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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4-04-02
 제목  <특집>포커스- 김정일 시대의 북한 종교정책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1916  추천수  6
김정일 시대의 북한 종교정책



10년이란 기간이 결코 짧지는 않지만, 그동안 북한의 종교정책의 변화를 파악하기는 매우 힘들다. 앞서 언급한대로 김일성 사후에도 그의 유훈을 계승하고 그의 주체사상이 변함없이 최고의 지도사상으로 더욱 부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김일성의 문헌들에서는 종교관련 내용이 비교적 많은데 비해 김정일의 저작들에서는 단편적으로만 언급되어 있어 그의 종교이해와 종교정책의 일단을 알기 힘들다.



김정일, 종교에 대해 부정적

다만 몇 가지 근거를 통해 김정일 시대의 변화된 종교정책을 살필 수 있다. 우선 김일성과 김정일의 종교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들 수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과는 달리 종교에 대한 체험적 지식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다소 다른 종교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 김일성은 교회에 다닌 적도 있고 그의 부친이 교인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손정도 목사를 친아버지처럼 따르고 존경했다는 그의 고백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그의 지식은 상당했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의 모친은 그 이름(강반석)에서 알 수 있듯이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고, 비록 김일성과 그의 모친이 모두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으나 기독교를 체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는 많았을 것이다. 또한 김일성은 천도교나 천불교 등 여러 종교인들과도 유대를 맺었고 종교에 관한 토론을 많이 했다는 점에서도 종교에 대한 지식이 많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반면에 김정일은 해방 당시 불과 4살이었고, 한국전쟁 기간과 ꡐ사회주의건설시기ꡑ 북한에서 종교에 대한 적대적 이해가 팽배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종교에 대한 김정일의 인식은 부정적인 면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종교를 경험적으로 인식할 수 없었다는 점은 종교 자체에 대한 무시나 무관심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 김일성 사후 북한의 변화된 상황, 특히 경제문제가 종교에 대한 북한 당국의 입장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자연재해와 국제적 고립,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의 붕괴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북한의 경제난은 다수의 북한 주민들이 탈북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정도로 심각했고, 김일성 사후 더 극심해졌다는 사실은 북한 종교단체들의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북한에 대한 대외 경제 지원의 중요한 통로 중 하나가 남한 및 해외 종교계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제를 확고하게 하기 위한 내부적 노력이 필요했고, 북한의 종교단체들도 그것에 기여해야 했기 때문에 그로인해 종교 정책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 상 체제에 기여하여 그 필요성이 긍정되지 않는 종교의 존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외적인 경제지원의 창구이든 정치적 선전도구이든, 아니면 체제 확립에 도움이 되는지 어떤 식으로든 그 필요성이 인정되어야 종교의 존재가 긍정되는 것이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이다.

또한 김정일이 문화․예술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많은 종교적 문화재와 예술품이 있는 북한의 현실에서 종교에 대한 입장을 표현하는 것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속에서 김정일 시대 종교 정책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김정일이 단편적으로나마 종교에 관한 언급을 한 것도 대부분 문화와 예술에 대한 글에 나타난다.

김정일 시대의 종교 정책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이러한 몇 가지 근거들은 실제로 최근 북한의 종교 정책에 일정 정도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북한 내에서 천도교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천도교청우당과 조선천도교회는 단군릉 재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다음과 같은 유미영 위원장의 담화에서 볼 수 있듯이 김일성 사후의 김정일 체제 확립에 천도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ꡒ위대한 김일성 주석은 조선의 모든 천도교인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존경해마지 않는 현세의 한울님이시었으며 구세주이시였습니다....우리에게 있어서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은 곧 어버이 수령이시며. 구세제민의 한울님이십니다.ꡓ 「조선중앙연감」, 1995년 특별호(평양: 조선중앙통신사, 1995), 64~65쪽. 이 글은 김일성 주석 사망 100일을 즈음한 담화에 있는 것이다.



종교는 김부자 우상수단으로 활용

이와 같이 김일성과 김정일을 모두 ꡐ한울님ꡑ으로 지칭함으로써 세습과 유훈통치를 합리화하는데 천도교가 활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천도교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단군제를 천도교에서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남한의 대종교 지도자들이 방북하였을 때도 그들을 영접한 것이 천도교였다. 2000년 이후에는 남북의 천도교 교류가 더욱 활성화 되었는데, 북경에서의 남북천도교 실무자 회담(2000. 5. 1~2), 천도교 동학민족통일회 사무총장 등 방북(2000. 10. 9~13), 천도교 임운길 의장의 방북 및 유미영 북한 청우당 위원장과의 회담(2001. 6. 19), 남북천도교 대표자회의(2001. 6. 20~22) 등 지속적인 남북 교류가 이어졌는바, 이러한 남북 천도교의 교류 확대는 그만큼 천도교의 활용 가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남한을 비롯한 대외적 경제지원의 창구로 종교단체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그 접촉과 교류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에서도 김정일 시대의 변화된 종교 정책의 일면을 읽을 수 있다. 1990년대 초까지 북한의 종교단체들은 주로 남한의 진보적 종교단체와 종교인들만을 접촉했고, 통일을 주제로 한 모임에만 참여해 왔다. 개신교의 경우 KNCC와 그 계열에 속한 교단과 단체가 주도적인 대북 접촉 창구였고, 해외의 경우 WCC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1990년대 초까지의 남북 종교교류에 대해서는 졸고, 「남북한 사회 문화 교류 방안에 대한 연구: 종교교류를 중심으로」(경기 성남: 현대사회연구소, 1993)를 참조).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남한 측 교류 대상이 크게 확대되어 개신교의 보수교단이나 보수적 종교인들도 대거 방북하기 시작했고, 북한과의 교류도 계속 확대되어 왔다. 특히 경제적 대북 지원이 연관된 교류는 쉽게 성사되었다. 개신교뿐만 아니라 불교와 천주교, 원불교 등 여러 종교들이 인도적 지원을 내세운 사실상의 경제적 지원에 힘을 쓰면서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김병로 외, 「남북한 통합을 위한 종교교류․협력의 제도화 방안」(서울: 통일연구원, 2002), 58쪽 이하 참조).



경제적 실리측면에서 남한과 종교교류

민간차원의 대북지원 창구다원화 조치(1999. 2. 10) 이후로는 남한의 거의 모든 종교들에서 북한과 교류를 시도하고 있으며,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대북 교류가 가능해지고 있다. 말하자면 김정일 시대의 경제난 악화는 남북 종교교류에 있어서 정치적 명분보다는 경제적 실리에 비중을 두는 양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둘째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겠지만, 통일교와 북한과의 관계가 깊어진 것이 김일성 사후라는 점에서 그 자체가 김정일 시대 북한 종교 정책의 일면을 보여 준다. 김일성 사망 후 통일교에서 운영하는 「세계일보」 사장(박보희)이 조의를 표하기 위해 방북했고, 세계평화연합 총재 문선명의 특별보좌관이 조전을 보냈으며, 「세계일보」 사장에 대한 남한의 사법처리를 비난하는 담화(조국전선 의장 명의)를 북한에서 발표하는 등 통일교와 북한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북한 내 각종 경제사업에 통일교 관련 인사와 업체가 참여하는 등 김일성 사후 통일교의 대북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이 남한 내의 통일교 입지나 종교로서의 통일교에 대한 고려보다는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유에서 통일교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만큼 북한의 종교정책이 종교 자체를 무시하거나 경시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예다.



한편 오랫동안 폐쇄적 사회였던 북한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시장경제가 도입되고 여러 ꡐ특구ꡑ들을 통해 자본주의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외적 경제 지원을 통해서도 서구 세계의 물질문명을 일부나마 접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가치관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물질적 가치에 대한 동경은 쉽게 기복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양태와 쉽게 접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에서 ꡐ미신ꡑ을 경계하고 배격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미 김일성의 자서전이나 저작집들에서 미신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미신을 종교와 구분하여 사람을 무력하게 하거나 착취계급에 이용당하게 하는 종교의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조선대백과사전」에서도 종교와 미신을 구별하여 미신을 극도로 부정적인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다(「조선대백과사전」, 제19권, 228쪽 참조).



그리고 북한의 경제난은 종교 교류, 특히 남북 종교 교류에 있어서 남측 교류 대상을 무차별적으로 선택하는 정책을 펴게 만들었고, 그러한 태도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본다. 어떤 식으로든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하고, 그것이 오히려 남한 종교인들과 종교단체들의 지나친 경쟁을 불러일으켜 더욱 유리한 조건에서 교류 상대자를 찾을 수 있게 만들고 있다. 남한 종교계, 특히 개신교에서 침체된 성장 기조를 만회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북한선교를 지향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종교현실과 종교단체들의 체제 내 제한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북한의 종교단체들과의 교류를 통해 북한 선교를 한다는 것에 큰 기대를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을 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북한이 공식적으로 북한 내에서 선교를 하게 하거나 공개적인 종교행사를 하는 것, 혹은 북한 종교단체들의 독자적인 종교 활동을 허용하는 정책을 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데 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북한 선교를 하거나 북한의 협조를 통해 북한 주민에게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김정일 시대에 와서 더욱 줄어들었다고 본다. 명시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종교인들의 활동, 특히 남한과 외국의 종교인들의 북한 내 활동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 더욱 확고해진 김정일 시대의 종교정책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시대 북한 선교를 위한 제언

1990년대 초반까지 북한 종교정책의 기조는, 애국적 종교인이라고 지칭하는 사람 혹은 단체들과의 통일전선 필요성을 인정하는 한 축과, ꡐ환상ꡑ이라는 표현으로 집약되는 종교의 본질적 모순을 극대화하여 반종교정책을 펴는 또 다른 한 축을 선회하는 것이었다. 필요에 따라 통일전선을 강조하기도 했고 반종교정책을 중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어느 축에 있든지 항상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명시적 표명을 대외적인 방패로 삼아왔다. 해방 정국에서는 통일전선의 축으로 더 많이 치우친 반면 한국전쟁을 거쳐 ꡐ사회주의건설시대ꡑ에 접어들면서 반종교정책으로 그 중심을 옮겼고, 남북간 접촉이 재개된 1970년대부터는 다시 통일전선에 비중을 두었으며, 김일성 사망 전까지 그 축에 중점을 둔 정책이 많았다.

주체사상이 전면에 부각되어 북한 사회가 주체사상으로 ꡐ무장ꡑ된 이후에도 통일전선의 필요성은 종교건물을 짓고 종교단체의 활동을 재개시킬 뿐만 아니라 주체사상과 종교의 유사성을 찾는 시도까지 하게 만들었으나 주체사상 자체에 대한 절대화는 종교의 본질이라고 하는 ꡐ환상ꡑ을 강조하여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의 제한적이고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의 종교 활동으로 국한시키는 반종교정책을 고수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 시대에는 김정일의 체험적 종교 이해의 부족, 경제난의 가중, 후계체제 확립, 예술에 대한 특별한 관심 등 다소 다른 종교 정책을 펼 상황이 전개되었고, 실제로 후계체제의 확립과 관련된 천도교의 활동 증대,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한 교류 대상의 다원화, 통일교와의 관계 증진, 「조선대백과사전」에 나타난 종교 설명의 변화 등 정책적 변화를 알 수 있는 조치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조치들을 통해 북한 종교정책의 구체적인 변화를 살펴보았다. 특히 김정일 시대에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이해가 다시 등장했고, 주체사상에 대한 강조가 더 부각되었다는 점에서 북한이 공식적으로 선교사를 수용하거나 공개적인 종교행사를 북한 내에서 실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정일 시대의 이러한 정책적 변화를 근거로 몇 가지 북한 선교를 위한 제언으로 결론을 삼고자 한다.



북한선교, 순교자적 정신 필요

북한선교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합법적인 방법이나 공개적인 차원에서 북한선교를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북한선교에 관심 있는 한국 종교계가 인정해야 된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선교사를 북한에 파송하는 것이나 선교를 위한 활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선교를 포기할 수는 없다. 비공식적으로, 때로는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선교의 사명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선교는 순교자적 정신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경제적 지원의 대가로 북한선교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는 매우 위험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이용만 당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어떤 인도적 지원도, 아무리 많은 액수의 경제적 원조도 공식적인 북한선교의 허락을 받게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떠한 대가나 거래도 없이 순수한 민족애의 발로로, 기독교적 사랑의 표현으로 북한 주민을 돕는 것이 장차 북한선교를 위한 장기적 포석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랑이 기적을 낳는다고 믿는 것이 더 기독교적이지 않을까.



끝으로 지금까지 점차 확대되면서 진행된 남북간 종교 교류는 극히 제한적이고 단편적이었으며 경제적 지원에 연루된 종교 행사나 정치적 의도에 접목된 종교의식의 수준을 넘지 못했을지라도 북한선교를 위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중시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한의 종교단체들은 북한 체제의 제한 속에 있지만 인도적 지원의 창구일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교류의 상대자이며, 북한에서 종교단체의 이름을 유지하고 알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북한선교의 방식과 노력이 서로 존중되면서 공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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