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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4-09-25
 제목  <선교현장> 전선을 따라 흐르는 사랑, 파키스탄 조경호 선교사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173  추천수  10
전선을 따라 흐르는 사랑, 파키스탄 조경호 선교사



거룩한 땅, 그러나 그 이름과는 달리 마약과 성적 음란 등으로 그 내면은 썩어가는 땅이 되어버린 파키스탄. 예배와 하루 다섯 번의 기도, 구제와 금식을 철저히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본래 그 의미보다는 형식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다는 게 조경호 선교사(37세, 바울선교회)의 말이다. 󰡒무슬림은 수입의 2.5% 정도를 반드시 구제에 사용해야 하거든요. 그래선지 걸인들은 돈을 받으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안해요. 󰡐내가 당신의 의무를 행하게 해주니까 오히려 나한테 감사해야 하는거 아니냐󰡑는 식이니 우습죠?󰡓



1996년 바울선교회에 허입되어 국내와 해외 훈련을 마치고 처음 파키스탄에 들어간 조 선교사 가정은 1년 반 동안 󰡐비자여행󰡑을 하며 살았다. 󰡒아이를 데리고 인도 국경까지 걸어서 넘어야 하는 그 일이 쉽지 않았죠, 그래도 이 땅에 살려면 비자가 필요하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무 가까운 곳에 해결자를 두셨더라구요.󰡓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을 통해서였다. 펀잡대학의 아랍어 학장이었던 사촌형에게 부탁해 학생비자를 받도록 도와주었고 또 그로 인해 조 선교사는 그 대학에서 어학공부도 하게 된 것이다. 󰡒이들과는 지금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친구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나란데 지금은 5~6가정과 교제를 나누고 있어요.󰡓 처음엔 전기 기술자로 한국에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나라처럼 가난한 곳에 와서 산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마음의 깊은 고민까지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단다.



조경호 선교사는 파키스탄에서 전기 기술자의 신분으로 사역하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못가고 전기 일을 배웠어요.󰡓 현장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고 또 개인적으로 일을 하면서 기술자가 되었다. 󰡒중등부 때까지는 교회를 다녔는데 일을 하면서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일만 했어요. 그러다 검정고시 학원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그때서야 󰡐내가 전에 교회에 다녔었지󰡑하는 생각이 나더라구요.󰡒 군대에 갔다 와서는 대학 전기과에 입학해 오랜 현장 실습의 노하우에 체계적으로 이론 지식을 쌓았다. 󰡓많은 경험이 있다는 게 개인적으론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이해도 더 빨리되고. 나중에 성경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



에게 이 기술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기도를 혼자서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어주신거죠.󰡓



그러나 어떻게 선교사로 나갈 수 있는지 몰라서 선교한국대회에 참석을 했다. 󰡒대회가 끝나고 파키스탄 선교사님을 소개받았는데 자격증이 있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으면 사역하기 좋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자격증도 따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는 조 선교사. 그러다 잠시 딴 길로 가기도 했다. 󰡒결혼해서 아내도 생기니까 돈도 많이 벌어보자는 생각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을 했어요. 그러다 집안에 큰 일이 생기면서 다시 한번 정신을 차렸다고 해야 할까요? 허허허󰡓



파키스탄에서 조 선교사는 학생들에게 전기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그 나라에도 도시에서 정부나 기독단체가 운영하는 그런 기술학교는 많다. 그러나 조 선교사가 운영하는 기술학교는 시골지역의 학생들을 위한 소위 󰡐이동 기술학교󰡑다. 자녀를 많이 낳는 파키스탄엔 가난 때문에 도시로 나갈 수도 없는, 그렇지만 할 일도 없는 시골의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 지역을 직접 찾아가 학생을 모아 놓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주일에 2~3번, 한번에 3~4시간씩 4개월 단위로 수업을 하고 있어요. 대부분 문맹이라 글도 모르고 숫자도 모르고 열 이상을 셀 줄 모르는 학생들에게 소수나 분수를 알려줘야 하니 첫 수업엔 다들 졸고 있더라구요.󰡓 다음엔 장비를 사들고 갔다. 한 세트에 4,000원 정도 하는 재료를 사다 300원에 팔았다. 그냥 주면 값어치 없게 생각하고 그만큼 학습효과도 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펜치를 들려주자 두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펜치를 들고 전선 껍질 벗기는 것에 익숙해지는데만 한 달이 걸렸다. 그러나 4개월 과정이 끝나고 나면 자신들끼리도 뭔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된다. 국내에서의 많은 현장 경험이 학생들 교육에도 자연스레 연결되어 사역에 큰 도움이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3개월쯤 뒤에 양육을 위해서 그 마을을 다시 방문 했거든요. 자신들이 돈을 조금씩 거두어서 동네 교회의 낡은 전기 시설을 새로 바꾸어 놓았더군요.󰡓 그 모습에 시골 마을까지 찾아가는 수고와 알아듣게 가르치기까지의 어려움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몇몇 친구들은 정식으로 기술학교에 보낼 계획이다.



이번 안식년을 마치고 조 선교사는 이제 선교사 비자를 가지고 파키스탄에 들어간다. 파키스탄엔 지금은 많이 축소되고 또 없어졌지만 예전 영국의 지배를 받을 때부터 몇몇 선교단체들이 소유하고 있는 한정된 숫자의 선교사 비자가 있다. 그런데 9·11 이후 외국인 선교사들이 많이 철수하면서 생긴 빈자리를 조 선교사 받게 된 것이다. 󰡒선교사 비자를 가지고는 신분이 노출되기 때문에 무슬림 사역을 하라 수가 없어요. 잘못하면 추방을 당할 수도 있구요. 그러나 그동안 교제하며 친해진 5~6가정과 친분이 있는 약 30여 가정을 생각하며 비자를 받았어요. 이 사람들은 제가 이제 편하게 방문할 수가 있거든요.󰡓 지난 시간 동안 조 선교사에게 가장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가 가정의 안전이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지만 테러의 위험도 많고 또 제가 기술학교를 위해 지방에 가 있는 동안 아내는 여자이기 때문에 혼자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장을 볼 수도 없어요.󰡓 그



러나 이번에 선교사 비자를 받으면서 󰡐Murree선교사 자녀학교󰡑의 스태프로 들어가게 되어 이 모든 어려움들이 한꺼번에 해결된 것이다. 그 학교 안에 살기 때문에 치안이 확보되고 조 선교사는 편안한 마음으로 사역에 임할 수 있으니 일석 이조라고 해야 할까?



이곳에서 아내인 박보은 선교사는 한국 MK들의 교육을 맡았다. 그런데 한국어 교재가 한 권도 없어 이번에 약간의 책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더 많은 준비들이 필요한 상태다.



󰡒무슬림 들과 교제하며 겉모양은 화려해 보이는 사람도 안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집에 놀러 와서는 때때로 나의 믿음과 신앙에 대해 질문을 하는데 그때 복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요. 우리가 먼저 질문을 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나 이 사람들을 매일 방문할 수도 없고 또 매일 초대할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그만큼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조 선교사의 말이다. 󰡒시간이 많은 만큼 영적으로는 힘든 부분도 있어요. 그러나 정말 귀하고 보람있는 사역이니까 청년들이 십일조를 드리는 마음으로 시간을 드린다면 참 좋겠어요.󰡓

어려울 때 몸과 마음이 힘들때 󰡐난 하나님의 자녀다!󰡑 라는 생각으로 새 힘을 얻는다는 조경호 선교사. 그 가정을 통해 파키스탄의 영혼들이 위로받고 구원 얻는 역사를 함께 기대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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