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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2-12-26
 제목  <이달에 만난 인물> 사마르칸트의 기적 , 이승률 목사
 주제어키워드  이달에 만난 인물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2840  추천수  11
“인구의 약 93%가 이슬람을 신봉하는 우즈베키스탄은 세계선교를 위한 가장 첨예한 영적 전쟁터입니다. 저희 가정이 사역하는 사마르칸트에서 아프가니스탄은 불과 4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또 이곳은 세계 여러 선교 기관들이 선교 전략지역으로, 창의적 접근지역으로 구분하여 이슬람 세력의 동진을 막아내야 하는 선교 중점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교전략의 요충지인 사마르칸트에서 현지인을 돌보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쓰다 보니 어느덧 10년이 넘었습니다.”



10년 6개월 동안 우즈베키스탄 제 2의 도시 사마르칸트에서 현지인에게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하다 일시 귀국하여 재충전을 위한 안식휴가 중인 이승률 목사를 만나보았다.



믿음의 연단들



꽤 오래 전 이야기다.

그때 당시 아무도 고칠 수 없었던 이목사 어머니의 병이 교회에 출석하게된 이후 완전히 회복되면서 그는 어머니를 통해서 11살 때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 후 그는 고향 교회 목사와 어머니의 서원 기도를 통해 소명도 없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구원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신학교에 간 그는 휴학원서도 안 내고 무작정 군대에 입대하게 되고 그런 그에게 이후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다. 3년만 하면 되는 군 생활을 7년이나 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연탄가스 사건으로 5일 만에 죽었다가 살아났기도 했을 뿐 더러 그 후에 폐가 안 좋아져서 다시 한번 죽음에 근접하게 되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한번 회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이 있은 후 이목사는 주님 앞에 3가지 서원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지금까지 지켜졌으며 지켜져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결혼 후 교회를 개척하는 것과 농촌에서 가장 어려운 미자립교회를 시무 하는 것 그리고 200만원으로 중 3층 교회와 사택을 건축하고 바로 선교사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생명을 살려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해 선교사로 서원한 이목사는 당시 선교지로 아프리카를 마음에 품고있었으나 갑자기 구소련이 개방되면서 자연스레 우즈벡키스탄으로 선교지를 옮기게 되었다. 즉, 구소련에서 두 번째 선교사,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첫 번째 통합측 선교사로 가게 된 것이다.

사마르칸트



이목사가 있는 사마르칸트는 1920년대에의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였으며 한국보다 4배가 크고 인구는 2배나 작은 나라이다.

9세기 때 아랍을 통해 들어온 이슬람교는 이제 이슬람국가의 종주국이 되어 있을 정도로 성장하여 사마르칸트에는 중앙아시아 최대의 사원과 이슬람 유적지, 박물관 등 즐비해 있을 뿐 아니라 메카 다음 두 번째 성지요 전문대학 포함 30개의 대학이 있는 교육도시이고 134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목사는 또한 우즈벡에 대해서 ‘70년 동안 하나님이 없다고 세뇌하며 가르친 공산주의의 땅이요, 37년 일본 군국주의와 함께 스탈린이 강제적으로 이곳 우즈베키스탄에 고려인을 기차와 화물차에 실어다 버린 곳’이라고 하면서 민족적으로 아픈 과거 또한 전했고 이 같은 상황들 속에서 복음전도 전략으로 ‘지역과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복지학적 접근방법으로 목회를 하고 있음이 효과적임’을 시사했다.



사도행전 29장



이것의 일환으로 이승률 목사는 사마르칸트 기독 센터를 비롯한 5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4개의 무료진료 병원을 개원하였으며, 신학대학 사역을 통해 현지인 지도자를 양성하고, 20개 사회복지 시설의 봉사를 통해 중앙아시아 복음화에 전력을 쏟아왔다.



2002년 4월 29일 사마르칸트 교회 10주년 행사를 하면서는 현지인 정식 목사를 안수했을 뿐 아니라 여성의 직위가 하락한 이곳에서 교회 1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이 나라에선 처음 시행되는 모범 어머니상 시상과 제1회 장애자 체육대회를 개최하여 그들에게 기쁨과 새로운 인식을 주기도 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마르칸트 기독교회는 매주 500여명의 교인들이 출석하고 있다. 아직까지 선교사나 목사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고 종교비자도 없는 현지에서 유일하게 종교비자를 가지고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300여명 선교사 중 유일하게 국가로부터 공인된 목사로 마음껏 설교할 수 있는 이목사는 이슬람지역에선 보기 드문 대형교회를 일구고 한 명의 전도도 힘든 지역에서 5개의 교회를 개척하였을 뿐 아니라 현지인 목회자를 배출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이루었다.

이에 대해 이목사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0년 500개에 불과하였던 이슬람 사원이 4,000개로 늘어나는 등 급속한 이슬람의 신장으로 복음 전파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허가를 받은 구제, 봉사, 무료진료 등 사회봉사를 통해 복음 전파의 영역을 넓혀 왔습니다.”



장애물들



이목사는 선교 활동을 하면서의 장애물들에 대해 첫째로 ‘일부 선교사들이 선교의 소명과 훈련계획을 체계적으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파송 되어지는 것으로 인해서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에게 본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들었고 둘째로는 ‘이로 인해 선교사들과 각 선교 단체나 교단들이 연합을 이루지 못하므로 해서 오는 여러 가지 갈등’을 꼽았다.

셋째로는 ‘선교를 무조건적으로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거나 이슬람이란 지역을 망각한 채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노방전도, 일대일 전도 등을 하는 평신도 선교팀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는 ‘파송 받은 현지 선교사와 의논도 없이 한국에 나가 있다 들어온 이곳 현지인 노동자들을 직접 상대하여 선교를 펴나가는 행동파 및 강경파 단체들을 언급’했다.

우즈벡키스탄은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에 선교를 할 수 없는 나라이다. 이것으로 인한 장애는 더이상 장애가 아닌 것이다. 이슬람국가라는 것을 장애물로 삼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선교사들에게 무책임하고 자기만족적인 일부 사람들이 더욱 큰 장애를 만들어 논 셈이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



이목사는 이미 97년도에 사마르칸트 기독문화 연구 센타를 등록 받아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사회를 위해 꾸준히 봉사한 결과 국가로부터 2만여 평의 땅을 기증 받게 되었다.

이목사는 기증받은 땅에 중앙아시아 선교 훈련센타를 건축하고 구소련 선교사들의 재충전과 현지 선교사 훈련 장소로 활용할 예정이다. 장래의 기독교 종합대학에 대한 꿈도 가지고 있는 이목사는 앞으로의 비전을 담대히 고백하였다.



“중앙아시아 선교 훈련센타를 앞으로 세계 선교의 전초의 기지가 되도록 할 것이며 사마르칸트에서 유일하게 등록 받은 신학대학을 통해 지도자 육성을 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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