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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3-08-30
 제목  <기획> 인터뷰 1- 몽골 땅의 한줄기 빛이 되어, 강영순 선교사
 주제어키워드  여성선교사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033  추천수  4
그녀의 이름은 몽골어로 ‘강토야’. 토야의 뜻은 두 가지. ‘흙과 들판’이라는 순수한 대지의 뜻과 또 한 가지는 아름다움과 ‘빛’이라는 뜻이 있다. 몽골의 ‘빛’이라 불리고 또 스스로 몽골 아이들의 ‘빛’이 되고 싶은 몽골의 탁구 엄마 강영순 선교사. 그녀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안식년을 맞아 잠시 한국에 들어온 그녀에게서 몽골 탁구 사역 이야기과 우여곡절인 그녀의 삶을 나누었다.



택하지 않고, 택함 받은 자



저 멀리 복도 끝에서 다리를 절룩이며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이하여 주는 한 사람. 몇일 째 어머니의 간병으로 피곤에 지쳐 보였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면서 그녀의 삶을 궁금해 하던 기자의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힘들고 가슴 시린 과거를 거침없이 쏟아 내며 솔직하게 꺼냈다. 그녀의 나이 이제 마른 일곱. 싱글 선교사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너무나도 씩씩하고 의젓해보였다. 그녀의 입술을 통해 고백되어지는 신뢰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이야기는 뜨거운 감동에 기자의 맘속으로도 아멘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소아마비로 절룩이는 다리와 장애, 배낭 두개가 전부였던 유학 초기. 주님에 대한 확신과 사랑으로 과감히 몽골이라는 나라로 떠난 여자. 그것도 한국 최초의 몽골 유학생, 그리고 한국 최초의 장애 여선교사로 말이다. 그녀는 독신이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5년 동안 애틋하게 키워온 사랑한 남자가 있었다. 사랑만으로는 결실을 이룰 수가 없었고 장애라는 이유로 상대 가족의 반대가 따랐고 사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남겨진 커다란 실연과 상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하였고 결국 산에 올라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었다고 고백한다.

“산에 올라가 정말 죽을 각오를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더라구요. 그 날 주님은 제게 선교사의 길을 보여주셨어요. ‘보내주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라고 기도했어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단 한번의 용기와 단 한번의 결단이 필요하지만 산다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그때 주님이 깨닫게 해주셨구요.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내 뜻대로 산다고 해도 안되는 것이 많잖아요." 그녀는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자살을 생각하고 실천하려 했던 자신을 이율배반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한 순간 그녀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자신이 선교사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선교사로 택해 주셨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몽골’이라는 나라



17일 동안 매번 똑같이 무섭고 공포스런 꿈을 꾼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 꿈은 그녀가 사형소 올가미에서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무시무시한 장면이었다고 설명한다. 반복되는 괴로움과 고통으로 그녀는 앉아서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절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사랑하는 자에게 단잠을 주신다고 하였는데, 주님 제게도 단잠을 주십시요.” 주님은 그날 밤 그녀에게 방언기도를 하게 하셨고 그 시간, ‘몽골’이라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고.

몽골.. 몽골이라는 나라가 대체 어디에 있으며, 가는 방법, 루트도 몰랐다. 신기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이 전적으로 주관하시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대학에서 신학과 목회학을 공부한 그녀였지만 성치않은 장애의 몸으로, 또 예수 믿지 않는 집안에서 선교사가 되겠노라고 외치는 그녀의 말에 환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모를 설득하고 그 소명대로, 그 부르심대로 행하였다.



몽골의 탁구 대모



1991년. 그녀는 한국 최초의 몽골 유학생이 되어 징기스칸의 땅을 밟았다. 70년간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중앙 고원에 둘러싸인 신비의 나라 몽골 그 당시 몽골은 구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직후 개혁 개방을 시작한지 2년이 채 안된 때였다고 한다. 서른다섯 살의 늦깎이 유학생이 된 그녀. 도착한 몽골이라는 나라에서는 감시원이 쫓아다니고 방마다 전화기에 도청장치를 매달고 가게에는 생필품이 하나도 없는 둥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야만 했다. 물도 제대로 마실 수가 없고 직접 길러다 먹어야했다. 이렇게 험난한 유학생활을 한지 불과 10일 만에, 그녀에게 위기가 닥쳐왔다. 선교사라는 사실이 발각이 된 것이다. 상황은 위급했다. 당장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하나님은 적당한 시기에 그녀의 능력을 사용하게 하셨다. 한국에 있을 때 장애인 탁구 국가 대표 선수로 지냈던 그녀는 교회 다닐 적에도 탁구를 종종 치곤하였고 정식훈련은 아니지만 전도하겠다는 일념으로 탁구대회에 참석한 것이 서울시 탁구대표선수가 되었다. 그 후로 연속 3년 우승이라는 영광의 매달을 받기도 한 화려한 이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내용을 이력서에 적었는데, 마침 몽골 국립 대학 교수님이 은퇴를 하게 되어 그녀가 그 자리를 메꾸게 된 것. 그녀의 이야기는 몇 달 전 KBS2 텔레비전 ‘한민족 리포트’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방영된 바가 있듯이 몽골의 탁구 대모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자비를 털고 한국의 지원을 받아 몽골 최초의 민간인 탁구 클럽 ‘솔몽 탁구 클럽’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한국을 의미하는 ‘솔’과 몽골의 ‘몽’자를 딴 무료 탁구 강습소다. 그녀는 이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국가 대표를 만들었고 지난 2002년 아시아 게임엔 최연소 팀을 구성하여 많은 이목을 받기도 하였다. 6년간, 물도 없고 난방도 되지 않는 초라한 빈민가에서 선수들과 함께 숨어 살면서 탁구를 가르치면서 은밀하게 전도했던 이야기, 건축 자재가 없어 러시아 군인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장을 뒤지며 직접 자재를 만들어내고 눈물과 뜨거운 기도로 지었다는 교회 개척 이야기 등.. 그 시절 힘든 기억과 고생이 새록새록 떠올랐는지 그녀는 금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작년에는 울란바트로에 있는 체육관을 구입할 수 있었다. 아직 필요한 것은 너무 많다. 상수도를 위한 우물도 파야하고 여러 물질적인 면에서 지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려움을 호소하기보다는 ‘배낭 두개로 시작한 것에 비하면 지금은 부자’라며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는데 그녀를 보고 있자니 너무나도 감사하고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녀에게는 어린아이들에서부터 어른까지 몽골인 현지인들 모두가 그녀의 선생님이다. 지금도 언어 배우는 중이다. 비자 연장을 위해 학교를 무려 8년이나 다녔다. 1년 공부하고 년 휴학하고 계속 반복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수도침례 대학 신학과, 목회학을 전공하였고 1991년도에 몽골국립대학 몽골학과를 입학하고, 99년도에 졸업, 몽골국립대학교 몽골 문학 석사를 마치고 현재 동대학 역사 문학에서도 비평분야로 박사 과정 1년차 수료하였다. 몽골은 여느 계절보다 여름에 사역이 많고 제일 바쁘다. 계획대로라면 박사과정을 다 마치고 안식년을 맞이하려 하였지만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의 유방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국내로 들어왔다. “무엇보다 의식이 있으실 때 구원의 확신함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선교지에서의 사역도 중요하지만 어머니 곁에서 간병하며 함께 하는 이시간이 참 좋습니다. 오히려 아주 편한 휴가 같습니다.”라고 얘기한다.



“무엇보다 여선교사는 섬세하고 부부 가정이 할 수 없는 일들, 일단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데 경제적이고 편합니다. 하지만 독신이기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지원받는데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교회에서의 관심도가 떨어지게 되거든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형제가 해야 할 부분이 있고 자매가 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혼자이다보니 어떠한 결정을 해야 하는 데도 두 배로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라고 전하고 ‘아직까지도 남성 위주, 목회자 위주의 선교를 하다보니 여선교사들을 위한 배려가 한국에서는 많이 부족하다고, 좀 더 관심을 가져주고 편하게 케어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전했다.



비전



장애여성으로는 최초로 ‘암벽 등산가 1호 탄생 주인공’이라는 숨겨진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도전하는 이는 정말 아름답다. 그녀 역시 도전하고 개척하는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고 가꾸어 나간다. 아무래도 자신에게는 개척 사역이 적격인 것 같다고. 앞으로도 몽골 땅의 교회 개척을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전도여행을 계속 하고 있다.

“Go or send!" 가든지 보내든지.. 이미 몽골 땅에 교회를 개척하여 현지인들에게 교회를 이양시켰으며 중국 땅, 러시아의 브리아뜨 토야, 야쿠트 등 흩어진 몽골 족속을 위해서 미션 트레이닝 센터를 만들고 현지인들을 트레이닝 시키고 동족을 품고 동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조심스레 그녀의 소원을 얘기하며 오늘도 고집스럽게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 가겠다고 확고한 다짐을 들려준다. ‘기도를 하되 낙망치 말고 하자는 것, 낙담될 때가 많지만 사람 앞에 머리 숙이고 들어가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무릎으로 가겠다’ 고도 한다. 그녀에게 주님은, 여러 번 죽을 고비에서 또 위기에서 건져주신 주님, 시험과 환난 가운데서 넉넉히 이김을 주시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한다. 살아 숨쉬는 것조차도 은혜요, 그 모든 것이 은혜라고 이야기하는 그녀. 한 줄기 빛이 되는 그녀. ‘토야’라는 어여쁜 이름이 그녀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탁구 전도 사역과 흩어진 족속을 위해 준비 중인 교회개척 사역에도 귀하고 풍성한 열매의 결실을 맺기를 기도한다.



-취재부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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