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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1-02-01
 제목  <특집> 새천년 선교사역과...-한국교회의 선교이해, 위기와 대응
 주제어키워드  파송과 지원의 유기적 실천 회복해야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2899  추천수  8
‘파송과 지원’의 유기적 실천 회복해야







윤춘식 선교사(예장고신, 아르헨티나)





선교는 목회의 한 프로그램인가?

하나의 패러다임인가?



선교는 무엇을 뒷받침해주는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하나의 목표이며, 생명이다. 그러므로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패러다임의 모습이 건축물처럼 쌓여져 갈 수 있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이나 패러다임의 연구가 곧 선교는 아니며 이는 선교를 선교답게 세워주는 하나의 구조물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교회 내부적 실정



아직도 선교는 목회의 한 프로그램이요, 교회성장을 위한 종속된 분야로 취급되어짐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연구 결과가 어떤 구체적 검증여부를 통해 나타난 바는 없지만 이러한 분위기인 것만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형편이다.

선교활동은 선교사의 전유물도 아니요, 목회적 한 방편임은 더욱 아니다. 온 교회 성도들이 함께 공유하고 함께 논의하고 느끼고 실천해야 할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에게 맡겨주신 지상 명령이다. 또한 인격적이고도 현재적이며 도전적인 과제인 것이다.

현재 한국 교회의 선교교육은 선교사 위주라는 감이 적지 않다. 물론 특수하고도 전문적인 훈련은 선교사 후보자들이 감당해야 하겠지만, 선교교육은 범교회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목회와 선교를 양분할 것이 아니라 목회현장에선 선교정신을 포함하고 선교현장에서는 목회정신을 포함하는 과정 내에서의 선교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어떤 특정한 소명자들을 통한 지원과 자격심사, 훈련과 파송, 그후에 해외 선교 사역으로 이어지는 일률적인 과정을 겪고 있을뿐 교회 교육 전반에 걸쳐(전체 교인 포함)참신한 선교교육의 활력을 부여하는 산 교육으로서의 자리매김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지역 교회는 매월 선교비를 맞춰 내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처음엔 창의적 교회로서의 선교사 파송과 협력으로 뜨거워졌다가, 이제는 교회마다 보편화 되므로해서 선교열이 굳어져 간다면 애초의 자세가 진정 창의적이었겠는가? 안식년을 맞아 귀국한 선교사 가족의 거처문제, 출발할 땐 유아였던 어린 자녀들이 이젠 중학생이 되어 민족의 정체성을 고무시킬 나이에 이르렀고, 매월 쏟아져 들어오는 선교 편지들과 청원서들-때로는 선교에 대해 공중 기도까지 하면서도-정작 선교 서신을 공개해 주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필자가 잘 아는 부산의 어느 목사는 때때로 읽지도 못한 채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귀띔해 준 적이 있다. 실제 교회 내부만 해도 헌금이 사용되어져야 할 항목은 얼마든지 있다.

모든 성도를 다 선교사로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적어도 목회자의 교육 사명속에서 선교적 개념과 관심, 육성, 헌신의 단계적 개발이 필요하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소명과 파송의 황금기라고 불릴 만큼 선교사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교회내 선교 위원회의 재정 프로그램과 선교사 훈련원 설치와 해외 장단기 선교 연구소 및 그 규모와 범위는 거의 세계적 수준이다.

하지만 재정적 지원에 비해 과연 몇 %에 달하는 비중이 일반 교회 교육 속에 내포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선교교육을 확대, 평가, 수정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대해선 다소 의문이 간다.

더욱이 최근 교회내 교육 위원회가 각종 프로그램 개발엔 활성화 되고 있지만 선교교육적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개는 목회적, 행정적 갖춤의 형식으로써 선교 위원회가 가동되지만 선교비 수지계산, 독려, 광고 정도에 그치며 그 교육적 기능과 선교 교량적 역할에 대해선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에 들어와 (약10여년 전부터) 점차적인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혹은 특정 지역에 평신도 신학교를 확장하고 학술 연구회, 리더쉽훈련, 그룹 성경공부 등 정기적으로 교회 학교총회를 열기도 한다. 농어촌을 포함한 모든 교회에서는 최소한 하나 이상의 청소년 단체가 조직되어 있다. 그들에겐 선교에 대한 자료 공급과 개발이 급선무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선교사와 자국의 목회자들이 양쪽 현장에 맞는 학습자료를 구성할 수 있도록 공동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교회의 외부적 상황



한국 교회의 세계 선교 상황은 제 3세계에 이미 잘 알려진 터이다. 각 교단 총회선교부와 열심 있는 선교 단체들과 단독 교회를 통해서 약 4,500여명이 해외 선교 현장에서 사역하고 있다.

SM 2000선교 운동에 의하면, 2000년대에 2만명의 선교사파송을 위해 기도하며 재원 학보를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그러나 최근 IMF가 한국 선교에 부정적인 요소만 갖다준 것은 아니다. 지금 각 선교지에선 경제 지원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한국 개신교 파송 선교사들이 초교파 연합의 새로운 팀웍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대개 한 선교사 가정을 한 교회가 책임을 맡는 후원보다 여러 교회가 연합해서 지원하는 협력 선교의 형식을 많이 채택하고 있다. 이로써 작은 교회도 해외 선교(혹은 국내 선교)를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명실공히 선교 한국으로 국제화 시대에 부상할 수 있었다. 이는 선교라는 추상적 소명을 구체적으로 가시화 시키며 수많은 기도의 역량 속에 선교의 꾸준한 열매를 맺어 왔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반면에 한 선교사를 후원하는 책임의 분량이 후원금의 분배에 의해 할당되는 기현상을 산출하고 말았다. 개교회는 교회 자체적 선교교육 철학과 학습의 과정을 개발하지 못한 채, 개교회 자체의 선교전략 부재를 안고 선교 예산의 규모로 선교 활동의 성패를 측정하는 성향이 생기게 되었다. 이는 원주민 선교사들이 본국 입국시(안식년, 건강진단, 가족경조) 준비했던 대로 제대로 보고하기 조차 어려워졌다는 최근의 간증들이 이를 증명해 준다. 즉 선교보고(혹은 메시지)에 대해 관심을 모으는 성도들의 기대감에 비해 그 시간을 배려하는 목회적 전략 내지 프로그램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반대로 선교 메시지에 대한 목회자의 열정은 뜨거운데, 교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아직 무르익지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여기에서 목회자와 선교사는 일차적인 책임의식을 가지고 공동의 전략을 모색해 가야 할 것이다. 진정 선교의 시행자되는 지역 교회의 사명을 충분히 고려하여 소극적인 행동에서 벗어나 교회의 본래적인 위상에 걸맞는 독립성과 긍지를 회복해야 할 일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침략하는 사탄의 세력과의 맹렬한 전투행위이다(마11:12). 이는 후방 병참 지역이 아니라 전방 최전선이다. 다행히 한국 교회는 훌륭한 선교 지도자들을 통해 선교지를 아끼며 선교사를 격려 감동시켜 온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 선교를 견지하면서 선교사 선발에도 엄격한 영성에 포착했다는 사실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교회 성장이란 운동 아래 개교회주의의 나락에 빠져 있었던 교회와 지도자들은 이를 계속적인 목회의 한 방편으로 개입시켜 왔다는 것은 아직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교와 패러다임



한국교회의 선교가 불 붙여진 1970년대 이후 80년대에 이르러선 그 선교의 형태는‘교회 파송형’(Sending Paradigm)으로 나타난다. 그후 80년 후반에 이르러선 교회는‘선교 지원형’(Support Paradigm)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럴만한 요인들이 많이 있겠으나 예컨데 교단의 경우, 교회-노회-총회 사이에서 인선과 후원 면에 혼돈이 야기되기 시작했으며 주도권의 문제 등 불필요한 중복 현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편 선교 단체가 주축이 된 선교는 처음엔 교회와 무관한 기관으로 출발했으나 점차 지역교회의 후원과 연합을 요청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각 교단의 선교 열기는 강하게 반사되었다.

그런데 교회가 ‘단독 파송형’때와는 달리 ‘선교 지원형’이 되었을 때, 선교부(혹은 단체)와의 ‘주도권’ 문제는 능동형과 수동형, 주도형과 의존형이라는 패러다임을 창출하였다. 양자 모두 장·단점이 있으나 대개의 선교사들은 지원형의 장점을 더 인정한다.문제는 지역교회가 ‘선교 지원형’이 될 경우 선교 본부내의 임원들 간에 정치적 권력 현상이 우려될 수 있다. 이는 파송 선교사들을 후원 교회와의 동일 선상에 있는 영적 동역자로서 보지 않고 통제와 관리적 측면에서 보려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21세기를 바라보는 한국 교회에 있어 선교교육적인 패러다임은 선교의 주도권적 대립의 양상을 극복해 가야만 한다. 선교의 책임을 선교 전문기관에 의존한 채 교회는 방관해서도 아니되겠고 선교의 모든 주도권을 홀로 쥐고 관리해 보겠다는 독단적 우(愚)를 범해서도 아니되겠다.

파송과 지원이 비록 패러다임의 형태를 취하고 나타나지만 선교는 그 출발과 목적이 온전한 오순절 체험의 과정에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선교사의 사역의 열매는 때때로 패러다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따라서 지역교회는 파송과 지원의 이원론적 입장을 극복, 유기적 실천을 이루기 위해 초대 교회의 모델(안디옥교회)을 본받아, 곧 교회는 선교의 시행자 되신 그리스도의 위상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의 지체로서의 유기적 선교 실천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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