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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7-10-01
 제목  <기획>인터뷰3 : 당신의 이름은 선교사 입니다. 조창원 권사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선교타임즈 134호(2007/10)  성경본문  
 조회수  6819  추천수  43
조현아 기자

올해 일흔 셋의 조창원 권사는 모든 선교사들의 어머니이다. 그가 자신의 명함이라고 꺼내든 것은 선교사들의 기도편지였다. 한 뭉치의 선교편지를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줄 때면 조 권사는 “우리 딸, 우리 아들이 나갔으니 꼭 기도 부탁한다”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 조창원 권사 앞으로 도착하는 선교편지들은 늘 ‘어머니께’로 시작한다. 조 권사 역시 선교사들을 ‘애비, 애미’로 부른다. 조 권사는 82년에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후 남편의 유언을 따라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그는 25년간을 한결같이 선교사의 삶을 걸어왔다. 항상 지켜주던 남편을 먼저 보내고 세 아이와 남겨졌을 때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만 같았다는 조 권사는 한 때는 가장 불행한 가정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가장 행복한 가정이라고 고백하며 그 비결은 선교하는 삶에 있었다고 말한다. “제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단지 하나님의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자신을 표현하며 조 권사는 선교지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포항에 내려 간 적이 있었는데 한 분이 부추김치를 많이 담갔다며 싸주셨습니다. 포항에서 올라와서 바로 몽골로 가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선교지에 나갈 때마다 매 번 반찬을 만들어 나가곤 했던 저는 받은 부추김치를 싸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님께서 임신중이였었는데 얼마 전부터 부추김치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하나님께서 포항에서 몽골까지 저를 심부름꾼으로 사용하신 것이지요.”
조 권사는 터키를 시작으로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베트남, 일본,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란에 이르기까지 많은 선교지를 방문하며 열방을 품고 기도해왔다. 한 선교지에 나갈 때마다 한 두 달씩 머물며 선교사 가정을 돕고 그들을 위로하는 삶을 살아온 조 권사는 직접 현지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지에 가서 그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보지 않고는 절실한 기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실제로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매년 선교지를 방문해 오고 있다. 작년 2차례의 중국 방문에 이어 금년 10월에도 중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처음 중국을 방문할 때는 청년들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인솔 전도사님이 영혼들을 끌어안고 기도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따라 나섰는데 그 곳에서 저와 같이 남편을 잃고 마음이 닫힌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로 얼싸안고 울며 위로할 때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그녀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내게 허락하신 아픈 상황들을 이렇게 사용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저 또한 깊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제 삶을 덤으로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제 사람을 작은 촛불처럼 중보기도로 태우고자 합니다. 정년퇴직이 없는 확실한 기업인 이 기도를 저만이 가진 노하우로 아버지 품에 갈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조 권사의 방은 미전도 종족을 위한 기도제목으로 도배되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어머니 기도모임’과 ‘한몸씨 기도모임’을 통해 동역자들과 함께 기도해 온지도 십 수 년이 흘렀다. 이 기도모임은 40대부터 80대까지 교회와 교파를 뛰어넘어 오직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기도의 용사들로 부르셨습니다. 미전도 종족을 품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각계 각처에서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기도의 최전방에 세우셨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동역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사역들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하며 조 권사는 또 다른 동역자로 가족을 소개한다. 선교지에 나갈 때마다 온 가족의 파송을 받고 나간다는 그는 얼마 전 손자가 핸드폰에 입력해 줬다는 ‘조창원 선교사’라는 글귀를 보여주며 “손자들에게 선교하는 할머니, 기도하는 할머니로 보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한다. “중국에 처소교회를 세우러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며 물질로 동참해 주었는데 당시 7살이던 저의 손자도 자신의 용돈을 선뜻 내어놓았습니다. 선교의 삶을 배워가는 손자의 삶이 제겐 무엇보다도 귀한 열매입니다.”

“저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선교지에 나가지 않을 때는 집에 있으면서 예배드리기를 좋아하는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는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곤 합니다. 이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것이기에 가능합니다. 선교사의 삶은 모두의 사명이며, 주님이 도우시기에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 권사는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는데 나이 또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미전도 종족들은 노인들을 우대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서 오히려 유리할 때가 많습니다.” 조 권사는 어느 곳에 있든지, 젊든지 나이가 많든지 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있다며 죽을 때까지 이 사역들을 감당하기 원한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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