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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블레어(Blair, Herbert E.,한국명: 邦惠法 1879-1945)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블레어는 1879년 미국에서 출생하였고, 1904년부터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활동하였으며 특히 선천선교부에서 성경학교를 통하여 교회 부흥운동을 일으키는데 이바지하였다. 1907년 자성군 삼흥면에 상서평(上西坪)교회를 설립하였으며, 교인들이 더욱 증가하여 하서평(下西坪)교회도 설립하였다.

1908년 강계(江界)선교부가 개설되면서 강계 북부지역에 복음을 전했으며 강계군 동면 내고동(內庫洞)으로 이주하여 부인과 세 딸이 함께 생활하였다. 강계선교부 주석(主席, 책임자)으로 이 지역 교회를 총괄(共同管理)하고, 만주지방에 있는 조선인 교회를 감독하였으며, 학교(Academy) 교사, 각 교회에 봉직하는 조사(助事) 및 성서판매원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 결과 1908년 자성군 건포(乾浦)교회를 설립하고, 그 후 선교구역을 위원군 지역까지 확장하여 1909년 위원군 한장(漢場)교회와 1910년 신흥(新興)교회를 설립하는데 기여하고 1911년에는 석포(石浦)교회 예배당을 건립하여 시무했다.

그의 부인 질레트(Gillette, Susan)는 1905년 10월 21일 내한하여 1907년부터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합류하여 남편과 함께 선천, 강계, 대구선교부에서 봉직했다.

◇ 경상북도에서 28년간 여러 교회의 설립과 시무

블레어 선교사는 1913년 북한에서 대구선교부로 전임되어, 1915년까지 3년간 대구 서부교회 담임 목사를 비롯하여, 경상북도 서북부 지역의 선산, 상주, 칠곡, 군위, 의성 김천 등지를 순회하며 전도하고 겸임(兼任) 선교사로 폭 넓게 활동하였다. 브루엔(Bruen) 선교사와 연계하여 선산군에서 8개교회(桃山 上林 靑山 五佳 上毛 路上 習禮 栢子), 상주군에서 7개교회 (石山 西町 花山 五里院 五廣 沙山 衾欣), 칠곡군에서 6개교회(倭館 眞坪 南栗 玉溪 泉坪 邑內), 군위군에서 5개교회(仙谷 鳳凰 內梨 上谷 將軍), 의성군에서 3개교회(實業 孝仙 飛鳳), 김천군에서 2개(崇烏 福星)교회 등 여러 교회를 겸임하여 시무한 기록이 있다.

1916년 아담스(Adams), 윈(Winn) 선교사와 연계하며 군위군 2개 교회(文德 梅城)와 영천군 2개 교회(普賢 山雲)를 비롯하여 효선(孝仙), 범어(泛魚)교회를 확대하여 시무한바 있다. 그리고 산하 11개 교회의 성서판매인(권서)을 감독했다. 1917-1919년에는 칠곡군 신동(新洞)교회와 영천군 당지(唐池)교회를 설립하는데 기여하였으며, 의성군 제오(堤梧)교회와 침산(砧山)교회에서 시무하였다. 이밖에 박사(博沙). 칠곡, 자천(慈川), 황학(黃鶴), 죽전(竹田)교회 등을 순회 시무하였다.

1920년 시대적 상황이 변하여 “ㄱ자 예배당” 중간에 남·여석을 가로막았던 휘장(揮帳)을 철거하였다. 그 후 부인(Susan)의 건강이 악화되어 신병(身病) 치료차 미국으로 일시 귀국하였다. 이때 교인들은 기념품을 증정하고 송별식을 거행했다. 1921년 다시 돌아와 활발한 선교활동을 통하여 경상북도 서부지역의 선산군에서 원동(院洞), 구미(龜尾), 용사동(龍巳洞)교회와 상주군 에서 수상(水上)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제1장로교회에서 “만국장로회연합협의회”가 개최되었을 때 한국교회 현황을 보고하고 통역을 담당하였다. “邦惠法이 通譯을 하였는데 滿場이 拍手 喝采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923년 1월 3일 경산교회에서 개최된 경북노회(13회)와 1924년 1월 9일 동산성경학원에서 개최된 경북노회(15회)에서 2차례에 걸쳐 노회장으로 선임되어 경북노회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1932년 대구 선교부는 5개 구역으로 확대 개편되어, 상주지방을 중심으로 선교업무를 담당했다.

한편 대구시 남산동(南山町) 53번지에서 계성(啓聖)학교장 등으로 봉직하였으며 부인과 네 딸(Margaret 등)이 1938년까지 살았다. 그가 살던 주택은 현재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에서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1941년까지 대구·경북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의 강압으로 1941년 11월 17일 한국을 떠나 필리핀의 마닐라(Manila)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자녀들은 성장하여 큰 딸(Mary G.)은 목사 부인으로, 둘째 딸(Susan B.)과 넷째 딸(Hulda, R. N.)은 선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1945년 2월 20일 영양실조로 병을 얻어 필리핀에서 별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필자는 블레어의 필리핀에서의 삶과 묘지 소재를 확인하고자 마닐라 북부(산토 토마스) 지역을 답사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왔다. 아쉬움이 남지만 조사 연구는 계속될 것이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145-3번지 양화진에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1904년 11월 22일 내한하여 1941년 11월까지 37년간 남, 북한에서 사역한 블레어(Blair, Herbert E.) 선교사의 딸(Blair, Honora McClure) 묘비가 있다. 1910년 한국에서 출생하고 1919년 8월 2일 서울에서 사망하여 양화진 제1묘역(다-8)에 안장되어 있다. 또 딸(Antoinette Blair) 하나는 1914년 7월 26일 평양에서 사망하였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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