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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1-02-01
 제목  <이달에 만난 인물> 어린양의 집, 오미오 원장
 주제어키워드  기적의 집, 사랑의 집-오미오 원장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919  추천수  16
기적의 집, 사랑의 집

- 「어린양의 집」 오미오 원장 -



취재 | 이준희 기자



<나도 날고 싶어>



잠자리가 날으는

저 높은 하늘에



나도 날고 싶어

누군가에게



날개를 잡히고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슬퍼한다 하더라도



잠자리가 날으는

저 맑은 하늘에



나도 날고 싶어

파란 가을 하늘에서



조각구름으로 예쁘게

그리운 사람을 그리며



노래하는 새들과 함께

보고 싶구 사랑해요 외치며



오늘 밤엔 나도

한 마리 잠자리 되어



나의 소중한 작은 꿈

누군가에게 말할 거야



“나도 잠자리처럼 하늘 날고 싶다.”“하늘을 날면 보고 싶은 사람들 만날 수 있을 거야”하는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안쓰러운 생각에 가슴 아파하다가 써 내려간 오미오 원장의 글이다.

이렇듯 아이들의 말 하나, 몸짓 하나도 예사롭게 넘기지 못하는 사랑많은 오 원장. 그러나 그녀 역시 낳자마자 길에 버리워진 아이였었다.



어린 시절

웬일인지 3살 때 갑자기 눈이 멀게 되자 양부모는 그녀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천덕꾸러기 생활을 하던 8살 때의 어느 주일 아침, 그날도 서성이다가 정읍성결교회 앞에 가게 되었다.

“거지가 교회에 왔다며 주일학교에서 받아 주지 않았어요. 그냥 교회 앞에서 잠이 들었는데 예배가 끝났는가봐요. 당시 담임목사였던 이계섭 목사님이 나오시다가 저를 보시더니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사택에 데려가 씻기고 먹여 주셨어요.”

그때부터 교회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던 그녀는 기도중에 예수님의 환상을 보게 되었고 그 이후로 눈이 뜨여 글을 알게 되었다.

그러기를 1년여, 이 목사가 서울로 가고 그녀의 비참한 생활은 다시 시작되었다.

10살 때 이 목사가 정읍에서 부흥회를 인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흥회에 참석한 그녀는 어른들을 따라 철야 금식 기도를 모방하면서 “하나님, 저 독신으로 살면서 평생 가난한 사람 돌볼께요.”라는 기도와 함께 엄마의 구원을 위해 기도드렸다. 어머니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양부는 그녀를 식모로 팔아넘겼고 그녀는 18살 때까지 16군데를 전전하며 식모살이를 해왔다.

그러다가 TV를 통해 정박아를 보게 된 그녀는 자신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있음을 보게 되었고 그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보육 기관에서 10여년간 보육사로 일한 그녀는 보육원에 진짜 불쌍한 아이들이 들어오기 보다는 돈 많은 집 아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이전에 서원했던 대로 진짜 불쌍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있던 곳을 나오게 되었다.



어린양의 집 탄생

“보육시설을 나올 때 제 손에는 이백만원이 전부였어요. 그때 충청도의 한 보육원에서 거처를 마련하는데 1500만원 중 200만원이 부족하다고 기도요청을 해 왔어요. 그런데 자꾸 제가 가지고 있는 그 돈이 생각나는 거였어요. 1주일 동안 제 자신과 씨름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전 재산을 주고 나니 머물 곳이 없었던 오 원장은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얹혀 살았다.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서럽고 원통해서 죽어야 겠다고 마음 먹은 그녀는 마지막으로 예수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예수원을 오르던 그 길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과 세상 근심 하나 없는 듯 여유롭게 흐르는 시냇물조차 “우리도 이렇게 즐겁게 사는데 왜 죽으러 가냐?”며 그녀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 그녀에게 예수원을 내려오던 한 일본인 선교사가 “하나님이 귀한 사역을 주셨는데 왜 죽으러 하느냐?”며 오 원장을 은행으로 데려가 오백만원을 선뜻 내어 주었다.

그 돈을 받아들고 예수원에 올라가 기도하는데 대천덕 신부가 그녀에게 안수하며 “오미오 자매를 통해 어린양의 집이 나타날 것이다”고 기도해 주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어린양의 집」은 하나님과 오 원장 자신만이 아는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어린양의 집이 채 세워지기도 전에 오 원장의 사연을 들은 사람들이 후원하겠다며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1년동안 빈민촌을 두루 다니며 섬기던 오 원장은 1990년 11월 1일,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대로 무당이 살다가 도망간 집으로 이사해 어린양의 집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 이름

그녀는 스스로를 ‘큰 정박아’라고 부른다.

“한 아이가 보름동안 간질을 하다가 죽은 일이 발생했어요.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너무 놀라서 기도원으로 달려가 울며 불며 기도하는데 사람들이 라면 박스에다 아직 죽지 않은 아이를 집어 넣는 환상을 보게 되었어요. “우리 애가 죽지도 않았는데 왜 매장해?”하며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내려왔어요. 그랬더니 정말로 사람들이 라면 상자에 그 아이를 집어 넣고 있었고, 경찰들은 저에게 아이를 죽여 놓고 4일만에 나타났다고 조사를 받아야 겠다며 경찰서로 가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그 아이를 끌어 안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제가 봐도 분명히 죽은 거더라구요. 그 애 위에 엎드려 서럽게 울고 있는데 ‘네가 그들이 되어 봐라.’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어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자, 내가 너를 그들의 대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큰 정박아」라는 글씨를 너무도 선명하게 눈 앞에 보여 주셨어요. 그래서 “좋아요, 제가 큰 정박아가 될 테니까 그럼 이 애를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말 한 마디 못하던 애가 갑자기 눈을 뜨면서 ‘엄마, 울어?’하는 거예요. 그걸 본 모든 사람들은 다 넘어갔지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비닐하우스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오 원장은 주변 산에 2층짜리 콘테이너 박스가 들어선 것을 보면서 왠지 그 자리가 어린양의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벽 1시에 그 산 앞으로 가서 “이곳에 우리 어린양의 집 들어서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무서움에 돌아서서 뜀박질 하기 6년.

드디어 산이 헐리고 그 자리에 2층 건물이 들어섰다. 마침 비닐하우스 주인도 비워줄 것을 요구하였고 어린양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꼭 그 건물이 어린양의 집이 될 거라고 말했단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 집이 다른 곳에 팔렸다는 거예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제정구 국회의원 아저씨께 부탁을 드렸지요. 나, 지금까지 하나님 빽만 믿고 살아온 사람인데 이번 딱 한 번만 아저씨 힘 좀 빌려보자 했더니 며칠 후 시 관계자들이 무슨 조사를 한다고 나오더군요. 그후 6개월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더니 12월 24일에 집 주인과 시 관계자들이 와서 건물 가격이 3억 2천 5백만원인데 계약이 가능하겠냐고 묻더군요. 저희가 가진 돈은 이백만원 밖에는 없다고 했더니 대뜸 미친 여자라고 욕하며 나가더군요. 그런데 그 뒤에 대고 저도 모르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면 당신들은 또 와!”라고 소릴 질렀어요. 한참을 있다가 그 사람들이 진짜 다시 오는 거예요. 6개월 안에 잔액을 다 주겠다고 하고 계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 원장은 자신의 약속보다도 3개월 앞당겨 잔액을 모두 지불하였다. 집을 갑자기 세미나 계약한 요청 이후 및 후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득 그녀는 7개월 전 일이 떠올랐단다.

“TV에서 마천동 장애인 11명이 길거리로 나 앉게 된 사건을 보게 되었어요. 문득 어린양의 집 아이들에게 대형 TV를 사 주려고 이불 밑에 꽁쳐놓은 돈 천만원이 생각났는데 도리질을 치며 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고 그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부담감만 더해 가는 거예요. 아이들의 의견에 따르리라고 마음먹고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했지요.”

밤낮 찡그리며 TV를 보던 아이들은 길에 나 앉게 된 그들에게 집을 사줘야 한다고 소리를 모았단다. 분명치 않은 발음에 혹시 자신들의 의견이 전달되지 않을까 악을 써 대는 아이들의 사랑과 너그러움에 승복하여 그들을 도왔던 사건… 내 손에 있어도 그 재물이 하나님 것임을 알기에 순종하였을 뿐인데…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역사를 그녀는 눈물로 고백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녀는 하나님의 빽만 믿고 다시금 믿음의 입을 크게 연다. 300명의 어머니가 되기를, 아프리카 땅에도 어린양의 집이 세워지기를, 아이들 병원 하나만 지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뒷 땅에 노인과 문제를 안고 있는 청소년들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를 소원한다.

어린양의 집

(429-280)경기도 시흥시 물왕동 125-1

Tel : (031)405-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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