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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매일선교소식  작성일  2006-02-07
 제목  필리핀 민다나오의 이슬람 세력(1)
 주제어키워드  필리핀 민다나오의 이슬람 세력(1)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394  추천수  12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살고 있는 이슬람 신자들의 영적 상황은 여러 모로 흥미롭다.  이곳 인근에 살고 있는 13개 이슬람종족들은 말할 것도 없이 미전도종족이다.  물론 이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세계의 대부분의 이슬람 종족들은 미전도종족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것은 이슬람 특유의 반기독교적 정서와 기독교에 대한 저항감과 복음의 제한성 때문이다.  그러나 민다나오의 이슬람 신자들은 그들의 역사적 배경은 이들만의 특징을 결정하는 독특한 요소이다.  또 이는 이 지역의 이슬람과 기독교인들의 현재의 관계를 규명하는데도 중요한 근거가 된다.  또한 민다나오의 이슬람 신자들의 영적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도 긴요하다.

민다나오의 이슬람의 역사를 살펴 보면, 기록상 이 지역에 이슬람 신자들이 가장 처음 나타난 것은 13세기 초반이다.  이 지역의 주민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물품을 팔기 위한 무역파트너들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인근 이슬람 종족들과 접촉한 것이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처음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이 지역의 이슬람 유입은 아주 평화롭고 순조로운 과정을  통해 이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이슬람과 접촉하는 것이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었으니 이슬람교에 대해 반감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어 보였다.  특히 지역의 호족들은 경제적인 이득을 계속 누리기 위해 이슬람 무역상들의 딸들을 맞아 통혼을 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이 지역에 대한 이슬람의 영향력은 서서히 커졌다.  16세기 말경 스페인 세력이 이 지역에 들어올 때까지 이슬람교는 민다나오의 많은 종족들 사이에 대표적인 종교로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해안 지방은 무역상들과의 접촉이 쉽다보니 이슬람의 강세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 세력은 서서히 북쪽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닐라에서도 이슬람 세력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 기록으로 입증된다.  그러나 스페인 세력이 들어오면서부터 이슬람과 기독교계 간의 악연이 시작된다.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여 동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이슬람세력과 교전하여 큰 손실을 본 뼈아픈 과거는 스페인으로 하여금 이슬람에 대한 본능적 반감을 갖게 했고, 한편으로는 이슬람을 척결하고 기독교(카톨릭)을 전파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의무감 같은 것을 갖게 했다.  양측간의 무력충돌은 상대방에 대한 적지 않은 적대감을 갖게 되고, 스페인 사람들은 이슬람 신자들을 야만인, 도살자 정도로 매도하며 척결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로 필리핀의 이슬람 세력권은 지금의 민다나오로 축소되게 되었다.

이후 식민지 지배기간 내내 이슬람 세력과 비이슬람 세력 간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당시의 로마카톨릭 수도원은 순수한 종교기관으로서 뿐 아니라 식민통치기지의 역할도 겸하였다.  카톨릭 수도원은 민다나오 전역에 세워졌다.  이처럼 카톨릭 기관들이 식민통치의 첨병 노릇을 했던 아픈 과거가 지금까지의 양측 간의 깊은 반목의 원인이 되었다.  19세기 말 경부터 필리핀의 맹주는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교체되었다.  미국이 필리핀을 장악한 후 이슬람 세력과 미국 식민통치세력 간의 전투는 일상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이 즈음 미국은 콜트45라고 하는 당시로서는 최신형 권총을 개발했는데 이 총은 연발발사가 가능했고, 이슬람 원주민들이게 이 권총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저항하는 이슬람 무장병력들에게 미국은 무력으로 응수 했고, 그 상징이 콜트45였던 것이다.  미국의 식민통치기간 내내 미국은 이슬람 반군을 완전히 소탕하는데는 실패 했지만 반군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은 크게 축소되었다.  이후 독립 후에도 정부와 민다나오반군 간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1969년 마르코스 정부는 이슬람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이 지역의 반군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훗날 자비다학살이라고 부르는 대학살을 자행했다.  당시 정부군은 23명의 이슬람 반군을 살해 했는데 23명이라는 숫자는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라하더라도 그 방법과 명분이 정당하지 않아 문제가 된 사건이다.  이에 자극 받은 저항세력이 결성한 단체가 모로국가해방전선(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 MNLF)이다 이는 당시로서는 이슬람계 최초의 정치적, 군사적 결사체였다.  이후 모로전선은 적극적으로 무장 투쟁을 벌이면서 서서히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고, 이슬람국가기구(OIC)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게 되었다.  국제기구의 승인을 받은 반군세력이 그 체제를 정비하면서 탄생시킨 조직이 무슬림민다나오자치구(Autonomous Regions of Muslim Mindanao; ARMM)라는 조직이다.  이 기구는 무력투쟁보다는 외교와 정치적인 협상을 통한 투쟁을 추구하였는데 강경한 무장세력은 이를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그 결과로 강경파를 중심으로 모로이슬람해방전선(Moro Islamic Liberstion Front; MILF)가 결성되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MNLF와 ARMM을 비토하는 강경세력의 결사체였다.  지금도 이 양대 세력은 민다나오의 이슬람 세력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자리 잡아 한쪽은 화해와 외교를 통한 독립을 한쪽은 무력을 통한 독립을 주장하면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MILF는 MNLF에 비해서 보다 군사적이고, 강경하며,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인 세력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주민들에 대해서도 이슬람율법인 샤리아법의 준수를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들 양대세력과는 별개로 보다 강경한 무장세력인 아부사야프가 새롭게 대두되어 이 지역의 무장투쟁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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