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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6-12-23
 제목  이성봉(李聖鳳, 1900.7.4-1965.8.2)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성결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순교를 결심한 성결교 지도자

 

이성봉목사는 1900년 7월 4일 평남 강동군 간리에서 감리교 권사 아버지 이인실과 어머니 김진실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이성봉 목사의 집에 복음이 들어온 것은 1905년 그가 여섯살 때였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는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어려웠으나 복음을 접하자 그의 가정은 주님의 은혜 가운데 기쁨이 충만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예수를 믿게 되자 교회학교 선생으로 봉사할 정도로 억척스러웠고 독실한 영향을 받은 이목사 어려서부터 교회에 열심으로 남다른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후 이성봉 목사의 어머니는 황해도 신천장로교회 김익두목사의 초청으로 봉직하게 되어 이목사도 이 학교에 진학해서 14세에 졸업하였다. 이때 이목사는 김익두 목사가 시무하는 신천장로교회에 다니면서 김목사로부터 감화를 받고 자신도 장차 훌륭한 부흥하가 되야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1. 성결교단 재건에 힘씀

1945년 이성봉목사는 만주 주문교회에서 해방을 맞고 "무너진 곳을다시 주복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귀국하여 이북에서 폐쇠된 성결교회 재건운동에 앞장서서 교회 재건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여러 곳을 돌며 무너진 제단을 다시 세우기에 힘썼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38선이 막히고 교회탄압이 날로 심해지자 이목사는 46년 월남하여 남한성결교단재건에 앞장섰다.

2. 순교를 결심

1950년 이목사는 서울 충정장로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다가 25일까지 집회를 마치고 27일에 목포에 내려와 압해도에서 20일동안 집회를 열었다.  이때 인민군은 정읍까지 쳐내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목포 성결교회의 동료목사는 이성봉 목사에게 피난가자고 했으나 거절하고 혼자 남아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다 8월 2일 수요일밤 예배를 인도하고 나서 내무서원에 붙잡혀갔다. 이 목사는 잡혀가면서 순교를 결심했다. 그래서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키며 옥중에서 매일 찬송하고 기도했다.

3. 임마누엘 특공대 조직

이 목사는 1954년부터 2년동안 625로 인하여 무너진 교회의 재건과 약소교회를 위한 "임마누엘 특공대"를 조직하여 순회집회를 인도하였다.

서울,부산,인천,대구,대전 등 대도시를 돌면서 천막을 치고 대중집회를 할 때에는 수천명 혹은 수만명이 모여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이 목사는 농촌과 산골, 도서의 여러 지방을 순회하면서 집회를 인도하여 부흥의 기틀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또 그는 전후방의 장병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나환자들도 자주 돌아보고 격려 위문했다. 소록도의 갱생원 여수의 애양원, 대전의 애경원, 부산의 상애원, 인천의 소생원, 금천의 성애원, 창년의 소혜원 등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편 1955년 신촌교회를 개척하였다. 1959년 이목사는 N.A.E.대표로 도미하여 약 8개월동안 워싱턴 뉴욕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등 각처를 순회하면서 집회를 인도하였다.

4. 1일 1교회 순회집회와 소천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1일 1교회 순회집회를 시작한 이목사는 408개 교회를 순회하였다. 이목사는 세상을 떠나기 10일전까지 단을 지켰으며 1965년 7월 성결교 합동총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였고 1965년 8월 2일 별세했다.

유해는 청주 교회묘지에 안치되었고 부인이 이원실과의 사이에서 딸셋을 두었다.

 

李聖鳳 牧師 年譜

1900년 7월 4일 : 평남 강동군 이인실씨의 장남으로 출생
1905년 : 6세 때 온 가족이 예수를 믿음 
1918년 2월 10 : 득병하여 3년간 고생중  중생(21세)
1925년 3월 :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에 입학(26세) 
1928년 3월 : 신학교 졸업(29세)
1928년~1930년 : 수원교회 신개척(성전 건축)
1930년~1936년 : 목포교회 시무(성전 건축)
1932년 : 목사 안수
1936년~1937년 : 신의주교회 시무(성전 건축)
1938년 : 전국 부흥사 임명받음(총회에서)
1939년 : 일본 유학과 순회 전도
1941년~1945년 : 만주 전도
: 재림 설교한 이유로 사리원 경찰서에 1개월 수감, 6개월 만에 기소 유예되어 다시 만주에서 계속 집회 인도
1945년 8월 15 : 해방과 더불어 이북에서 무너진 성결교회 재건 운동
1946년 : 월남하여 남한 성결교회 재건 순회집회
1945년~1955년 : 임마누엘 특공대라는 이름으로 약소 교회를 위한 순회 집회
1955년 : 신촌교회 신개척(이성봉 목사 자택에)
1955년~1956년 : 희년 준비 성회-성결교단 희년인 1956년에 1천 교회 목표 달성을 위해 대교회 순회집회하면서 지교회 설립을 촉구함
1957년 : 희년 전도대로 대도시 중심으로 순회집회
1959년 : 미국 순회 전도(8개월)
1961년 9월~
1963년 2월 17
: 1일 1교회 순회집회(48교회)
1956년 7월 23 : 성결교 합동 총회에서 마지막 설교
1965년 8월 2일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
1965년 8월 4일 : 신촌교회에서 최학철 목사의 집례로 장례식을 거행
 청주교회 묘지 안장
1991년 12월 : 그 후 이장하여 한국도자기 창업주 故 김종호 장로 산소 옆에 안장

 

 

>> 목차고리 : 교단 > 성결교  

>> 바깥고리 : 성봉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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