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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성경사전  작성일  2007-05-28
 제목  백합(lily)
 주제어  성서의 식물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백합(lily)은 주로 햇볕이 직접 쬐지 않는 숲이나 수목의 그늘 또는 북향의 서늘한 곳에서 자란다. 잎은 어긋나고 줄 모양이거나 바소꼴인데 때로 돌려난다. 꽃은 크고 화피갈래조각은 6개로 떨어져 나며 내면에 밀구(蜜溝)가 있다. 가을에 심는 구근초로 북반구의 온대에 70∼100종이 있다. 특히 동아시아에는 종류가 풍부하며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이 많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의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낭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왕상 7:17, 19)

왕기상 7장 17절은,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의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고 말한다.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의 땋은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많은 번역들에 의하면 바둑판 무늬로 얽은 것[(checkerwork), 바둑판 모양의 축어적인 번역-역자 주]이 격자, 곧 작은 네모진 구멍들이 있어 덩굴들을 지탱해 주는 틀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구절의 「세공(work)」이라는 말은 도안(design)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바둑판 무늬로 얽은 것은 바둑판 무늬의 도안이고 사슬무늬의 땋은 것은 사슬 무늬의 도안이다. 이 바둑판 무늬의 도안은 백합들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이 격자(格子)는 백합들을 위한 장치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백합들을 지탱하는 그물이다. 사슬 무늬로 땋은 것은 마치 기둥머리의 외부를 에워싸는 화환과 같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둥머리의 높이인 다섯이라는 수는 책임을 나타내며 둘과 다섯을 곱한 것은 책임의 충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둥머리 위에 왜 또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의 땋은 것이 있는가? 내가 이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는 동안, 주님은 이것이 얽히고 복잡한 상황임을 내게 보여주셨다. 가족 가운데서, 교회 안에서, 사역 안에서 기둥들로 말미암아 생긴 부담과 책임은 항상 복잡하고 얽힌 상황 안에 있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상황들을 곧게 하려 하지만 하지 못한다. 당신이 한 가지 말썽거리를 곧게 할 때 세 가지 다른 말썽거리가 들어앉을 것이다. 당신이 한 가지 문제를 명료하게 하려고 시도한다면 상황은 더욱더 막연해질 것이다.

당신이 이해시키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많이 오해하게 될 것이다. ‘지난 밤에 아무개 형제가 그 아내와 좋지 않았어요.’라고 말하지 말라. 만일 당신이 이같이 말한다면 말려들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설명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많은 오해가 일어나고 오해는 더 무성해질 것이다. 수년 간의 체험을 통하여 나는 오해를 피하는 최선의 길은 가능한 한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것임을 배웠다. 당신은 당신의 아내에게, ‘주님을 찬양하오.’라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이 말을 하면 그녀는, ‘당신은 왜 그렇게 영적인가요? 당신의 찬양이 나를 정죄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주님을 찬양할 때 당신이 영적이고 내가 육적이라는 걸 말하고 있어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교회 생활은 사슬로 둘러싸인 바둑 무늬의 세공이요 장로 직분은 가장 강한 사슬이 있는 가장 복잡한 격자이다.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의 주위 사람들이 천사들과 같아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힌 한 사람을 알고 있다. 그의 주위 사람들은 모두 매우 영적이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말씀을 기도로 읽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하늘에 속한다면 그때 이 지체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마음에 그리는 곳은 지구상의 어디에도 없다. 많은 가정에서, 더러는 늦게까지 얘기하다가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잔다. 깨자마자 어떤 사람은 밤새 창이 열려 있어 너무 추웠다고 불평하고, 더러는 너무 통풍이 안 되어서 질식할 것 같았다고 불평할지 모른다. 우리는 이 얽히고 복잡한 상황 가운데서 책임을 져야 할 뿐 아니라 그 가운데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의 생활을 상징하는 백합화

이러한 복잡한 상황 속에서 책임을 지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
열왕기상 7장 19절은, “낭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라고 말한다. 백합화는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의 생활을 상징한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타락하고 무능력하고 자격 없다는 것과 또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우리 자신을 정죄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 혹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으로 말미암지 않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어떠하심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백합화여야 한다(마 6:28
, 30).

오늘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그분께 달려 있다. 얽히고 복잡한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우리 자신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면 할 수 있다. 내 안에 사시는 분은 내가 아닌 그리스도시다. 이것이 백합화이다. 책임을 지는 분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시다. 나는 내 자신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분으로 인하여 살며, 내 자신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분으로 인하여 사역한다. 여러분 자매들이 교회 안에서 어머니들이라면 여러분은, ‘나는 교회 안에서 내 자신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분으로 인하여 어머니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아가서 2장 1절과 2절에서 추구하는 이는, “나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라고 말한다. 그때 주님은,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라고 답하신다.

도대체 어떤 건축가가 기둥 머리 꼭대기에 백합화 모양이 있고 그 놋기둥 머리를 떠받치고 있는 그러한 놋기둥을 설계하겠는가? 인간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의미가 없지만, 영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한편으로, 우리는 정죄받고 심판받은 놋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살아 있는 백합화들이다. 놋은 ‘나는 죽고(Not I)’를 의미하고 백합화는 ‘그리스도만(But Christ)’을 의미한다. 백합화들인 사람들은, ‘지금 내가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우리가 바둑판 무늬로 얽히고 사슬 무늬로 땋여진 것이 가득한 얽히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불가능한 책임을 지고 있는 백합화들임을 알 수 있다. 장로들은, ‘주님, 이 혼란들을 제하소서.’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들은 더 많은 말썽거리들을 기대해야 한다. 내가 깊이 확신하건대, 당신이 그 말썽거리들이 없어지도록 기도하면 할수록 더 많은 말썽거리들이 있을 것이다. 바둑무늬로 얽힌 모든 것은 그 안에서 백합화들이 자라는 기초요 모판이다.

두 기둥에 관한 모든 부분들을 읽는다면 당신은 공들이 그물 무늬로 얽힌 것, 사슬 무늬로 땋은 것, 백합들, 석류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석류들은 기둥 머리의 기초에 있지 않고 공들을 에워싸는 사슬 무늬로 땋은 것 위에 있다. 그물 무늬로 얽힌 것은 공들을 덮고 있고 사슬 무늬로 땋은 것은 공들을 에워싸고 있으며 석류들은 사슬 무늬로 땋은 것 위에 있고 백합은 그물 무늬로 얽힌 것 위에서 자란다. 이 모든 것들이 공에 있다. 체험의 빛 가운데서 깊이 생각해 본다면, 당신은 그물 무늬로 얽힌 것으로 말미암은 십자가의 끝냄과 사슬 무늬로 땋은 것의 제한을 통하여, 당신이 백합으로 자라 그리스도의 생명의 부요함을 표현한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이것이 부활의 과정으로부터 표현되는 살아 있는 간증이다.

백합들은 셋째날에 공들의 꼭대기에 나타난다. 우리가 아무리 좋고 온유하고 겸손하다 할지라도 이 어떤 것도 백합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천연적인 생명이다. 우리가 십자가의 끝냄을 더 많이 체험할수록 백합은 셋째날에 더 많이 자란다. 모든 형제들이 좋은 아내를 바라고 모든 자매들은 온유한 남편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좋고 온유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백합들이 아니다. 백합은 오직 그물 무늬로 얽힌 것과 사슬 무늬로 땋은 것 가운데서 셋째 날에 자랄 뿐이다. 모든 얽히고 복잡한 상황 가운데 우리가 셋째 날에 이를 때 백합은 자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또한 생명의 부요함의 표현인 석류들을 체험할 것이다. 이것이 공, 곧 영광이요 아름다움이요 장식이요 왕관이다. 이것이 간증이다. 성령이 여러분에게 이것에 관하여 더 많이 말씀하시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이미 심판받았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우리 자신을 심판해야 한다. ‘나는 타락하였고, 부패하였고, 죄가 많으며, 죽는 데에만 쓸모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놋기둥이 되기는 쉽다. 그러나 그물 무늬로 얽힌 것으로 인한 십자가의 끝냄과 사슬 무늬로 땋은 것으로 인한 제한 가운데 부활의 과정인 사흘을 통과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물 무늬로 얽힌 것과 사슬 무늬로 땋은 것 안에 더 많이 있을수록 우리는 더 많이 사흘 안에 있으며, 백합은 더 많이 자라며, 우리는 더 많은 석류들을 표현한다. 그럴 때 우리는 천연적인 어떠한 것이 아닌, 그물 무늬로 얽힌 것으로 인한 십자가의 끝냄과 사슬 무늬로 땋은 것으로 인한 제한 아래 부활의 자정으로 말미암는 살아 있는 간증이 된다. 전혀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그물 무늬로 얽힌 것과 사슬 무늬로 땋은 것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흘 동안 장사되어 있다가 부활의 과정을 통하여 나오는 것과 똑같다. 우리가 이 체험을 통과할 때 백합이 자라고 석류들이 표현된다.

 

 

>> 연결고리 : 성서의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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