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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6-02-06
 제목  <선교세계> 선교의 꽃은 부흥이다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5040  추천수  38
선교의 꽃은 부흥이다



이재환 선교사







전도하고 양육하여 제자를 만들고, 그들이 또 전도하고 양육하여 제자를 만드는 일이 교회가 하는 일의 전부인가? 이것은 분명 한 지역 교회가 부흥하기 위한 사역목표일지 모른다. 이런 지역교회 안에 전 세계를 향한 외부 지향적, 그리고 세계를 품은 선교적 부흥이 있을 때, 진정한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 부흥의 꽃은 선교다. 그리고 선교의 꽃은 부흥이어야 한다. 세계 교회는 이러한 부흥을 기대하고 있다. 선교의 마지막 정리는 성령님이 하신다. 1907년도,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이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의 부흥에 불을 붙였고 한국교회를 지금도 불태우고 있다. 웨일즈의 부흥운동과 영국의 부흥운동은 교회를 복음으로 활활 타게 만들었던 성령님의 역사이었다.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제자를 만들지만 진정한 복음의 능력은 성령님이 주도하시는 부흥이다.



전 세계에 복음의 불을 붙게 한 사건은 1906년에 일어난 ‘아주사 부흥운동’이다. 이 부흥을 위해 성령님의 도구가 된 분이 ‘윌리암 조셉 시무어’(William Joseph Seymour)목사이다. 흑인인 그는 백인들의 신학교에서 학생으로 받아주지 않으므로 교실의 밖, 유리창 너머로 강의를 듣고 신학을 마쳤다. 그리고 그는 목사가 되어 로스엔젤리스의 한 교회의 청빙을 받아 목사로 부임하였다. “성령을 받으라”는 첫 번째 설교로 인해 그는 교회에서 쫓겨났다. ‘찰스 에스베리’라는 그리스도인이 갈 곳에 없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 들었다. 그가 그 집에 도착한 바로 그날 저녁, 정확하게 4월 9일,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그날 밤도 여전히 그는 “성령을 받으라”는 설교를 했다. 모인 10명 중에 7명이 성령세례를 받았고 은사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상 이 설교를 한 시무어 목사는 성령의 강한 기름 부으심의 체험이 없었다. 말씀대로 성령님을 간구하는 설교를 했을 뿐이었다. 그날 밤에도 그는 여전히 이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했지만 역사는 일어났다.

시무어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이 역사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가 묵고 있던 보니 브레(Bonie Brae) 거리가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로스엔젤리스의 다운 타운에 위치하고 있는 아주사 거리에 있는 건물을 빌려 집회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이래로 가장 큰 성령집회가 진행되었다. 이 놀라운 일로 인해 당시의 신문들조차 이를 어떻게 기사화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위대한 혼란기처럼 보였다. 이 날의 사건을 계기로 오늘날의 오순절적 교회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열기가 온 세상을 선교로 인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의 카리스마틱한 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이처럼 부흥은 하나님의 선교를 향한 열정을 보여 주는 것이며 선교의 환상과 성령행전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런 부흥이 없이 선교는 전진할 수 없다.



이후에 이런 은사운동을 하는 교회가 많이 생겨났다. 최근에 일어난 빈야드 운동이나 토론토 블레싱은 지금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열정이 드러나는 놀라운 영적 운동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렇게 뜨겁게 달구어졌던 성령의 운동이 점차 식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운동들이 단지 한 때의 유행처럼 기억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오랫동안 고민한 내가 얻은 결론은 이러한 교회의 부흥과 성령의 역사가 선교의 부흥으로 발전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선교의 꽃이 부흥으로 연결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장 18절에서 선교와 성령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사도바울은 이 구절에서 부흥, 즉 성령의 강한 능력의 역사와 임재, 그리고 각종 은사들이 나타나는 것은 곧 이방인들에게 선교를 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부흥과 성령의 역사하심이 한 교회 안에 머물고 나면 성령의 역사는 멈출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단지 과거의 부흥일 뿐이지 현재에 여전히 역사하는 선교의 부흥이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옛 것에 집착되어 여전히 이런 은사와 성령의 임재만을 사모하고 있다면 더 이상 성령이 역사해야할 조건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성령이 선교의 영이시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부흥은 일시적으로 일어났다가 중단 될 것이다.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만들고, 일군을 세워서 세계의 복음화를 이루려고 한다면 선교의 부흥이 일어나야 한다. 즉 세기의 부흥이 온 천지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아주사의 부흥은 한 지역의 단편 부흥이 아니라 온 세상이 떠들썩하게 되는 진정한 부흥으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 교회는 말씀과 성령 그리고 선교를 기본으로 하여 진정으로 이 땅에서 이루고 싶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우리들의 꿈과 비전이다. 교회의 부흥은 선교이고 선교의 부흥은 세기의 부흥이다. 이 부흥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게 되고 모든 민족과 방언과 언어가 어린 양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우주 최대의 사건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존재의 최고의 목적은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베풀어질 최고의 예배에 두어야 한다. 이는 선교부흥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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