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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6-02-17
 제목  랄프 윈터의 내부자 운동(Insider Movement)을 비판한다(II)
 주제어키워드  선교칼럼  국가  S.Africa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868  추천수  15


요즘 국내외 선교 일각에서 내부자 운동(Insider Movement)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내부자 운동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아직 일관된 초점이 없고 의견이 분분하다. 국내의 전방개척 선교단체에서 내 놓은 자료에 의하면, “다른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그 내부에 머무른 채 예수께 향하는 운동”이라고 애매하게 정의 하였다. 일반적으로 내부자운동이란 자신이 속한 종교, 세계관, 관습, 이방문화를 떠나지 않고도 진실로 예수를 따르는 운동으로 이해한다.



내부자운동을 지지하는 자들은 종교가 다른 배경의 새로운 예수 신자들이 기존의 자기 종교적인 표현들을 계속 사용하고 그들의 사원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성경적인 모델로 열왕기하 5장에 등장하는 나아만의 이야기를 거론한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 (왕상 5장18-19절)



하나님의 특별한 만져주심을 체험한 나아만의 신앙 양심은 즉각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신앙고백을 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중심의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당해야 하는 고난이 그를 압박해옴을 고백하고 상담을 요청한다.



곧 18절에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거듭난 자라면 누구든지 죄를 지을 때 오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은 지극히정상적인 신앙인이요 용서를 구하는 것이 거듭난 자의 바른 자세이다.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멀리 선교지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도 “오직 한 가지 일”이라는 이름표를을 단 많은 예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현실적인 신앙문제이다. 특히 주초문제, 주일 성수문제로 직장에서 갈등하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미신행위들, 명절때가족의 제사 지내는 문제로 갈등하는 신자들의 상황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일제 때 한국 교회의 많은 무리들 가운데는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 고백과 용서 대신에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의례라고 하면서 상당히 약 싹 빠른 기질로 교묘히 죄를 합리화, 정당화시켰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신사참배도 한국판 내부자 운동으로 볼 때 잘 되었던 내부자 운동인가?



초신자라 할 수 있는 나아만 장군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이미 저질러져 온 죄와 앞으로 다가올 죄악의 압력 즉, 이렇게 하자니 하나님께 죄를 짖게 되고, 저렇게 하자니 세상의 주인을 거역하게 되는 상황, 세상의 왕을 기쁘시게 할거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행4:19) 중심으로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데 문화적, 정치적 상황에 어쩔 수 없이 형식적으로이라도 저질러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나약함 대해 정직하게 용서를 구하였다.

더 나아가 아마도 첩첩 산중으로 꽉 막혀버린 숨막힐듯한 상황 속에 사도바울처럼“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하며 죄의 고통과 현실의 암담함에 울부짖으며 괴로워하고 아파해 하였을 그의 모습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나아만의 두번째 요구는 우리가 다루는 유대교가 아닌 다른 종교 가운데에 머무른 채, 내부자운동의 가능성에 대한 성경적 모델이 있는가 하는 질문과 직접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자신이 앗시리아에 돌아가면 자신의 왕을 따라 림몬의 당에 들어가서 거기에 절할 것인데, 그것을 용서할 것을 요청한다. 이에 엘리사의 반응은 어떠한가? “평안히 가라”(Go in peace)고 한 것이 사죄의 요구에 대한 답변이다. 성경의 이 대목은 참 하나님을 믿게 되었지만 자신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종교생활과 관습 내에서 참 하나님을 섬기는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의 한 예이다. “라고 할수 있다.



나아만이 처한 상황은 죤트라비스의 “C1 to C6 spectrum”의 분류를 적용한다면 C4(무슬림 권에서 예수신자로 무슬림으로 보지 않음) 단계를 지나 C5(자신들을 무슬림인데 예수를 믿는 신자, 또는 선교사가 전략적으로 전도하기 위해 무슬림이 되는 경우) 상황이라 할 만하다.

신앙을 고백한 순간부터 신앙은 성장하고 성장에 따른 열매가 있기 마련이다.

나아만은 어떤 면에서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특별 섭리로 태어난 어린애기 신자라 할 수 있다. 감당할만한 실력도 없는 어린 신자에게 술과 담배를 당장 끊어라, 주일 성수하는 직장으로 옮겨라, 찬양대, 주일학교 교사 등 봉사를 하라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평안히 가라”는 이 인사는 나아만 당신의 질문은 신앙의 난제임으로 대답하기 곤란하니 그냥 가라는 뜻인지, 하나님이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실 것이니 염려 말라는 뜻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축복의 인사 한마디로 대답을 대신하며 떠나 보내야만 하는 나아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엘리야는 마치 어린 교인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목자의 심정으로, 어린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예수님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웬일일까.



가끔 신앙생활 출발부터 모든 것을 정리하고 죽을 각오를 하고 출발하는 신자들도 있지만 어린아이의 특권인양 똥오줌을 아무데나 싸는 것이 대부분 어린 신자의 특징이다. 어른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데 어린아이에게는 걱정거리가 되 기도한다. 부모는 어린아이의 철없는 행동을 한시적(限時的)으로 즐겁게 용인하지만 세월이 가고, 성장을 해도 계속 그런 철없는 행동을 반복한다면 그 아이는 병들었거나 비정상이며 마침내 그를 낳은 부모에게 짐 덩어리가 되고 말 것이다.



나아만의 스토리를 다 알 수 없다. 예수님의 언급(눅4:27)으로 미루어 보건 데 특별 섭리로 부름 받은 그는 이방 종교 가운데서 아마 그의 신앙생활이 순탄치 않았을 지 모른다. C5를 지나 C6(핍박 받는 지하신자 또는 순교자)에 이르는 신앙인이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 택자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 섭리가 계속 되어 왕의 마음이 감동되어 피하는 길을 만났든지, 아무튼 그의 신앙이 성장하여 보이는 왕보다는 보이지 아니하는 왕을 기쁘시게 하는 자리에 까지 이르렀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랄프 윈터가 주창하는 내부자 운동을 말할 때 소위 무슬림 예수신자, 힌두 예수신자, 부다예수신자, 카톨릭 예수신자, 정교회 예수신자, 몰몬교 예수신자, 여호와의증인 예수신자, 등등으로 불리는 사례들 속에 본질적으로 하나님외에 다른 우상을 배격해야만 하는 신앙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 고백의 모습을 잘 떠올리려 하지 않는데 큰 문제가 있다. 저들의 말대로 이른바 서구의 틀(form)이라고하는 교회 운동의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고 상황화가 철저히 잘되어 이리저리 세련되게 홍길동이처럼 둔갑을 하고, 혼합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양심의 가책 따위는 느낄 필요도 없고, 전혀 못 느낄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을 마치 선교의 큰 흐름인양 이야기하며, 자칭 너그러운 시각, 넓은 시각, 하나님 왕국의 큰 통을 가진 자들이라고 할때 뚜쟁이 짓을 일삼는 에큐메니칼 주의자들의 입에서나 흔히 들어 볼 수 있는 이야기로 놀라울 뿐이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항간에 북한의 봉수교회의 진위(眞僞)가 논의 된바 있었다. 김씨를 살아 있는 신으로 받들면서 또 한편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 한다. 어쨌던 이런 교회도 중요한 내부자운동이라고 관련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편 이런 관제된 봉수 교회와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지하로 들어간 지하교인들, 순교자들과 같은 질과 레벨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영적 최강의 북한의 지하교회에서 울부짖는 기도를 하나님 외에 누가 알아주겠는가? 아마 봉수교회 교인들은 지하교인들을 보고” 당신들은 땅속에서 마음이라도 편했겠지만 우리들은 마음에도 없는 절을 하며 신앙을 지키느라고 당신들보다 맘 고생이 더 심했다”고 더 큰 소리 칠 지도 모르는 현실을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한국 교회는 이미 경험한바 있다.



G. Cowin(SIM-USA)은 “전방개척선교”(Mission Frontiers,vol.28,No.1)의 지상논쟁에서 내부자 운동의 어떤 내용들이 분명히 크게 잘못 인도하고 있다고 랄프 윈터의 이 운동을 신랄하게 공박하였다. (Some of content seemed highly misleading or clearly wrong on the subject of Insider Movements)

그는 이어 오늘날 다양한 선교필드에서 경험이 많은 선교지도자들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도 무슬림으로, 힌두교도로, 불교도인으로 실제로 응답할 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이 발상을 거부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내부자 운동은 기본적으로 모슬렘권 선교필드에 초점이 주어진 맞춤전략의 하나로 계발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이 자칫 골리앗과 같은 선교의 상황화 라는 명분으로 기독교의 정체성을 폄하하고, 혼합주의나 옅은 믿음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전투하는 지상교회의 순교신앙을 욕되게 하고 복음과 거리가 먼 이단에게까지 정통성을 부여해주는 위험하고 비복음적, 비신학적 사상으로 경계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2000년간 진행되어온 교회운동이 마치 거추장스런 서구풍 (Western Form)인양 동일시함으로 현대 선교 필드의 여기저기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서구(미국) 선교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로 엿보이나 내부자운동 같은“교회 없는 기독교”(Churchless Christianity)운동이 새로운 대안인양 무분별하게 떠벌림으로 선교 전략에 크게 혼란을 가져올 뿐 만 아니라 마침내 교회의 세계 선교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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