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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6-07-24
 제목  <선교세계> 사하라의 사막에 꽃이 피겠나?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5036  추천수  38
사하라의 사막에 꽃이 피겠나?



내가 사역하던 감비아는 사하라 사막의 아래쪽인 사헬권에 속해 있다. 하마탄이라는 특이한 계절성 바람이 불면 온통 하늘이 황토 빛 먼지로 덮여 앞이 보이지 않곤 했다. 사막의 모래 바람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몽골의 유명한 고비사막과 북아프리카의 사하라의 사막을 가볼 기회가 있었다. 막상 사막을 보고난 나는 소망보다는 ‘과연 이런 사막이 변할 수 있을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사야 35장에서는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막의 현실을 보게 된 나의 깊은 마음은 그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물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사막을 끼고 있는 나라들의 고민은 국토의 사막화 현상(Decertification) 이다. 이것을 막아보려고 나무를 심음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서보니 여러 방법으로 나무심기를 시도하기는 했으나 한 그루도 살지 않고 죽어 있는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곳에 우리 일행이 도착하기 바로 전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뚜기 때가 한차례 모든 초록 식물들을 갉아 먹고 지나갔다. 심지어 야자나무의 잎들까지도 모두 먹어 치워 버렸다. 나무가 자랄 수 없는 곳이다. 낮이면 뜨거운 태양이 모든 것을 태울 듯이 타오르지만 밤이면 얼어 죽도록 추운 날씨일 때도 있다. 이 기온의 차이에서는 어떤 것도 생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모래바람은 사막의 길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그 다음 날에 없애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 사막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희망을 두고 살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교통수단으로부터 식탁까지 책임지고 있는 낙타가 사막을 지켜주는 유일한 소망일까? 어느 날 이런 곳에 하나님이 물이 흐르게 하고 꽃이 피게 하여 낙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믿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런데 이런 불신앙의 눈이 벗어지는 날이 있었다. 그 사건은 오아시스에서 한 밤을 묶으면서 일어났다. 이런 불모지,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부터 기적으로 보였다. 수 십 그루의 야자나무가 숲을 이루었고 야자 대추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그 맛있는 야자대추가 땅에도 많이 떨어져 있어서 주워 먹기도 했다. 돌을 들어 던져서 신선한 것들을 따 먹으며 십계 영화에서 유대인들이 출애굽 할 당시에 어깨에 메고 가던 그 야자 대추를 생각하게 되었다. 야자대추의 맛은 꿀 그 자체였다. 나는 이런 기적이 어떻게 일어날까 호기심이 나서 물의 근원을 찾아가 보았다. 물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그렇다! 그리스도는 사막의 오아시스이시다.’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사막이 변하여 옥토가 되고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을 이 오아시스가 증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막도 변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일주일도 안 걸려 이 땅을 기름진 오아시스로 변하게 하실 수 있다. 사막인들의 영혼이 변하면 땅도 옥토가 되고 생수가 흐르게 되고 꽃이 피면서 이 사막은 변한다.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을 우리는 이미 과테말라의 알몰롱가의 끼체 인디안의 속에서 보았다.





사라하 사막에 서서 오아시스를 통한 하나님의 영적 축복을 기대하며 사막인들을 향한 주님의 심정을 느껴 보았다. 한 명의 그리스도인도 없고 한 개의 인정된 교회가 없다. 판자촌 속에 살아도 위성안테나는 물결을 이루고 있다. 세속화의 물결이 벌써 이 땅을 삼켜 버린 곳이다. 복음전파가 사막과 같은 곳이다. 어떤 곳은 복음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곳은 환경도 사막이고 영적 상황도 사막이다. 몰래 숨어서 일하는 10여명의 복음의 밀수꾼들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일하고 있다고 한다. 주일날 우리는 광야로 나가 하늘과 바위와 모래로 둘러싸인 교회에 모여서 마음껏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렸다. 이 땅에 모든 것을 드리고 헌신하는 사역자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했다. 정말 감격스러운 예배였다. 담임목사님도 없었고 장로님도 집사님도 없는 조직 없는 자연의 교회였다. 교회의 이름도 없어서 우리는 ‘광야의 교회’라 부를까 아니면 ‘야자나무교회’라고 할까 함께 웃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건물에 대한 걱정도 없었고 설교에 대한 평가도 없었고 헌금 시간도 없었다. 순전한 마음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우리가 바로 광야의 오아시스였다. 이 예배야말로 예배 외에는 아무것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좋은 설교도 아니었고 많은 헌금도 아니었고 정해진 순서에 따른 예배도 아니었다. 단지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는 예배였다. 예배 후에 성찬식도 있었다. 방해되는 어떤 인간적이 요소가 없었다. 참으로 광야다운 교회의 예배였다. 사막 안에 있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오아시스 안에 있었다. 광야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사막도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만 있으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것이다.





그런데 이 눈에 보이는 사막 안에 진정한 오아시스가 없다. 이 도시의 인구는 약 20만에 가까운데 모슬렘들만이 살고 있다. 한 명의 그리스도인도 한 개의 교화당도 보이지 않는다. 사막보다 더 험한 죽은 영혼들로 가득 채워진 사막 도시인 것이다. 그러나 이 땅도 장차 꽃이 피고 물이 흐르는 땅으로 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성경은 예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바로 이들을 변화시켜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이들의 영혼의 사막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들의 영혼이 옥토로 변할 때 가시적인 사막도 이사야 35장처럼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모든 땅이 옥토가 될 수 있다는 샘플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그리스도는 그들의 영혼의 유일한 오아시스이다. 우리는 오아시스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축복의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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