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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자유게시물  작성일  2007-02-13
 제목  이슬람 세계에도 기독교는 존재하는가?
 주제어키워드  이슬람  국가  
 자료출처  http://www.godislove.net/  성경본문  
 조회수  10790  추천수  65

I. 기독교의 초기역사


 1. 예수 그리스도  AD. 0 - 33 년
    하나님의 나라와 죄인들의 회개를 전파 


 2. 사도시대(Apostle age) AD. 33 - 1 세기
    에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한 복음과 십자가의 죽음과 대속, 그리고 부활과 승천을 전파하였다.  이들의 활동으로 복음은 유대 지역을 넘어 각지역으로 흩어지기시작하였다. 근동과 로마를 향하여 기독교가 퍼져나갔다.


 3. 사도교부 시대(Apostolic Father)
    신약시대에 바로 이어 활동한 사도들의 제자들과 교부들을 일컷는 용어로 이들은 직계사도들과 구분이 있었다.
    클레멘트(Clement of Rome),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dioch), 폴리갑(_Policarp of Smyrna) 헤르마(Hermas of Rome) 등 이다.


 4. 속사도 시대 
    사도교부들의 제자들이다.
 5. 변증론자(Apologists) 100 - 170
   이들은 1 세기가 지나면서 기독교가 로마에 침투하여 들어가는 시기에 활동하였고 로마를 중심으로 지중해 연안으로 퍼져 갔다. 로마의 강력한 핍박과 이단자들의 출현에 대한 기독교적 변증서들을 남기고 있다. 최초의 신학자라고 볼수 있다.  져스틴 마티(Justin Martyr) 아다라고시스 , 이리시티투스, 과라다투스등이 있다.
 6. 교부시대(Father of the Church) 170년대 이후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교부라는 말은 증거자라는 뜻에서 감독들에게 주로 적용되었으나 4세기 말 부터는 교리적인 면에서 중요한 문헌을 남긴 저술가들을 주장하는 말로 정착하였다.(근거가 있기에 연구가능) 교부들은 2개 양대 학파로 나누어지는데 동방교부와 서방교부로 나뉜다. 이들의 연구와 주장에 따라 많은 이단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때 까지도 교리세워지는 단계였고 이들의 논쟁에 따라 교리에 따른 이단 논쟁등이 있었다.


 1) 그리스(동방)교부
    최초의 희랍교부들은 소아시아의 신학자들로 이레니우스, 힙포디타스 등이있고 이들은 헬라어로 저술활동을 하였다. 이후에 이들은 2개의 학파로 나누어 볼수 있는데 알렉산드리아 학파(Alexandria school)와 안티옥 학파(Antiockian school)이다. 
  알렉산드리아 학파(Alexandria school)는 동방교부들의 배출 창구 역할을 하였는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었으며 철학과 기독교신앙과의 조화를 꾀하였다. 비록 이들이 알렉산드리아에 있었지만 모두 희랍 철학자들이었다.
  안티옥 학파(Antiockian school)는 Lucian 이 창시, 성경해석을 과학적, 문법, 언어적, 역사학적으로 해석 하였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대립되었고 영적 해석의 난점이 있었다.(우화적 행석이 강하였다.) 
  동방교부로 유스티스(Justin),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오리게네스(Origens),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yssenus)등이 있다. 이들은 이상적이고 관념적이며 이론적이었다. 이러한 기질은 학문지향적이었으며 신학 논쟁과 분쟁을 가져왔다. 초대교회 때에는 동방교부가 주되세력이었으나 후에 강력한 종교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여 이슬람에 정복되었다.


 2) 라틴(서방)교부
  엄격한 규율과 질서 지도력의 권위를 역설 하였다. 실제적,실질적,실천적 사고를 가짐
   라틴어로 저술한 서유럽 교부로 터툴리안(Turtullianus) 키프리안(Kiprian),암브로시우스( Ambrose of Mlian) 어거스틴(Augustine)등이 있다.
 7. 로마 국교화 시대( 3기 교부시대 )
  콘스탄틴이 종교자유령을 선포 하였다(313년) 이후로 기독교는 전 로마지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였는데.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종교로 인정한 이유는 도덕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 상류사회는 선적문란의 극치를 걷고 있었다. 콘스탄틴은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틴 지금의 이스탄블로 옮기고 기독교에 대한 특혜법을 만듬 - 392년에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화하였는데 이후로 기독교는 정치와 결탁하게 됨, 결국 타락과 제도적 조직화를 가져왔다. 이후 기독교는 강력한 전도의 열기를 상실하여 갔다.

 

 

II. 중동 지역의 초기 기독교
 1. 종교회의
   -. 니케아회의 325년
   당시 기독교는 신구약 성경이 정경으로 인정되지 않아 많은 혼란과 기독론의 논쟁 및 이단 사설들이 난무 하였다. 그리하여 콘스탄틴 황제가 동,서방 교회의 모든 대표를 모아 외의를 열음 약 2천여명이 참석함
   논쟁은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인 아리우스(Arius)가 희랍적 사고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였다. - 그리스도는 성부와 같은 신성을 가질수 없다. - 이에반하여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인 아다나시우스는  - 성부와 성자은 동질 이다로 주장함 -  회의의 결과는 아다나시우스의 승리로 돌아감 정통교회의 승리였다.
   -.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 - 그리스도 인성문제
   -. 에베소 회의 431년 - 네스토리우스파의 그리스도 신성에 대한 의심이 문제
   -. 칼케돈 회의(the Council of Chacedon 451)
      Eutyches  - monophysitism(一性論)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소유했지만 이성이 합일해서 하나가 되어서 인성이 신성에 완전히 침투되어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몸과 동알하지 않다. 즉 신성중에 인성이 약간 합일되어 결국 그리스도는 二性이 아니라 一性이다. 이것에 대하여 칼케돈 회의는 니케아 회의결정을 다시금 확인하고 -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 이라 결론 내림 -   monophysitism(一性論)자들을 이단으로 낙인찍음


  2. 동방의 교부들 3-5세기
   유세비우스 :  가이사랴 지방의 감독이었고 최초로 기독교 역사를 저술하였다.
   아다나시우스 :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 -  326년 알렉산드리아 감독이 됨, 정통신앙을 주장하였다.
   가파도기안(the Great Cappadocians) 정통신앙, 자연주의자, 사색가
   존 크리쏘돔(John  Crysosdom) :  황금의   입이라는 뜻 설교가이자 주서가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 됨
   크릴(Cyril of Alexandria) : 알렉산드라아 감독 이단 정죄에 암장섰다. 적에게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였다.
   동방의 수도원  : 안토니(anthony of Egypt)  3,4세기 동방최초의 수도원 창시
                    symmeon stylite 주상성자  - 60자 기둥위에서 수행
                    수도원들이 발달하기 시작 - 은둔생활등이 이루어짐


 3. 중세 초기의 동방교회
  1) 비잔틴 제국의 동방교회(Byzantin Empire of the Eastern Church)
   비잔틴 제국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476) 후에도 계속 지속되어 1453년까지 국가를 이루었었다.
   6세기 전 : 야만족과 이슬람세력들이 콘스탄티노플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 지역을 장악함
               지현적인 요인으로 국가를 지속시켜나감
   6,7 세기 : 비잔틴은 더 이상 강력한 국가를 지속시키지 못함
              슬라브족이 발칸반도 유린 - 그리스 문화 소멸
              불가리아의 참입
   7세기 중엽 : 아랍족들이 635년에 다메섹을 점령  소아시아 몇 개만 남음
              638년 예루살렘 안티옥 점령    
              641년 알렉산드리아
              651년 페르시아 점령 - 아랍화 시킴
   7,8세기  : 아랍족에게 다 빼앗김
   9세기    : 콘스탄티 노플과 고린도 지역만 남기고 다 빼앗김

 

  4. 중동지역의 교회들
   1)칼케돈 회의 이후의 중근동 지역 교회 분열
    monophysitism 一性論은 비록 칼케돈 회의에서 패하였지만 자기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이들은 계속적으로 중 근동 지방에서 세력을 확장하여 나갔다. 종교회의 이후에도 시리아, 이집트(콥틱교회 Coptic)교회는 정통적이고 헬라적인 신조를 받아 드리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것은 동서방 로마의 경쟁관계 + 감독들의 역학계 +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반대하는 안디옥 학파의 신앙적 갈들관계 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교리적인 일치를 보지 못하여 동방교회로부터 시리아, 이집트, 아르메니안 교회가 분리하여 나갔다. 一性論을 주장하는 교회들은 후에 네스토리안교회, 시리아 교회, 콥틱교회(이집트), 아르메니아 교회로 가라졌고 후에는 아랍에게 점령당하였다.(7-9세기)
  2) 중근동의 교회
   -. Coptic Church (이집트교회)
      이집트, 에티오피아 지역에 있는 일성론(一性論)종파로 종교회의 이후 정통교리에서 떠나 독자적으로 발전. 알레산드리아의 콥틱 총 주교아래 카이로로 대이동 하였다. 7세기 이후 이슬람의 박해 견디며 수도원 중심으로 잔존함 - 이교적 요소와 혼합
   -. Abyssian  Church
      에디오피아에 있는 콥틱교회
   -. Syrian Church (Jacobite Church)
      시리아 지역의 교회 - 안디옥, 시리아 지역, 메소포타미아에 소수교회가 있다.
   -. The Armenian Church
      아르매니안 지역  3세기말 그레고리에 의해 선교됨. 4세기말 페르시아에 정복당하고         후에 다시 Arabs 족속이 정복함 - 수도원 중심의 신앙
   -. The Nestorius Church
      비교적 큰 세력을 이루고 있다. 네스토리우스(Nestorius)는 원래안디옥 학파 소            속이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약간 부인하였으나 당시는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었다.        콘스 탄티노플의 감독직을 노리는 자들의 전략적인 술수에 의하여 이단으로 낙인찍힘
    
      그의 사상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 편에서는 하나님과 본질이다.
      그리스도가 되기전에는 완전한 신성이라 할 수 없다.
     
      이단으로 몰려 Edessa 로 쫒겨갔으나 에데사를 중심으로 확장하여 갔고 신학교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 크게 융성하자 동방교회에서 또 박해 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동방지역에서 추방되었다. - 페르시아 지역으로 피난하여 갔고 - 인도 - 중국        으로 건너가 경교를 이루었다. 중국장안에서 융성함 

 

III. 교회의 정체와  이슬람의 발흥 


  1. 교회의 정체 와 이슬람의 발흥
    기독교가 초기에 가진 강력한 선교의 열정과 복음의 열기가 국교화 됨으로 인하여 주춤하였는가 하면 종교회의에서 내린 교리적인 재판들은 동,서교회로 더나아가 동방교회의 분열을 가져왔다. 이러한 틈을 이용하여 유대교와 기독교사상 그리고 중동지역의 종교를 바탕으로한 이슬람이란 종교적 발흥이 있었다. 이슬람은 기독교가 흔들렸던 시기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성장할수 있었는데 이슬람은 기독교 및 이스람 전 시대를 '자힐리아' 시대(무지의 시대)라 부르고 있다. 무함마드를 의 


  2. 이슬람의 확장
    이슬람의 진출은 동방교회 지역(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카르타고, 안디옥)을 점령함으로 말미암아 그곳에 있던 교회와 신학자들을 점령 지역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로인하여 동방교회와 분리교회의 대부분이 이슬람의 확장에 밀려 세력을 잃게 만들었고 개종을 강요 받아 많은 수가 죽음과 권력 그리고 무거운 세금 앞에 개종해야 했다.
   특히나 이슬람의 확장은 동방교회의 진로를 북쪽으로 돌려놓았고 서구세계와 아시아를 가로 막아 문명의 고립을 가져오게 하였다. 서방세계 막힘은 곳  서방교회의 막힘이기도 하였다. 이슬람은 9세기까지 페르시아, 인도, 소아시아, 콘스탄티노플,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스페인까지 정복하여 과거 기독교가 퍼진 모든 북아프리카와 중근동을 점령함으로 그곳에 있던 교회의 생존을 위협하였다.  이러한 위협은 세기를 거치며 북아프리카에는 기독인들이 없는 지역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3. 이슬람 세력 안에서의 기독교


   1) 아비시니아
   아비니시아왕국은 기독교구가로 예멘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사산왕조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적 영향은 예멘은 물론 아라비아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이 영향은 쿠라이쉬족의 일부 사람들도 기독교인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등장과 이슬람의 지리적 확장은 기독교와 유대인 지역을 가리지 않고 휩쓸어 버리었다. 


   2) 이슬람의 확장과 지즈야
   636년 8월 야르무크 전투에서 비잔틴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앉기며 우마르 왕은 시리아, 예루살렘, 가이사랴, 이집트 등을 정복하여 나갔다.  그러나 우마르의 급작스러 죽음으로 주춤하며 내란이 일어났으나 우마이야조의 중근동의 이슬람확장은 거욱 거세어져 갔다. 무함마드는 다신교의 아랍 존속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코란에 나오는  크리스찬 혹은 유대인들에게는 지즈야(인두세 Jizya) 지불 조건으로 각기의 신앙을 누리는 것을 인정하였다. 정복시대에는 이 계전의 민의 권리가 정복지의 모든 신자들에게 확대되어 개종의 강요 없이 지즈야의 지불 조건으로 신앙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나중에 중과세 되었고 너무나 무거운 세금으로 인하여 개종자들이 늘어 갔으며 후에는 정책에 의항 강제 개종들이 일어났다.


   3) 기타 기독교들
   이슬람권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슬람권에는 1천8백만 정도의 크리스챤이 살고 있다 이러한 숫자들이 이슬람의 강한 핍박에도 정교회 계통의 기독교가 아랍지역에서 살아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교회들은 종족과 언어 그리고 특정한 교단의 형성으로 인하여 생존한 것으로 이해된다.

 

IV. 이슬람안의 기독교 이해와 현대 종교간의 문제
  1. 중동지역의 기독교
     중동지역의 기독교는 대개 일성론의 정교회 계통이다. 지역마다 교단의 이름과 교파의 차이는 가지고 있느나 대개는 일성론과 캐톨릭 등이다. 그리고 후대에와서 개신교 선교 인한 소수의 개신교 신자가 생기었을 뿐이다. 이들의 숫자는 중동 3억 7천만중에서 겨우 1천 8백만을 차지 하는 적은 숫자이고 보면 그들에게 가하여지는 유무형의 압력과 어려움은 이해가 된다.

 

   2. 이슬람과 기독교의 갈등을 넘어서
  이슬람교만큼 기독교와 가까운 종교는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슬람교만큼 기독교와 적대적이고 먼 종교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에 들어와서 이슬람 세계에서 기독교인들의 활동과 선교에 대한 제한이 증가하고 있으며, 박해 또한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꿰뚫고 참 복음을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이슬람 세계에서 고난 당하고 있는 기독교인들과 함께 박해의 심각성이나 논하고 두려워하고만 있다면 이는 박해받는 형제들을 위하여나 선교를 위하여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편견과 오해와 왜곡된 상황을 어떻게 제거하고 복음을 그들에게 전해 줄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준비가 더 절실하다. 박해에 대해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고 한 발을 슬그머니 빼놓고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자세를 가지고 무슬림들을 바라본다면 결국 우리를 반대하는 영적인 세력의 전략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슬람 세계 내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적인 압력과 소외감과 더불어 박해를 통한 두려움까지 겪으면서 주위 세계의 기독교인들로부터의 적극적인 격려와 선교적인 동참이 없다면 과연 그들이 기독교인으로서 동질감을 가질 수 있을까 또 '인내하라',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는 상급이 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왔다' 등등 말만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하려 한다면 과연 그들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신뢰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러므로 좀 더 적극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사이에 가졌던 갈등과 원인들을 해소하는 노력들이 필요하고, 이슬람 선교를 위하여 관심을 가지고 중보기도에 동참하며, 선교사들을 발굴하여 훈련하여 파송하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1) 갈등의 원인 극복을 위한 노력


  (1) 역사 속에서의 이해
   기독교와 이슬람이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지역에서 정치적인 확장과 종교적인 확장으로 두 개의 종교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부딪혔고 싸워야 했던  사실들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리고 두 종교 사이에 관계를 맺어왔던 역사적인 흐름은 현재에 박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긍정적인 입장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들에게 기독교가 성지회복이라는 명목 하에 중세교회가 모순의 잘못된 탈출구로서 가졌던 십자군 전쟁에 관한 솔직한 시인과 용서를 구하여야  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200년간에 가지었던 중세교회의 오류사를 인정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솔직한 시인은 무슬림과 기독교인 간의 관계를 용서와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2) 교리적인 갈등에 대한 전략
   이슬람과 기독교는 유사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어느 한편이 진리에 대하여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우 참된 진리에 대한 논쟁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슬람들이 말하는 기독교의 오류는 기독교의 절대적 진리에 대한 것으로 양보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서로의 이해가 상충되고 논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그렇지만 종교적 논쟁들은 결론이 없거나 어느 한쪽의 참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 논쟁이 비록 표면적으로는 수긍과 인정을 받아 낼지라도 결코 논쟁자들의 종교적 심성까지 꺾을 수는 없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선교지에서의 만나는 논쟁 거리들에 대하여는 충분한 변증적 준비를 하여야 하지만 논쟁은 할 수 있는 한 피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논쟁은 비록 상대의 논리적 승복은 받을 수 있으나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회심은 어렵기 때문이다. 


  (3)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전략
  이슬람 근본주의의 부흥은 19세기 중동의 아랍세계가 서구와 만나면서 서구의 과학, 기술, 사상체계는 이슬람에게 전에 없는 심각한 도전을 주게 된다. 더구나    생활을 편리를 중심으로 한 문명의 급속한 발달은 무슬림사회의 서구화 및 세속화속에서 이슬람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이슬람의 지도자들은 강경한 입장으로 무슬림의 부활 및 코란의로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 이와 더불은 이슬람원리주의 운동은 샤리아와 이슬람국가 재건을 외치며 그 세력을 확대하여 가고 있다. 그렇지만 이슬람 근본주의로의 복귀는 그들의 바람만큼이나 수월하지않고 이미 권력을 잡은 세속정부는 그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원리주의에 대한 강경책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이슬람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은 이슬람세계에서 세력을 얻게되었고 이에 대한 영향으로 서구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게 되었다.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인식도 서구 침략의 앞잡이로 인식 박해가 심하여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곧 이슬람세계에서의 기독교선교가 제한될 것을 의미하는데 이에 대한 선교전략은 선교단체가 직접적인 선교보다는 직업을 통한 자비량 혹은 전문이 선교를 이슬람세계에서 치중해야 할 것이며 백인에 의한 선교뿐만이 아니라 비서구사람들에 의한 선교를 시도하여야 한다.


  2) 이슬람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슬람 세계를 복음화하려는 비전을 가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슬람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슬람은 10억의 신자를 가진 세계 종교의 하나이며, 동시에 아랍인들의 문화이고, 경제원리이고, 정치원리이다. 따라서 이슬람법을 모르고서, 코란을 모르고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이슬람에 대한 무지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박해와 어려움을 만들어왔다. 그들의 아픈 부분을 건드려 놓고서 그들의 하는 반응에만 민감하다면 이는 옳지 못한 것이다.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금기사항은 어떤 것이고, 아랍사회의 기본적인 예의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려는 노력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복음만 전해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이슬람 세계에 발을 디뎠다가는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3) 기독교인으로서의 올바른 영성과 그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무슬림들은 지금도 기독교를 서구인들의 종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예의도 지킬 줄 모르는 사람들의 종교로 왜곡된 진리를 따르고 있다는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슬람 세계에서 사는 기독교인들과 사역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가 따르고 있는 진리가 참 진리라는 것을 삶을 통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 역사 속에서 잘못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인정을 하고 수용하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3) 참 진리를 따르는 자들에게 박해란 그들의 신앙을 더욱 튼튼히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교회의 부흥과 더불어 성숙한 신앙을 불러 일으켜 준다.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자들로서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도록, 그들이 믿는 진리가 참 진리인 것을 알 수 있도록 박해의 어려움 속에 있는 이슬람 세계의 형제, 자매들을 격려하고 그 고난을 함께 나누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결론  이슬람과 교회 관계성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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