 특별히 청교도 시대의 신앙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로이드 존스 박사는 1950년 ‘교회사 연구회’가 발족되면서부터 회장의 역할을 하였으며, 폐회 연설은 반드시 그가 하였다. 1958년 이후부터는 그 ‘교회사 연구회’의 보고서들이 책으로 출판되었다. 1978년 연구지의 제목이 「존 번연으로부터의 조명」(Light from John Bunyan)이며, 그때까지 지난 20년 동안의 색인이 그 책에 실렸다.

로이드 존스 박사의 또 다른 저술활동의 터전은 “웨스트민스터 레코드”(Westminster Record) 월간지였다. 그것은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발간하는 것이다. 그 월간지를 통해서 웨스트민스터 목사로 재직하는 기간(1938-68) 동안 행한 300편 이상의 설교가 실렸으며, 그의 「로마서 강해」와 「에베소서 강해」시리즈가 책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 월간지를 통해서 발표하였다.

로이드 존스 박사는 런던에 있는 ‘복음주의 도서관’(Evangelical Library)의 대표로서 창립 때부터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재직하였다. 1955년부터 그 도서관의 정기회합 보고서가 소책자로 나왔는데 거기에는 로이든 존스 목사의 연설이 항상 실렸다. 1969년부터는 「복음서적 도서가 회보(The Evangelical Library Bulletin)라는 소책자가 나왔는데, 그가 매해 행한 설교들이 계속 실렸다.

물론 그 도서관의 그런 활동에는 로이드 존스 박사의 역할이 막대하였다. 그는 좋은 책들을 제작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또한 그는 결혼선물로서 칼빈과 존 오웬의 전집을 권유하였다. 그는 자신이 독서를 열심히 한 것처럼 좋은 책이 있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양서들을 선정하고 제작하는 분야에서도 그의 활동은 대단하였다.

로이드 존스 박사는 웨일즈 이외의 다른 지방 출신들도 웨일즈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남긴 훌륭한 유산인 18세기의 감리교 목회자들에 관해서 배우고, 그것으로부터 감동받기를 크게 갈망하고 있었다. 그런 유산에 대한 그의 관심은 “웨일즈의 복음주의지”(Evangelical Magazine) of Wales, 1969)에서 출판된 가이우스 데이비스 박사의 「민족주의, 전통과 언어」에서 그와의 회견 내용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박사 자신이 강의한 시리즈에 판티셀른의 찬송가 작가인 윌리암 윌리암스에 관한 것(1968)과 호웰 해리스에 관한 것(1973)이 있는데, 그 둘은 초기 웨일즈 감리교도 가운데 가장 저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강의들을 통해서 “웨일즈의 신앙”을 계속 취급하였고, 랑게이토의 위대한 감리교 설교가인 다니엘 로울란드에 관해서도 적지 않게 취급하였다. 그 외에도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있는 동안 웨일즈를 테마로 하여 강의하였다. 그것들은 매우 중요한 강의들이다. 그런 것들은 “복음서적 도서관 회보”와 “진리의 기수” 같은 출판물은 통해서 볼 수 있다.

로이드 존스는 부인에게 판티셀른의 찬송가 작가인 윌리암스의 작품인 「경험의 만남」을 영어로 번역하게 하고 서론을 자기가 쓰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리차드 벤네트의 「호웰 해리스의 초기 생애」와 에이피온 에반번스의 「1904년의 웨일즈 부흥」, 그리고 마리 존스의 「아란의 그늘에서」의 번역서들에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1904년 대부흥에 영향을 크게 끼쳤던 케리 에반스의 영적 자서전 출판에도 참여하였었고 그 후에 다시 그 책을 글린 토마스로 하여금 영어로 번역하도록 주선하였다. 그 외에도 로이드 존스 박사는 다른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엘브트 루이스가 지은 유명한 웨일즈 찬송가인 “Rho im yr hedd ”를 번역한 것인데, “복음서적 도서관 회보” 1942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풍요한 기독교 세계를 소개하려고 애썼으며, 또한 그 자신이 직접 큰 선구자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로이드 존스 박사의 책들은 주문이 끊이지 않고, 계속 증판을 하고있다. 예를 들면 하박국 강해인 「두려움에서 신앙으로」(From Fear to Faith)는 13판째, 그리고 「영적 침체」(Spiritual Depression)는 11판째 출판되었다. 그의 많은 책들이 미국에서도 출판되고 있으며, 그 외 다른 언어들로도 번역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웨스트민스터 교회 시절에 출판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위탁하여 되어진 것이다. 1968년 웨스트민스터 교회를 사임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자신의 설교집 출판에 신경을 쏟기 위함이었다. 그의 출판활동을 1970년부터 활발하여졌고, 1970년 후에 나온 책들은 그 전에 나온 책들보다 본질적으로 폭이 넓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후기 저술이 전반적으로 「로마서 강해」와 「에베소서 강해」시리즈에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그의 많은 저서들이 출판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또한 아직도 녹음 테이프에 감겨 있거나 출판되지 않은 그의 글들이 빠른 시일 내에 출판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박사님의 말처럼 인쇄 매체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의 저서 목록을 보면서 그의 저술활동은 의도적으로 쓴 책이나 논문이 아닌 연설들이나 강의들, 그리고 설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로이드 존스 박사는 존 번연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는 번연을 그저 작가로만 생각해왔지만, 존 번연은 자신을 한 사람의 설교자로서, 그리고 한 삶의 목사로서 생각하였습니다. 그가 그 책을 쓰게 된 것은 자신이 목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올 세대에 대해서도 로이드 존스 박사는 영향력 있고 감동을 주는 작가로서 알려지겠지만, 그 보다도 그는 본질적으로 설교가이며 목사인 것이다.

 
 
>> 참고고리 : [인명] 마틴 로이드 존스

>> 연결고리 : 설교, 목사, 영국, 청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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