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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7-06-01
 제목  <선교세계>바퀴가 돌지 않는 자동차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선교타임즈 2007년 6월호  성경본문  
 조회수  6776  추천수  2
내가 타는 자동차는 구입한지 얼마 안 되는 토요타 하이럭스 픽업 자동차다. 새 자동차인데다가 4륜 구동차로 아프리카 사역을 위해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힘이 센 자동차이다. 그런데 이렇게 힘이 세고 좋은 자동차가 말썽을 부린 것이다. 앞으로 나가 주지를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장이 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마력이 강하고 짐을 실을 수 있는 픽업 자동차이다. 그런데 고장 나지 않은 자동차가 힘을 잃은 것은 사실은 자동차가 아니라 우리 아들 때문에 운전자인 내가 마력을 잃은 것이다.

실은 자동차의 얘기가 아니고 아들과 나의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세네갈의 카자망스라는 남쪽에 선교사 자녀학교가 있다. 이 학교를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었다. 이곳은 게릴라가 많이 출몰하는 위험지역이었다. 어느 날 나는 아이가 짧은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데려다 주기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학교는 월요일에 시작을 하지만 주일에는 그곳에 데려다 줄 수가 없었다. 또한 월요일에는 너무 늦기 때문에 그 날도 안 되었다. 할 수 없이 나는 토요일에 새벽에 출발하여 하루 종일 걸리는 험한 길을 가야 했다. 학교는 인적이 매우 드문 산 속에 있었다. 이 지역은 사실상 매우 위험한 지역이기도 했다. 학교에 도착을 하니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아이들이 아직 집에서 돌아오지 않았기에 텅 비어 있었다. 아마도 그 아이들은 월요일 아침에 도착할 것이다. 아이들 부모님들은 이곳 세네갈에서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마지막까지 늦장을 부릴 것이다. 아무도 없는 학교는 참으로 적막했다. 현지 일군 한 두 명만이 그 곳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아이와 아이의 가방을 썰렁한 방에 남겨놓고 떠나야 만했다. 아이를 숲속에 남겨두고 문을 넘어 길가로 나왔다. 그런데 이 새 자동차가 아무리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속력이 나지 않았다. 발람 선지자 앞의 나귀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는 것과 같았다. 뒤에 두고 온 아이가 나와 자동차를 뒤로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었다. 내 마음이 너무 무거웠던 것이다. 내 발이 떨어지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떼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슴이 미어지고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나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1985년, 우리는 갓 태어난 아이를 바구니에 담아서 아프리카 감비아로 되돌아 왔다. 얻을 수 없었던 아이를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선물로 주셨다. 아이는 잘 자라 주었고 아프리카의 소년으로 자랐다. 초등학교 몇 년간을 현지인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아이는 매일 아침이면 학교에 가기 싫어 울고 음식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나중에 말하기를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서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화장실이란 우리나라의 재래식 화장실보다도 더 열악하였다. 그리고 백인(그들은 황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시아인도 다른 백인으로 생각한다)이 거의 없는 학교에서 우리 아이는 신비한 존재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살갗이나 머리를 만지는 것이 예사이었다. 교실을 들여다보면 우리 아이 얼굴만 눈에 띄었다. 조금만 어두우면 검은 아이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우리 아이의 학용품을 탐내는 바람에 공부보다도 그것을 감시하는 것이 어린 아이에게는 고통이었다. 이런 상황 안에서 제대로 공부를 거의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계를 사 달라고 해서 싸구려 시계를 사 주었다. 시간을 보기 위해 시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후 두시가 되면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시계도 결국은 선생님께 헌납(?)하고 말았다.

감비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9살에 선교사 자녀 학교로 옮겼다. 그래서 부모를 떠나 기숙사학교에 다녔다. 우리 아이는 방학을 마치고 다시 학교에 갈 때는 3개의 베개를 가지고 가곤 하였다. 베개 하나에는 아버지의 얼굴을 그리고 다른 베개에는 엄마의 얼굴을 그려서 함께(?) 저녁이면 침대에 들곤 했다. 그러다가 99년에는 서울에서 영동 중학교와 수원의 시골 중학교에서 어설픈 외국(한국이지만 그에게는 외국처럼 느껴지는)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미국의 Come Mission 으로 사역지를 옮겨 가게 되므로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10번을 학교를 옮긴 셈이었다.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도 주어지지 못했다. 항상 새로운 문화와 언어 그리고 역사 속에서 헤매는 공부를 해야 했다. 나는 “공부 열심히 하라” 보다는 “최선을 다해라”라고 말해야 했다.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는 것이야 말로 사람의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베드로의 학력이란 갈릴리 바다의 어부의 삶이 전부였지만 그가 기독교의 기둥이 됐다는 확신이 늘 나를 위로 해주었다.

고등학교 3년간 아이는 너무 외로웠다.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수 없이 했다. 미국문화 속에서 왕따도 당하고 마음을 붙일 교회도 없었다.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도 개척 사역이었기에 아이를 자상하게 돌봐 줄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합격을 시켜 주어도 감당할 수 없는 사립 대학교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학교는 우리 센터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엄마는 가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서 그곳에 입학시켰다. 비싼 학비의 대부분을 미국정부와 학교에서 도와주었다. 초기에 아이는 방황하기도 하여 우리의 근심이 되기도 했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안정을 찾게 되었고 이제 졸업하게 되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잘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자녀 교육 때문에 선교에 무리가 온다면 무리하는 자녀교육은 장려하고 싶지 않다. 선교를 위해서 선교지에 간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잘 자라 준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선교사의 자녀로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내준 것이 고맙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은 하지 못해도 삐뚤어지지 않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 준 것이 자랑스럽다. 깊은 실력은 없어도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천 번 번복하여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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