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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어네스트 토마스 베델(Bethell, Ernest Thomas, 裵說, 1872~1909)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대한매일신보 서울신문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유신학원  성경본문  
 내용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창간 언론인

 

그는 1872년 11월 3일 영국 브리스톨(Bristol)에서 출생하여, 머천트 벤처러스 학교(1885-1886, 현재 West of England)에서 수학했다. 1888년 도일(渡日)하여 코베에서 동생 허버트와 ‘베델 브러더스 무역상’을 설립하여 상업에 종사했다.

1900년 5월 26일 마리 모드 게일(Mary Maude Gale)과 결혼하여 외아들 허버트 오웬(Herbert Owen Chinki Bethell)을 낳았다. 양탄자를 만드는 공장을 설립하여 사업을 확장(1901-1904)하였으나 같은 업종 일본인 경쟁회사의 방해와 3차례의 고소로 인하여 사업에 실패했다.

1904년 3월 4일 크로니클(The Daily Chronicle)지의 특별 통신원으로 임명되어 같은 해 3월 10일 러일 전쟁을 취재하기 위하여 한국으로 왔다. 그는 1904년 4월 16일자 신문에 경운궁(慶運宮) 화재를 일제의 방화로 다룬 “大韓帝國 宮中의 廢墟化, Korean Emperor's Palace in Ruins)" 제호의 기사를 처음이며 마지막 특종 기사로 실었다. 그리고 1904년 4월 16일 해임되었다.

해임 사유에 대하여 베델은 “크로니클지의 지시는 그 신문의 편집 방향이 일본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내가 보내는 기사도 친일적인 것이어야 한다. 당시 한반도의 사정을 직접보고 나니 신문사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통신원 직책에 사의를 표하였고 크로니클은 나를 해고했다. 그 후 특파원으로 임명하겠다고 제안하였으나 나는 이를 거절하였다”(베델선생 서거 95주년 기념대회 자료) 

그 후 1904년 7월 14일, 대한매일신보 창설자 및 사장으로 취임하여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대한매일의 한글판과 영자지 창간호를 냈다. 이 신문은 항일 투쟁의 대변자 기능을 담당했다. 특히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고종 황제의 친서를 신문에 게재하여 일본의 만행을 폭로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1910년 8월 30일 일제의 기관지로 전락하고 매일신보로 개제(改題) 되었다.

그는 "내가 한국을 위해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소명이다.(My fight for Korea is heaven ordained.)"라고 했다. 일본의 침략 정책을 맹렬히 비난하고, 한국인의 의기를 돋우는데 온갖 힘을 기울였다.

1908년 일제의 언론 탄압으로 선동과 일본에 대하여 적대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두 차례 재판에 회부되었다. 상해로 끌려가 3주간의 금고형에 처해지고 6개월의 근신과 4,000만환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 벌금은 한국인들이 대납했다.

그 후 계속되는 언론 탄압과 영국 정부의 압력, 신문사 간부들의 구속과 경영난 등으로 1908년 5월 27일 신문사에서 물러났다. 후임 발행인은 만함(Marnham)으로 변경했다.

이러한 충격으로 건강이 악화(심장병)되어 1909년 5월 1일 서울에서 37세의 나이로 별세하여 1909년 5월 2일 양화진(제1묘역 가-11)에 안장되었다.

고종황제는 그의 죽음에 “하늘은 무심하게도 왜 그를 이다지도 급히 데려갔단 말인가(天下 薄情之 如斯乎)라고 탄식했다. 그리고 양기탁(梁起鐸)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영국의 남자가 한국에 와서, 한 신문으로 깜깜한 밤중을 밝게 비추었네. 온 것도 우연이 아니건만 어찌도 급히 빼앗아 갔나, 하늘에 이 뜻을 묻고자 하노라(大英男子 大韓衷, 一紙光明 黑夜中, 來不偶然 何遽奪, 欲將此意 問蒼窮)”이라는 한시를 썼다.

베델은 "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라고 유언했다.

일생을 항일 투쟁에 바친 우리 민족의 벗이며 은인이었다. 양화진에는 "大韓每日申報社長 大英國人 裵說之墓"라는 묘비가 세워졌다. 묘비 뒷면에 쓴 추모의 글은 일제가 망치로 쪼아 지워 버렸다. 8.15 광복 후 전 언론인들이 성금을 모아 1964년 사적을 다시 적어 옆자리에 건립했다. 한국정부는 1968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베델의 부인 마리 모드는 신문사가 자금 난에 허덕일 때 사재를 헌납하고 남편이 별세한 뒤에는 모든 재산을 그대로 두고 오직 관을 덮었던 태극기와 영국기, 그토록 사랑하던 한국인들이 전국에서 보내온 만사(輓詞)와 조문(弔文), 남들은 휴지라고 하는 빛 바랜 남편 발행 신문만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외아들과 손자에게 베델의 항일투쟁사를 가르치며 평생을 ‘한국사랑’으로 살다가 1965년 7월 2일 90세로 별세했다. 양화진에 베델 부부가 합장되기를 희망해 본다.

 

 

양화진 제1묘역에는 영국의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The Daily Chronicle)지 특별 통신원으로 내한하여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한 어네스트 토마스 베델(Bethell, Ernest Thomas, 裵說)의 묘지가 있다.


 

3일간의 재판, 영국인 베델을 추방하라 
일제 하에서 주권을 잃고 할말조차 할 수 없었던 한국인들에게 든든한 친구이자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한 영국인, 베델.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 베델을 둘러싸고 우리나라의 최초 국제재판이 열렸다. 영국인 판사가 주재하고 일본인 원고에 영국인 피고, 거기다 한국인 증인들과 영국인 변호사

 

  1. 베델의 죄목

당시는 군대해산, 헤이그 밀사사건, 고종양위 등으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이에 연일 계속되는 의병의 출몰과 소요로 한국민과 통감부와의 대결이 최고조에 이른 때다. 통감부 서기관 미우라는 이 일련의 상황을 베델의 신문이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증거물로 베델의 신문에 실렸던 논설 3건을 제시했다.


2. 일본과 영국의 반응

일본 외무성은 외교경로를 통해 영국정부에게 베델을 추방하거나 그의 신문을 폐간 시켜달라고 요구한다. 영국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베델을 예의 주시했고, 결국 베델을 재판에 회부한다.


3. 베델은 누구인가

영국의 한 신문사 특별통신원으로 한국에 온 베델은, 통신원 자리에서 해임된 이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다. 창간된 신보는 발간 초기부터 강한 반일논조를 띠었고 점차 국민들 속에 깊이 파고들어 민족지로써의 자리 매김을 하면서, 일본 당국과 전면적인 대결로 돌입하게 된다.


4. 국채보상운동

1907년 초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면서 퍼져나간 일종의 캠페인이다. 일본에 진 국채 1300만원을 민간인들이 담뱃값을 줄여서라도 갚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애국계몽운동. 당시 불길처럼 번진 이 자발적인 민중운동의 뒤에는
대한매일신보가 있었다.


5.
대한매일신보의 논설 위원들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등의 논설 위원들은 베델을 끼고 혹은 그의 이름을 빌어 소신껏 자기 주장을 폈다. 특히 훗날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맡았던 박은식은 칼 같은 논설로 유명했다.


6. 신보의 몰락

재판결과, 베델은 상해에 있는 영국인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신보에 치안 방해라 하여 발매금지처분을 내렸고, 실제로 신보사를 운영해오다시피 하던 양기탁에게는 국채보상금을 횡령했다는 터무니없는 혐의를 씌워 구속했다.


7. 베델의 죽음

상해에서 돌아온 베델은 서울의 한 호텔에서 서른 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추도모임에는 도산 안창호가 추도사를 맡았고 직업, 귀천, 국적,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그리고
대한매일신보는 베델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만에 종간호를 냈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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