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자료등록
 
주제 주제어 출처 내용 등록일   ~
 현재위치 : HOME > 선교정보보기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1-10-22
 제목  2000년세계선교대회(기독교교육자)-새천년의 도래와 기독학교의 역할
 주제어키워드  WMS2000 기독학교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9161  추천수  7
■ 기독교교육자선교대회 특강(Ⅵ)

사회 : 강석재 교장

기도 : 송기채 교장

강사 : 이원설 박사







새천년의 도래와 기독학교의 역할



<강사약력>

史博. 한국기독교학교연맹 이사장

총신대 졸업

Ohio Northern대 정치학사

Case Western Reserve 대학 국제정치학 (Ph.D.)

세계대학총장회 사무총장 역임

한남대학교 총장 역임

(현)한국기독교학교연맹 이사장

<저서>

「새천년, 새선민, 새비전」 등 다수



----------------------------------------------------------------------



Ⅰ. 새천년의 도래



2000년의 문턱에서 새천년의 도래를 경축하는 축제 행사는 온 누리를 휩쓸었다. 국경과 민족 그리고 종교와 문화의 벽을 넘어서서 온 인류가 한 마음으로 평화와 번영을 기원한 사례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녀노소가 모두 어울려서 새천년의 개막을 찬양했다.



새해 전날 밤,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런던 데임스강변에 거대한 모습을 나타낸 밀레니엄 돔의 테이프를 친히 끊자 찬란한 무도회가 펼쳐졌다. 베를린의 브란덴베르그 성문 주변에서는 아름다운 연주회와 함께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았다. 파리의 에펠탑도 황금빛으로 빛났으며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는 백여 만의 인파가 춤을 추면서 새천년을 환영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찬란한 전광으로 주변의 사막을 아름답게 비추었다. 중국에서는 만리장성 위에서 '용의 해'를 환영하는 용띠 춤이 한창이었다. 한국에서도 서울 광화문일대에 수십 만의 인파가 춤을 추면서 새 천년의 개막을 환호하였다.



지금도 새천년의 열기는 식어지지 않았다. '새천년 음악회', '새천년 꽃 전시회', '새천년 벤처기업', '새천년 연구소', 심지어 '새천년 민주당' 등등… 그러나 새천년의 참뜻을 이해하는 사람의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라틴어의 mille(천)과 annum(해)의 합성어인 millennium은 '천년'이라는 뜻을 넘어서 '황금시대'를 의미한다.



그러면 '천년'이 어떻게 '황금시대'라는 뜻을 의미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주님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약속한 하나님의 말씀(계 20:1-5)에서 유래하였다. 즉 주님의 재림과 주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주님이 안계시는 millennium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진정 2000년은 밀레니엄이란 낱말이 뜻하는 것과 같이 새로운 황금시대의 문을 열 것인가? 주님이 없는 황금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1960년대에 미래학이 탄생됨에 따라 미래학자들은 외삽법(外揷法), 게임기법, 델파이기법, 시나리오이론, 표준예상이론, 결정이론 등 수많은 방법론을 개발했다. 컴퓨터의 도입으로 미래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가능해지면서 모든 분야의 학자들은 '새로운 천년', 즉 2000년의 세계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랜드 연구소, 허드슨 연구소, 국제미래위원회, 세계미래학회, 그리고 로마클럽 등 수많은 연구기관들이 그럴듯한 예측들을 내놓았다. 주네벨(Betrand de Jouvenel), 사카로프(Andrei Sakahrov), 멕헤일(John McHale), 영(Michael Young), 벨(Daniel Bell), 칸(Herman Kahn)과 브레제진스키(Zbigniew Breznesinski) 등은 미래학자로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미래학회가 활발하게 움직였다.



일반적으로, 이들 미래학자들은 주님의 재림이 없이도 인간의 능력으로 새천년의 황금시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첫째, 세계가 컴퓨터, 우주항공, 석유화학, 반도체 그리고 진보된 통신수단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고 보았다. 중력이 없는 우주공간에서는 희귀한 효소, 레이저와 섬유광학 물질, 그리고 최소한 4백 종류 이상의 합금이 생산될 것으로 예견했다. 또한 생명공학, 유전공학을 통해 동물복제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인간은 수소, 태양열, 지표열, 조수, 대량생물, 진보된 핵에너지와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 활용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둘째 맥루한(Marshall MacLuhan)이 지적한 대로 새 천년을 열게 될 2000년까지 전 인류는 '지구촌'에서 살게 될 것이다. 모든 나라들이 이웃처럼 하나의 지구촌에서 서로 의존해가면서 조화롭게 산다면 피비린내나는 전쟁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문학적인 군사비용은 전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위한 기금으로 전환되어 사회복지와 같이 인간을 유익하게 하는 일에 투자될 수 있을 것이다.



Ⅱ. 오늘의 세계―'역설의 시대'



2000년이 개막된 오늘, 1960-70년대의 미래학자들이 예언했던 대로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유전공학, 생명공학, 해저개발, 우주개발, 신소재개발 등 놀라운 발전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동물복제가 현실화되었고 인간복제의 가능성도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 예견이 팽배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식인들이 예견하는 부정적인 현상들도 묵과해서는 안된다. 감소하는 천연자원, 살인적인 공해, 파괴적인 생태학적 불균형 등등 전세계적으로 급속히 발전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자연의 균형이 깨어졌다. 강은 오염되고 바다는 남획되며 숲은 감소할 것이며 공기는 호흡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저명한 미국의 미래학자인 네스빗(John Naisbitt)은 『세계적 역설-Global Paradox』에서 오늘의 세계를 다음의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다. 의미적으로 볼 때, 패러독스는 두 상반된 명제가 모두 현실적으로 공존하는 상태를 말한다.



네스빗이 언급한 첫 번째 역설적인 현상은 세계가 교통·통신혁명으로 하나가 되어 지구촌화 될수록 이에 역비례하여 지구는 여러 개의 조각으로 분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구심력과 동일한 비율로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이켜 볼 때, 1945년 UN이 창설될 당시는 51개 회원국이 가입되어 있었지만, 1960년에는 100개국, 1984년에는 회원국이 159개로 늘어났고 1998년에는 185개 국가로 구성되었다. 2002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월드컵경기에는 220개 국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종족 바이러스(tribal virus)'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이 바이러스가 세계 각 곳으로 퍼져나가 세계는 1,000여 개의 나라로 분열될 것으로 예측한다. 코소보 분쟁, 체첸 분쟁, 카시미르 분쟁, 아프가니스탄 내전, 스리랑카 소수민족 갈등, 동티모르 소요, 크루드의 계속적인 분쟁, 캄푸치아 내전, 민다나오 내의 모로스의 봉기, 르완다 학살 등이 지난 10년을 얼룩지게 했다.



두 번째의 역설적 현상은 미래학자들의 세계 경제에 대한 낙관적 예견의 실패이다. 몇몇 선진 국가들은 풍요로운 후기산업사회를 즐기고 있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국가가 풍요로운 후기산업사회로 발전할 것이다"라는 칸(Khan)의 예견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부유한 나라들과 빈한한 나라들간의 간격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넓게 벌어져가고 있으며 군사적 대립을 대체하는 경제대국간의 무역전쟁이 심화되고 있다. 부유한 나라들의 상황 역시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부유층은 더욱 부유해지고 빈곤층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그러면 무엇이 이 범세계적 역설현상을 자아내는 것일까?



Ⅲ. 변화의 원동력―지식·정보화



세계가 21세기의 개막을 향해 돌진하면서, 우리는 가속화되고 있는 역사의 변화 속도에 압도당하고 있다.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변화의 속도, 지속성, 범위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유명한 영국의 역사가인 트레벨얀(G.M. Trevelyan)은 오늘날 역사의 변화속도가 옛날보다 백 배 이상 빠르다고 보았으며, 『사이버공간의 개화-Civilizing Cyberspace』에서 밀러(Steven Miller)는 4백 배 이상 빠르다고 말하고 있다. 1980년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전체를 첨단기술을 사용하여 전송할 경우 84시간 이상이 걸렸다. 10년이 지난 후, 광섬유를 이용한 디지털 전송은 5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마이크로칩의 위력은 기업으로 하여금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모든 분야의 역사적 변화, 즉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교육적, 정신적, 윤리적인 변화도 놀랄만한 속도로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날 엄청난 속도로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한 유일한 역동적이고 역사적인 힘은 이른바 '지식혁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17세기 초반, 영국의 베이컨(Francis Bacon)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역사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군사력이었다. 18세기 중반 이후, 산업혁명의 결과로 인해 새로운 힘의 원천으로 경제력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1990년 토플러는 『권력이동-Power Shift』에서 지식의 힘이 인간의 운명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지식 없이 산업화는 진전할 수 없는 것이다. 지식 없이는 어떠한 첨단 군사무기체제도 발달할 수 없다"고 했다. 지력이 금력과 무력을 능가하는 힘의 근원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베이컨의 예언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났다.



『바빌론 이래의 과학-Science Since Babylon』에서 프라이스(D. Price)는 1963년 당시, 인류에 의해 보유된 과학적 지식의 총량이 매 15년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고 추산하였다. 얼마 후, 힐리아드(Robert Hiliard)는 지식이 두 배가되는 기간이 10년으로 단축됐다고 계산했다. 오늘날 미국 주립대학연합회 회장인 애플베리(James Appleberry)는 지식이 두 배가되는 기간이 2020년에는 73일로 앞당겨 질 것이라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게이츠(Bill Gates)는 이미 우리가 모든 종류의 정보를 '손끝하나로'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식의 증가를 이처럼 빠르게 하는가? 어떻게 그러한 경이적인 속도로 지식이 증가할 수 있는가?



우리는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기술)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1946년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인 ENIAC의 출현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961년에는 통신위성이 우주로 발사되었다. 광섬유 케이블과 World Wide Web(WWW)은 전세계를 하나로 네트워크하고 있다.



세계의 여러 국가들은 정보시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정보 초고속도로'를 구축하고 있다. 2005년까지 싱가폴은 모든 가정, 회사, 정부를 단일 광섬유 정보망에 연결할 계획이다. 일본은 학교와 회사, 가정을 컴퓨터 케이블로 연결하는데 2015년까지 4조 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에 못지 않게, 유럽연합은 통합된 고속유럽통신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한국도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정보화를 앞당겨 이룩하려고 "Cyber 21"의 정책을 위해 '지식자산론'과 '소비자 중심교육'으로 교육개혁이 '교육시장화정책'이라는 피찬을 받게 되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우리의 학교 교육은 새천년의 미래를 주도하는 가장 큰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Ⅳ. 감소하는 지혜(智慧)



그러나 오늘날 정보화사회는 지혜를 도외시한 지식만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지혜 없는 지식의 증가는 새로운 무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그러면 세계의 성현들이 귀하게 여겨온 지혜란 무엇인가? 지혜의 사전적 정의는 "지식을 바르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요소"이다. 지혜는 바른 분별력이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주리라 하셨을 때 그는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요청했다. 지혜는 참과 거짓, 정의와 불의, 중요한 것과 급한 것, 선과 악을 구별하고 바른 것을 택하는 능력이다.



현대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지식은 그 속에 지혜가 결여되었을 때 문제의 해결보다는 오히려 더 복잡한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우리는 오늘날 분별력이 없는 북한 지도자의 어리석음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어처구니없게도 수백 만의 북한 주민이 기아로 죽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미사일과 원자폭탄 개발에 막대한 GDP를 쏟아 붓고 있다.



최근 우리는 컴퓨터 사용의 이면을 알게 되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정보의 과잉현상'이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홍수가 거대하기 때문에 아무리 영리하고 지적인 사람도 특정한 전문분야의 지식조차도 모두 소화할 수 없다. 게다가 많은 정보는 쓰레기와 다름없다. 쓰레기로부터 양질의 정보를 가려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결정할 여과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을 거르는 여과장치는 지혜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두 번째의 문제는 그레샴 법칙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의 이론은 정보에도 해당된다. 인터넷상의 음란물들은 벌써 10대들에게도 접근이 가능해졌다. 미국의 저명한 교육학자 다크만(Barbara Tuckaman)은 미국 학생들이 자기 급우들을 총으로 학살하면서도 그것이 나쁜 짓인지를 모르는데 미국 사회의 근본 위기가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보가 '악의 도구화'하는 데 있다. 조직폭력배들도 도박이나 매춘, 협박, 고리대금업과 같은 사업을 인터넷 정보망을 통해 운영하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세계적 부 사냥꾼들'에 의한 전례 없이 큰 규모의 정보이용 문제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고도한 지식을 악용하여 세계경제를 이른바 '카지노 경제' 혹은 '카우보이 경제'로 만들고 있다.





Ⅴ. 우리 교육의 방향 -- '지식과 지혜'가 겸비한 교육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교육개혁의 많은 관심을 가졌고 교육개혁심의회에서는 300여 개의 개혁해야할 과제들이 심의되었다. 그 후 교육부에 설립된 중앙교육심의회에서는 필자도 위원장으로 역할을 담당한 바 있다. 조기 교육의 필요성으로부터 대학원 교육의 강화, 그리고 교육예산의 증대의 필요성 등 많은 것이 논의되었다. 오늘에 와서는 대통령자문회가 지속적으로 교육과제들을 논의하고 있으며 이미 7차 교육과정이 실현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여러 가지 과제의 가장 중심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지난 김영삼 정부에서는 '세계화 교육'을 역설했고 현 정부에서는 '전산화 교육'이 그 중심과제가 되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모든 교육개혁의 구심점은 '인간화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의 교육은 이때까지 기술발전, 생산증가 등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던 감이 없지 않다. 주객의 정위화가 요청된다. 교육은 다른 것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화 사회를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른 지혜를 가지고 선과 악을 분별하며 지식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참지식인들을 키우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이룩한 업적은 너무나도 위대하다. 필자도 그 60년대 중엽 교육부의 국장으로 재직하면서 대통령께서 하시는 일에 크게 찬사를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박 대통령께서 "우리도 잘 살아보세"라고 했던 구호 속에 '바르게'라는 낱말을 하나만 더 첨가했더라면 오늘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간화될 수 있었을까? 그 후 우리나라의 지표는 모두가 경제적인 향상에만 집중되었고 지금에 와서 IMF 경제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새천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가 해야할 민족적인 과제는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는 참지성인들을 양육함으로서 권력의 인간화, 법률의 인간화, 과학기술의 인간화, 경제의 인간화, 조직의 인간화 그리고 종교조직의 인간화 등을 이루는 데 있어야 한다.



참 지혜를 가지고 참과 거짓, 정의와 불의, 무엇이 중요한지와 급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학생들의 마음 속에 배양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바르게 살라는 것은 말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들 모두가 모든 불의와 부정을 배제하고 바르게 사는 표본이 될 때 우리의 교육이 바로 설 것으로 안다. 너무나 당위적인 결론이겠지만 그러나 우리 교사들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의 사명을 제고하는데 새천년을 맞이한 우리 교육의 가장 큰 과제를 해결하는 관건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성서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잠 1:7),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시 111:10)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그 안에는 지식과 지혜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다"(골2:3)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근본이 되는 학문을 모든 교사는 개발하여 학문을 통하여 "참 지식과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1. 하나님 중심 세계관과 과학 교육



근대과학사상이 어떻게 서구문명에서 배태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얻기란 쉽지 않다. 현대과학의 기원은 그 보다 더 옛날로 소급하여 볼 때 수없이 많은 원인들이 교호작용을 일으켜 왔으며, 그 모든 원인들을 가려내어 상호작용과정을 기술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과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견지에서 쿤(Thomas 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매우 유익한 시사점을 우리에게 준다. 쿤은 과학은 사실(facts)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파라다임(paradigm -- 語形變化例와 같은 假說의 모델)에 기초하고 있다고 한다. 과학자는 자기가 머리 속에 이미 지닌 파라다임을 통하여 사물을 보고, 분석하고, 연구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파라다임은 과학학설이 아니며 검증(檢證)이 가능한 어떤 가설 혹은 법칙에 유사한 일반론(law-like generalization)이 아니다. 파라다임은 과학적 이론의 방향과 의미를 부여하는 기본이다. 과학자들에게 있어서 파라다임은 자연을 관찰하는 눈, 곧 넓게 보아 세계관과 유사한 내용을 가졌다. 그것은 자연계에 관한 여러 기본가설들을 조직적으로 종합한 큰 가설로서 한 사회의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공유(共有)하는 것이다.



성서적 세계관은 과학정신을 발전시키는데 어떤 공헌을 했는가?



모리스(Henry Morris)는 "전적으로 현대과학은 기독교 신론(Christian theism)으로부터 성장했다. 왜냐하면 과학연구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성서적 세계관을 그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원인은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 자연현상은 우리가 지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연법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자명한 이치로 확인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중심세계관은 과학적 연구를 촉진하는 지적 풍토를 조성한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현대과학의 출현이 16세기 종교개혁시대와 일치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중세의 자연관은 비성서적 미신과 잘못된 교회의 전통으로 가득하였다. 르네상스의 휴머니스트들이 그런 자연관을 깨기 시작했고 당대의 예술가(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우와 같이), 또는 과학자들이 자연현상을 보다 엄밀하게 관찰,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체계화된 과학을 탄생시키는데는 미흡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성서적 하나님중심세계관이 재확립되고 그에 따라 자연관, 인간관 등이 바르게 수립되면서 과학연구의 정신적 기반이 확고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하나님 중심 세계관과 경영 분야



기독교 세계관이 근대적 경제체제 탄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에 대한 학계의 논쟁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지만 아직도 쟁점이 많이 남아 있다. 어디서 어떤 동인에 의해 근본적 자본주의제도 -- 회사, 공장, 은행, 노조, 시장, 채권, 주식, 보험, 사회보장 제도 등이 무수히 포함되어 합리적으로 운행되는 -- 가 성립됐을까?



어찌하여 근대적 자본주의 제도가 서구문명에서 탄생했을까?



베버(Max Weber)는 자본주의의 기원을 연구한 결과 그것이 마르크스가 유물사관에서 이야기하는 것같이 모든 경제가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경제발전의 단계가 아니라 서구사회가 지녔던 어떤 정신 위에서 발생했음을 지적했다. 자본가는 단순하게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돈을 열심히, 정직하게 벌고 그것을 재투자 할 뿐 아니라 유익한 사회복지를 위하여 바칠 수 있는 사업가를 지칭한다고 말했다. 역설적 이야기지만 자본주의를 받드는 정신은 탐욕이 아니라 금욕주의인 것이다. 금욕주의와 연계성을 발견한데서 베버의 위대성이 있다.



자본주의의 밑바탕이 되는 금욕주의는 사업가가 가지는 召命意識과 연계가 되어야 한다. 사업가가 자기의 욕심을 만족시키기에 앞서 자기 자신에게는 인색하면서도 공익을 위해선 관대한 마음가짐 곧 사업을 사명으로 여기고 헌신하는 정신이 요청된다. 베버는 그런 소명의식의 기초를 기독교 신앙에서 찾았다.



여기에 직업윤리(work ethic)가 생긴다. 상인은 장사를 할 때 고객을 속이지 않고 양심적으로 바르게 상행위를 하게 된다. 상행위에 도덕성이 부여되어 윤리적 상업풍토가 이뤄진다. 기타의 모든 직업인들도 직업을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소명을 위한 헌신(a form of devotion unto God)이 된다. 이런 경제윤리가 지배하는 경제계는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3. 하나님 중심 세계관 정치 . 사회분야



하나님중심세계관은 정치적인 면으로도 권력의 비신성화(desacralization)를 일으킨다.



고대문명들 가운데 그리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은 왕권이 신성시된 데 있었다. 예컨대 이집트의 바로는 라(Ra)신의 후예로 신봉되었기 때문에 그의 권위는 불가침적으로 신성시되었다. 중국의 天子는 '하늘의 아들'로서 자연계, 인간계, 영계를 조화 있게 조절하는 천부적 능력을 가졌던 것으로 믿었다. 인도의 왕들도 역사를 섭리하는 비시뉴(Visnu)신의 후예로서 그들의 대권은 도전 받을 수 없는 절대성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의 황제들도 역시 신적 존재로 숭배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출애굽 사건이야말로 민주주의 시발점으로 보는 것이 사실과 더 가까울 것 같다. 콕스(Harvy Cox)는 『세속도시』에서 출애굽 사회야말로 민주주의의 효시라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의 지도자로서 이집트의 바로에게 항거한 것은 정치권력의 비신격화를 위한 민권혁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출애굽은 인간의 자유가 사람의 생명과 견줄 가치를 지녔음을 보여 준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어떤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얻어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보여 주었다. 셋째, 평등사상이다. 모세는 자기의 권력을 신격화하지 않았다. 자기가 율법을 선포했으면서도 그 법을 어겼을 때, 그 결과로서 가나안복지에 들어갈 수 없었다. 넷째, 계약사상이다. 모세의 율법은 일반적 명령이 아니었다. 계명을 지킬 때 그 결과로 혜택을 받은 것은 그것을 지키는 사람 자신이었다. 또 그것을 지키는 사람을 축복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것을 지키겠다는 사람의 약속이 계약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 모세의 율법이며, 이 계약사상은 후일 루소의 민약론의 바탕이 되었다.

기독교적 진리가 정치이념의 근간을 이루어서

①권력의 비신격화

②자유 신장

③평등사상의 실현

④계약사상의 존중

⑤인권사상의 향상 등이 추구되면 그만큼 민주주의의 발달이 이루어질 수 있는 데서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상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4. 하나님 중심 세계관과 역사 분야



자연중심세계관을 가지고 역사기간(historical time)의 움직임을 관찰했을 때는 윤회설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루, 한달, 일년 등의 시간이 꼭 같은 경로를 반복하여 윤회함과 같이 인생도 윤회전생(輪廻轉生)한다는 힌두교, 불교 등의 사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중국사상의 64괘(卦),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 회갑(回甲) 등도 근본적으로 유사한 사상이었다. 플라톤은 약 1만 2천년을 주기로 우주의 역사가 반복했다고 믿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도 한 나라의 정체(政體)가 군주제→귀족→민주제→로 변했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고대인들의 비역사적 정신풍토를 탈피하고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한 것이 히브리사관에서 비롯했다.



창세기 1장 1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유일신으로서 자연과 인간을 창조하고 역사를 지배하는 섭리주(攝理主)이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을 지닌 인격체이다.



역사는 자연과 구별된다. 자연은 어떤 법칙에 따라 윤회적으로 동일한 변화를 반복하지만 역사는 시작(origin)→과정(process)→목적지(goal)가 있는 선적 운동이다. 창세기는 초월적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기록이고 묵시록은 인류사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다. 이 하나님중심의 성서적 역사관의 특징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성서적 역사관은 세계사적이다. 인류의 조상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신 아담이라는 점에서 모든 민족은 같은 조상의 자손들이라는 인류의 單一紀元說이 성립하며 역사의 단위는 민족사가 아니라 인류사라는 신념이 성서의 창조설에서 유래했다. 둘째, 성서적 역사관은 하나님의 섭리가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공이시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구현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사람의 역사적 역할이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면 인간은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성서는 소명과 계약의 관계를 말씀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신다. 그의 부르심에 "예"라고 명확한 대답을 하면 '나'와 '하나님' 사이에 계약관계가 성립된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궁행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그의 뜻을 어기는 사람을 화를 면하지 못한다는 것이 소명과 응답에 의한 계약의 대요이며, 각 사람은 그 시대의 특수상황에서 더 구체적으로 자기의 사명을 받게 된다. 민족도 마찬가지다. 한민족도 하나님의 소명에 의한 특수사명을 가질 수 있다. 유태 민족의 역사는 그 소명에 순응 혹은 반역한 사건들로 점철되었다.



기독교는 시간이 없어지는 시간(end-time)이 올 것을 믿는다. 세계의 종말이 올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신천지를 가져올 것이다. 이런 종말관은 개인의 삶을 거룩하게 한다. 세계의 종말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올 것은 개인의 종말이다. 누구나가 죽는 것이다. 이런 개인의 종말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은 삶을 보다 더 거룩하고 엄숙하게 살게 된다. 이렇게 삶을 엄숙하고 진지하게 사는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한 사회는 그만큼 정화되고 발전한다.





Ⅵ. 맺는 말



21세를 맞이한 현재의 특징은 역사변동의 가속화, 총체적 변화, 지구촌화 변혁, 질적인 역사변동, 불확실성 변화로 요약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데올로기 대립시대를 종식시키고 "영적 위기" "정신적 공허"로 위기의 시대를 표출시켰다.

한국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영적 위기와 정신적 공백에서 비롯된 한국 미래의 위기에 대한 대응은 어떤 비전과 희망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우리 세계관의 중심에 모시는 "하나님중심세계관"을 정신적 초석으로 내면화하여 모든 학문에 접목시켜서 그 초석으로 삼는데 있다.



이런 시점에서 기독교교육의 특이한 사명이 재확인되어야 한다. 자연과학, 인문 . 사회과학, 예 . 체 등의 모든 과목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하나님중심세계관이 그 기본이 되어 학생들이 하나님중심자연관, 인생관, 가정관, 사회관, 물질관, 과학관, 기술관, 예술관 등을 내면화할 수 있도록 해야 지식과 지혜를 모두 갖춘 인격형성이 이뤄질 수 있다.



이제 이데올로기시대가 종언한 오늘날, 곧 모든 교육체제가 지표를 잃고 있는 시점에서 하나님중심세계관 교육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그 효력을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중심 세계관교육"을 통하여 이룩된 과학발전, 경제사상, 정치안정에 개인적, 집단적, 민족적 차원의 하나님나라 신장만이 미래사회의 도전 속에 한국의 기독교학교들이 대응할 수 있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성서를 바탕으로 '신앙과 학문'을 연계하는 교육을 할 때 오늘의 위기를 탈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21세기 세계를 이끌 수 있는 인재들을 배출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선교정보리스트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