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자료등록
 
주제 주제어 출처 내용 등록일   ~
 현재위치 : HOME > 선교정보보기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4-12-30
 제목  <선교현장 이야기> 터키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
 주제어키워드  선교현장 이야기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684  추천수  13
나는 일찍부터 터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오스만투르크는 AD 1453년 5월 29일, 술탄 메흐멧 2세가 이끄는 점령군으로 비잔틴 제국을 함락하였다. 비잔틴은 동로마 제국을 말한다. AD 324년 4개로 분열된 로마 제국을 평정한 콘스탄틴 황제가 AD 330년 비잔티움이라는 조그마한 그리스인 마을인 곳에 새 로마의 수도를 정하여 천도해 온 뒤 도시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패전한 오스만제국은 해체, 1922년 아타투르크 장군이 터키 공화국이라 이름 지어 오늘의 터키가 된 그 나라는 아브라함 이후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모두에게 태생적 배경이 되어있다. 새 창조의 틀을 마련하자 했던 노아의 방주가 있다는 아라랏산, 갈대아 우르에서 살다가 온 아브라함이 살던 하란, 수메르, 바벨로니아, 아카드, 힛타이트, 그리고 아나톨리아로 이어지는 종교와 문명의 길목이 또한 터키이기에 매우 중요한 곳이다. 어디 그뿐인가. 터키는 이방선교의 전진기지인 수리아의 안디옥, 거기서 복음을 들고 나선 사도 바울의 1, 2, 3차 전도여행지가 있고, 바울과 요한 사도의 열매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있는 곳이 또한 터키이다.

여기까지가 기독교의 모체인 족장시대의 아브라함에서 사도시대까지의 기독교의 기초를 이룬 곳이면서, 더불어 터키가 중요한 것은 초대교회이후 콘스탄틴 황제의 박해 중지령(AD313년) 까지 핍박받던 시대의 흔적, 특히 갑바도기아의 데린구유(깊은 우물이라는 뜻)는 지하 120층까지 깊이로 파고 숨어 들어가서 피난하며 살았던 지하시대의 기독교, 1453년 이후 오스만의 이슬람에게 짓밟히며 살아야 했던 수난의 기독교 흔적이 곳곳에 있는 터키가 오늘의 우리 기독교에게 매우 중요한 지역임을 알아야 한다. 또 하나, 오늘의 터키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회개하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왜, 기독교가 이슬람의 오스만제국에게 망했는가, 하면서 회개하고, 어찌하면 잃어버린 기독교의 중심터전인 터키에서 기독교를 되찾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오스만투르크가 점령하기 전까지 동로마 제국에는 전인구가 기독교신자라 할 만큼이었고, 교회당이 수만 여 개 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터키에 기독교 신자는 전 인구의 3%이다. 그 중에 신교신자는 600명 정도라는 자료가 있다. 필자가 터키의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의 성소피아 교회당이나 주요 유적지에서 성지 순례차 방문한 한국 신자들을 눈 여겨 살펴볼 때 잃어버린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살아온 터전에 대하여 눈물 한 방울마저 인색한 경우는 얄밉게 느껴졌다. 오늘의 7천만 명의 터키 인구에서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수리아 정교회, 그리고 기독교(신교) 모두 합해서 3%가 범 기독교인구이며, 3%안에서 600명 정도가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 물론 600명이란 말은 필자가 터키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 수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터키인들이 기독교로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는 않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를 오스만제국 치세라고 하는데 그때까지 오스만제국에는 이슬람 신자가 절반 정도이며 그 나머지는 기독교 신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 이 통계가 사실이라면 오스만제국은 기독교 국가를 점령하고 살아온 500여 년동안 기독교 신자의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뜻이 되며, 세금만 조금 더 내는 것 외에는 각기 자기종교를 지키면서 오스만제국의 일원일 수 있었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들의 매우 유연한 정치력과 기독교에 대한 조심성을 느낄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국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터키에서 150만 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집단 학살되었다는 자료가 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크게 아쉬움을 느낀다. 150만여명의 기독교인들이 죽을 각오로 조금만 더 지혜롭게 투쟁했더라면 오늘의 터키는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명시해 두었으니 터키 땅에서 기독교가 전멸하지는 않았을 것이냐는 생각을 해 본다. 역사의 눈으로 터키, 옛 동·서로마의 기독교를 살피면 기독교의 허술하고 바보같은 여러 측면을 볼 수 있다. 중요한 부분 몇몇을 지적해 보자.

첫째 1054년 서로마 교황청 사절단장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사이의 갈등을 끝으로 동·서로마 교회의 결별을 들 수 있다. 성화상 문제, 삼위일체 부분의 성령이해의 갈등이었으나, 그때 동·서 교회의 결별은 오늘의 세계 기독교에게도 주요한 손실을 안겨 주었다.

둘째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지 탈환을 하지 않고 콘스탄티노플을 점령, 서로마 기독교가 동로마 기독교의 수도를 무력으로 탈취한 죄악이다. 점령 57년 동안 그들 서로마의 교회가 동로마의 심장부를 유린한 점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셋째,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때에, 당시 동로마 황제 콘스탄틴 11세는 교황을 찾아가서 콘스탄틴의 제국을 교황에게 바치겠다고 하여 교황으로부터 오스만제국의 침공 위기에 있는 동로마를 구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그러나 황제로부터 교황의 약속을 전해들은 콘스탄티노플의 귀족들이나 총대주교 및 교회 지도자들은 ‘교황에게 무릎 꿇느니 차라리 오스만의 터반을 향해 절을 하겠다’고 말했다. 보라. 동서교회의 응어리가 얼마나 깊은가. 오죽하면 같은 기독교끼리 화합을 못하고, 기독교를 이슬람 제국에게 바치겠다고 했겠는가. 필자의 글이 너무 딱딱했는가. 모처럼 만난‘선교 타임즈’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나누어주고 싶은 열심히 글을 딱딱하게 했을까. 그러나 끝으로, 필자의 견해 한마디를 보태고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싶다. 40여년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을 탐구하며, 전 세계 기독교와 이슬람이 부딪치는 나라는 다 찾아가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오던 중, 이 사람은 터키를 이슬람과 만나는 전략기지로 선택했다.우리는 이미 두 사람의 단기 선교사를 터키에 다녀오게 했으며, 한 사람의 선교사가 지사장의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미 1년 전부터 필자는 좀 더 터키를 통해서 기독교의 과거, 현재, 미래를 배우기 위하여 터키어를 배우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안에 터키로 이주해 가서 살면서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보일 선교인력을 파송할 계획도 상당부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선교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닌 법, 또 어느 한 사람의 영웅적 행위로 마무리 짓지도 못하는 법, 우리 모두의 기도와 열심, 십자가 만큼한 희생이 온다 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믿음의 사역자들이 더욱 필요함을 알고 있다.
                  






  선교정보리스트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