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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0-06-03
 제목  열렬한 공산주의자가 복음의 일군이 되기까지...
 주제어키워드  몽골 공산주의자  국가  몽골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516  추천수  7
"한국 선교사의 현장 이야기"



"열렬한 공산주의자가 복음의 일군이 되기까지..."



윤순재 선교사

(몽골)

<소개>

1992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총회 파송 선교사로서 가족(윤순재목사, 이계심 목사,

상은, 상진)과 함께 몽골에 와서, 장기적인 선교의 기반을 마련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기독

교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사립 대학을 93년에 설립하여 윤순재 목사는 현재 몽골 정부에

서 공식 임명한 "울란바타르 대학"의 학장으로, 아내 이계심 목사는 학생처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사역은 울란바타르 대학의 운영이며(교육 선교), 수요일과 주일에는 현

지인 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교회 개척 및 제자 양육).



<사진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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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들이나 선교사 지망생으로부터 가끔

"선교지와 본국 생활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에 대

해 질문을 받게된다. 그 때마다 "한국과 몽골에서 산

다는 것이 어떻게 다르지?" 하면서 다시 한번 우리

의 생활을 돌이켜 보게 된다. 사실 선교지나 조국에

서나 큰 차이는 없는 듯 싶다. 한국에서 행복했던 사

람은 선교지에서도 행복하고, 조국에서 성실했던 사

람들은 선교지에서도 성실한 것 같다. 다만 선교지에

서는 신앙과 생활 가운데 발생하는 일들이 증폭(增

幅)이 되어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앰프를 사용하면 마이크를 통해 울려나오는 소리

가 몇 배라도 크게 들려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용하심에 있어서 작은 능력임에

도 더욱 크게 울려나오듯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움도 더욱 크게 힘들게 느껴지고,

반면 즐거움과 보람도 더욱 크게 느끼며 살게 된다. 한국에서 작은 금액이 선교지에서는 거

액이 되고, 선교사의 사소한 행동도 때로는 정치 외교적인 사건이 되어 확대되기도 한다. 이

런 점에서 선교지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숨결을 생생하게 몸으로 느끼고 피부에 와 닿는 경

험을 많이 하게 된다.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생생하게 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선교

사로 지망하기를 바라며, 특별히 몽골처럼 미전도 종족이면서 기독교 초기 지역인 곳에서는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 숨쉬고 있

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배우게 된다. 다음은 우리가 체험한 여러 기적가운데 소

개하고 싶은 한 사건이다.



93년부터 시작한 울란바타르 대학교가 지금은 몽골 5대 사립 대학중의 하나로 성장하였

고, 한국-몽골 민간 교류의 가장 크고 영향력이 있는 기관으로 발전했다. 물론 선교적으로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대학이 발전하기까지 숨은 공로자가 있다면 그는

현재 부학장으로 일하고 있는 체벤푸릅(69세)씨이다. 그는 과거 열렬한 공산주의자였고, 각

종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서 사회주의 경제 이론을 선전하던 몽골 최고의 회계학

권위자이다. 그가 90년 이후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숙청 대상이 되었고, 퇴직 당해

일이 없을 무렵 후배들의 배려로 에르뎀이라는 작은 회사의 부사장으로 초빙되었다. 말이

회사지, 직원 세 사람이 전부인데다 할 일도 많지 않아 술과 담배, 카드놀이로 소일하면서

바뀐 세상을 한탄하기가 일쑤였다.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도 험악한 편인데다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만큼 빈틈이라곤 하나도 없는 분위기를 지녔다.

그 회사가 돈을 벌 목적으로 외국 유학생을 몽골 학교에 입학시켜주고 수수료를 받았는

데, 몇몇 선교사가 신분을 위장하고 유학생 비자를 그분의 도움을 받아 얻었다. 어느 선교사

가 한번은 용기를 내어 전도했다가 "유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무슨 종교활동을 하느냐?"고

크게 야단을 맞았다. 그 후로는 선교사들도 그분을 무서워하는 편이었다.

울란바타르 대학이 한국어 강좌를 시작 할 무렵에는 외국인이 강좌를 개설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부사장으로 있는 에르뎀 회사와 합작의 형태로 시작하였다. 강

좌 수입의 절반을 주기로 계약을 맺고, 대신 그 회사에서는 강의실을 준비해주기로 했다. 그

래서 93년 가을 국립의과대학 안에 교실 두 개를 임대하여 학교를 시작하게된 것이다. 1년

동안 함께 일해 오면서 이분은 철저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강좌로 시작한 학교가 정

부에 대학으로 승격될 무렵 에르뎀 회사는 문을 닫게 되었고, 마침 우리는 좋은 경리가 필

요했다. 세무서를 상대로 몽골 회계법에 맞춰 돈을 관리한다는 것은 선교사로서는 벅찬 일

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그분을 우리 학교의 경리부장으로 오라고 요청하였고, 흔쾌히

수락하여서 본격적으로 대학 일을 하게 되었다. 몽골 최고의 회계권위자답게 그는 대학의

모든 재산과 회계를 꼼꼼하고 정확하게, 정직하게 처리하여서 지금까지 한번도 장부나 세금

관계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

95년 대학으로 정식인가를 얻고 2년이 흘렀다. 울란바타르 대학은 계속해서 발전하였고,

몽골 사회 안에서 좋은 대학으로서 자리를 잡아갈 무렵인 97년 겨울 아침 체벤푸릅 선생님

께서 출근길에 갑자기 집 앞에서 쓰러 지셨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지셨는데, 정밀

검사를 하니 방광암이라는 것이었다. 상태가 심각하여 당장 수술을 해야한다고 해서 그 자

리에서 입원을 하게되었다. 국립 제일 병원, 몽골 최고의 의료진이 매달려 수술을 하였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 종양은 제거했지만, 불과 며칠 뒤에 다시 암세포가 자라나기 시작

했다. 악성 종양은 계속 커가고, 결국 항암치료(화학요법)에 의존하게 되었지만, 그나마 6개

월 이상 버티시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닌가?

체벤푸릅 선생님의 형편이 인간적으로 안타깝기도 했지만, 대학의 장래를 생각하니 아찔

하기만 했다. 그 동안 체벤푸릅 선생님이 대정부 관계를 거의 맡아 해주셨고, 회계 정리도

다 하셨는데, 이분이 안 계시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학에서 함께 일하는 선교사들이 모두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주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이 분이 꼭 필요합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건강하던 그의 얼굴은 급속하게 수척해가고, 검은 머리카락이 순식

간에 하얗게 변하더니, 뒷머리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빠지고 말았다. 그해 3월 입원한 병

실을 방문했을 때 초췌하게 변해버린 선생님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병문안을

가기 전날 하루종일 울란바타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구하기 어려운 과일들을 모아 한아름

과일바구니를 준비하고, 당일 새벽에 쾌유를 기원하는 시를 써서 몽골 말로 번역한 다음 선

생님께 전해 드렸다. 나중에 이 시가 몽골 인민일보에 소개되기도 했다.



체벤푸릅 선생님께



지난 3년 동안 함께 일해 오면서

선생님을 통해 배우고, 도움 받은 일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단지 업무상으로 도움 받은 것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깊은 우정과 신뢰를 쌓았고,

가족처럼 정이 들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몽골에 와서 일하면서

선생님은 제게 많은 위로가 되었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제게는 큰 힘이 됩니다.



이렇게 건강이 나빠지셔서 입원하시고

급기야 수술까지 받으시게 되니

저의 마음은 무너지는 듯 아프기만 합니다.



부디 빠른 회복을 바랍니다.

병상에서 건강을 찾으시고 웃는 모습으로

우리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 앞에 나타나셔서

함께 일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매일 아침마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선생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선생님께서 곧 건강하시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하나 적었습니다.



"그가 병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시고

그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시며 그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시편 41편 3절)



빠른 시일 안에

다시 만나뵙기를 기대합니다.



1997년 3월 5일 아침에



매일 아침마다 우리는 체벤푸릅 선생님의 건강 회복을 위해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하였

다. 두 달쯤 지나서 머리가 다 빠진 채 모자를 눌러쓰시고, 그러나 약간 건강을 회복하셔서

전처럼 학교로 다시 출근하셨다. 본인은 6개월 시한부 처지라는 것을 알지도 모른 채...

7월이 되어 졸업반 학생들이 한국으로 한 달간 언어 연수를 가게되었기에 나는 체벤푸릅

선생님께 외국여행이라도 하시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대학을 위해 수고 하셨

는데 마지막 좋은 여행을 다녀오시라는 의미에서 학교에서 경비를 대고 잠시 한국을 다녀오

도록 권하였다. 한국에 출국하기직전 대학 후원회 방문단이 왔을 때 한 집사님께서 전도를

했는데, 손님에 대한 예의로 그래셨는지, 아니면 몸이 크게 약해지시니 의지할 바가 없어 그

래셨는지 어쨌든 간에 그토록 완강히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선전하던 그가 사영리를

따라 읽으며 기도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줄이야! 그의 영접 소식을 들은 선교사들과

후원회 방문단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한국 출장길을 떠났다.

한국에서 보름간의 짧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건강 회복을 위해 안수기도를 하였다. 안수

기도를 받는 동안 체벤푸릅 선생님은 온 몸에 뜨거움과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체험을 하

였다. 나중에 초음파 검사 사진에 의하면 확실하게 종양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는 그에게 큰 기적을 베푸셨다. 성령님의 기적을 체험한 그는 놀랍게 삶이 변화하였다. 한국

을 다녀온 즉시 교회로 출석을 시작하였다. 혼자만이 아니라 사모님과 딸, 손녀도 데리고 나

오고, 이듬해 세례를 받았다.

그는 이제 정기적으로 교회를 출석하는 몽골 최고위급 인사가 된 것이다! 빠졌던 머리카

락이 다시 돋아나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까맣고 얼굴 표정도 밝아졌다. 강

한 인상도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의사들이 말한 6개월을 넘기고 벌써 만 3년

이 지났다. 여전히 아침이면 몽골 직원 중에서는 가장 먼저 출근하여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울란바타르 대학이 몽골 선교에 너무도 중요한 기관임을 스스로 확

신하게 되었다. "이 기관을 보호하시기 위해 다 죽어가던 체벤푸릅 선생님을 하나님께서 살

리신 것이 아닌가?" 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그래서 이분과 함께 있을 때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스스로 숙연해진다.

그해 겨울이었다. 올리아스테 교회를 새로 개척하게 되었고, 예배당을 지어 동네 사람들

을 초청하여 개척 예배를 드릴 때의 일이다. 예배를 마치고 광고 시간이 되었는데, 체벤푸릅

선생님이 갑자기 앞으로 나가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따로 부탁을 드린 것도 아닌데, 본

인이 자신의 삶을 간증하기 시작하였다.

"저는 사회주의 시절 조국의 도움으로 어린 나이에 군에 입대하여 장교로서 제대하였고,

직후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레닌그라드에서 정치경제학을 5년간 공부했습니다. 공산당 중

앙정치연수원에서 3년간 정식 교육을 받았고, 지금까지 40년 동안 공산당 당원으로 일해오

고 있습니다. 국립 종합대학에서 교수로 임용되어 가르치다 교육부로 발령 받아 13년간을

일했고, 그중 11년을 교육부 차관을 지냈습니다. 교육부 근무를 마치고는 일흐츠크에서 총영

사로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했는데 93년부터는 여기 있는 윤순재 학장과 함께 울란바타

르 대학에서 일하고 지금 부학장으로 있습니다. 제가 몇 년 동안 함께 일해보니, 이 사람들

은 믿을 만한 사람들입니다. 저도 지난여름 암으로 다 죽어가던 사람이었는데 병원에서는

고치지 못하는 병을 하나님께서 고쳐주시고 나를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 교회 나오시면

좋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님을 영접하세요..."

체벤푸릅 선생님께서 간증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다! 우리는 지금도 이렇게 굳게 믿고 있다. "사명이 끝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

님께서 데려가시지 않는다."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용

하실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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