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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7-10-01
 제목  <선교광장> 무례한 기독교(?)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선교타임즈 134호(2007/10)  성경본문  
 조회수  6895  추천수  58
신약성경의 저자들 가운데 특별히 신학적 접근을 할 사람은 바로 요한복음의 저자이다.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도요한으로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처음 시작부터 매우 철학적이고 변증적인 접근을 하고 있을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로고스(말씀)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 라는 두 구절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말씀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소개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당시의 로마통치권에서 사용하던 공통어인 헬라어로 쓰여졌다. 여기서 말씀의 헬라어는 로고스(logos)이다. 로고스라는 개념은 당시 헬라어 권에서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단어로 최고의 지식 혹은 지혜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개념은 특정한 집단이나 일부 지식층에서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 대부분의 일상적인 사람들이 알고 있고 사용하던 단어이며 개념이다.
즉 요한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변증법적으로 접근할 때 당시 헬라문화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상식적이며 양식 있는 개념을 도입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로고스의 개념으로 그리스도를 소개 할 때 예수를 모르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최고의 고상한 지식과 지혜로 쉽게 다가 갈 수 있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상 사람들에게 아주 잘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너무 낯선 영역으로 다가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서는 알지만(know about Christianity), 기독교를 알지는(know of Christianity) 못하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우리의 생각과 의도를 적절한 단어와 태도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난해 한 지역에서 어떤 기독교행사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특정종교의 사찰이 무너지도록 기도한 영상이 일반인 네티즌들과 특히 불교인들에게 큰 저항을 가져오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이에 대한 항의 집회를 열고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를 바라다보는 일반인들의 시각 또한 기독교의 편협함과 타 종교를 공격하는 것에 대한 몰상식함을 질타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건은 정치적 논쟁으로까지 발전하여 현재 대통령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자가 기독교인으로 이 행사에서 격려 발언한 것과 관련해서 불교계에서는 기독교인이 정권을 잡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정치적으로 기독교와 불교계가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게 되고 이것이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엄청난 파장으로 다가 올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부흥을 위한 기도모임에서 사찰이 무너지도록 기도하자는 기도제목으로 올릴 수 있다. 필자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결과 기독교가 최고의 진리이며 지혜이며 선이라는 사실이 전달되는데 엄청난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에 개봉된 영화<밀양>에서 기독교가 영화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몰론 감독의 의도는 휴머니즘의 한 측면으로 전달하려고 했고 그 통로로 기독교를 사용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주제는 사실 기독교는 아니다. 그런데 문제 그 기독교가 인간 휴머니즘에 대한 무례함과 독선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온갖 고통과 불행 가운데서 교회를 통해 은혜를 경험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은 주인공 선애가 자신의 아들을 유괴해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러 갔을 때 그 살인범이 자신은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아 마음이 평안하다는 말을 듣고 “내가 용서하지 않은 나의 원수를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에 다시 기독교를 버리고 절망해 버리고 만다는 스토리이다. 문제는 이것은 오늘날 일반 지식인들이 기독교를 바라다보는 시각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는 진정한 휴머니즘(인간사랑)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들의 고민이 있다. “분열된 세상에서 요구되는 그리스도인의 예의란 무엇인가?”<무례한 기독교/IVP>라고 문제 제기한 ‘리처드 마우’처럼 다양한 가치관과 신념이 공존하는 이 분열된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신앙을 전달하고 주장하기 위해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기독교를 포함해서 특정한 종교가 힘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종교는 자신의 신앙을 확산시키기 위해 다른 공적인 영역에 대해서 무례하리만큼 일방적이고 저돌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이런 태도는 역사적으로 기독교 전통 안에서 당연시되어 왔고 때로는 간증이 되었다. 그러나 리처드 마우는 “이런 무례한 태도가 잘못된 하나님 이해와 인간 이해에서 비롯한 것임을 지적하고, 신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 겸손하고 교양 있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다원주의적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대화하는 방식을 새롭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오늘과 같은 다양한 가치와 지식 그리고 문화적 양식이 공존하는 사회 안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가 최고의 지식이며 진리임을 상식을 무너트리지 않으면서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만일 기독교가 진리라면 그 진리는 상식으로 접근해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상식적인 진리를 전달하려는 공간이 비상식적이라면 상식적인 기독교가 비상식적으로 것으로 이해 될 수밖에 없고, 상식적인 접근이 비상식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타종교나 가르침에 대한 공격적인 접근은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사회적 문화와 현상이 다 비상식적이므로 기독교의 접근만이 상식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지금 이 역사를 하나님이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저자의 지혜가 필요하다. 당시 온갖 왜곡된 진리와 사상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 사이를 뚫고 당시의 헬라문화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최고의 지혜와 상식을 상징하는 로고스(logos)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기독교를 변증한 그 지혜가 우리들 가운데 필요한 것이다. 최근 선교현장에서 ‘내부자 운동’(insider movement)가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복음이 전달하는 외부자의 시각과 문화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들은 내부자들의 문화와 시각 그리고 그들의 의해 만들어지는 기독교 형식으로 복음이 이해되고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혼합주의와 기독교정체성의 혼선 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의 시각에서 혼합주의이며 누가 기독교의 문화적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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