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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7-07-01
 제목  <크리스챤 영화 산책> 밀양
 주제어키워드  [선타200707]<크리스챤 영화 산책> 밀양  국가  <크리스챤 영화 산책> 밀양
 자료출처  선교타임즈 2007년 7월호  성경본문  
 조회수  6318  추천수  6
선량욱 문화선교사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라고 한다면 역시 단연 ‘밀양’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청준 선생님의 ‘벌레이야기’가 원작인 이 영화는 예술 영화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기독교를 소재로 삼고 있어서 함부로 다루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오히려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서울에서 남편을 잃은 신애는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아들을 데리고 내려옵니다. 밀양으로 내려가던 중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카센터 사장인 종찬을 만나 같이 밀양으로 갑니다. 밀양에서 피아노 학원을 차린 신애는 점점 밀양에 정착해 갑니다. 한편, 신애가 맘에든 종찬은 계속 신애 주변을 맴돌지만 신애는 쌀쌀맞기만 합니다. 그러던 중 신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준이가 유괴범에게 납치됩니다. 신애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준이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옵니다. 유괴범은 준이가 다니던 웅변학원 원장이었습니다. 신애가 돈이 많은 줄 알았던 원장은 돈을 노리고 신애의 아들 준이를 납치하지만 돈이 없는 걸 알자 결국 살해하고 만 겁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신애는 방황하게 됩니다. 신애는 준이의 사망신고를 하러 간 날 교회 현수막을 보고 교회에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죠. 곧 신애는 하나님의 사랑에 푹 빠지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합니다. 신애를 좋아하는 종찬도 덩달아 교회에서 봉사도 하죠. 그러던 중 신애는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려고 합니다.

신애 : 나 사실은 당신을 용서하러 왔어요. 저는 그동안 하나님을 만났거든요. 하나님 안에서 참 사랑을 알았어요. 당신도 그 사랑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원장 : 네. 참 감사하네요. 사실 저도 감옥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신애 : 네?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다고요?
원장 : 네. 저도 신앙 안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주시니, 그 사랑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준이 어머니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셨다니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아들을 죽인 범인이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애는 쓰러져 병원에 갑니다. 그리고 엄청난 시험에 빠지죠. 이후 신애는 부흥회를 방해하고, 교회 장로를 유혹하려고 하는 등, 하나님께 반항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결국 정신병원에까지 가게 되죠. 그러나 그런 신애의 옆에는 언제나 종찬이 있었습니다.

. . . 용서란? _ 사람들이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신애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그 사랑을 갚고자 준이를 살해한 사람을 용서하러 교도소에 갑니다. 종찬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말리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유괴범이 하나님을 만난 사실을 알고 자기가 용서할게 없다며 크게 시험에 들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꼭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도 그 유괴범, 살인자와 다를 바 없는 죄인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죄의 정의와 성경이 말하는 죄의 정의는 다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이 그 사실을 입으로는 고백하면서 마음으로는 바리새인처럼 느끼기 쉬운 것 같습니다. 결국 신애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이 그 사람과 같은 죄인이란 것은 인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 . . 하나님은 잔인한 분이신가?
우리는 절대자인 하나님 앞에서 정말 무력합니다. 영화 속 신애 역시 그런 무력한 자신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해서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가끔은 욥기에서의 하나님처럼, 그 분을 이해하기 힘들거나 잔인하신 분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욥기 마지막을 보면 하나님은 그저 자신의 절대 주권을 나타내실 뿐 행하신 일에 일절 변명도 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절대 주권으로 우리를 잔인하게 다루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아오리다….’ 하나님의 섭리와 속성 중에 잔인이란 것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잔인하게, 우리의 운명을 쥐고 흔드시는 것처럼 느낄까요? 우리의 계획에 의하면 일이 이렇게 되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좀 더 다른 방향으로 가야하죠.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보다 높으신 분입니다. 우리의 계획이 그분의 계획인 것은 아니죠. 우리는 솔직히 우리의 생각과 계획과 달라지는 것을 못 견딥니다. 그래서 스스로 고난에 빠지는 거죠.
. . .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
부모님의 사랑은 언제나 한결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늘 동일한 사랑을 베풀고 계시지만 우리가 그걸 더 많이 느낄 때가 있고 덜 느낄 때가 있죠. 신애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장로를 유혹한다거나 부흥회를 방해하는 등의 행동은 안하겠죠. 신애의 그런 행동은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분노이자 반항의 표시입니다. 마치 십대 자녀들이 자신을 더 많이 봐달라고 부모에게 반항하는 거라고나 할까요.
또한 한 가지 더 주목해봐야 할 것은, 영화 속 ‘종찬’의 존재입니다. 영화의 초반에는 속물처럼 나오지만 나중에는 신애보다 더 열심히 교회가고, 마지막까지 신애 곁을 지켜주는 종찬의 존재를 통해 감독은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요…….

. . . 이 영화의 제목인 밀양. 즉, ‘비밀스런 햇볕’
태양은 늘 그 자리에서 비추고 있지만 그걸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 구름에 가려졌느냐 안 가려졌느냐의 차이가 아닐까요? 종찬은 늘 신애의 곁에 있습니다. 신애의 주변을 돌봐주고, 위로해주고, 신애가 싫어해도 교회도 같이 가고, 교도소도 데려다 줍니다. 나중에 정신병원에 갔다 온 신애의 뒷바라지까지 해주죠. 여기서 종찬의 존재가 왠지 하나님, 성령님과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성령님도 우리가 느끼든 안 느끼든 옆에 계시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신애가 조금만 더 종찬의 존재를 돌아봤어도 종찬이야 말로 비밀스런 햇볕이었음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느낄 수 없을 지라도 언제나 동일한 사랑을 주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목차고리 : 선교타임즈 200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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