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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5-08-31
 제목  아시아의 고난과 신학의 영광
 주제어키워드  종교신학자 변선환 박사 추모기  국가  아시아(한국)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6665  추천수  32
추모강연: 아시아의 고난과 영광

일아(一雅) 변선환 박사 서거 10주기를 추모하며



1. 들어가는 말



무슨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내가 변선환 박사에게서 배운 것은 그저 몇몇 그의 공개강연과 무슨 인연인지 최자실금식기도원에서 목회자 세미나에서 한 그의 설교에 대한 인상이 깊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유명한 종교 재판 당시 나는 집단적으로는 그를 지지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신학적 입장에서는 그와 다른 길을 갔는지도 모른다. 이 강의는 그에 대한 추억일 뿐 같은 노선이기 때문에 쓰는 글도 그의 위대함에 대해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경험한 한 비운의 신학자에 대해서 무엇인가 할 말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2. 신학의 코페니쿠스적 전환: 다원주의적 신학 방법



얼마 전 서거 10주기에 관련된 글을 읽다가 이런 대목을 빌견했다. 과거 중세에 천동설을 믿었던 신학자들과 교회는 갈릴레이를 정죄했고 결국 그 진리가 입증되기까지 아니 그 전에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다. 변선환 박사의 글 중에 "마치 중세에는 지구가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천동설이 진리인 양 믿었지만 사실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자전과 공전의 운동을 했듯이 지금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가 아닌 신(하나님)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이 글을 접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종교다원주의를 몰이해하고 있으며 실은 변선환 신학은 신중심적 신학(주1)이었는데 단지 그가 다극(多極)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단자 혹은 위험한 목사요 감리교의 일원으로 출교당했다. 종교재판 과정에서 그는 자신을 정죄하는 교권주의자들에게 아마도 대항하듯-어떻게 당신들이 날 재판하는가? 심판자인 하나님이 계신데- 붓다(부처)도 그리스도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붓다도 그리스도다)고 대답해 버린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실 독자들도 다원주의적 신학방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필자 자신이 마치 다원주의를 변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고 착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학의 방법론에서 신중심적 신학과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 방법은 이미 현대 신학계의 신학방법론의 대별이다.

여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사실 성경에서는 '예수는 그리스도다'는 명제(고백)하에 신앙을 전제로 신학하기에 그런 위험성이 적다 해도 범신론을 가진 인도의 힌두교 신학과 불교의 신학적 이해를 도모할 때 단지 기독교 교조주의(Dogmatism,교리주의)는 자칫 다원주의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많다.



신앙적으론 분명히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었지만 신학의 차원에서 하나님도 예수 그리스도도 사유와 신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원주의는 스캔들(희랍어 스캔달론,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변선환류의 신학이 감리교 내에서 혹독한 댓가를 치룬 이유가 바로 이런 교조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하게 정죄되면서 종교간의 대화 혹은 대화의 신학으로 전개되던 감리교 토착화 신학에 찬 물이 끼얹어 졌고 이런 신학적 무드(분위기)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단지 그의 죽음에 대한 추모일 뿐이다



나는 1980년대에 신학한 사람으로서 그의 공개 강연을 들은 적이 있고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그의 대담한 선언이다. 이 말은 신학생 시절 내내 우리를 보수와 진보 혹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로 갈라세운 신학적 분수령이 되었다. 나는 서울에서 신학하지 않았고 보다 더 객관적으로 변선환류의 신학에 대해 바라 보았을 수도 있다. 그에게 배운 수 많은 냉천동 출신(서울감리교신학대학)들은 보다 더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당연히 신학의 한 방법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다.



문제는 그의 신학이 감리교의 중심에 있었던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정죄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과연 그의 신학과 삶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동조하고 함께 정죄 당했는가는 점이다. 내가 알기로 변교수와 홍정수 교수외에 이 신학사조로 직접적 정죄를 받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당시 교권은 그를 다원주의자요 감리교 신학에 위험한 사상이라고 재판에 회부, 정당한 반대 심문없이(김동환목사의 글) 진행되어 '출교'라는 가장 중죄로 취급되었다. 그 후 변선환 교수는 암으로 투병하다가 1995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목원대의 한 구약학 교수는 이 재판에 대해 이렇게 신학적으로 평가했다. 교권주의자들의 독선과 신학자들의 아집이 이뤄낸 결과다. 그런데 이 말은 그렇게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신학자의 아집도 교권 수호자들의 독선도 그다지 실제 재판이나 논쟁 과정에선 드러나지 않았고 오직 힘이 있고 칼을 가진 사람(武人)이 문인(文人)을 베는 것으로 밖에 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다 다양한 의견과 신학적 대화가 있었다면 감리교의 신학은 복음주의적 바탕에서 진보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4. 나는 신학적 다원주의자이지만 신앙적 복음주의자다.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라면 나는 신학적으로는 진보(다원주의적)적이지만 신앙적으론 예수외엔 다른 구원이 없다고 믿는 복음주의자다. 간단히 말하면 진보적 복음주의라고나 할까? 나는 바르트를 연구하고 읽으면서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타락은 인간 구원의 전제이고 하나님없이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구원은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선교 현장을 접하면서 다원주의적 원탁 대화는 20세기 이후 전도와 선교신학에 불가피한 선택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전쟁을 치러야 하며 이미 영적인 전쟁을 치루는 선교사들에게 신학적 논쟁은 자칫 이중고를 줄 수 있었다. 선교사가 어떻게 붓다를 그리스도라고 믿겠는가? 하지만 태국에서 기독교인이 불상 위에 앉으면 그들은 분명히 모독감을 느낄 것이고 선교사 때문에 복음은 왜곡될 수도 있다는 점을 놓쳐선 안된다.



또한 그리스도라는 개념을 기독교 중심에서만 말하면 절대로 타종교의 구원은 있을 수도 고려될 수도 없지만 生-老-病-死를 말하는 불교의 사성제가 어찌 그들만의 진리인가? 인간은 이 문제에 누구나 직면하며 단지 기독교는 죽음을 넘어 부활을, 불교는 윤회와 해탈을 그 구원론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이다.



5. 차이(다른 것)를 인정하는 것은 다원주의 신학 방법론의 공헌



서로 다르다는 것이 반드시 선과 악의 구별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 앞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기독교는 하나님을 통해 불교는 자기 스스로의 노력(禪, 수행등)으로 구원얻으려고 한다. 난 전에 전도할 때 CCC(국제 대학생전도회)의 사영리를 요약해서 전도하곤 했다. 그 방법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그러나 태국에서 25년 이상 사역한 합동측 선교사의 말은 무언가 깊이 생각하게 했는데... 동양의 문화에서 서양처럼 예냐 아니냐를 다그친다면 태국사람들은 예하면서도 속으론 아니오일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단지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지만 그렇게 이분법으로 생각지 않는 동양 문화 속에서 서양의 전도 방법은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가 진리이고 그리스도이지만 그 전달의 과정과 진리를 담는 수레(용기)는 다양할 수 있고 다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전투적인 기독교는 동양의 문화와 배경 속에서 -아시아의 고난과 역경은 서구에 대한 불신을 가져 왔고 그 후 아시아는 서구에 빼앗긴 민족사적 정통성을 종교를 통해 지키려고 했기에 인도와 중국, 대만과 동남아등에서도 힌두교나 불교, 도교와 유교등은 기독교에 대해 긴장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 역시 샤마니즘(무속) 쪽에서 기독교에 대해 대립각을 세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차원에서 다원주의적 대화는 종교간의 대결을 지양(止揚)하고 대화-Dialogue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상대방을 인정하는 대화로 이끈다. 이런 신학 방향은 개종주의적 선교를 '유입시키는 선교'-필자의 신개념- 혹은 '무슬림 크리스찬'이나 '부디즘 크리스찬'이란 개념을 만들고 있다.(1994년 1월, 말레이시아 선교사 훈련 세미나) 이 개념은 이미 성경에서도 헬라파 유대인이나 히브리파 유대인의 갈등에서 나타나고 이방인을 입교시키는 문제와 할례 문제에 있어서 엄청난 교회사적 논쟁과 갈등의 대립각을 형성시켰고 이 문제는 중세에 이른바 마녀 사냥이란 이름으로 이단자를 수없이 정죄하게 만들었고 십자군 전쟁(주2)에서 그 정점에 달했다. 십자군 전쟁의 결과는 회교로 하여금 기독교에게 역사적 죄짐을 지게 만들었고 최근 예루살렘 평화운동은 이 죄악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 까지 이르고 있다.



6. 개인적 소회

변선환 박사는 내가 강원도에서 목회할 때 한 세미나에 와서-오산리 최자실금식기도원- 성령의 열매라는 설교(강의)를 들을 때 받은 인상 '아 저분도 목사로구나' 이상 이하 아무 것도 아니다. 목사로서 목회자들에게 말씀을 차분히 분명하게 강의하고 전하는 신학대의 학장,

언제 그가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외치고 교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부처도 구세주가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었을까? 모르긴 해도 그의 신학적 사유와 방법을 못 마땅하고 받아주지 못한 감리교회 내의 신학적 풍토가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삶에 대한 진지한 대화와 다른 종교를 존중하고 대화하려는 진지함과 성의는 오히려 지금 가볍게 타종교를 정죄하고 사탄시하는 그릇된 교계와 지도자들보다 훨씬 좋은 인상이다. 나는 그의 송별사를 들으며 그가 얼마나 자기 학원인 감신을 사랑했으며 그리고 기도하며 떠났는지 들었다. 이제 그의 십주기가 되었다. 어떻게든 그의 신학적 노작과 학문은 재평가되어야 하며 그 방법은 예수께서 택하셨던 방식- 자신을 정죄한 자들을 용서하시는 최고의 원수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아시아의 고난'을 신학에 담고 한 세기를 몸부림치는 모든 신학도들과 그의 후배들과 지인들에게도 고난없는 영광은 없다는 말로 나의 소회의 마침표를 찍을까 한다.(청주에서 主愛中 선교사)





註1>

신중심적 신학은 theo-centric으로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 christo-centric 과 구분되며

현대신학에서 위에서 부터와 아래로부터의 신학방법과 함께 자유주의 신학의 방법론이다. 변선환의 신학은 보다 범신론과 다신론과의 대화 추구 과정에서 기독교의 유일신론(?)에서 멀어지면서 붓다-그리스도논쟁을 촉발햇던 것으로 보인다.



註2>십자군 전쟁

1. 정의: 십자군 전쟁은 11세기말부터 13세기까지 8차례에 걸쳐서 이슬람교 세력이 그리스도의 무덤을 파괴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강탈함으로써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가 탈환하기 위해 일어난 쌍방간의 전쟁을 말한다. 십자군이란 명칭은 이 전쟁에 참가했던 자들이 의복에 십자가 표지를 붙인 것에서 유래되었다.(필자주)



2. 배경과 원인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교 영향권에 있는 동유럽과 소아시아가 이슬람교 세력에 의해 점령되기 시작하였다 633~643년에는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등의 나라들이, 669~798년에는 아프리카 북부가, 그리고 711~719년에는 스페인이 정복되어 서유럽 그리스도교 세계가 위기를 느끼고 불안해하였다. 1010년에는 모슬렘 교도인 하킴(Hakim)군주가 당시 모슬렘 교도들에게까지 성지로 존중되어온 성지들을 강탈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의 무덤을 파괴하였으며, 1048년 이래 투르크의 셀주크 왕조가 동로마 제국의 소아시아 국경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1070~71년에는 셀주크 투르크족이 지중해 동해안에 진출하여 팔레스타나 성지를 점령하고 순례자들을 박해하였다. (해피캠퍼스 검색,일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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