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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0-09-22
 제목  2000년세계선교대회(목회지도자)-목회자의 영성 개발과 인격
 주제어키워드  WMS2000 목회자 영성발달 인격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7760  추천수  6
분과별 세미나 (3-3)





"목회자의 영성 개발과 인격"







서울대학교 졸업(문학사)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신학석사)

미국 Fuller 신학대학원 졸업(목회학박사)

미국 Biola University 졸업(교육학박사)

미국 Azusa Pacific University 교수

서울대학교(인격발달론) / 한양대학교(발달심리학) 강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교육심리학/영성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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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훌륭한 목회자가 되는 것은 귀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참으로 귀한 일이다. 왜냐하면 훌륭한 목회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참으로 큰 유익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목회자가 훌륭한 목회자인가?

훌륭한 목회자는 인격과 실력이 겸비된 목회자다. 인격은 훌륭한데 실력이 없어도 안되고 실력은 많은데 인격이 잘 못 되어 있어도 안된다. 설교는 잘 하는데 인간관계가 나빠서 화평을 깨뜨리는 목회자를 훌륭한 목회자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관계는 좋지만 설교를 잘 못 하는 목회자를 훌륭한 목회자라고 할 수 없다. 말씀 사역에 있어서도 유능하고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원만한 사람이 훌륭한 목회자가 아니겠는가!

이것은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사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수술은 잘 하는데 환자들에게 불친절한 의사를 훌륭한 의사라고 할 수 없으며 환자들에게 친절하지만 수술을 하면 환자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자를 죽이는 의사를 훌륭한 의사라고 할 수 없다. 훌륭한 의사가 되려면 환자들에게 친절하며 병도 잘 고쳐야 한다.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의사가 훌륭한 의사다.

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력이 좋아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지만 교만하여 학생들로부터 혹은 동료 교사들로부터 인격이 잘 못 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교사를 훌륭한 교사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인격이 훌륭하여 대인관계는 좋지만 실력이 없어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를 훌륭한 교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변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력이 있어서 돈을 많이 벌지만 돈을 많이 안 주면 불쌍한 사람의 변호를 맡지 않는 변호사가 훌륭한 변호사가 아닌 것처럼, 인정이 많아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마음은 있지만 법률을 잘 몰라서 승소할 사람을 패소하게 만드는 변호사를 훌륭한 변호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영역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실력과 인격을 구비해야 한다. 특히 목회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목회자의 경우엔 훌륭한 인격을 갖추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목회는 인격대 인격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은 물론 사람들과의 인격적 만남이 목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영성(spirituality)과 인격(character)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영성이 발달한 사람이 비인격자라면 그 영성이 참된 영성일까? 비인격적 영성도 기독교의 영성인가? 아니다. 비인격적 영성은 기독교의 영성이 아니다. 기독교 내에 비인격적인 영성이 존재한다면 그 것은 이단의 영성이다. 이단 교주는 비인격자이면서 영성이 출중하다고 선전한다. 비도덕적인 기독교는 이미 기독교가 아닌 것처럼 비인격적인 영성은 이미 기독교의 영성이 아니다. 이처럼 영성과 인격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럼 영성이란 무엇인가?



II. 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

영성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고 정의가 있으므로 성서적 근거를 두면서도 포괄적이며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영성에 대한 정의는 학자들마다 강조점이 좀 다르다. 쌘더스와 엘리슨은 과정을 중시했고(Sanders, 1962; Ellison, 1988), 카터와 벤너와 맬로니는 전인성을 강조했다(Carter, 1974; Benner, 1988). 많은 학자들의 공통점은 영성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 및 인간과의 수평적 관계가 동시에 언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Sanders, 1962; Carter, 1964; Wichern, 1980; Ellison, 1988; Malony, 1988, Kwon, 1997).

필자는 영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권택조, 1999): "영성이란 하나의 자아(거듭난 사람)가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성서적으로 맺으며 그리스도다움을 향하여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다."("Spirituality is the process of living a life of a self toward Christlikeness in a Biblical relationship with God and people b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이 정의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개념은 "그리스도다움", "자아",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성령의 역사"다.



A. 영성발달의 목표: 그리스도다움(Christlikeness)

영성발달의 목표는 그리스도 자신이며 그리스도의 인격이고 그리스도다움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닮는 삶이 영성발달의 목표이며 신앙생활의 목표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사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삶을 살라고 강조했다(고전 11:1). 그리스도인(Christian)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럼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그리스도다움인가? 성경에 있는 모든 덕목을 다 합하면 그리스도다움이 될 것이다. "믿음, 소망, 사랑, 겸손, 경건, 용서, 감사, 인내, 자비, 충성, 온유, 절제..." 등등 성경에 언급되는 모든 덕목을 많이 실천하면 그리스도를 많이 닮는 삶을 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막연한 것이며 추상적이다. 목표가 추상적이면 자기진단이 어렵고 자기진단이 안되면 목표를 향하여 가는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성을 진단하고 영성을 발달시키려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 정의가 필요하다.

필자는 그리스도다움을 "타자중심주의"(other-centeredness)로 정의한다. 여기에서 타자중심이란 자기 아닌 타자, 즉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중심하여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정신을 말한다. 이것은 자기중심주의(self-centeredness)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이타적인 삶을 의미한다. 불신자들에게 있어서 "타자"란 다른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있어서 "타자"란 눈에 보이지 않는 타자인 하나님과 눈에 보이는 타자인 다른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럼 무슨 근거로 타자중심주의, 즉 하나님중심주의와 타인중심주의를 그리스도다움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지상사역과 십자가의 죽음 속에 타자중심주의가 핵심을 이룬다면 그리스도다움이 타자중심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육신과 사역과 죽음은 그리스도를 잘 나타내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중심주의와 타인중심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주님은 친히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자기중심적 동기에서가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한 것(타자중심적 동기)이라고 강조하셨다(막 10:45).

또한 그리스도의 지상사역도 타장중심주의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가르치시고(teaching) 설교하시고(preaching) 치유하신(healing) 그리스도의 삼대사역(마 9:35)은 위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아래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타자중심적 활동이었다. 만약 예수님께서 자기중심적 동기에서 사역을 하셨다면 천하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셨을 것이다. 못 고치는 병이 없었기 때문에 천하의 부호들이 돈을 싸 짊어지고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을 것이다. 죽은 자들도 살릴 수 있는 그의 능력으로 돈을 벌었다면 그리스도는 전무후무한 천하의 거부가 되셨을 것이다. 그러나 여우도 굴이 있고 참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예수님은 머리를 둘 곳이 없었다. 그의 지상사역은 전적으로 타자중심적인 사역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Crucifixion)은 그의 타자중심적 인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가 십자가를 지신 것은 함이 없어서도 아니고 운이 나빠서도 아니며 인덕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성경에 예언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함으로써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놓기 위한 위대한 타자중심적 행동이었다. 그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합니다"(눅 22: 42)라는 기도를 마치고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타자중심주의는 그리스도다움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닮는다는 것은 자가중심적인 삶을 지양하고 타자중심적인 삶, 즉 하나님중심적인 삶과 타인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삶과 사역의 동기가 이기적일 때에는 그리스도를 멀리하는 삶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고 타인들을 위하는 동기를 가지고 살며 사역을 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B. 영성이 발달해야 할 주체: 자아(Self)

영성이 발달해야 할 주체는 바로 자아다. 거듭나지 않은 자아는 아무리 발달시켜도 영성이 발달하지 않는다. 인간성만 발달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듭난 자아가 하나님의 뜻대로 발달하면 인간성이 발달함과 동시에 영성이 발달한다. 왜냐하면 거듭난 자아의 영성은 인간성과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거듭난 자아는 다 영성이 발달한 자아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사람 안에도 아직 죄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6-7장에는 바울이라는 신앙인의 자아 속에 두 가지의 자아가 싸우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선을 향하는 자아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자신을 끌어가는 자아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동전에도 양 면이 있는 것처럼 한 자아에도 두 가지 모습이 나타난다.

바울은 에베소서 4:22-24에서 두 가지 자아를 설명한다. 성도에게는 '옛자아'(old self)와 '새자아'(new self)가 있다는 것이다. NIV나 NASB등에는 'old self'와 'new self'라고 번역되어 있고 한글 개역 성경에는 "옛사람"과 "새사람"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한 사람 안에 이런 두 가지의 대립적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옛자아를 '자기중심적 자아'(self-centered self)라고 부르고 새자아를 '타자중심적 자아'(other-centered self)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영성을 발달시키려면, 즉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면 자기중심적 자아(옛자아)를 죽이고 타자중심적 자아(새자아)를 살리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옛자아는 매일 죽이고 새자아는 매일 살려야 한다. 전자를 '자기부정'(self-denial)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자기긍정'(self-affirmation)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C. 관계(Relationship/Relationsheep)

영성은 관계성(relationship) 속에서 발달한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 및 인간과의 수평적 관계를 잘 맺음으로써 영성이 발달한다. 필자는 '관계'라는 일반적 용어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relationsheep"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리스도인의 관계는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용어에서 "sheep"은 희생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면 희생제물로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통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타인들과의 인간관계를 맺을 때에도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맺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용서하며 용서받는 관계를 말한다. 희생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으며 그 용서로써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D. 영성발달의 방법: 기독교교육과 성령의 역사

우리는 영성발달의 모델을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복음서는 그리스도의 기독교교육을 중점적으로 기록했고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기록했다.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교육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가 접목되었을 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누가 더 큰가를 놓고 경쟁하던 제자들의 자기중심주의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타자중심주의로 변화되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위대한 선교의 역사는 타자중심주의의 표현이었다.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자기민족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착각하던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게 된 초대교회의 선교운동은 자기중심주의를 깨뜨리고 타자중심주의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영성발달을 증명해준다.

영성발달은 아래로부터의 기독교교육과 위로부터의 상령의 역사가 접목될 때에 가능하다. 성령이 역사하는 기독교교육과 기독교교육이 병행되는 성령운동이 전개됨으로써 사도행전적인 선교운동이 일어느나는 새 천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본 선교대회가 이와같은 선교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를 기도한다.



III. 결론

불신자의 인격은 영성을 포함하지 않지만 신자의 인격은 영성을 포함한다. 불신자는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불신자는 아무리 인격이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성이 좋은 것이지 영성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자의 경우는 다르다. 신자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의 영적 상태는 인격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신자의 영성은 인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목회자의 영성은 목회자의 인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나는 인격은 잘 못되었으나 영성은 뛰어나다"는 식의 생각이나 표현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비인격적인 목회자가 훌륭한 영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모순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그토록 책망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 자신이 먼저 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고 옆으로 인간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삶을 살며 사역을 함으로써 인격이 훌륭한 영성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는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중심적인 삶을 살며 타인중심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힘쓰면서 자신을 말씀으로 교육하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며 동시에 야떼들을 섬기는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타자중심적인 인격과 영성을 소유하고 목회할 때에 진정한 선교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는 타자중심을 전제로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참고서적)-권택조, 영성발달: 신학적 교육심리학적 통합모델. 서울: 예찬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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