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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08
 제목  백인숙(1917. ?~1950. 6.20) 전도사
 주제어  [대한민국] [장로교] [전도사] [순교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917년 평북 신의주에서 출생했으며, 평양여자신학교와 일본 요꼬하마여자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주기철 목사를 모시고 산정현교회 전도사로 있으면서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수난을 겪었다. 6·25가 일어나기 며칠 전 공산당에게 장수은 전도사와 함께 연행되어 살해되었다.

 

안동중학교 중퇴
평양여자신학교 졸업
1919년 요꼬하마 신학교 졸업
산정현교회 여전도사

 

백인숙 전도사는 1917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안동중학교를 다니면서 마전교회에서 믿음을 키웠다.

"죽어도 예수를 믿겠느냐?" 공산당의 추상같은 질문에 백인숙은 조용히 미소를 삼켰다. "예수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오히려 광영이겠습니다" 공산당의 얼굴은 이내 일그러졌다. "이 년을 저 흙 구덩이 속에 처넣어" 배인숙은 몇 사람의 청년들에 이끌리어 흙 구덩이 속에 처박혀졌다. "흙으로 묻어" 흙을 뜨는 삽소리만 고요한 정적을 깼다. 34세의 동정 전도사 백인숙은 그렇게 예수를 위해 생매장되어 순교의 길로 달려갔다.


"여자는 좋은 남자 만나야 해 시집 가거라" 과년한 딸이 시집가서 잘 살아 주기를 바란 부모님들의 백인숙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 싫습니다. 저는 시집가지 않고 예수만 섬기겠습니다" 부모들은 펄펄 뛰며 금족령을 내리고 학교를 중퇴시켰다.
금족령에 얽매여 집에 감금당해 있을 수 없는 그는 그길로 집을 나와 평양여자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가서 1919년에 일본 요꼬하마 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주기철목사가 시무하는 산정현교회 여전도사가 되었다.
주기철목사와 같이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경찰에 끌려가 수감되고 2개월만에 출옥하는 등 교인들을 격려하며 그는 차라리 옥중에서 죽기를 바랐지만 여러번 끌려가도 번번히 몇달이 안되어 풀려났다.


1944년 4월 21일 그가 믿고 존경하던 주기철 목사가 죽어 장례를 치루게 되었다. 일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매를 맞고 옷이 찢기면서도 참석했고 백전도사는 주목사 장례식에 슬피 울었다. 일경은 장례가 끝나자 옥에 가두었지만 그는 옥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비굴하지 않게하소서 어떤 경우에도 연약한 꼴을 보이지 않게 하소서"기도했다.
백전도사 연약한 꼴을 보이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는 애국운동을 하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일제에 저항할 때는 여인들의 몸을 발가벗겨 남자들 앞에서 갖은 수모를 다 주었고 담배불로 지지고 곤욕스러워 땀을 흘리면 어름물을 뒤집어 씌웠다. 백인숙도 예외가 아니였다. 여수들은 폭도로 변한 간수들의 노리개가 되어 갖은 폭행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백인숙은 이때도 2개월만에 풀려났고 그 이듬해 해방이 되었다.


공산화된 산정현교회 전도사로 재직하면서 그는 김철훈 정일선 두 목사의 순교를 직접 목격했다.
백인숙은 1950년 6월 20일 공산당에 체포되어 생매장 되어 순교했다.

 

 

>> 목차고리 : 세계 > 아시아 > 동아시아 > 대한민국 > 순교자

>> 연결고리 : 대한민국장로교, 전도사,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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