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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1-02-02
 제목  2000년세계선교대회(기독교교육자)-인도사역보고
 주제어키워드  WMS2000 인도  국가  인도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7759  추천수  12
■ 기독교교육자선교대회 선교보고(Ⅰ) - 김영자 선교사





인도 사역 보고



<강사약력>

예장통합 총회 세계선교부 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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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생활 20년, 비자는 고사하고 여권을 받지 못하던 시절을 돌아보며, 오늘까지 함께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함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 같아 20년 전으로 돌아가 봅니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나의 경우는 예수 전도단 오 대원(Rev. David E. Ross) 선교사로부터 말씀을 공부하며 훈련을 받을 때 꿈에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선교사의 꿈을 키워주었고, 여권을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울 때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과 하나님의 뜻이면 반드시 이루시리라는 믿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키워 주었으나, 가고자 하는 나라의 문화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선교사의 조건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었습니다. 다만 선교사는 다른 문화에 가서 죽도록 충성하여 봉사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면 된다고 배웠습니다. 그 때만해도 외국 문화나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고들은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여행이 자유로워 외국에 다녀 온 이야기를 듣기도 쉽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무척이나 무지하고 무식하게 믿음만을 가지고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공항에서 마중해 주는 사람도 없고, 동서남북도 분별치 못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용기는 어디서 났으며, 어떻게 그런 것들이 당연하게 받아드려졌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한편 돌이켜보면 그 믿음이 있었을 때 주께서 역사하여 주셨고 지금같이 이해타산을 따지고 시간을 자로 잰 듯 하게 살아가는 오늘은, 외국을 다녀도 공항에서부터 하나 불편함이 없는 오늘은 왜 이렇게 마음이 마르고 각박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지 무식했던 것만큼 시행착오도 많았고, 아픔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나의 실수했던 일들 후회했던 일들 등등을 후배 선교사들에게 열심히 들려줍니다. 그러나 그 후배들은 유식하고 전 세계를 돌아보고 선교사가 되어서인지 저 만큼 급박하고 필요한 것으로 생각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둘러보고 발로 다니며 배웠다고 해도 살아보고 배우는 것이 또 다른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살아보게 합니다. 단기, 견습선교사들을 부르고, 함께 살면서 체험하게 하고 또 돌아 다녀서 발로 배우게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므로 두려움이 없다고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주께서 동행하는 것이 느껴지고 보여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런 이야기 너무 많이 들어서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체험되어지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 다르더군요.



1987년 8월부터 첫 번째 안식년에 들어갔습니다. 어느 선교사나 마찬가지지만, 첫 번째 안식년을 갖게 될 때가 어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떤 분기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시 선교지로 돌아갈까, 아니면 다른 곳을 택할까, 아니면 선교사를 그만두고 국내에서 일을 해 볼까 하는 복잡한 심정을 가지게 되는 것 같은데 저라고 별 수 있었겠습니까. 저 역시 고민스럽고 괴로운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첫째, 현지 사람들이 싫어졌습니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울며 하나님께 인도로 보내 달라고 외칠 때는 언제고, 몇 년만에 그들이 미워졌습니다. 나를 속였다, 그들이 거짓말한다, 참 거지같다라는 생각이 내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로, 환경들이 피곤했어요. 덥고 끈적거리기를 일년 내내, 시원한 바람 한 점 없이 후끈거리는 바람이 싫고 짜증스러웠어요. 모기며 벌레들이 싫었습니다. 셋째로, 외로웠습니다. 내가 살아오던 문화며 언어며 음식을 하나도 접 할 수 없으며,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이 모든 것이 나를 외롭다는 생각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 할 때 하나님께 어떻게 할까요? 다시 들어 들어와야 하나요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까? 라고 중얼중얼 반, 기도 반으로 안식년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침 서울에서 간디 영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영락교회 몇몇 교역자들이 이 영화는 인도 선교사하고 봐야 한다고 해서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그 영화를 통해서 주께서 나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영화를 보는데, 그렇게 밉던 인도 사람들이 낮 설지 않았고, 내가 왜 그들과 함께 안 있고 여기 앉아 있을까?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크게 회개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첫째, 내가 그들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무식하다 가난하다 거짓말쟁이다 등등으로. 그러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은 그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그들을 인정하게 하는 부분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부자들이 있고, 석, 박사가 많고, 인격이 고매한 사람이 많은지,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 것 외에는 세상적으로 그들보다 우월할 수 없는 부분들을 보여 주셨고, 되지 않게 오만한 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둘째로, 나의 위선을 지적하셨습니다. 나는 선교사니까 착해야되고, 그들을 사랑해야되고, 언행이 정말 부드럽고 사냥해야 한다는 등등의 것들이 나를 너무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고, 나는 천사고, 너희 사람들은 천사 밑에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천사처럼 착하지도 못한 사람이 천사 흉내를 내다가 피곤해져서 더 이상 천사 놀음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나로써 그들과 함께 그냥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셋째로, 나의 과거로 주께서 나를 인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삶의 목적도 소망도 없이 살 때, 누가 죽은 자 같은 나에게 소망을 주셨던가? 그 때 나는 주께 뭐라고 언약했었던가? 아골 골짜기라도 복음 들고 가겠다고 눈물로 맹세하던 그 약속은 어떻게 되었던가? 환경을 탓하는 나에게 그 환경보다 구원에 이르지 못했을 때의 나의 생활은 어떠했었던가? 그 인도 사람들이 너를 속이든지 진실하든지 나는 나의 할 일만 하고 주께서 거두시길 왜 주께 맡기지 못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아 도저히 이대로는 주님 앞에 사람 앞에 설 수 없는 것을 깨닫고 다시 40일 금식 기도로 들어갔습니다. 죽을 것 같은 시간들이었으나, 어렵게 마치고 다시 주님 제단 앞에 나를 드리기를 모든 보상 심리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주께서 행하심을 감사로 제사 드리게 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인도로 들어 올 수 있었고, 이제는 이들과 살고 있습니다.

20년 전의 인도와 오늘의 인도는 분명히 큰골을 긋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21세기의 발달 상황은 그 어느 때 보다 빠르다는 것을 누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인도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계급제도에 대한 일반적인 사고 방식들이 많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고 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근래에는 조금 다르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이 타종교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 잘 못된 생각일까요? 나 역시 선교사로 인도에 오기 전에는 힌두교가 어떤 종교인지 알지 못했었으니까요. 힌두교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온갖 것들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좋은 짐승 속에 영혼이 들어갔다가 어느 날 극락 세계로 간다고 믿고 있어 심지어는 까마귀가 자기의 조상이라고 믿고 숭배합니다. 이 인도 사람들이 자기 문화를 지키고자하는 마음들은 아주 완고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 고유 의상들을 간편하고 쉬운 현대복장을 전혀 꿈꾸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외국에 나가서 살면서도 그들의 고유의상들을 입고 사는 것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대 도시 젊은 세대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단연 케이블 TV의 영향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힌두교가 무너지리라는 기대는 가질 수 없으나 우리는 기도하며 기대해봅니다. 현재는 힌두교 정부가 들어앉았고 그 정부의 권력을 힘입어 힌두교 사원들과 사업 단체들 그리고 힌두교 자체군대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 일로 타종교들이 많은 핍박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가 자주 불이 납니다. 이 유는 전기누전이라고 하는데 왜 유독 교회건물에는 전기가 누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교사가 살인을 당하지 않나, 수녀들이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지 않나, 기독교 단체가 정부의 승인을 얻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뇌물이면 다 통과되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곳에 도착해서 문맹선교를 시도했습니다. 그 당시 문맹이 70% 였다고 보고되고 있었습니다. 23곳에 야간 학교를 개설을 하고 문맹을 퇴치해 보려 했으나, 공부를 해야 된다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아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동기가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철저한 계급제도 때문이었습니다. 공부를 해서 무엇을 안다고 더 나은 생활을 기대해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곳에 기도모임이 세워지고 전도사를 파송해서 교회의 모양을 갖춰갔었습니다. 선교사가 교회에 참석하는 날은 교회가 꽉 차고 아니면 교회에 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전도자들이 세대를 거처서 선교사들과 일을 해 와서 아주 사업적인 전도사들의 모양으로 갖추었습니다. 이중 삼중으로 선교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자기의 전도 생활에 어려움을 눈물로 호소하고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거의 실패로 돌아가고 오직 2곳 개척 교회만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모든 전도자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캉가얌이라는 곳에 캉가얌교회는 인도에서 보기 드물게 재정까지 독립을 했고 오히려 다른 한 교회를 돕고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독립했다고는 하지만 목돈이 들어가는 부분들은 역시 선교사 몫입니다.



80년대 초반에는 학생으로 비자를 해결했으므로, 대학생들과 성경공부가 이루어 졌었습니다. 처음에 3명으로 시작해서 4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너무 신실하게 찬양과 기도와 말씀 속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주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가운데, 어느 날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구세주로 믿고 있는지 재확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천국으로 가는 길은 여럿인데 그 길들 중에 예수의 길이 좋아서 그 길을 택한 것이지 결코 예수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은 인정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때의 나의 참담한 심정은 무엇으로 표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 그들을 위해 40일 금식을 하며 주께 매달리기를 주 예수님이 그들의 오직 구세주라고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과연 주께서 그 40일 동안에 많은 학생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은혜 받게 하시고, 지금 여러 학생들이 학교강단에서 선교단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힌두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선교의 방향을 바꾸지 않고는 효과 있는 선교가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하고 어린이 선교로 전향했습니다. 1986년 4월에 이로드라는 곳에 어린이집을 세우고 38명의 남자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정말 어린이 선교는 힘이 납니다. 그 아이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대합니다. 그런데도 힌두교로 다시 돌아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기도하기는 그 아이들이 언제고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금 이로드의 어린이집은 사감으로 있었던 헌신된 여자 사감에게 맡기고, 1989년 12월에 이곳 크리쉬나기리 라고 하는 곳에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작은 마을입니다. 현대 문명에 깊이 물들지 않았고, 공기가 맑고 깨끗하며 외국인이라는 사람을 보지도 못했던 시골인데 이곳에서 어린이집과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곳이 다 변하는데 이곳이라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상상을 초월하게 변했습니다. 이제 가난하거나 낮은 계급이거나 자식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긴박한 생각들이 이 사람들 가슴에 넘쳐서 학교는 초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학교를 하는 목적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구세주라고 증명하기 위함이니, 많은 학생을 받아 온전히 예수님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결국 학교를 해서 돈을 벌자는 일반 학교운영자들과 다름이 없지 안겠습니까 그래서 한 학년에 75명으로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올해 2000년 3월3일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을 접하고 주께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은 학교인가를 매 학년마다 받더군요. 저희 학교가 설립된 것은 90년 4월인데, 94년도에 현지 동역자와의 어려운 관계로 말미암아 94년에 학교 이름을 바꿔 Trinity Matriculation School(TMS)라고 이름을 바꿔 새롭게 시작하면서 학교인가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각 학교운영자들이 하나같이 조언해 주는 것은 뇌물이 들어가지 않고는 절대 받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뇌물을 주고는 인가를 받지 않겠노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기다려야겠노라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학교를 하는 것이라면 주께서 행하실 믿는다고 공표하고는 기다렸습니다. 이곳은 10학년이 되면 국가 시험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도 10학년에 5명이 있는데 학교인가가 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3월5일까지 시험자 명단을 등록을 해야 하는데 3월 2일인데도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계속 사람이 교육국으로 들랑거려도 주겠노라고, 싸인을 했노라고, 보내겠노라고 계속 미루어 오고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 3월 3일에 도착했습니다. 뇌물을 기다리는 자와 주지 않겠다는 선교사와의 팽팽한 싸움이 선교사의 통쾌한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 때부터 학생을 명단을 들고 마드라스로 뛰고 고사장으로 뛰고 해서 다 끝내고 아이들도 시험을 잘 치뤘습니다. 이제 11학년 12학년인가를 받는 문제가 아직도 남았으나 주께서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어린이집에는 35명의 어린이들이 3살부터 11학년까지 있습니다. 지금은 사감이 없어서 단기 선교사들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35명의 엄마 노릇은 쉬운게 아니네요. 아침부터 쌈 싸우듯 소리 지르기 시작해서 잠들 때까지 쉬운 시간이 없네요. 어떤 때는 제 자신이 마귀할멈 같고, 어떤 때는 악독한 고아원 원장 같은 마음이 들 때도 많이 있답니다. 아이들을 통해 아직 성숙하지 못한 내 자신을 보며, 한심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원망스럽기까지도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린이집을 하면서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이야기하는데, 저는 어떻게 된게 얼마나 싸우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소망을 가지는 것은 아이들을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다음에 커서 우리 어린이집 엄마는 지독한 사람이었다고 하겠죠? 그래도 정직하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하며 때리고 싸맨답니다. 더욱 기도에 힘 쓸 일은 우리 학교 교사들을 위한 것입니다. 저희는 매일 아침마다 교사 경건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수요일에는 현지인 성경공부가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 듣고 보고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잘 알고 믿고 있노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왼 오해입니까? 그 예수님이 자기들의 또 하나의 신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정말 힌두교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느끼는 것은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깨닫는 것은 나는 다만 씨뿌리는 자로써의 사명을 다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자라게 하시고 열매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 십니다. 그러나 가끔은 주님께 호소합니다. "주여 나는 열매를 볼 권세가 없는지요 그것으로 위로 받을 수는 없는지요?" 또 다시 배우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위로가 나의 전부입니다. 내가 사람에게서 나의 일에서 만족하고 위로 받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우리는 한국의 어린이들을 이곳 어린이집으로 초대해서 우리 아이들과 몇 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선교에 대해 배우게 하고 세계를 볼 수 있는 눈과 영어가 한국아이들에게 익숙해지고 친밀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계획을 세웠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2아이들은 대려다 3주간 같이 있어 본 일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예수님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그 흔한 교회도 나가보지 못했었던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이 부모를 전도하고, 선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학 때 다시 오겠다고 부모를 조르고 있답니다. 이 아이들을 통해 배웁니다. 역 선교도 효과가 있겠다고 믿어서 이 계획을 세워 주께서 기름 부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기도하기는 10여 년 후면 저도 은퇴를 하게 되겠는데, 그 때는 중보기도자로 세워주시고 생명 다하는 날까지 중보기도자로 사명을 다 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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