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룻기3:1-5 나오미의 시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보아스를 만난 나오미 가정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아옵니다. 신앙은 감나무 아래 누워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잘 익은 감이 떨어지기만을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뛰어다녀야 합니다. 보아스를 통해 힌트를 얻은 나오미는 일이 되는 방향으로 밀어붙입니다.
Ⅰ. 룻의 행복을 구하는 나오미 나오미에게 여전히 짓눌리는 짐이 있다면 그것은 청상 과부인 며느리 룻에 대한 부담입니다. 즉 언제까지 며느리 룻을 늙은 과부 시어머니를 위해 희생시켜야만 되는가 라는 부분입니다. 희망도 없는 시어머니인데도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부모 형제 친척 그리고 고향을 등뒤로 버리고 따라 나선 며느리 룻, 그리고 지금도 끝나지 않은 고통을 묵묵히 감수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욱 시어머니 나오미의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찌하든 착한 며느리 룻의 행복한 장래를 위하여 시어머니로서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기회가 왔습니다. 그 명분은 '기업 무르기'입니다.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1-2절 상반절). 나오미의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즉 기업 무르기를 통해 대를 이을 자식을 얻고 또한 며느리 룻을 재혼시키고 싶다는 말입니다. 현재 나오미의 처지에서는 나오미 자신이 보아스하고 동침하여 자식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무리입니다. 나오미의 나이가 너무 많아 자식을 낳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룻1:12). 임신이 가능한 여자는 며느리 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가 기업 무르기를 구실로 보아스와 결혼하여 자식을 가지려고 한다면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재혼하여 낳은 아들이 성년으로 자라기까지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수 십년이 걸릴 것이고, 그 만큼 룻의 고통은 길어지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기업 무르기를 통해 나오미 가정이 대를 이를 아들을 얻기 위한 방법에는 현재 두 가지 길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나오미가 나서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며느리 룻이 나서는 길입니다. 나오미 자신이 나서서 "며늘아, 내가 보아스와 재혼해서 재미 볼 테니 넌 내가 자식을 낳을 때까지 기다려라" 라고 말하며 기업 무르기의 우선권을 주장해도 청상 과부 룻은 할 말이 없습니다. "네, 어머니, 보아스하고 재혼해서 늘그막에 행복한 삶을 사세요. 그리고 저를 위하여 잘 생긴 아들 하나 꼭 낳으세요" 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후자를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청상 과부 며느리 룻의 행복한 생활을 도모하고 싶었던 나오미의 심정이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 시집 보내고자 본격적인 시도를 합니다.
Ⅱ. 나오미의 계획 기업 무르기를 통해 룻을 재혼시키기 위한 시어머니 나오미의 계획은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오릅니다(2절 하반절-4절). 며느리 룻도 시어머니의 계획에 손발을 딱딱 맞춥니다(5절). 순진한 보아스를 어떻게 요리할 까를 놓고 고부간에 머리를 맞대고 치밀한 계획을 짭니다. 이를 위해 시어머니 나오미는 전부터 준비해 왔고(룻2:21-23), 며느리 룻은 군소리하지 않고 순종을 합니다. 참 재미있는 광경입니다. 하지만 나오미의 거사 계획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라는 점을 우리는 진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본문에 나타난 나오미의 시도가 그렇게 눈에 거슬리거나 얄밉지 않고 흥미를 끄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안일과 행복을 구하지 않고 며느리 룻의 행복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에서입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 주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업 무르기는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룻기3:6-10 감격한 보아스
시어머니 나오미의 주도면밀한 계획을 충분히 이해한 룻은 즉각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6절).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깨끗한 옷으로 가라 입고 어두운 밤을 기다립니다.
Ⅰ. 룻의 순종 만반의 준비를 갖춘 룻은 보아스의 타작 마당으로 가서 보아스의 동태를 살핍니다.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7절 상반절).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입니다. 정황으로 보아 보아스가 술에 취한 듯 합니다. 풍년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보아스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아니하고 높이 쌓아 올린 보릿단 곁으로 다가가 잠을 청합니다. 아마 당시는 타작이 끝나도 주인은 집으로 가지 않고 타작마당에서 잠을 자는 풍습이 있었나 봅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몸을 숨기고 보아스의 모든 행동을 눈여겨보고 있던 룻은 그가 잠자리에 눕는 것을 보자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해 살그머니 그의 잠자리로 다가가 그의 발 쪽에 눕습니다.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7절 하반절). 그리고 다음 단계로의 전개를 기다립니다. 청상 과부 룻의 심장은 폭포 소리처럼 우렁차게 뛰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Ⅱ. 보아스의 감격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보아스는 이상한 느낌에 소스라쳐 깹니다.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8절). 너무나도 뜻밖의 상황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분명히 잠자리에 든 것은 자기 혼자였는데 한 여인이 자신의 잠자리에 함께 누워있다니! "가로되 네가 누구뇨?"(9절 상반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9절 하반절). 룻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보아스는 감격합니다. 어떻게 보면 보아스의 이러한 반응은 예상을 빗나간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에 깔려 있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젊은 과부가 제 발로 자신의 잠자리로 찾아 와 곁에 누워 있고 게다가 자신의 품에 안기고 싶다고 향긋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요염한 자태를 보이고 있는 데도 보아스는 불타는 욕정대신 냉정을 가지고 침착하게 사태를 대처하는 모습이 조금은 특이합니다. 아무튼 다시 한번 보아스의 신앙과 인격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호박이 덩굴째로 굴러들어 온 격인 싱싱한 젊은 여체를 지닌 룻을 게걸스럽게 탐하지 않고 그녀의 순수한 동기와 의도를 파악하면서 그녀에 대한 고마움을 크게 표시합니다.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10절). 보아스의 감격은 룻의 가치관에 대한 경의에서 나왔습니다. 룻은 젊습니다. 젊다는 것은 미래가 창창하고 선택의 폭이 크고 또한 자신의 야심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이 큼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룻은 자신의 젊음과 야심을 자신의 욕망을 따라 펼치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관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업 무르기 규례를 따라 시어머니 나오미가 명하는 대로 자기 자신을 대가 끓길 위기에 몰린 집안을 세우는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해 늙은 보아스에게 자신의 몸을 주는 것을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왕 재혼할 바에야 젊은 사람하고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하지 않습니까? 보아스가 감격한 데는 바로 룻의 순수한 신앙적 동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또한 시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는 룻의 사심이 없는 아름다운 모습에 보아스는 크게 감격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룻의 이러한 자세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여 주 하나님의 복을 빌어줍니다.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은 자신의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좀 더 나은 조건을 따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오직 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실천으로 옮긴 믿음의 여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