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엘리자베스 C. 피터스(Pieters, Elizabeth Campbell, 1872~1906) 여성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1902년 미국 시카고의 매코믹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던 유태계 러시아인 알렉산더 A. 피터스와 결혼했다. 1904년 9월 13일 미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선교사업에 활동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건강이 약화되고 폐결핵을 앓다가, 러일전쟁이 소강상태에 있을 때 필리핀 마닐라로 갔다가 일본이 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폐결핵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1906년 1월 4일 서울에서 34세로 별세했다.

묘지는 양화진 제1묘역(마-6)에 안장되어 있다. 그의 남편 A. 피터스는 1930년 “엘리자베스 추모사업”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결핵환자 진료소를 마련하고, 크리스마스 실 운동을 전개했다.

 


◇ 에바 필드 피터스 여성 의료선교사 (Pieters, Eva Field, 1868-1932)

1868년 미국에서 출생하여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897년 10월 14일 미국 북장로회 여성독신 의료선교사로 실드(Shields, Esther)와 함께 내한했다.

그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료 활동을 하면서 1908년 A. 피터스와 결혼했다. 그 후 이들은 10년 간 황해도 재령에서 기독교 교육과 의료 선교 활동을 계속했다. 특히 에바 필드 선교사는 수학 교과서를 편찬한 공적이 있다.

리차드(Richard)와 루벤(Reuben) 두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들은 평양외국인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922년 선천으로 이동 한국교회를 위하여 새로운 찬송가도 편집하여 발행했다. 그러나 불치의 암으로 인하여 그가 봉직했던 세브란스 병원에서 1932년 7월 20일 64세로 별세했다.

묘지는 양화진 제1묘역(라-14)에 안장되어 있다. 그의 남편 A. 피터스는 1932년 “에바 필드 추모사업”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치과 수술실을 마련했다. 비문에는 “예수 안에 잠들다.(A sleep in Jesus)”라고 기록되었다.


◇ 알렉산더 A. 피터스 선교사(Pieters, Alexander Albert, 彼得,1871-1958) 

1871년 12월 30일 러시아(Ecoternoslav)에서 유태인으로 출생하여 인문고를 졸업했다.

1895년 4월 일본(나가 사키)에서 피터스 목사의 전도와 세례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 개명했다. 1991년 ABS 루미스(Loomis, Henry) 일본 총무에 의하여 권서(Colporteur)로 채용되어 1895년 5월 16일 내한했다. 1895년 9월부터 1898년 6월까지 3년 간 ABS 권서 겸 한국 부총무로 활동하면서 빠른 시일에 한국어를 익혔다.

서울 근교와 호남과 충청지역을 순회하며 성서도 판매했다. 1897년부터 시편 번역에 착수하여 1898년에 12월 6일, 62편의 시편을 번역하여《시편 촬요》라는 제목으로 한국 최초의 구약성서를 발행했다.

그의 시편 번역에 대하여 루미스 총무는 1902년 10월 ABS 본부 헤이븐 (Wm. I. Haven)에게 “피터스는 4년 전에 여름 휴가를 이용하여 당시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시편을 번역하는데 보냈다. 그는 히브리어 본문으로 번역하였으며 예약에 의해 1,500부가 인쇄되었고, “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고 보고했다.(자료:대한성서공회사)

1898년 7월 1일부터 1900년 가을까지는 BFBS 권서 겸 부총무로 활동했다. 그의 좋은 성품과 ABS 권서로서 3년간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켄뮤어 총무는 적임자로 판단하여 2년 간 연봉 140파운드와, 매월 15$의 전세비를 지급했다. 이때 시편을 찬송가로 여러 편 운률화(韻律化)했다. 예를 들면 기도와 간구를 위한 찬송가 479장(내가 깊은 곳에서)은 시편 130장을 운률화한 것이다.

1900년, 미국 매코믹신학교에서 신학을 시작하고 1902년 목사 안수를 받아 1904년 9월 미국북장로회 소속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구약 성서번역위원(1906)과 성서개역위원회 임원(1911) 등으로 활동했다. 1913년 황해도 재령으로 옮겼다가 1921년 평북 선천으로 이동했다.

1927년 서울로 돌아와 성서 개역에 참여하고 1937년 구약성서 완성에 공헌했다. 1941년 은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1958년 6월 29일 캘리포니아에서 별세했다.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는 구약성서의 <시편> 번역 선구자인 알렉산더 A. 피터스(Pieters, Alexander Albert, 彼得)선교사 가족 묘지가 있다.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 C. 피터스 선교사 묘지와, 첫 부인이 별세하여 재혼한 에바 필드 피터스 여성 의료선교사 묘지가 있다.

알렉산더 A. 피터스 선교사는 구약 가운데 <시편>을 최초로 번역하고 구약을 개역(改譯)한 선교사로 미국성서공회(ABS), 영국성서공회(BFBS), 미국북장로회(NP) 선교사로 폭 넓게 활동하면서 특히 성서 번역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은인 선교사이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A-Z




  인기검색어
kcm  239694
설교  142738
교회  100142
아시아  81526
선교  78131
예수  65860
세계  65021
선교회  56177
바울  52532
사랑  50870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