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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0-11-07
 제목  2000년세계선교대회(평신도전문인)-평신도 선교신학
 주제어키워드  WMS2000 평신도선교 전문인선교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6316  추천수  3
■ 8월 16일 (수) 분과별모임(1) ② 전문인선교





평신도 선교 신학





김태연 목사

한국외국어대학 중국어과 졸

침례신학대학원 졸

미드 아메리카 신학원 (M.A./Ph.D.)

워싱톤침례교회 담임목사

미드 아메리카 신학원 강사

침례신학교 겸임교수(선교학)

성결대학교 시간강사(선교학)

KOSTA 강사

"미국의 위대한 젊은이 상 수상"

현, 한국전문인선교훈련원(GPTI)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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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 철학, 신학, 선교학 그리고 선교사역의 실제에 대한 연구가 21세기 세계선교의 장에 가장 우선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무시되고 무지 속에 방치된 전문인들에게 자신들이 이 세상의 일상 생활 속에서 교회의 사도적 기능을 담당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요, 선교사라는 자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들 전문인들은 종래 성직자 중심의 계층적 질서로서의 교회제도를 탈피하여, 자신들을 인정받는 민주적 선교공동체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평신도라는 개념보다는 전문인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그레그 옥덴, 새로운 교회개혁 이야기, 송광택역, 미션월드 라이브러리, p. 96).



오늘의 전문인들은 급변하는 사회 및 지구촌의 생태계의 위험을 여실히 통찰하게 되었고 교회의 존재 이유를 세상을 향한 하나님 활동의 도구로서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들을 지금까지 몇몇 기독교 전위운동단체들의 입장표명이 있을 뿐 개 교회 현장, 더욱이 한국과 같은 제3세계 교회 현실 속에서는 실현되기에 너무도 요원한 사항이었다. 목사를 성직자로, 평신도간의 직분의 다름을 서열의 차이로 인식하는 태도, 가부장적 권위 하에 여성역할의 비하, 그리고 하나님 권위라는 미명하에 왜곡된 의사소통 과정 등은 한국교회내의 전문인 실상을 알려주는 지표들이다. 또한 교회성장주의의 환상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의 개인적 카리스마에 더 우선적 가치를 두며, 효율성을 최상의 가치로 인식하는 기구화된 경향성을 띠며 신앙동기들의 개인화(자기 중심성)로 인해 반사회적 집단의 성향마저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에 전문인 신학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고 본다.



이제 다음의 순서로 진행시켜 나가려고 한다:

첫째, 전문인의 자기이해 원리로서의 만인 제사장론-그 의미와 한계.

둘째, 전문인신학의 성서적 토대-하나님의 백성과 그리스도 몸으로서의 전문인.

셋째, 전문인신학의 본질과 과제







1. 전문인의 자기이해 원리로서의 만인 제사장론



성직자의 중재 없이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명시해 주는 것이 만인 제사장론이다. 1517년 루터는 성직자들의 계급적 권위의식을 거부하고 성서(하나님 말씀)에로 돌아갈 것을 호소함으로써 교회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려고 애썼다.

분명히 이것은 성서 내에 평신도와 대립되는 의미에서 교회 직무자들을 사제로 명칭한 부분이 없다고 하는 맥락에서 원리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평신도라는 의미의 라오스(헬)는 하나님이 사람, 하나님의 백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God's family)가 아닌가?

예수님을 맏형으로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믿음의 가족의 일원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만인 제사장론이 카톨릭 사제들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 시정하려는 데 주목적을 두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루터는 1523년 그의 저서 '소명론'에서 인간의 세속적 활동을 신앙적 활동과 똑같은 소명(Beruf), 곧 소명노동(Berufsarbeit)으로 정의한 바 있었다. 루터는 이것을 일상적인 삶을 통하여 수행해야 할 종교적 특성(거룩성)으로 받아들였다.

루터는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지닌 세분화된 직업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가치를 지니도록 만들어 주었고, 이러한 일상적인 직업 및 신분에 대한 소명의식을 예배(Gottesdienst)라고 까지 명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예배라면 아무 것도 예배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며 오히려 로마 카톨릭의 성직자의 권위에로 회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만인 제사장론으로 대변되는 루터의 종교개혁적 유산은 제도화된 성직주의(Clericalism)의 철폐를 통해 전문인의 개념과 위상 그리고 그들의 세속적 직업에 대해 근본적(원리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만인이라고 하는 복수(all)의 개념이 명목적 그리스도인의 양산을 의미하고 종교개혁 당시 새로운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시작의 불꽃이었을 뿐 종교개혁 당시에는 주류가 될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 전신자 제사장주의(Every Beliver's Priesthood)라는 개념으로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기서 '전'이라는 말은 영어로 every 인데 단수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삶을 사는 자 각자가 제사장이라는 뜻이다.





2. 전문인 신학의 성서적 토대-하나님 백성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전문인



전문인신학을 논함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 백성 개념과 신약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지체에 대한 이해를 상호 관계적으로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다는 확신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선택 사상 속에는 하잘 것 없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신실한 사랑과 이스라엘 백성 차원의 절대절명의 위기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 능력에 대한 이스라엘인의 확신이 담겨져 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과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상호 별개의 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의 사명은 만민과 만물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신 공의와 사랑과 평화를 제공하여 그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전인적인 평화, 곧 코이노니아를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바로 이점에서 구약성서의 하나님 백성은 대 세계적인 전문인 사역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새로운 교회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우주적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백성의 사명은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이라는 구체적 과제로 요약될 수 있겠다. 즉 교회가 교회제도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고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현실세계를 갱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이라고 하는 행태론적 근본주의(morphological fundamentalism)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의 문제점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운동이 이러한 하나님 백성의 범주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는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 우는 사실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벧전2:9-10, 고후6:16)

바울은 종말론적 인격인 그분과 하나가 되고 한 몸을 이룬다고 역설하고 있다.(롬6:4-, 고전12:13)

교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란 개념 속에 선택과 사명이 함께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과 내용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다.

"온 세계의 섬김, 디아코니아와 코이노니아는 서로 분리될 수가 없다."

이렇듯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를 가능케 하는 공동체형성을 성서는 성령의 몫으로 돌린다. 실상 이것은 모두 성령이 교회에 풍성한 은사를 선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서 여기에서 우리는 전문인 신학의 근본 토대를 얻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목회자에게 종말론적 비전에 따른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함께 힘을 모아 일할 줄 아는 협동적 참여적 지도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성도들을 준비시켜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갱신을 위한 디아코니아적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과제가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성서의 본문 속에서 루터의 만인 제사장론이 갖는 개인주의 경향성의 오류나 그의 지나친 원리적 측면을 극복함은 물론 교권주의적 차원에서 평신도와 목회자들간의 존재론적 차이(성과 속)를 두려는 현실적 교회 모습을 비판하면서 양자를 포괄해 내는 전문인 중심의 새로운 목회(교회) 패러다임을 창출해 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목회자도 전문인가운데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직업이라고 하는 용광로에 들어가지 못할 직업이 없고 더 이상 찌끼로 녹지 않을 불순물도 없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교회 내에서 전문가이고 평신도들은 교회 밖에서 전문인이라는 말씀대로 되어지면 역할 분담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3. 전문인 신학의 본질과 과제



헨드릭 크레머는 몇 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교회는 세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둘째, 교회는 그 자체로 선교이자 코이노니아와 영성이라는 것이다.



성육화된 영성의 본질을 이루는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의 현대적 의미 및 본질을 중점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전문인신학의 과제를 제시해 나갈 것이다. 코이노니아(Koinonia)란 무엇보다 먼저 공통적인 삶의 토대 위에서 주고받는 삶의 모습이라 정의 내릴 수 있겠다.



이 다양성들은 서로 관계되어지지 않고 꿰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어, 거기에는 어떠한 창조도 가능하지 않게 되거나 또는 이제까지처럼 어느 한 두 가지 요소나 원리들에 의해서 다시 획일화되고 환원되는 죽임의 일이 벌어지게 될 뿐이다.

성서가 말하는 코이노니아는 결국 하나님의 창조 공간 내에서 생명을 살리려는 관심, 곧 생명의 해방과 고양을 목적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코이노니아를 본질로 하는 교회의 자기 이해가 요청되고 있다. 서로가 손을 벌여서 손에 손을 잡고 해뜨는 데부터 해지는 데까지 지구촌 곳곳의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교제와 섬김에 대한 관심이 전문인에게 주어진 21세기의 사명이다.



'세계를 위한 교회'에 자신의 근거를 두는 전문인 신학은 교회 안팎에서 단절된 관계회복을 위해-자기 비움이라는 성육화된 영성에 의한-의사 소통적 능력을 회복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며, 또한 생명 현상의 본질인 하나님의 코이노니아가 세상 내에 지속되어 질 수 있도록-그리스도의 몸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봉사(디아코니아)를 자신의 존재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인신학은 우선적으로 교회 내에서부터 의사소통적 능력을 회복시키는 일이 자신의 과제인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이란 이름 하에 개개의 인격과 교회를 수단시하는 도구적 이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성육화된 영성(코이노니아)이 그 본질을 이루는 의사 소통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가운데 조화가 필요하다. 이에 우리는 예수 자신의 역사적 삶의 형태 속에서 드러나는 코이노니아의 실재(reality)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목회자와 평신도간의 중단 없는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 그들의 비인간적인 행위규범을 부서뜨림으로써 그들마저도 해방시켜 생명의 연대를 이루고자 하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십자가요 부활이 십자가인 십자가의 도를 통해서 동서남북으로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의 삶 속에 구현된 이러한 코이노니아는 우선적으로 오늘의 교회 내에서 성직자와 평신도, 성도들 상호간의 어떤 류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설 것을 추구하며, 대사회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아래로의 연대를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는 좁은 의미의 인간주의를 극복하고 비인격적 사물들에게도 애정을 갖도록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지상대명령(마28:19-20)을 준행하며 살도록 하고자 함이다.



전문인신학의 본질과 과제를 이루는 두 번째 요소로서 우리는 주저 없이 봉사(Diakonia)를 말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코이노니아가 의사소통을 위한 자기 비움(self-emptiness)의 행위라고 한다면, 디아코니아는 그것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성육화된 영성, 곧 종으로서의 섬김과 나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섬기는 행위, 곧 디아코니아가 성직자의 "Ministry"의 종속된 범주 속에 놓여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사도 바울은 모든 교회 회중들이 상호간에 기쁨을 자라게 하고 서로 돌보게 하기 위하여-공동유익을 위해-은사를 각기 달리 받았다고 말함으로써(고전12:7-8), 상호호혜성을 강조한 바 있었다. 크레머는 교회를 그 자체로 디아코니아로 정의했으며 봉사가 교회의 첫 번째 존재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크레머의 의견은 너무 극단적일 수 있으나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가교(Bridge)를 놓는 전문인 신학의 존재가 필요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문인신학은 평신도 신학에 대한 관심과도 맥을 같이 한다.



전문인이란 일상의 현실체계 속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도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속 나라 두 세계 속에 살면서도 자신을 하나님 백성으로 자각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결당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들이다. 교회 내에 안수 받는 목회자가 필요한 이유는 평신도들의 이러한 위치와 그들의 고유한 직무수행(섬김)을 이해하고 돕기 위한 것임은 이미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대가 변해도 장례식만큼은 성직자의 몫이 아닐는지 생각해 본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온전한 사역을 부정하는 세속적인 계급적 성직독점주의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다고 존 스토트(John R. W. Stott)는 말한다.

(김성욱, 하나님의 백성과 선교, 기독교문서선교회, 1998, p. 146)



로마 캐톨릭의 콩가르(Yves Congar)는 평신도 사도직(lay apostolate)을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를 통해서 로마 캐톨릭 교회를 다시 생동하는 조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주장은 교회의 우주성을 주장하며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차원에서 종말론적인 중간적인 공간에서 평신도의 역할을 규명한 것이었다. 그는 예수의 삼중사역(왕-선지자-제사장)으로서의 기능에 평신도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은준관, 실천적 교회론, 대한기독교서회 1999, pp. 124-28)



또한 헨드릭 크래머(Hendrik Kraemer)는 "평신도와 성직자가 모두 교회의 본질과 소명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는 새로운 비젼 안에 서 있으며, 그 교회 안에서의 각기 특수한 자리들"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데서 비로서 그 의미를 찾게 된다"고 주장하였다.(은준관, pp.131-35)

전문인들은 세상 속에서 확장된 교회를 창조해 내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로써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계획한 전 창조와의 코이노니아 회복이 전문인들의 존재 이유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전신자선교사주의'라는 주장을 하고자 한다.



전신자선교사주의란 선교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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